최근 수정 시각 : 2024-01-17 08:41:13

칸다 타케유키

1. 개요2. 작품 활동3. 작품 특징4. 작품 목록
4.1. 감독 작품4.2. 참가 작품

1. 개요

神田武幸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1943년 8월 11일 후쿠시마 후쿠시마시 출생 ~ 1996년 7월 27일 사망. (향년 52세)

무시 프로덕션 출신으로, 선라이즈 주요 작품들의 콘티와 연출을 거쳐 감독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한때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선라이즈 3대장으로 불렸다.

2. 작품 활동

토미노가 콘티, 타카하시가 각본에 재능을 보였다면 칸다는 연출[1]에서 강점을 보였다. 제자 우에다 마스오에 따르면 칸다는 토미노 요시유키처럼 스태프를 갈구면서 빡세게 굴리는 사람도 아니고 설렁설렁 일하고 힘들면 가끔 술 마신다고 하고 땡땡이도 치는데, 현장은 또 제대로 돌아가는 신기한 감독이었다고 한다. 우에다는 사람을 다루는 법을 칸다에게 배웠다고 한다. 여유있는 성격 덕분인지 타카하시와 죽이 잘 맞았다.

콘티는 굉장히 대충 그려서 캐릭터들이 죄다 스틱맨이었고, 칸다의 콘티는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다시 그려서 클린 업을 해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야스히코는 칸다의 콘티를 그리면서 "내가 콘티를 그리면 처음부터 전부 예쁘게 그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칸다는 타마미술대학 출신이었고 실제로는 그림도 꽤 잘 그려서 "그러면 왜 나랑 그릴 땐 대충 그렸어?"하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타카하시 료스케는 연출 의도를 잘 아는 스태프가 많으면 콘티는 기본적인 것만 제시해도 되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칸다의 작품은 본인이 직접 콘티를 그리지 않고 연출로 크레딧 되기만 해도 칸다의 연출색이 강하게 느껴진다. 콘티가 시키는 대로 만드는 연출가가 아니라 콘티 담당에게 지시를 내리는 타입의 연출가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상술했듯이 타카하시 료스케와는 무시 프로덕션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훗날 선라이즈의 전신이 되는 소에이샤에서 일하며 주로 나가하마 다다오 감독과 함께 작업하다가 나가하마 사후에는 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태양의 엄니 다그람, 기갑전기 드라고나,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등의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타카하시 료스케의 인터뷰에 따르면 칸다 타케유키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영상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 자신이 담당하는 전쟁물에 이를 반영시키는 경향이 많았으며, 실제로 근현대 군사물 지식도 매우 풍부했다고 한다. 타카하시 감독이 만든 로봇 애니메이션 특유의 거칠면서도 리얼한 연출은 칸다가 개입한 부분이 크다.

당대 일본 애니업계의 최고의 밀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간에 밀덕으로 널리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 마츠모토 레이지, 토미노 요시유키, 안노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등등은 아마추어로 보일 정도로 뿌리깊은 정통파 밀리터리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병기의 묘사나 전장 속 인간드라마 표현 등등을 보아도 나름 정교한 묘사라도 만화적인 터치가 많았던 위의 인물들 보다도 아날로그적인 무대에 한해서 훨씬 리얼하고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다그람이나 08소대에서 보여준 게릴라전은 종래의 전쟁물과 색다른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 이렇게 다그람이나 메로우링크, 건담 08소대의 어딘지 구시대적인 듯한 연출은 칸다 타케유키의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이다. 타카하시 료스케도 칸다 타케유키의 사람냄새나는 아날로그적인 전장묘사와 연출을 매우 좋아해서 칸다가 죽은 뒤 그의 공백을 매우 아쉬워했다.

기동전사 건담: 제08MS소대의 총 감독을 역임하던 1996년 7월 27일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2세. 생전에 매일같이 술을 즐길 정도로 애주가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이미 지병으로 골골대서 하다가 중단한 작품이 많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업무 특성상 야근에 초과근무도 정말 많은지라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인데, 칸다는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수준으로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연출로 참여했던 후쿠다 미츠오가 그의 제자를 자처하고 있다. 물론, 후쿠다는 밀리터리 묘사에는 딱히 관심은 없어서 생전의 칸다 감독이 장기로 하던 땀내나는 아날로그적인 드라마 연출과 세밀하고 사실적인 전장 묘사는 전혀 계승하지 않았지만 구도는 비슷하게 잡고 인간적으로 교류가 있었다는 점에서 후쿠다 미츠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제자로 인정해준다. 연출의 기본만 배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2] 또다른 제자로는 야타베 카츠요시, 카시마 노리오, 우에다 마스오, 아미노 테츠로가 있다.

横山裕一朗 (요코야마 유이치로)라는 가명으로 참여한 작품도 많다. 자신이 감독한 작품이라도 콘티를 그릴 땐 이렇게 쓴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콘티를 그릴 땐 요키타니 미노루라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

3. 작품 특징

특히 로봇물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인데, 일반적으로 로봇물에서 전차 전투기같은 재래 무기들은 배경용 혹은 주역 로봇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장치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사람 작품에서는 재래식 무기가 나름대로 활약하며 심지어 전장의 주역인 로봇과 비등하게 싸우거나, 더 위협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많다. 대표적인 게 타카하시 료스케와 함께 했던 태양의 엄니 다그람에서 공격 헬리콥터에 대한 묘사. 혼자 감독했던 기갑전기 드라고나에서도 지구에 내려온 주인공 일행의 모함이 원래는 전투기를 운용하던 항공모함이고, 전투기들이 기가노스의 메탈아머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잘 싸운다. 유작인 기동전사 건담: 제08MS소대에서도 지온군이 마젤라 어택으로 육전형 건담을 농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심지어 인간 병사가 재래식 무기를 사용해 게릴라 전을 해서 로봇을 격파하기도 한다. 본래 로봇애니는 장난감을 팔아야 하니까 로봇을 돋보이게 그려야 하는데 상당히 특이한 묘사. 거대로봇 하나 만으로는 전황을 좌우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고 한다.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은 절망적이거나 답이 없는 상황을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돌파해내는 묘사에 있어서는 토미노나 타카하시보다 뛰어난 면을 보여준다. 기갑엽병 메로우링크는 아예 이런 묘사를 집중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그야말로 밀덕의 화신같은 감독. 칸다 사후 이런 묘사를 보이는 인물은 친구였던 타카하시 료스케 정도 외에는 잘 없다.

밀덕이기 때문에 격투전 연출은 토미노 요시유키보다 떨어지지만 포격,사격 묘사는 토미노 조차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미노는 건담 같은 걸 만들어서 사격전을 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검투같은 백병전이 특기다. 이건 그의 초기작 용자 라이딘부터 두드러졌는데, 잘 보면 사격은 견제용으로만 사용하고 실질적인 전투의 클라이막스는 대부분 격투전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성전사 단바인에 이르러서는 그가 즐겨 쓰던 검투 장면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칸다는 견착부터 자세까지 각을 잡고 반동, 탄피까지 제대로 묘사하며 포격으로 전투를 끝내는 묘사가 특징이다. 토미노는 사격전은 멀리서 총만 한 번 쏘면 끝나서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칸다는 포격의 준비 과정과 발사의 충격을 치밀하게 묘사해서 재미와 멋을 살린다. 밀리터리 연출 중에서도 특히 지상전이 장기이다. 그가 개입한 작품은 지상전이 굉장히 실감나며, 공중전의 스페셜리스트인 토리우미 히사유키 이타노 이치로와 대조된다.

제자 야타베 카츠요시 말로는 편집에 매우 공을 들이는 감독이라고 한다. 편집으로 영상의 질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실사 영화에 박식해 연출을 할 때는 직접 콘티를 그리는 것보단 "이 영화, 이 배우처럼 해달라." 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 그가 참여한 작품들이 헐리웃 영화와 유사한 배경과 연출, 인물묘사 등등이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런 성향이 많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4. 작품 목록

4.1. 감독 작품

4.2. 참가 작품




[1] 현장 관리를 하고 영상을 다듬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 [2] 연출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다, 어떤 구도와 포즈를 잡으면 멋있다 같은 기본적인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연출은 연출가가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 표현하는 것인데 사람마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므로 연출을 배워도 차이는 반드시 생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에도 제자는 많은데 똑같은 연출을 하는 제자는 별로 없다. [3] 타카하시는 칸다가 자신의 연출을 따라서 작업하는 게 미안해서 중간에 감독 크레딧을 내리고 각본과 콘티에 전념했는데 칸다가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대로 연출을 해줘서 고마웠다고 한다. [4] 즐거운 무민 일가의 2기 [5]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 만화 [6] 죽은 뒤에 나온 재편집 극장판이라 이렇게 크레딧되었다. [7] 사후에 나온 작품으로, 기획 당시에는 참여하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