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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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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태조기(太祖紀)」 4·5권 「태종기(太宗紀)」 6·7·8권 「진종기(眞宗紀)」
조광윤 조광의 조항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13권 「영종기(英宗紀)」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조정(趙禎) 조서 조욱
17·18권 「철종기(哲宗紀)」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23권 「흠종기(欽宗紀)」
조후 조길 조환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36권 「광종기(光宗紀)」
조구 조신 조돈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조확 조윤
46권 「도종기(度宗紀)」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조기(趙禥)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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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전여조 이조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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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6대 권신
황잠선 진회 한탁주 사미원 정대전 가사도
<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남송의 권신
진회 | 秦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Youtiaostory_hangzhou_statue1.jpg
악비의 묘, 악왕묘에 있는 진회 부부.[1]
시호 충헌(忠獻) → 유추(謬醜) → 충헌 → 유한(謬狠)
이름 진회(秦檜)
회지(會之)[2]
출생 1090년
사망 1155년 (향년 65세)
국적 송(宋)
출신 북송 강녕부(江寧府) 강녕현(江寧縣)

1. 개요2. 생애3. 자손4. 평가
4.1. 비판론4.2. 옹호론4.3. 조선에서의 평가4.4. 현대 중국에서의 평가
5. 성격6. 대중문화 속의 진회
6.1. 소녀침경(화타위전)6.2. 씽씽 중국어 탐험대6.3. 정충악비6.4. 사조영웅전6.5. 만강홍: 사라진 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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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莫須有"(막수유)
아마 있을지도 모르오.[3]
의 재상이자 중국에서 간신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로, 당시 주전파의 대표론자였던 악비와 정반대인 주화파의 대표론자였다.[4] 악비를 모함하고 죽였다 하여 한간이 되었지만, 알고보면 외교가와 행정 관료로 어쨌든 남송을 살리고 조정을 안정시킨 공도 있어 현대 들어선 약간의 재평가도 받고 있다. 후술 항목 참조.

2. 생애

1090년 가난한 현령집에서 태어난 진회는 1115년 과거에 합격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1127년 북송과 같이 를 격파한 금이 북송이 약속한 세폐를 바치지 않자 대군을 이끌고 개봉을 포위한 후 약속한 세폐와 북송의 북방 영토 3진을 위약금으로 요구하였다. 당연히 송 휘종과 조정은 주전론을 선택하려고 하자 진회는 휘종과 흠종, 그리고 조정에 다음 같은 장계를 올린다.
"금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3진으로 만족하지 않고 3진을 받으면 다음에는 더 많은 영토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저들에게 약속한 세폐와 영토 3진 중 1진을 주어 시간을 벌고 그 시간 안에 우리의 방위를 굳건히 한 다음, 백관들과 논의하여 금나라와의 관계를 정하시고 그 전까진 폐하는 금의 사신을 직접 대면하지 말고 전각 밖에서 신하를 통해 접견하소서."[5]
그러나 이미 주전론을 선택한 북송은 진회의 장계를 기각하고 전쟁을 선택하였고 송의 시간 끌기를 눈치 챈 금은 바로 송을 공격했다. 문제는 송휘종과 흠종, 주전파 신료들이 결정한 전쟁이란 것이 징병하고 재물을 풀어 병사를 사기 진작하는 방법이 아니라, 곽경이라는 사이비 도사에게 재물 천금을 주고 어린 아이 7777명을 '육갑신병'이라는 신병으로 변신시켜 금군을 물리친다는 황당한 술법이었다는 것. 곽경이 엉터리 술법을 부리는 동안 송조정과 황실은 술을 마시며 방비를 게을리 하였다. 그러나 곽경은 금군이 개봉부 근처까지 진군하여 그 모습을 보이자 재물을 갖고 도주하였고 뒤늦게 이를 안 송은 혼란에 빠진다.

결국 개봉부가 금군에 함락되고 송황제마저 포로로 잡히는 정강의 변이 터지자[6], 진회 역시 에 포로로 끌려갔고, 완안창의 눈에 띄어 완안창의 참모가 되나 1130년 완안창이 초주를 공격하는 틈을 타 탈출해[7] 이후 남송 고종을 섬겼다. 처음엔 진회를 금의 첩자로 본 남송 조정의 의심도 받았으나, 진회가 주화론을 주장하며 악비 같은 군벌을 견제하자, 정통성이 부족하던 고종은 진회가 자신에게 충성을 다해 귀부한 것으로 보고 총애하여 돌아온 다음 해 진회를 재상으로 임명한다. 1142년, 결국 진회는 금과의 화평교섭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문제는 그러고 죽을 때까지 공포정치(...)를 펼쳤다는 것인데, 특히 앞선 "막수유"에서 보듯 주전파의 대표자 악비를 싫어해서 결국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사실상 사법살인한 셈.

진회는 19년간이나 재상 자리에 있었고 죽은 뒤엔 성대한 장례식도 치렀다. 그래도 그를 노리는 사람은 있었던지, 한번은 시전이라는 사람이 입궐하는 진회를 암살하려고 칼을 휘둘렀으나 빗맞았고, 진회는 놀란 말에서 떨어져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부턴 경비병 50여 명과 같이 다녔다고 한다. 진회 사후 그의 일가 권력은 고종의 양자 송효종이 강력하게 권력승계를 막으면서 사라졌으며, 훗날 발견된 그의 묘를 보면 도굴 흔적이 있는 듯 하다. 진회의 묘에는 글자가 쓰이지 않은 무자비(無字碑)가 있다고 하는데, 무자비의 일반적 의미[8]와는 달리 사람들이 한 글자도 써주기 싫어서 텅 빈 채로 남았다고 전한다. 한편 무덤 자체도 취총(臭塚), 즉 냄새나는 무덤으로 불리는데, 남송 말기의 명장 맹공(孟珙)이 진회의 묘를 지나갈 때 군사들에게 묘에다 똥오줌을 싸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한편, 진회가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재상의 자리에 있었는지는 논란이 좀 있는 편이다. 전통적으로는 진회가 실권을 휘두른 권신이라는 관점이 주류였고, 송고종은 기껏해야 간신에게 농락당한 암군이라는 이미지였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 진회는 송고종이 권력 유지를 위해 내세운 총알받이에 꼭두각시였고, 악비 모함 사건 등의 진정한 흑막은 송고종이다."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진회도 분명 능동적으로 권력을 노렸고 송고종도 후술하듯 진회를 경계해 '신에 칼이 들어 있는 우려'[9][10]를 겪었다는 등 반론이 있으나, 이에 대해 송고종이 진회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악비뿐만 아니라 악비의 양자 악운과 그 주변 사람들까지 강하게 처벌하라고 주장하고 이를 실행하는 기록이 있는 등 재반론 증거도 있다.

3. 자손

진회는 아내 왕씨와의 사이에서 자손이 없어 조카 진희를 양자로 들여야 했다. 인과응보라면 인과응보인 셈이다. 진희는 양아버지의 강력한 힘과 뇌물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진희의 아들이자 진회의 양손자가 진훈인데 진회는 이 수양손자를 꽤나 총애하였는지, 시험출제 관리를 포섭하여 진훈을 장원으로 조작시켰다. 이 때문에 억울하게 차석으로 밀린 사람이 방옹(放翁: 방자한 늙은이란 뜻)이란 호로 많은 명시를 남긴 시인 ' 육유'였다.

진회는 육유를 싫어하여 그를 차석으로 내리고도 모자라 육유가 얼마 되지 않은 수도에서의 관료 생활을 하는 내내 그를 괴롭혔으며, 나중에는 아예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이때문에 육유는 관료생활 대부분을 한직으로서 지방을 떠돌아야 했고 은퇴 뒤에는 야인으로 초야에 묻혀 살아야 했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육유는 그만큼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고, 무려 1만 수에 달하는 시를 지어 중국사 최고의 다작왕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중국의 누구도 진회의 자손이라 자칭하는 자는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손은 끊어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엉뚱하게도 1988년 홍콩에 거주하는 언론인 프랭크 칭(Frank Ching, 秦家驄)이 진회와 관련이 있다고 자칭하였다. 정확히는, 족보상으로는 진회의 자손이 아니지만 자기의 조상을 옹정제가 진회의 자손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이후 영종은 당시 권신이었던 한탁주의 건의를 받아들여 진회에게 내렸던 시호 또한 충헌에서 유추(謬醜)라는 시호로 바꿔버리고 왕작을 추탈해버렸으나 한탁주가 몰락한 뒤 한탁주의 정적이었던 사미원의 주청에 의해 둘 다 복원. 그러다가 1254년에 시호를 유한(謬狠)으로 다시 바꿨다. 여기서 謬는 그르치다, 속이다는 뜻, 醜는 추하다는 뜻, 狠은 사납다, 원한을 품다라는 뜻으로 바뀌어진 시호 두개 다 좋은 의미가 전혀 아니다.

사실 진회가 방계 후손이 없는 진짜 이유는 악비를 열렬히 추앙했던 효종에 의해 자손들이 벼슬길이 막히고 대부분 몰살당하는 참화를 겪었고 살아남은 일부 친족들도 효종에 의해 악비가 왕으로 추증되면서 악비를 사랑하는 황제나 남송 백성들에게 맞아 죽을 확률이 컸기 때문에 일부러 숨어 살아야 했다. 이런 탓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후손이 적은 것.

4. 평가

짐은 오늘부터 신발 속에 칼을 감추지 않아도 되겠구나!
진회가 죽은 날 고종이 내뱉은 말[11]

4.1. 비판론

진회는 한족 기준에선 오랑캐과 대항해 싸운 악비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이후에도 공포정치를 하며 반대파를 숙청해 큰 비판을 받았다. 문서 맨 위의 사진처럼 악왕묘 앞에 진회가 부인 왕씨와 함께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만든 상이 있고, 아직도 악비를 참배하는 사람들은 진회의 동상에 침을 뱉는다고 한다. 지금은 침을 뱉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아직도 그렇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의 지식인이었던 왕부지는 진회를 가사도 이상으로 위험한 최악의 간신으로 평가했고, 청 건륭제 때 진회의 후손이었던 진대사(자는 간천)는 과거에 급제하고 금의환향하다가 악비 무덤 앞의 먼 조상 진회 부부상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은 송 왕조 이후로 "회"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했고 나는 지금 악비의 무덤 앞에서 "진"이라는 성 때문에 참담해 하는구나!
이 때문에 아직도 중국인들은 이름에 회(檜) 자를 쓰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진회를 도운 묵기설(万俟卨)[13]이라는 간신[14] 역시 그의 고향에서 그의 존재를 부끄럽게 여겨 묵기라는 성씨를 모두 개성(改姓)했기에, 묵기라는 성씨는 현존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어에는 "진회도 친구 셋은 있다.", "칼을 천 번 맞을지언정 진회와 사귀지 않는다." 같은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진회 부부를 조롱하려 만든 음식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유탸오 문서를 참조. 이름에서부터 속담에다, 음식으로까지 모욕할 정도이니 진회의 악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악비의 명성을 만든 사람이 얄궂게도 진회 자신임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악비가 무리한 북벌을 감행하려 했다고 비쳐졌다 한들, 옛 수도 개봉을 비롯한 북쪽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론 역시 남송에서 팽배했던 것은 사실인데 진회는 이들을 진심으로 설득하는 대신 그냥 힘으로 찍어누르기 바빴다. 오죽하면 진회를 두둔해 함께 욕을 먹는 송고종조차도 진회의 '남인귀남, 북인귀북(남쪽 사람은 남쪽으로 돌아가고 북쪽 사람은 북쪽으로 돌아간다)'이라는 현상유지 주장에는 "그렇다면 짐은 북인인데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을 정도였다. 당시 종택 같은 사람은 끝까지 북쪽 땅 사수를 외치며 '강을 건너라!'를 유언으로 남겼을 마당이니, 그 밑에 있던 악비, 한세충 같은 이들이 그런 기조를 내세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물론 조정 입장에선 이렇게 병권을 잡고 있는 명장들이 혹시라도 반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웠을 수 있다 치지만, 그렇다고 조국에 헌신한 장수들의 군권을 하루아침에 빼앗고, 군권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좌천이나 파직 심지어 귀양도 아닌 별 다른 명분도 없이 죽여버린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당장 한세충 악비가 죽을 이유를 대라고 외쳤을 때 진회가 한 말은 고작 막수유(아마 있을지도 모른다)였다.[15] 한세충은 송고종이 반란군에게 위협당할 때 그걸 혈혈단신으로 진압한 사람이자 그가 지키는 지역은 감히 금군도 얼씬 못했다고 전해지는 명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보기에도 진회는 천하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쳤고, 이것이 오늘날 진회의 악명을 키운 꼴이 되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이런 야사도 있다.
악비 처형 전날 진회는 악비를 찾아가, "그대의 죽음으로 그대는 충신으로 기록될 것이고 나는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될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알고 있소?, 살아있는 동안의 승자는 나요."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학계와 달리 일반 대중들의 진회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예전과 비슷하며 악왕묘는 그대로이다.

양계초는 진회를 후한의 십상시, 진의 조고, 당의 노기와 이임보, 북송의 채경, 남송의 한탁주, 명의 류진과 위충현과 동급으로 보았다.

4.2. 옹호론

당시의 송은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은 영 부실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대책없는 주전론을 내세워[16] 에게 발리느니 차라리 돈을 내주며 화평을 유지하는게 단기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었다. 장기적인 군사력 강화를 생각한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게다가 진회 본인이 포로 출신이었으니 멸망 크리+비참한 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주전론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했을 터였다. 그렇다고 진회가 본인 목숨에 그리 연연한 것도 아니어서, 금 태종이 북송 영토에 송의 재상인 장방창을 황제로 삼고 "초(楚)"라는 괴뢰국을 세우려고 하자 이를 목숨 걸고 반대하여 분노한 금태종에게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진회: 장방창은 개봉이 함락당하는 순간까지 술만 마신 위인인데 그런 자를 어찌 황제로 모십니까? 또한 중원의 황성은 송의 조씨 뿐입니다.
금태종: 당장 저자의 목을 잘라 효수하라.
금의 중신: 지금 폐하가 저자를 죽이면 폐하는 송의 충신을 죽인 폭군이 될 것이고, 송 백성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저자가 노리는 것이 그것이니 저자를 본국으로 압송하시옵소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시 상황은 금나라 송나라 황성(皇姓)인 조씨 대신 다른 성씨로 허수아비 한족 왕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을 포로로 잡혀있던 진회가 금나라 황제의 면상 앞에서 크게 따져서 저지한 것으로, 포로로 잡혀있던 황족이나 송의 신하들은 장방창의 초황제 등극에 지지하는 서명을 하였는데 유일하게 진회만이 "황성은 오직 송의 조씨뿐입니다." 라고 지지 서명을 거절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진회도 목숨을 건 것이었고, 금태종이 노해 진회를 죽이려고 하였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금태종의 면상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 보면 진회도 보통 배짱은 아니었던 셈.

금나라는 이런 모습을 좋게 보아 오히려 진회를 살려주고 포로로 끌고 간다. 포로가 된 진회는 금의 세력가와 교류하면서[17] 금나라가 송나라에 비해 문화적, 경제적으론 많이 부족하나 군사력만은 송나라를 능가하니 지금 송의 허약한 군사력으로는 금과 전면전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진회는 주화론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였고 악비 한세충이 주장한 금과의 전면전 역시 반대하였다. 그러니 간신이나 그냥 공포 정치를 펼친 포악한 정치가였다고 하면 모를까 매국노라 보긴 좀 애매하다는 것. 적어도 송을 들어다가 금에 바쳐서 부귀를 누리지는 않았으니까.

매국노라는 말 자체가 '나라를 팔아먹은 놈'이라는 뜻인데 나라를 팔아먹었다기엔 이미 그 전에 송은 반이 아작나있었고, 남은 반은 그래도 건사했다. 애초에 국토 절반을 잃어버린 것은 취미 생활로 국가를 파탄낸 송 휘종의 잘못이지 정강의 변 당시 그저 평범한 관료 중 한명에 불과한 진회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진회의 공포정치도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정강의 변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18] 남송이 일단은 안정되는데 일부 도움을 줬다는 것이 몇몇 역사가들의 주장이다.

참고로 이런 진회에게도 나름 인간미(?)가 느껴지는 일화가 있는데, 진회가 죽기 얼마 전 한 가난한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받지 못하자 진회의 필체를 모방하여 벼슬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진회와 친분이 있던 한 관리가 이를 눈치채고 그 선비를 감옥에 가두고 진회에게 보고하니 진회가 그 선비를 풀어주고 고위급 벼슬을 내리면서 한 말이 "모두가 나의 권력을 두려워하는데 너는 대담하게 나의 필체를 흉내내니 보통 배짱이 아니다. 너의 배짱이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진회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점은 금에 포로로 잡혔다는 점이다. 이걸 두고 사람들은 진회를 금과 송의 이중간첩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진회에게 있어 억울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진회는 금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완안창 등 금나라의 저명 인사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후 금군이 초주를 공격할 때, 기회를 보아 탈출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금에 매수된 간첩이라고 했다. 하지만 적국에 붙잡혔다가 탈출한 경우는 어딜 가나 있다. 한대의 장건, 남송 시기의 신기질, 이후 원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주한 문천상 등이 있다.

진회와 휘종 중 누가 더 송나라에 해악을 끼쳤는지를 평가한다면, 휘종일 수밖에 없다. 분명 진회는 명장 악비를 얼토당토않은 죄목으로 죽이고, 당대 중국인들의 고토 회복이라는 희망을 폭압적인 정치로 탄압한 간신이다. 그러나 휘종은 정말로 예술 말고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 휘종은 예술을 한답시고 송나라의 국고를 파탄내고 민란 진압에 학살로 일관하였고, 금나라가 침략하자 잔뜩 쫄아 아들한테 제위를 물려주고는 강남으로 튀었고, 금나라가 물러가자 돌아와서 또 탱자탱자 놀아재꼈고, 정말로 수도가 함락되고 금나라한테 잡히자 기생이랑 같이 끌려가게 해달라고 했다. 이딴 인간보다는 진회가 낫다. 적어도 진회는 자기 할 일만큼은 철저히 했다. 진회는 금나라의 강대한 군사력을 당해낼 수 없다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했으며, 모험주의적 군사 행동을 중지시키고 금나라와 화친을 맺음으로써 회수 남변에 조씨 왕조를 지속시켰다. 이는 훗날 명나라를 재건하려다 실패한 남명의 관료들과 대비된다. 남명은 황제였던 홍광제도 막장이었지만 당시 권신이었던 마사영을 비롯한 신하들도 동림당, 엄당으로 물고 뜯는 정쟁을 계속했고 군벌들은 이득에 따라 남명을 배신하고 청나라에 붙었다. 남명이 남송보다 단명한 것을 보면 남송을 장기적으로 존속시키려고 노력한 진회는 적어도 남명의 관료들보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게 맞다. 물론 진회가 그런 공을 이룬 과정은 간신이라는 욕을 먹어도 할 말 없는 독불장군적이고 폭압적이었지만, 적어도 매국노라는 욕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진회가 나라를 여진족에게 갖다바치고 싶었으면 진작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송나라를 완전히 멸망할 뻔한 것을 막고 대륙의 절반을 유지한 부분은 대단한 업적이다. 이후에는 대륙의 절반을 보존한 사례는 없었다. 남송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남명, 태평천국, 중국 국민당은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모두 실패했다. 남명과 태평천국은 대륙의 절반도 갖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자 완전히 멸망했고 중국 국민당은 타이완 섬과 부속도서만 간신히 챙겼을 뿐이다. 중국에서 진회급 한간으로 취급받는 왕징웨이는 스스로 일본 제국과 화평함으로써 점령지 민중들의 평화를 지켜냈다고 생각했지만, 왕징웨이 정권은 괴뢰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일본군의 만행을 막지 못했다. 진회는 과정이 어떻든 나라와 왕조를 존속시킨다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왕징웨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다만 군주를 직접 비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도 하고, 명장 악비와 크게 비교되다 보니 진회에 대한 비판은 부풀려진 면이 있다.

4.3. 조선에서의 평가

중국에서도 까이는 판국이니 중화권 영향을 많이 받은 조선에서도 당연히 까였다. 다만 진회가 본격적으로 욕을 먹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성종 때부터로, 조선초는 오히려 진회보단 남송을 멸망시킨 가사도를 더 악명 높은 간신배로 꼽았다.

하여튼 성종 때 동국통감에선 "그 충성스럽고 의로운 속마음은 곧바로 얼음과 서리[氷霜]·해와 달과 더불어 그 광채를 다툴 만합니다. 아! 한나라의 충신 주운(朱雲)이 배척했던 자는 후한의 권신 장우(張禹)였고, 송나라의 충신 호전(胡銓)이 논박했던 자는 진회(秦檜)였는데, 지금 신돈은 나라에 두 임금 행세를 하면서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마음대로 부렸으니, 그 기세의 대단함이 어찌 장우·진회의 정도에만 그쳤겠습니까?"라면서 신돈을 까는데 진회가 쓰였다.

성종실록에도 거론이 되었는데 내용에 보면 "노기와 진회의 간계가 마침내 나라를 그르치는데 이르렀는데도, 당시의 인주가 이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지금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하고 이를 갈게 합니다."라고 했다.

이순신도 난중일기에서 ' 유몽인[19]'을 진회로 빗대어 비판한 부분이 있다. 당시 유몽인은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이순신 관할인 전라도의 지방관들을 평가하고 수군의 징발 문제를 비판하였는데 디스 잘하는 이순신은 이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중일기에 이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전략)'유몽인은 나라의 위급함은 생각하지도 않고, 쓸데 없이 눈앞의 임시 방편의 일에만 힘쓰고 있다. 남쪽 지방의 종작없는 말만 듣고서 나라를 그르치는 교활하고 간사한 말이 악무목(악비)에 대한 진회의 짓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갑오년(1594년) 일기 2월 16일 내용

그 외에도 류성룡도 북인세력의 탄핵을 받아 실각할 때, 진회와 같다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류성룡은 진회와 다르게 누구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노력했던 충신이자 명재상이었다.

또한 최명길도 주화를 주장하다가 김상헌 등 척화파에 의해서 진회와 같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진회가 간신짓을 하거나 포악한 정치를 펼치면서 악비를 모함한 것과 다르게 최명길은 누구보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으며 또한 조선을 진심으로 위한 충신이었고 또한 청렴하고 선정을 펼친 명재상이었다. 또한 최명길은 진회와 다르게 척화파인 김상헌의 생각도 옳다고 했다.[20]

4.4. 현대 중국에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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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의 묘인 항저우 악왕묘에 있는 진회 부부.[21] 관광객들이 하도 침을 많이 뱉어서 왼쪽 위에 제발 침 좀 뱉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참고로 이 진회와 왕씨의 상은 참배객의 훼손으로 800년 동안 12번이나 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것은 1979년에 홍위병에 의해 박살난 악왕묘가 재건될 때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진회는 현대 중국에서도 최악의 간신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러모로 일본의 괴뢰정부를 세운 왕징웨이와 동급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 개념을 추구해 소수민족과 한족이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악비를 격하하고 진회를 민족 화합의 영웅으로 띄우려 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나, 출처1 출처2 악비에 대한 평가가 소수민족을 고려하여 수위가 낮춰졌을 뿐이지 중국에서 악비가 충신이고 진회가 간신이라는 대명제 자체가 뒤바뀐 수준은 아니다. 현대 중국 공산당 정부는 지나친 한족 민족주의를 억누르는 경향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역사인식까지 거슬러 간신을 미화할 정도로 역사를 윤색하는 것은 아니다.

2021년에도 하이난성에서 덩관화(邓光华)라는 한 퇴직 공무원이 진회를 옹호한 저서를 펴냈으나, 당국에 검열되어 출판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

5. 성격

당대에도 진회의 평은 좋지 않았던 것이 진회는 재상이 되었을 때 안하무인으로 행동했고, 문자의 옥을 일으켜 자신의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많은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한다. 끝내 사후에는 악비를 사랑하고 본인을 끔찍히도 증오하던 효종에 의해 일족이 멸족되었다. 이런 안하무인하고 잔혹한 성품이 결국에는 진씨 일족이 멸족당하는 나비 효과로 이어진 듯하다.

악비는 미천한 신분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죽어서는 최고의 시호와 왕으로 추존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진회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평가는 허구한 날 오물을 뒤집어 쓰는 4인방 동상이 잘 보여준다. 하기야 자신의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싸우고 나라를 지킨 명장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6. 대중문화 속의 진회

6.1. 소녀침경(화타위전)

레진코믹스 웹툰 소녀침경(화타위전)에서 악역으로 등장하고 악비, 한세충과는 동문으로 앞선 둘과는 반대로 메이의 조부와 숙조부에게 의술을 배웠다고 하며, 어머니가 임신중독증으로 사망하면서 그 두 사람의 스승에게 거두어졌다.

그 두 명의 스승에게 총애를 받던 애제자였지만 성격이 포악해서 파문당했기에 악비와 한세충이 그 때는 진회를 몰랐다고 하며, 3년 만에 모든 의학서를 통달한 수재였지만 생명의 비밀을 알기 위해 사제들의 몸을 해부하는 등 각종 위험한 연구를 하면서 파문되었다. 메이의 조부는 그를 죽이려 했지만 진회를 거두어들인 메이의 숙조부가 차마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침을 통해 혈을 파괴해 의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수로 끝냈으며, 스승이 가지고 있던 소문의 침이 생명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금황구침에 눈독들이게 되었다.

금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면서 북벌을 주장하는 악비와 대립하는데, 궁궐에서 퇴청하자 악비와 신경전을 벌여 금을 자극하지 말라면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라면서 금황구침의 힘을 이용해서 악비의 목을 졸랐다.

다음날에 악비를 9족과 함께 처형하도록 만들고 죽은 사람을 3일간 살릴 수 있는 구황지침 9개를 모두 손에 넣기 위해 각종 악행을 벌이는데, 스승 중 한 사람인 메이의 조부, 스승의 아들이자 사형인 장원경 등을 찾아가 자신에게 협력하도록 했다가 거절당하자 구침지희[22]를 하도록 한 후에 성공하지 못하자 살해했다.

메이, 메이린을 자신의 아래에 거둔 후에 메이린에게 구황지침을 찔러 구황지침에서 나오는 병기를 사용하도록 이용하면서 구황지침을 주고 자신의 허락없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메이, 메이린 등이 자신의 허락없이 구황지침을 사용한 것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메이의 아버지 시체를 태우게 했다.

6.2. 씽씽 중국어 탐험대

국내 학습만화 씽씽 중국어 탐험대에선 전형적인 간신배 & 매국노로 나오며 오죽하면 적군인 금나라 장수에게까지 한 소리 들을 정도.

송고종도 시체로 만들어놓고 구황지침을 통해 일부러 살려놓아 실질적으로 송나라를 장악했으며, 구황지침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병기로 만들어놓는 등 실험을 행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막판에 악비,한세충,진회의 사조이자 주인공 엔란에게 패하여 참수된다.

6.3. 정충악비

중국 드라마 정충악비에도 등장하는데, 정강의 변으로 오국성에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으며 총명한 재주로 금나라 황족을 구워삶고 동시에 끌려온 송황족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금과 송 양쪽에 호감을 사는 모습을 보이는 등 유능하면서도 간사한 면을 보인다. 마침내 송에 귀국하는데 그 와중에도 송황태후의 친필서신을 챙겨 황제의 신임을 얻고 주화론을 펼치며 권력을 장악하는 모습은 시청자를 소름 끼치게 한다. 마침내 최대의 정적 악비를 제거하지만 "너도 폐하의 장기말"이라는 악비의 조롱에 악몽에 시달리는 삶을 사는 것으로 끝난다. 의외로 정처 왕씨와 금술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 여자도 욕심은 많아서 진회 못지않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금나라 압송 과정에서도 삶의 의지를 포기한 진회를 다독이고 썩은 밥을 먹으면서 진회의 삶의 의지와 야망을 다시 불태우는 독한 여자로 나온다.

6.4. 사조영웅전

사조영웅전에선 우리가 60년 일찍 태어났으면 지금쯤 진회의 살을 술안주로 썼을거라는 곽소천과 양철심에게 구처기가 진짜 원흉은 송고종이라고 하는걸로 언급된다.

6.5. 만강홍: 사라진 밀서

악비의 시 만강홍에서 모티브를 따온 장예모 감독의 영화 만강홍: 사라진 밀서에서는 진회가 정말로 금나라의 첩자로 나온다.

[1] 오른쪽이 진회로, 왼쪽이 진회의 부인 왕씨이다. 참고로 아내도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냐 하면, 진회 스스로도 악비 죽이기를 주저했는데, 왕씨가 그냥 묻지마 처형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전해지기 때문. 덕분에 남편과 동급으로 취급받아 저런 꼴이다. 관광객들이 하도 침을 많이 뱉어서 왼쪽 위에 제발 침 좀 뱉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2] 모을 회, 갈 지라는 한자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3] 진회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악비가 반역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장군 한세충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한세충은 기가 막혀서 "고작 그 세 글자로 천하가 납득하겠소이까?!"라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악비의 처형을 막을 수는 없었다. [4] 다만 그렇다고 주화파 자체가 잘못됐다는건 아니다. 진회야 다른 과오도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청의 침입 당시 대표적 주화파였던 조선의 최명길 같은 경우 역적으로 몰리기 딱 좋은 컨셉이었음에도 오히려 지금까지 고평가받는 인물이다. 악비가 열정이 넘치는 애국자라면 진회는 냉혹한 현실주의 정치가로 볼 수 있다. [5] 물론 진회도 원칙적으론 주전파였으나, 이 내용을 보면 일단 금나라를 달래고 방비를 굳건히 한 다음에 싸우자는 것으로 보인다. [6] 여기서 진회는 장방창을 초의 괴뢰 황제로 삼을 것을 반대하였다. [7] 여기서 감시하는 금군을 죽이고 탈출했다고 말한다. [8] 비석에 다 쓰지 못한다고 자랑하는 것, 또는 역사적 평가를 후세에 맡긴다고 선언하는 것. 측천무후 참조. [9] '신에 칼이 들어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혹은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신에 칼을 숨겨야 했다'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0] 효종과 사이가 아주 가깝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진회보다는 효종을 뜻하는 걸수도 있다. 둘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나뉘어 논쟁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효종은 고종 사후 고종이 주살한 악비의 일족을 이상할 정도로 후대하고 진회를 낮추는 데 열심이 된다. [11] 진회를 기용한 그조차 진회의 권세가 부담스러웠다는 것을 시사한다. 진회가 죽은 지 두 달 후, 그의 인척들은 숙청되었다. [12] 모택동은 진회가 송고종의 명만을 받들었을 뿐이고, 화의의 배후는 고종 조구라고 했다. [13] 흔히 '만사설'이라고 알려졌지만 여기서 万俟는 만사가 아닌 墨棋(mo qi)와 같은 발음으로 묵기라 읽는다. [14] 후에 일을 잘못해 쫒겨나 유배생활을 했다가 진회 사후 재상으로 돌아왔다. [15] 이에 필적할 말로는 명대 탈문의 변 이후 반정의 주역인 서유정이 명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우겸을 누명을 씌워 처형할 때 했던 "비록 분명한 흔적은 없지만 그런 뜻은 있었다(雖無顯迹, 意有之)."가 있다. [16] 정강의 변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도 송의 약한 군사력을 생각하지 않고 금나라와 전쟁을 벌인 탓이 컸다. 특히 악비 못지 않다는 한세충 등 명장으로 알려진 주전파들이 군사권을 갖고 전쟁들을 선택했다가 정강의 변을 당했다. 즉 정강의 면에서는 한게충도 책임이 있다는 것. 거기다 사실 진회도 알고보면 주전론파였으나 어디까지나 시간을 번 다음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싸우자는 뜻이었지 정강의 변처럼 사기꾼에게 속아서 멍청하게 싸우다가 털리자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악비와 한세충을 포함한 몇 군데를 제외하고 송은 금과의 전선에서 밀리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당시 강남 지방은 남송 재건 7년전에 방랍의 난이 일어났던 곳으로, 당시 이 반란 진압 과정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백성들이 죽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17] 금나라에 끌려간 송의 황족이나 포로들이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당시 한족 지식인들의 프로파간다가 섞인 과장된 얘기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대우를 떠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순간에 몰락한 것은 맞지만. 자세한건 정강의 변 참조. [18] 정강의 변 이전에도 송나라는 전국적으로 반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이 갑자기 중앙정권인 송 황실이 무너졌다고 해서 갑자기 애국자가 되어서 금나라와 싸울 이유는 더 없었고 말이다. 당연히 정강의 변 이후 남송 영토 안에도 많은 반란 세력이 잠재하고 있었다. [19] 어우야담의 저자 [20] 김상헌도 말년에는 최명길을 찾아가서 자신이 그를 잘못 판단했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며 둘의 관계는 크게 개선되어 친한 벗으로 지냈다고 한다. [21] 오른쪽이 진회, 왼쪽이 진회의 부인 왕씨이다. 참고로 아내도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냐 하면, 진회 스스로도 악비 죽이기를 주저했는데, 왕씨가 그냥 묻지마 처형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전해지기 때문. 덕분에 남편과 동급으로 취급받아 저런 꼴이다. [22] 9개의 침을 동물에게 몸이나 내장 등을 피해서 찔러넣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