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8:03:10

천과 지

1. 개요2. 영상화
2.1. 영화2.2. TV 드라마
2.2.1. NHK 판2.2.2. 니혼테레비 판2.2.3. TV 아사히 판


天と地と
보통 <하늘과 땅과>라고 알려져 있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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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온지 쵸고로(海音寺潮五郞,1901~1977)의 소설로 우에스기 켄신 만만세 일대기. 타케다 신겐은 악역.

한국에서도 출간된 적은 있으나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 소설 전집 등에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 대학 도서관 등에서 열심히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총 4권으로 책바다 서비스(http://www.nl.go.kr) 등을 통해 주거지 인근 도서관에 신청하여 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단, 대여에 소요되는 비용은 부담해야 한다.) 비교적 구하기 쉬운 국내 출간본으로 시바 료타로의 나라훔친 이야기와 합본구성인 대지(大志)가 있다. 도서관의 기증서고나 보존서고, 헌책방을 뒤지면 영화 개봉 뒤에 나온 판본보다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단, 세로읽기)

소설적 재미는 상당한 편. 다만 너무 켄신 찬양 일색이라서 가려 읽을 필요가 있다.

2. 영상화

2.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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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을 원작으로 하는 1989년작 영화.

당시 국내 영화월간지 로드쇼에선 "하늘과 땅"으로 제목이 나온 바 있다. 영문 Heaven and Earth, 일문 天と地と.

카도카와 하루키(' 카도카와 쇼텐'의 2대 창업주)가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해 만들었던 작품으로 제작비만 50억엔이 넘었다.이는 당시 할리우드 대작급 제작비 수준으로 일본 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였다가 2023년에서야 애니메이션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52억엔 가까운 제작비를 들여 이 기록을 깼으니 33년이나 기록을 유지했을 만큼 일본 버블시대 돈지랄의 결정판.

촬영을 전부 캐나다에서 하고, 모든 스태프와 기자재, 소품, 심지어 말까지도 전부 공수해서 촬영했기 때문에 막대한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왜 캐나다에서 촬영했냐 하면 도저히 일본에서는 카와나카지마 전투를 찍을 넓디 넓은 들판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캐나다 이전에 동남아도 알아봤는데 기후가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여러 나라를 알아본 끝에 캐나다로 촬영한 것. 거기다가 영화 내용의 계절에 맞추어 촬영할 때도 계절에 맞추어서 작품을 찍은 무시무시한 작품이다. 운송비가 촬영비보다 많이 나왔다는 전설적 작품. 중국 사극 정도에서나 볼 법한 물량공세가 압권. 6만명 이상의 인원과 2만필 이상의 말을 동원[1]했으며 로케 기간도 길어서 처음 주연으로 내정된 와타나베 켄이 촬영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발병해(후에 재발) 귀국하는 돌발사태가 일어나지만 대체역의 긴급 오디션을 열어 에노키 다카아키로 주연을 교체하기도 했다.[2]

카와나카지마 전투의 실제 묘사가 압권으로, 근래 전쟁 영화의 대세인 CG 떡칠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구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발견한다면 한 번 봐도 좋을 것이다. 단순히 돈 들인 티만 나는 게 아니라 전국시대 전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데, 영화라기 보다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참고로 엑스트라 상당수는 현지인들을 쓰다보니 백인에서 다양한 인종들이다. 물론, 모두 얼굴을 가린 투구 차림이라 표가 나지 않는다.

일단은 일본 극장 흥행만으로도 92억엔이라는 엄청난 대박을 거두었다. 이는 30 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역대 실사영화 흥행 7위에 들어갈 정도 순위(애니까지 합치면 24위다)이다. 하지만, 결론은 흥행은 망한 게 맞다. 실제로는 제작비 2배는 건져야지 제작비 회수 흥행이기 때문에 카도카와는 손해보았고 이로 인해 카도카와 하루키는 카도카와 이사회에서도 이대로 두다간 업체를 날려먹겠다는 우려 속에 반대에 부딪치면서 아우인 카도카와 츠쿠히코에게 어거지로 회장 직을 물려주고 강제로 은퇴해야 했다. [3]

제작사야 손해를 보았지만 일단 92억엔 흥행은 엄청나서 2022년 개봉한 원피스 필름 레드(201억) 이전까지 역대 非 도호 배급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4] 더 크게 망한건 3년 뒤 카도카와 할리우드 진출작인 루비 카이로다. [5]

음악은 당시 한참 잘나가던 코무로 테츠야가 맡았다.

이 영화의 전투신은 이후 꽤 많은 시대극 작품에서 재활용되기도 하였다. 버블이 끝난 후 도무지 이런 스케일로 다시 작품을 찍는다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2. TV 드라마

2.2.1. NHK 판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파일:NHK 로고.svg
大河ドラマ シリーズ
대하드라마 시리즈
1960년대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1963년 1964년
꽃의 생애
花の生
아코 낭인
赤穂浪士
1965년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태합기
太閤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源義経
세 자매
三姉妹
료마가 간다
竜馬がゆく
#s-3.1
天と地と
}}}}}}}}} ||

1969년에 방영한 1항목의 첫 번째 영상화. 겸해서 NHK 대하드라마의 첫 번째 컬러 시리즈이기도 하다. 주연은 이시자카 코지.

현재는 50회만 온전히 남아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px><tablebgcolor=#fff,#191919><bgcolor=#275c9d><tablebordercolor=#275c9d> 파일:MyDramaList_logo.png ||
별점 8.0 / 10

2.2.2. 니혼테레비 판

1990년에 방송했고, 여명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카게토라 역에 오오사와 미키오(大沢樹生) , 부친인 나가오 타메카케 역을 미후네 토시로(三船敏郎)가 맡았다.

2.2.3. TV 아사히 판

2008년에 방송. 카게토라는 마츠오카 마사히로(松岡昌宏)가 맡았다.


[1] 진짜 쓸데없는 여담이지만 캐나다군 상비군이 6만여 명 정도 된다... [2] 이 배우는 훗날 한국영화 희대의 망작 싸울아비에 출연하게 된다.(...) [3] 하루키가 코카인 밀수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1993년 회장을 츠쿠히코가 차지했다. 이로 인하여 형제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하지만, 카도가와 츠쿠히코도 2020 동경 올림픽 관련에 뇌물준 것이 드러나 회장에서 물러났다. [4] 공동배급 제외 [5] 한국 제목은 베일속의 카이로. 리암 니슨, 앤디 맥도웰 주연인 이 영화는 감독인 그레미 클리포드가 대마초하고 나타났다는 폭로가 터질 정도로 제작환경이 엉망진창이었고 흥행과 평 역시 엄청난 재앙이었다. (30억엔 중 5억엔 밖에 벌지 못했다) 형제 내분의 원흉이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감독도 이후로 극장영화에서 사라지고 주로 TV영화 연출이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