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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안성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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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소재 대학의 서울 외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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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괄2. 안성캠퍼스의 본교화
2.1. 개요2.2. 비판2.3. 현실적인 문제2.4. 예술대 문제
3. 교통수단4. 건물
4.1. 600번대 (음악관 지역)
4.1.1. 601 교수회관 1동4.1.2. 602 교수회관 2동4.1.3. 603 교수회관 3동4.1.4. 605 음악관 1동4.1.5. 606 음악관 2동4.1.6. 607 영신음악관4.1.7. 608 국악관4.1.8. 609 생활과학관(609관)4.1.9. 610 학생복지관4.1.10. 611 학생회관
4.2. 700번대 (기숙사 지역)
4.2.1. 701 예지 1동4.2.2. 702 예지 2동4.2.3. 703 예지 3동4.2.4. 704 명덕 1동4.2.5. 705 명덕 2동4.2.6. 706 명덕 3동4.2.7. 707 학생후생관4.2.8. 708 생활복지관
4.3. 800번대 (미술관 지역)
4.3.1. 801 외국어문학관4.3.2. 802 교수연구관4.3.3. 803 조소관 2관4.3.4. 804 조소관 1관4.3.5. 805관 공연영상관 1관4.3.6. 806관 공연영상관 2관4.3.7. 807관 공예관4.3.8. 808관 조형관4.3.9. 809 생명공학관 1관4.3.10. 810 원형관4.3.11. 811 창업보육센터4.3.12. 812 선수생활관4.3.13. 813 대학교회
4.4. 900번대 (체육관 지역)
4.4.1. 901 본관4.4.2. 902 중앙도서관4.4.3. 907 수림체육관
5. 자치기구6. 주변시설7. 본교화 이후8. 학사과정9. 신캠퍼스 추진10. 사건사고 및 문제점
10.1. 2016년 생명공학대학 대학원 이전10.2. 2017년 명덕3동 괴한 침입 사건

파일:/kXRDqfO.jpg [1]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맵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이원화 캠퍼스[2]에 대해 서술하는 페이지.

학교 근처(내리) 자취 정보는 여기서 얻을 수 있다

1. 개괄

안성캠퍼스의 설립은 1970년대 지방 분권화를 목적으로 각 유명 대학들에게 지방 분교를 만들라는 압박[3]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안성캠퍼스의 창립은 1980년대 중반이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해 생활하다 보면, 안성에 소속된 학과인데 1980년대 중반 이전 학번을 가진 선배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 경우 해당학과가 서울캠퍼스에 소재했을 때 졸업한 선배라고 보면 되겠다. 그 이유는 안성캠퍼스가 타 대학의 분교와 다른 설립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안성캠퍼스의 역사가 타 대학의 분교 설립과 구분되는 점은 대부분의 대학들은 자신들의 원래 대학(본교)를 그대로 유지하고 별도의 분교를 창설했지만, 중앙대학교는 예술대학을 중심으로[4] 본교의 1/3에 근접하는 규모의 인원을 를 뚝 떼어서 이전시켰다는 것이다.[5]

그 결과 서울캠퍼스는 2,500명대의 정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후에 중앙대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연세대나 고려대같은 대학이 1990년대 4,000~5,000명에 달하는 막대한 정원[6]을 이용해 사회 각종 분야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중앙대는 인원 면에서 불리점을 갖게 된 것이다. [7]

왜 하필 이렇다 할 특징도 없고 서울에서 멀기만 한 안성에 캠퍼스를 위치시켰느냐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8]

일단 당시 상황을 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이야 수도권의 범위가 넓어지고 광역버스들이 여기저기 다니니까 수도권인 타 학교 제2캠퍼스에 비해 안 좋은 입지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2캠퍼스가 여기저기 생기던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일단 수도권이란 개념도 희박했고 그나마 수도권이라는게 성남이나 의정부처럼 서울과 딱 붙어 있는 도시가 아니면 어느정도 번성한 시가지이면서 철도교통 등으로 서울 접근성이 좋은 인천, 수원 정도를 수도권으로 쳤다. 그시절에는 용인만 해도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인식했다.[9][10]

거기에 당시 정부는 수도권 과밀억제 정책을 강하게 펴고 있었는데[11], 그로 인해 경기도를 5대 정비지역으로 나누기로 했다. 당연히 정부는 제2캠퍼스 설치지역으로 수도권 지역은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시는 물론 경기도에서도 정비지역 중 정비촉진구역[12] ,개발억제지역[13] ,개발유보지역[14] ,자연보호지역[15]으로의 이전은 불허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제2캠퍼스 설치지역은 개발유도지역인 경기도 남부의 지역인 용인군, 화성군, 안성군 등의 지역 아니면 아예 경기도 밖[16]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제2캠퍼스 설치지역은 위에 언급한 군 지역, 그것도 땅값이 저렴한 농촌지역으로 주로 선정되었는데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가깝지만 개발이 덜 된 용인군에 주로 몰렸다.[17] 대표적으로 경희대학교[18], 한국외대, 명지대, 강남대[19] 등. [20]

그런데 당시 중앙대 재단 관계자 모 씨의 선거구가 안성이였다. 당시 기준으로 용인이나 안성이나 농촌인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왕이면 자신의 연고지인 안성에 세우는 것이 국회의원 당선에 유리했던 것.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자신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중앙대 전부를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했다고 하며, 그리고 당선 후 공약을 지키기 위해 서울캠퍼스에서 예대와 농대를 떼내어 안성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혹자는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가 수원시인 것을 두고 수원시로의 제2캠 추진도 가능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성대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70년대 초반부터 이전이 추진되었다. 중앙대와 마찬가지로 학교 전체 이전이 구상되었으나 재학생,동문들에게 이 계획이 들통나서 결국 삼성문화재단이 쫒겨나고 자연계열만 1976년에 이전하는 것으로 절충.[21]

참고로 고속철도의 후보지 중 하나였던 안성에 재단이 부동산 투기를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고속철도는 안성이 아닌 평택으로 지나갔고, 이후 재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제2캠퍼스를 만든 것이라는 것. 불필요할 정도로 넓은 부지를 사들인 이유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안성캠퍼스가 만들어졌던 무렵의 선배들에게는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으나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22]

앞서 언급했던대로 모든 학과가 이전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이 당시 중대 본교에서는 투신자살까지 벌어질 정도로 반대기류가 컸다고 한다. 그 결과 학교 전체의 이전은 백지화되고[23] 그 대안으로 예술대학+ 농과대학(現 생명공학대학)의 이전으로 결정된 것이다. [24]

그리하여 안성캠퍼스는 중앙대학교의 지방 분교로서 1980년대 중반 개교하게 되고, 흑석에서 이전해 간 농대와 예술대를 가지고 운영을 시작했다.(일설에 의하면 1998년까지는 흑석에서 이전해 간 예대, 생공대의 전신인 농대, 2014년도에 서울캠으로 올라간 도시계획부동산학과의 전신인 농촌개발학과에 한하여 본교 취업코드를 발급하고 학사와 졸업등에 있어서 흑석과 동일하게 운영했으나 이후 1999년부터 흑석에서 내려간 위의 두 단과대와 농촌개발학과 또한 분교로 운영되어지기 시작했다 카더라.)

권력이 없던 것도 아닌 예술대학[25]이 통째로 안성에 간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뚜렷한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중앙대 예술대학은 본디 서라벌예술대학[26]이었다가 1972~1974년[27]에 중앙대로 인수되었다는 사실과, 다른 단과대보다 앞장서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것이 예술대였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대충 견적은 나온다. 덧붙여 당시 예술대학의 학생이었던 사람들은 제2캠퍼스로의 이전을 두고 지금도 '운동하다가 밉보여서 안성으로 쫓겨났다'라고 표현한다. 사실 서라벌예대는 중앙대 인수 당시 다른 곳(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했다가 중앙대에 인수되면서 중앙대 서울캠퍼스를 쓰게 되었다.(한마디로 말해, 서라벌예대 인수는 학교건물을 제외한 인수였다는 것) 아마도 이러한 것이 배경이 된 것 같다. 참고로 서라벌예대 구 캠퍼스는 같은 재단인 서라벌중학교,서라벌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두 학교가 각각 우이동,중계동으로 이전한 후 동부건설에 매각, 현 돈암동부센트레빌 아파트가 들어섰다. 건축적 가치도 조금 있는 미려한 석탑의 구 본관 건물을 비롯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땅이라서 중앙대학교 재단이 매입해서 다시 캠퍼스부지로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라벌예대가 이전하지 않았다면 길음역이 '서라벌예술대학역'이라는 주역명을 따냈을 듯.

설립 이래 30여년의 세월이 점차 흘러감에 따라. 안성캠퍼스의 운영에 있어 흑석캠퍼스와의 개별성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안성캠퍼스에서 자체적으로 개설하고 운영하는 학과들도 여럿 생겼다. 수험생들의 인식역시 개교 당시와 달리 별개의 대학, 다른 대학이란 인식이 강해졌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다만 이 역사속에서 안성캠퍼스 소속 연극/영화학과가[28] 2007년 서울로 귀환한 것이 특이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90년대부터 예술대학은 매년 끊임없이 서울로의 복귀를 재단 측에 요청했었다. 당연히 안성에서 분교 소속으로 있는 것보다 서울로 과가 올라가 본교 소속으로 바뀌길 원하는 걸 당시 안성 분교 학생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학교측의 '흑석에 자리가 없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에 참다못한 연극, 영화학과가 '그럼 우리가 우리 자리 만들어서 올라오면 불만 없지?'라고 선언하더니 동문들의 자발적 기금만으로 땅도 건물도 사버리는 패기를 보이며 상경해버린 것. 이후 나머지 예술대 학과들은 '다음은 우리가 올라간다'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으나 모두 허사로 끝났다. 그 예를 몇가지 들자면 '우리도 올려보내주지 않으면 학부생 전원이 자퇴하겠다'면서 신입생들까지 몽땅 자퇴서를 쓰게 했던 학과도 있고, 은근슬쩍 중복유사학과를 만든 후 T/O를 매년 조금씩 서울로 옮기던 학과도 있고, 정치적인 뒷공작을 하던 학과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과가 먼저 올라갈까봐 공개적인 장소나 예술대 전체회의에서는 아무도 서울행을 언급하지 않았다.

2. 안성캠퍼스의 본교화

안성캠퍼스는 본교화를 위해 2010년. 즉 2011년도 수시모집부터 서울캠퍼스와 유사한 학과의 모집을 중단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1년 8월 서울캠퍼스와 통합을 단행하여 전국 최초의 분교 본교 전환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투자하는 방면이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2.1. 개요

2008년 두산재단의 영입 이후 각종 성장전략을 강구하던 중앙대는 앞서 말한 정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심한다. 앞서 언급했든 과거 연고대가 보여주었던 그런류의 대학 성장전략의 핵심은 사회각계 각층에 자신의 학교인사를 다양하게 배출시키는 것이었는데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에는 2500명이란 정원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29] 특히 사회 각계 각 분야를 주도하는 상경(경영, 경제 등)계열의 인원을 대폭 증원하려는 계획을 수립한다. 만약 그 계획이 실현된다면 중앙대 경영경제대학은 신입생 규모가 1000여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단과대학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튼 이러한 방식으로 학교의 아웃풋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자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서울소재 대학이 순식간에 정원을 2500명에서 4000~5000명 규모로 늘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중대는 공간부족문제를 겪고있는데다가, 공간문제가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특유의 서울집중문제로 서울소재 대학들은 각종 규제가 심하게 걸려있기 때문이다.[30][31]

그래서 대안을 낸 것이, 분교를 통합해서 두 캠퍼스를 1개의 학교로 만든 뒤에 각 안성캠퍼스의 정원을 서울캠퍼스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하나의 학교내에서 학과를 만들고 없에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학생 수를 조정하는 것이므로 규모를 키우는데 규제가 덜하다.[32] 그 결과 2012학년도 입시에서 중앙대는 본교로 학생을 무려 4600명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고, 부차적으로 안성캠퍼스의 입학 성적역시 수도권 대학 수준에서 웬만한 인서울권으로 올라 일거양득의 이익을 봤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잉여정원이 추가적으로 획득되는 시점에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네트워킹의 실현에서 발생하는 이익말고도, 해당 정원자원을 통해 앞으로 사회적 수요가 예상되는 필요학문단위들을 신설/개편할 수 있다는 장점도 발생한다. 정원자원이 일정한 일반적 대학의 경우 신설/개편을 위해선 기존의 학문단위를 제거/축소 해야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상당히 어렵다.[33] 안성캠퍼스 통폐합 때 발생한 잉여정원으로 서울캠퍼스에서 경영학과와 경제학과, 기타 여러 기초학문 단위의 할당정원을 증원시키고, 국제물류학과,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에너지시스템공학부를 서울캠퍼스로 이전한 것이 이러한 장점을 보여준다. 물론 공간부족 문제가 있긴한데 그건 건설이 예정되어있는 경영경제관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경영경제관이 완공되면 공연영상창작학부의 나머지 전공(사진, 문예창작, 무용)을 서울로 복귀시킨다는 말도 있다.왕들의 귀환 [34]

사실 아무리 학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일 지라도 학벌을 특히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분교와 본교의 통합은 매우 과감한 시도가 아닐 수 없고, 극복해야할 난관 역시 많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분본교 통합으로 인한 긍정적 파생효과를 언급하였는데, 문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이로인한 부정적 파생효과와 비판도 아래의 문단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2.2. 비판

우선 학생들간에 본분교 통합과정에서 이슈가 되었던 가장 큰 쟁점을 크게 두 가지 뽑으면, 수업권과 학적문제를 뽑을 수 있다. 수업권 문제는 통폐합과정에서 학과가 사라지게 되면, 4년에서 길게는 6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하는 대학교육의 특성상 자신의 전공을 원할하게 이수 할 수 없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안성캠퍼스의 본교화로 인해 사라질 학과들의 학우들은 자신이 졸업할 때까지 수업환경을 보장해 줄 것을 특히 주장하였다. 과거 분교시절때의 수업환경 보장을 원하는것이다. 학생들과 소통을 안하고 학교측 입장위주로 나선것이다. 학교에서도 일정부분 그에대해 약속하였으나, 안성캠퍼스의 본교화가 마무리된 현 2012시점에서 볼때, 안성캠퍼스에서 개설되는 강의는 급감했으며, 개설되는 강의의 대부분 역시도 안성캠퍼스에서 신입생을 뽑는, 생존학과들 위주로 대부분 편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 이 부분에 대해 학교가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적의 문제는 안성캠퍼스에서 수업권을 어차피 보장하지 못할 것이면 학적이라도 본교유사학과 학생으로 고쳐달라, 즉 서울캠퍼스로 올려보내서 수업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안성에 남아 있어 봤자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힘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요구한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서울캠 학생의 비판이 거셌다.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애초에 입학 때 부터 학적을 달리한 안성캠 학생이 갑자기 서울소속, 즉 중앙대 본교 학위를 받는 것은 학벌세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학적세탁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35], 일방적으로 폐과를 통보받은 당사자들의 요구 또한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다. 안성캠퍼스에서는 대외 컨설팅 회사, 대내적으로는 중앙대 본부에서 최우수 학과로 선정된 경쟁력을 가진 학과들도 존재했고 모든 학과들이 단순히 유사학과라는 잣대 하나로 폐과되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캠퍼스로 이전시킬 정원을 최대한 확보하고 싶은 학교의 입장상 최대한 폐과를 많이 시켜 잉여정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안성캠퍼스에는 예술대를 제외하고, 2012학년도 입시에서, 문과 2개, 이과 4개 학과만이 남게되었다.[36]

또 한 가지 비판은 결국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대다수 학과를 폐과했음에도 확보한 수백명의 잉여정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12학년도 신입생 모집 당시 생존한 몇몇 학과에 남은 정원들 다 집어넣어서, 학부도 아니고 단일학과가 학생을 250명씩 뽑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3. 현실적인 문제

다만 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가 필요한 것이 분본교 통합이란 것이 한국 최초로 중앙대가 시도한 것이고, 최초인 만큼 시행착오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본교라고하지만, 속은 분교라고해도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웬만한 입시 전형이 다 마무리된 6월 경에 교육부 인가가 났으므로 갑자기 잉여정원을 이용해 흑석캠퍼스에 증원을 한다던가, 안성캠퍼스에 차후 흑석캠퍼스로 이전시킬 학과를 만든다던가 하는 구체적 대응은 힘들었을 것으로 봐야한다.

실제로 2013 입시부터는 잉여정원이 대폭 조정되어서 과거 처럼 250명에 달하는 학과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잉여정원을 이용해 에너지시스템공학부와 같은 미래 유망 산업군 관련 학과를 만든다던가, 흑석으로 정원을 넘겨준다던가, 넘겨 주기전에 여러 학과로 분산배치해 둬서 임시로 보관하게 한다던가 하는 대책을 제시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학과가 100명 내외로 조정되었다. 또한 흑석캠퍼스는 현재 공간 문제로 활용가능한 정원의 제약이 있는지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중이다. 그렇다면, 흑석캠퍼스의 공간문제가 해소되어 안성의 모든 정원을 넘겨주기 전까지 일시적으로는 안성에서 몇년간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안성에서 뽑아 흑석에서 가르치는 방식을 안성캠퍼스 일부학과에서 채택하여 안성에서 학년 초, 흑석에서 학년 말을 공부하는 시스템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2014학년도 이후에는 국제물류학과,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에너시시스템 공학과들은 서울로 이전하여 학생을 선발한다. 엄청난 가용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경영경제관이 2016년에 완공예정이라는 점, (가칭)인천캠퍼스 추진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분/본교 통폐합은 학교의 장기적 발전 관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점은 과도기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잡음으로만 치부하여 문제를 등한시 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도 아니될 것이다.

현실적인 인식 문제도 있는데,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의 통합사실이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37] 본교가 되었다고 하지만 약 30여년 간 '분교'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다가 갑자기 본교가 되었으니, 인식이 쉽게 바뀔 리 만무하다. 실제로 아직까지 배치표나 각종 입시자료에서는 아직도 안성캠을 따로 구분한다. 안성캠이 이원화 캠퍼스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고 해도, 한국에서 이원화 캠퍼스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아 '어쨌든 분교캠 아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을듯. 2013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순위 발표때 논란이 되었는데, 서울캠퍼스와 통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평가에서는 분리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취업률 등의 지표에서 예체능 중심의 캠퍼스가 된 안성캠퍼스가 좋은 점수를 받을 리 만무한데다 교육여건 및 재정부문에서도 처참한 점수를 받아 4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38] 이때문에 '타이틀만 본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2.4. 예술대 문제

상술했듯이 예술대학은 실로 안습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39]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교측에 대한 반감이 크다. 두산그룹이 재단이 된 이후 학교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지만, 예술대는 별다른 수혜를 입지 못한 탓에 재단에 대한 반발심도 큰 편.[40] 2012학년도부터 예술대 학과들의 정원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구조조정된 학과들의 정원을 잠시 맡아둔 것에 가까우며, 경영경제관 완공 등 서울캠퍼스에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면 몇몇 인기학과들을 제외한 학과들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할 것(작게는 정원 대폭 축소, 크게는 전공 완전 폐지)이라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경영경제대학 1000여명 정원 계획이 이뤄지려면, 다른 학과/전공을 축소, 폐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문대, 사회대는 이미 구조조정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사실상 더 구조조정할 정원도 없다 결국 다음 타겟은 예술대학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사실상 예체능 중심의 캠퍼스가 되어버린 안성캠퍼스에 대한 투자나 지원은 이전이 예정되어 있음을 이유로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 이에 대한 불만도 많다.



이전이 예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캠퍼스 이전이 몇년 안에 이뤄질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안성캠 재학생들은 안성캠에서 졸업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안성캠퍼스 총학생회는 몇년간 운동권이 주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운동권에 비판적인 학생들은 매우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치관련 시위가 있을 때, 학교나 학과 깃발을 흔들며 시위에 앞장섰다는(...) 목격담도 많은 편이라, '교내 복지문제에는 신경도 안 쓰고 정치인들이나 쫓아다닌다'라는 비판이 매우 많다. 총학 선거가 사실상 부정선거라는 말도 많은데, 2012년 말에 당선된 모 선본은 재단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당선 무효처리 되었다가 재투표로 다시 당선되는(...) 촌극을 보였다.

대부분의 학과에서 되도않는 똥군기를 잡는 것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위계서열이 너무 강해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휴학을 하는 학생도 있다고 하며, 무슨 일이 터지면 집합까지 건다고 한다. 또한 축제때 하는 치어 공연을 위해 밤 늦게까지 하는 연습도 사실상 윗학번들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며, 이 문제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는데 주말에 나들이차 방문한 외부인들 증언으로는 운동장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군기 잡는 소리가 하루종일 들릴 정도라고 하니 그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강압적인 치어 연습 문제를 해결하기로 나선 중대갤러가 예대생들에게 제보와 녹취록, 사진 등을 받아( 참고) 중앙인에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커지자, 안성캠 학생지원팀에서는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치어 공연이 예술대 서열문화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보았을때, 강압적 치어 연습이 사라진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리라 보기는 어렵다. 혹시 '선후배 사이에 그정도 서열의식은 필요한 것 아니냐', '예대는 실습이 많아 단합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한다면, 해당 항목을 참조하라. 단언하건대,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상술한 예술대학의 여러 문제는 안성 이전으로 인한 입결 하락[41] 그리고 학교측의 부실한 지원과 그로 인한 박탈감 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3. 교통수단

경기도 남단에 위치한 안성시지만 생각보다 서울에서 오래걸리지는 않으며 서울에서 고속버스로는 짧으면 50분에서 길면 1시간 10분이면 도달하기 때문에 통학하는 학생도 많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42]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안성을 오가는 버스가 각각 10~15분 간격으로 있다. 상행과 하행 모두 중앙대 정문에서 정차한다. 그 외의 노선은 안성터미널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통학용 버스는 매년 조금씩 바뀌지만 기본적으로 반포, 흑석캠퍼스, 신촌, 평택역 등의 노선이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이 중 반포행 버스의 경우 교내에 아예 매표소와 정류장이 있다.

서울 외 지역의 경우 철도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평택역에서 50번, 70번, 370번 등의 시내버스를 타면 중앙대 정문까지 온다. 평택역에서 버스 타면 30~40분 정도 걸린다. 단, 평택역에는 KTX가 운행하지 않는다. 굳이 고속철도를 이용한다면 SRT 지제역이 있는데 평택역에서 수도권 전철로 1정거장 거리이고 두 역 사이를 오가는 버스도 많으므로 시간을 잘 계산해서 지제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학교에서 지제역으로 바로 갈 경우 정문 앞 정류장에서 시외버스 8455번, 8456번, 시내버스 50번, 50-9번을 타면 지제역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안성 시내버스 1번이 교내로 다닌다. 교문 앞, 외대 옆, 그리고 예술대 옆(회차점)에 정류장이 있다. 교문이 학교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교내에서 교문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다. 교내에서 정문 나갈 때 한정으로 현금을 내면 500원에 탈 수 있다. 교통카드의 경우 버스비 전액을 내야 한다.

대학촌인 내리에는 안성 시내버스 1-3번과 1-5번이 다닌다. 모두 안성 시내 방향이다. 공도읍이나 평택시 방향으로 가려면 내리사거리나 정문 앞 정류장에서 갈아타야 한다.
경기도 10개년 기본계획에 포함된 평택안성선이 포함되어서 정문에 역이 생길 예정이다. 아주 먼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등교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4. 건물

안성캠퍼스의 건물은 서울캠퍼스에 이어 600번대부터 시작된다.

4.1. 600번대 (음악관 지역)

4.1.1. 601 교수회관 1동

교수들을 위한 기숙사. 회관들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83년에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준공된 건물. 휴게실과 13실의 침실, 대형 룸이 있다.

4.1.2. 602 교수회관 2동

91년도에 지어진 두번째 교수회관. 1동과 비슷한 형식으로, 32실의 침실과 대형 룸이 있다.

4.1.3. 603 교수회관 3동

05년도에 지어진 마지막 교수회관. 회관들 중 가장 최신식(?) 으로 지어졌으며 콘도 같은 이색적인 느낌이다. 원룸형식으로 테라스를 갖추었다고 한다.

지상 6층까지 지어져 기숙사 예지 3동과 더불어 가장 큰 규모이다.

4.1.4. 605 음악관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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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10차
사용학과: 예술대학 음악학부

83년도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 음대 최초의 건물이다. 메인도로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음대생 외에는 찾아가는 이가 적어서 존재감이 희미한 곳이다. 가끔씩 저~멀리 사과대나 경경대 필수교양 강의실이 여기로 잡히기도 하는데, 여기 오는것도 힘들지만 끝나고 다음시간이 바로 전공이라면? ㄷㄷㄷㄷ 건물 밖으로 각 방으로 형성된 개인 레슨실이 무시무시한 느낌을 준다.

음악관 2동과 마찬가지로, 안성캠퍼스의 최종 마스터플랜이 그려진 모형이 있다. 찾아가서 보면 정말 장대한 계획을 볼 수 있다. 물론 페이퍼 플랜에 불과해 믿는 사람은 없다.이전하려고 애쓰는 마당에 인천 이전 계획 망했잖아

4.1.5. 606 음악관 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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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11차
사용학과: 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 성악, 피아노, 관현악

605관(음악관 1동)에 이어 84년도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음악관 1동과 마찬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희미한 곳이다. 여기 또는 음악관 1동이나 영신음악관에 안성캠퍼스의 최종 마스터플랜이 그려진 모형이 있다.

4.1.6. 607 영신음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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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학과: 예술대학 음악학부

음대의 상징. 거대한 콘서트홀 형식의 외형이 인상적이다. 내부에는 강당과 영신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8 현재, 안전상의 문제로 폐쇄되었다. 음대를 바라보는 학교의 시각을 알 수 있다 열명이상이 무대에 올라가면 붕괴된다는 썰도 있고 비가 새서 악기들이 전부 고장났다고 한다
2018년 총학생회장의 단위요구안에 의해서 영신음악관의 리모델링을 확정받았지만 시설이용자수가 높은 원형관의 리모델링이 우선시되어 한차례 뒤로 밀려남. 어쨌거나 안성캠 건물들중 리모델링 확정을 받은 두번째 건물이다.

4.1.7. 608 국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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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15차
사용학과: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

구 국악대학. 안성캠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대규모의 단과대 건물로, 05년[43]에 지어졌다.

내부를 들어가보면 타과생들은 으리으리해보이고 깔끔해보이고 좋다 느끼지만, 현실은 굉장히 잘못 지어진 건물이며 존나 춥다.

4층이 타악과 학생들의 연습실이 마련되어있어 건물은 아래로 진동이 요동치며, 개인 연습실은 전혀 관리 받고 있지 못하다.

국악대 앞의 도로를 키스로드라고 한다. 봄에는 벚꽃이 많이 피게되, 국악대 앞 고니가 살고 있는 고니호수와 키스로드에선 벚꽃축제가 열린다.

4.1.8. 609 생활과학관(609관)

구 1차
사용학과: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환경/패션디자인, 생명공학대학 식품영양/공학

구 생활과학대학. 안성캠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이다(79년 준공). 생활과학대학이 학제 개편으로 없어지면서 존재감이 줄어드는 듯한(?) 건물이다. 안성캠 안내도 쪽에서는 생활과학관 이름도 없이 그냥 609관이라고 불리기도.... 패션디자인쪽에서 밤샘 작업이 잦아서 그런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이기도 하다.

2016년부터 폐쇄하나 싶더니 2017년부터는 창업도움센터 비슷한것이 들어와 외부에 임대중이다. 609관에 있던 예술대학의 학부들은 801관으로 이전했고, 식품영양/공학은 810(원형관)으로 이전했다.

4.1.9. 610 학생복지관

옆 611관(학생회관)과 더불어 정문 / 기숙사쪽 학생 복지를 책임진다.
3층: 사진관 / 매점
2층: 우체국 출장소 / 서점 / 우리은행 / 세탁소 / 민원처리센터
1층: 안경원 / 이발관 / CU편의점 / 웨스턴애비뉴버거

3층 매점은 분식류라 김밥 등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며, 분식짐 아줌마가 친절하다.

2층 우체국 출장소는 문자 그대로 '출장소'기 때문에 금융업무는 보지 않는다. 우편이나 택배 등과 관련된 업무 전용이다. 영업시간은 10시부터 4시까지. 서점은 전공서적이나 교양과목에서 지정된 교재 위주로 판매하며 현금 지불시 깎아준다 카더라. 민원처리센터에서는 학생증과 각종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1층 네스카페는 최근에 들어온 것으로, 원래 CAU카페가 있었다. 학생 반응은 좋은 편. 2016년 부로 CU편의점과 웨스턴애비뉴버거 라는 수제버거 집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 부로 웨스턴에비뉴 버거는 문을닫고 새로운 가게를 모집중이다.

4.1.10. 611 학생회관

안성캠 총학생회, 인권복지위원회, 교육방송국(UBS), 중대신문사 등 언론매체부, 학생처, 학생생활상담센터, 동아리연합회를 필두로 한 각종 동아리들이 입주해 있다.

4.2. 700번대 (기숙사 지역)

4.2.1. 701 예지 1동

4.2.2. 702 예지 2동

4.2.3. 703 예지 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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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캠 기숙사 통틀어 가장 최근에 지어진 기숙사로, 깨끗한 환경과 시설 등으로 비교적 비싼 가격에 많은 학생들이 선망을 했으나…. 기존 기숙사의 대규모 리모델링으로 현재는 빛이 약간 바랜 상태. 가장 큰 기숙사 규모에 걸맞게 옥상층은 3인실이며, 고시반인 수성초 / 내혜홀 기숙사가 입주해있다. 내부는 기숙사, 간이 매점(자판기 뿐이다), 휴게실, 컴퓨터실, 독서실 등으로 이루어졌다.

4.2.4. 704 명덕 1동

4.2.5. 705 명덕 2동

4.2.6. 706 명덕 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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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하기 전의 모습.
여자기숙사.

4.2.7. 707 학생후생관

4.2.8. 708 생활복지관

4.3. 800번대 (미술관 지역)

4.3.1. 801 외국어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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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외국어대학이 존재했을 때 외국어대학이 사용했던 건물이다. 현재는 교양학관으로 쓰이는 중. 입구쪽에 상베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4.3.2. 802 교수연구관

4.3.3. 803 조소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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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학과: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소전공

4.3.4. 804 조소관 1관

사용학과: 예술대학 미술학부 조소전공

4.3.5. 805관 공연영상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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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학과: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무용전공, 사진전공

4.3.6. 806관 공연영상관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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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학과: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4.3.7. 807관 공예관

사용학과: 예술대학 디자인학부 공예전공

4.3.8. 808관 조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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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학과: 예술대학 미술학부 한국화전공, 서양화전공, 디자인학부 산업디자인전공, 공예전공

중앙대 몬드리안 열풍의 가장 큰 피해자(...). 현재는 정상적으로 바뀌었지만 괴상망측한 원색조합으로 페인트칠을 했는데, 너무 이상한 나머지 몇년 못가고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4.3.9. 809 생명공학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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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0. 810 원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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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8차
사용학과: 생명공학대학

4.3.11. 811 창업보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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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육센터 뿐 아니라 ROTC, 교직원식당도 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보통 교직원식당 때문에 가는 곳. 일반 학생식당에 비하면 꽤 비싼 가격[44]임에도 어느정도 수요는 있는 편. 비싼 값을 아예 안하는건 아니지만 가성비가 별로임에도 기숙사 식비가 남을것같으면 많이 가게되기 때문에 학기말에 가까워질 수록 이용자 수는 많아진다.

4.3.12. 812 선수생활관

중앙대학교 농구부, 축구부, 야구부 선수들 전용 숙소.

4.3.13. 813 대학교회

4.4. 900번대 (체육관 지역)

4.4.1. 901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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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902 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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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나의 거대한 장군총을 보는 것과 같은 돌무덤의 중앙 도서관은 지하에는 항상 오는 사람만 오는 공부의 지배자들이 24시간 열람실을 내려가며 1층은 복사하는 겸 현금을 뽑거나, 올라가기 귀찮은 사람들 혹은 다른 안성시민들이 이용한다. (좌석배정받고 들어가면 앉아있을때 빡침).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2층인데, 미디어실-전자정보실(?)등이 있고 엘레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하는 루트수단으로만 거의 사용한다. 3층은 서적을 빌릴 수 있는 자료실이 있으며, 들어가면 근로장학생의 피곤한 모니터링의 모습을 보며 들어갈 수 있다. 4층은 평생교육원을 다니는 학생들, 국제교류학생들이 이용하는 곳이며, 5층은 시험기간에 공부 겸 연애하고 싶은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4.4.3. 907 수림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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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캠퍼스 수림과학관과 마찬가지로 전 재단 김희수 재단 이사장 김희수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5. 자치기구

학생회 등 대부분의 자치 활동기구는 서울캠퍼스와 별도로 운영된다. 이는 분교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만 중대신문이나 UBS, 중앙해럴드 등 구분이 없는 기구(동아리)도 일부 존재한다.

6. 주변시설

주변 자취촌인 '내리'를 제외한 학교 주변에는 별 게 없다. 아니 원래 안성 면적의 대부분은 논, 밭, 미개간지니까 당연한 일이다.

안성캠퍼스의 개교와 더불어 발달해온 후문 부근의 자취촌을 '내리'라고 통칭한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내리이기 때문.개교 당시에는 논밭 사이에 술집 두어 곳이 전부였던 내리가 현재는 수백 채의 원룸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니 실로 상전벽해. 후문 부근에 위치한 카페 TARA에 가면 새하얀 눈밭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데, 그게 80년대의 내리다.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학기 중에는 내리에 학생들이 상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상권은 형성되어 있다. 중소규모의 마트, 분식점, 식당, 술집, 피씨방, 당구장, 문구점 등이 성업중. 개중에는 20년 넘게 장사한 가게도 있었으나, 제3캠퍼스 소식 이후 동네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많은 가게들이 장사를 접었다. 최근에는 수시로 폐점하고 개점하고 하는 통에 한 학기 휴학했다 돌아오면 단골집이 사라지거나 한다.

리게이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잘난 평택에도 없는 유비트 코피어스가 있으며, 테크니카도 현역으로 잘만 굴러가고 있는 논스톱오락실 내리점이 중대 후문에 바로 위치해있다. 물론 별볼일 없는 인구수를 자랑하는 안성땅덩어리에서 유비트 장사가 그렇게 잘 될리는 없지만 그래도 소수의 리게이들이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다.

기본적인 게임들은 갖추어져 있으나, 대다수의 오락실이 그렇듯, 코인노래방의 수익이 더 월등하다.

학교에서 내리를 관통해 더 내려가면 죽리가 나온다. 죽리는 논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죽리로 산책을 가보면 왜 안성이 촌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심야에 산책하기 좋다. 그러나 5월 발생한 여자 기숙사 괴한 침입사건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여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리(죽리)에 가면 죽으러 가는 것이다'라는 유머아닌 진심가 떠돌고 있다.

금융시설은 교내에 위치한 우리은행, 내리 한쪽에 위치한 농협이 전부. 다만 국민은행의 ATM은 예술대 로비 등 몇 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 외에는 꼼짝없이 안성 시내나 평택으로 가야 있다.

기존에는 후문의 내리 외에는 이렇다 할 상권이 없었으나, 2016년 1월에 정문 대로의 맞은편에 2,320세대의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초등학교(어울초등학교)도 개교해서 정문쪽의 상권도 약간 형성되어 있다.

대형 할인점은 공도읍의 롯데마트 안성점과 안성 시내의 이마트 안성점, 안성 농협 하나로마트가 가깝다.

7. 본교화 이후

안성캠퍼스의 대부분의 인문/이공계 학과들은 통폐합으로 인해 2011년을 마지막으로 그 역사를 마무리하였다. 대다수의 인문/이공계가 폐과된 현재 안성캠퍼스는 사실상 30여개의 예체능 학과 중심에 이과 학과 3개가 얹혀 사는 형국이다. 인문계에는 국제물류학과,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자연공학계에는 에너지시스템공학부[45], 시스템생명공학과[46], 생명자원공학부, 식품공학부가 남아 있었으나, 2014학년도부터 국제물류학과,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서울에서 모집한다.

대학 본부측에서 2012년부터 안성을 본교로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법적으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부터 안성캠퍼스는 법적으로 중앙대학교의 동등한 학사 자격을 갖추게 된다. 안성캠퍼스로 입학해도 중앙대학교 흑석캠퍼스와 동등한 전공학위를 수여받고, 안성캠퍼스에서 흑석캠퍼스로 전과하는 등의 학사활동도 허용된다.[47]본교로 운영을 시작하는 2012학년도 이전에 서울캠의 중복유사학과와 통폐합한 안성캠퍼스 학생들(ex 영어, 중어, 노어, 국제관계 등)에 대해서는 서울 본교소속 졸업장(학위증)을 발급해주고 성적표에는 예전 입학학과명(분교시절 안성캠 소속학과 학문단위)과 현재 졸업학과명(서울캠 소속학과 학문단위)을 병기(같이 적어듬)하기로 결정했다. 오? 이건 뭐지? 분교애들 학위증이 본교로 발급되었다고?

현재 중앙대 본부 측에서는 안성캠퍼스에 할당된 약 2000여 명의 입학정원[48]을 보다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학교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특성화 학과이고 하나는 신캠퍼스이다. 비교적 서술이 간단한 특성화 학과부터 서술하기로하고, 신캠퍼스 문제는 아래에서 별도의 항목에서 서술키로 한다.

안성캠퍼스에 현재 남아있는 인문/이공계열은 특성화 학과[49]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인문계의 경우 2개 중 1개 특성화 학과였고 이공계열은 3개중 2개가 특성화학과였다. 현재는 특성화 학과 중 시스템생명공학과만 안성 소재.

8. 학사과정

앞서 언급했듯 2012학년도 입학생(12학번)부터 중앙대 안성캠퍼스 신입생들은 흑석캠퍼스 소속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학사행정적 대우를 중앙대학교 본부로부터 받는다. 둘 다 본교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안성에서 서울로 전과도 가능하다는 것.

졸업장의 경우 캠퍼스를 표시하지 않고, 중앙대학교 XX대학 XX학과 XX전공 XX학번 XXX라는 식으로 학위를 받게된다. 예를 들면 중앙대학교 생명공학대학 시스템생명공학전공 20120001 김중앙 같은 식이다. 성적표, 학사코드 등도 모두 동일하게 취급된다. 다만 캠퍼스마다 학과가 완전히 다르므로 기업의 인사처에서는 전공만 확인해도 얼마든지 캠퍼스 구분이 가능하다.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김성균입니다라고 말하면 아 수원캠퍼스구나라고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전과의 경우 학내에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데, 서울캠퍼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성캠에 입학한 학생들이 서울캠퍼스에 소속된 전공으로 전공세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대의 타 학과에 비해 안성캠 소속학과에서 전과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다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성캠퍼스의 학과 수가 대폭 격감하여 자연공학계 3개의 학과밖에 없으며, 입학한 모든학생이 전과를 목표로 입학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리고 안성캠퍼스 학생들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은 열망이 강해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원하는 인기있는 과 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인기과에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안성에서 대규모의 학생이 서울의 인기과로 넘어오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단과대나 과마다 전출인원에 제한을 걸어두는 것도 있다. 또한 중대의 경우 전과 사정이 엄격한 편이기 때문에 실력 없는 학생이 마구잡이로 전과하는 사례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50] 2018년부터, 즉 18학번부터는 안성에서 서울로 넘어갈 수 있는 인원수가 안성 전체 인원수의 10퍼센트로 제한된다.

복수전공의 경우 상당히 골치아픈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항목에서 밝히고자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중앙대 안성캠퍼스에는 각 계열별로 2~3개의 학과만이 존재한다. 복수전공을 하고자 하는 학생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1~2개의 전공에서 딱 자신이 원하던 전공을 찾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고로 흑석캠퍼스에 소속된 전공을 공부하고 싶게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현재 체제는 이원화 캠퍼스체제라는 것이다. 캠퍼스별로 전공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으므로, 서울캠퍼스에 직접 가서 수강해야만 전공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이 경우 서울에 사는 학생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요일별로 월화는 안성, 수목은 서울 과 같은 식으로 시간표를 짜면되고, 서울에서 흑석, 안성 모두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 밖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런 경우 매우 힘들다. 안성캠퍼스 자체가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교통이 매우 안습하고 서울 밖에서 흑석캠으로 가는 것도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 서울에서 기숙사/자취방을 얻는 것을 권장한다. 교내에 서울-안성 순환버스가 있긴 하지만 자주 운행을 하는 편이 아니라 원활한 이용은 힘들다. 종종 사진학과에서 컴퓨터 공학과를 복수전공하는 식의 용자도 있다.

입학은 아직까지 항간에 떠도는 배치표, 입시예측 프로그램 등에서는 분교 시절 수집된 데이터를 기준으로 예측을 하고 있어서 상당히 낮은 성적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과 수가 급감하고 본교 대우로 변한 2012년도부터는 최초합격자의 경우 이전 재학생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보유한 인재들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최초합이 아닌 추가합격 끝자락까지 가면 인서울 끄트머리에 닿을까말까한 경우도 있고 수시의 경우 여전히 평범한 인수도권 수준인 경우가 많다. 수험생들이 일반적으로 수능을 모의평가보다 더 잘 볼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수시에서 적정/하향지원을 잘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서울 메리트가 있는 흑석캠에는 비하기 어렵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문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본부측의 입시 계획안을 보면 이전에 비해 커트라인을 높게 잡아둔 상태이다. 적어도 이전 학번들에 비해서는 상향될 것이 분명하므로 현재 안성캠 재학생이라면 자신들보다 스펙이 월등한 후배들과의 경쟁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 두자.

9. 신캠퍼스 추진

안성은 지리적으로보나 인프라로 보나 썩 좋은 입지조건이라 보기 어렵기에, 두산재단과 중앙대본부 측에서는 캠퍼스를 이전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신캠퍼스가 추진 중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회의론과 긍정론이 양립하고 있다.

우선 회의론자의 입장부터 서술하면, 회의론의 경우 신캠퍼스 건립을 통한 안성캠퍼스의 이전은 말 그대로 말 뿐인 페이퍼 플랜에 불과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첫째 두산재단 이전부터 근 10년간 캠퍼스 이전은 계속 던져져 왔던 떡밥이란 것이다. 10년전 부터 어느 지방 어디에 짓는다 했지만 실제로 실행된적은 없었다. 둘째, 야심차게 주장하던 하남시 캠퍼스 건립이 이미 사실상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그 막대한 재원은 누가 감당하며, 설사 재원이 확보되더라도 그 건축 부지는 누가 줄 것인가 라는 점이다. 또한 안성시가 중대에 살고 죽는 동네가 된 지금 안성시에서 학교를 나가게 그냥 가만히 나둘 것인지도 크게 의문이다. 실제로 하남시와의 야이가 하는 중에 안성시에서 엄청나게 태클을 걸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안성시 입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준거는 다 까먹었냐, 은혜를 저버리냐'[51]중대측에서는 '제대로 해준거나 있냐, 해준게 이 모양이냐'라는 입장이다.[52]

반면 신캠퍼스 건설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의 경우, 아래와 같은 반론을 제시한다. 첫째, 소위 1000원 재단이라 불리던 이전재단과 현 두산재단의 자금력은 차원이 다르다. 일례로 서울캠퍼스에 2012년 말 건립이 확정된 경영경제관의 경우 1160억 규모의 자금이 들어간다. 그리고 경영경제관 이후에도 각종 건축 계획이 잡혀있고, 또 수립중이다.[53] 이런 사례를 볼 때 두산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운영할 능력이 있다고 봐야한다. 둘째, 하남시의 무산과 같은 것은 일종의 시행착오로 봐야하지 한 두번의 실패가 그 일 자체의 불가능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현재 인천시에서 부지제공 의사를 밝혔으며, 중앙대 측과 가계약을 이미 마쳤고, 본계약이 1년 이내에 성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두산측도 그에 따른 계획수립에 실제로 돌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와 가장 다른점은 현재 신캠퍼스는 안성캠퍼스만의 사업이 아니란 것이다. 과거 두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던 시절 안성의 이전사업은 안성캠퍼스의 일이었지 중앙대학교 전체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신캠퍼스의 건설은 중앙대학교 수도권 병원진출, 연구단지 신설, 안성캠퍼스의 이전/소속 학과 경쟁력강화, 인근 근린단지 개발과 수익모델 창출 등의 복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중앙대 전체의 명운이 달린 사업이다. 서울캠퍼스에 가면 신캠퍼스 사업단 사무실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은 아니나, 과거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신캠퍼스가 건설되면 중앙대 공대가 이전한다, 의대가 간다, 약대가 간다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사실이다. 특히 의약계열은 지역별로 매우 엄격하게 정원이 할당되어 있는지라 함부로 이동이 불가능하고(어떤계열이던간에 정원을 서울에서 타지방으로 이전하는것은 가능하다 반대는 불가능하지만) 공대의 경우도 학교본부에서 여러번, 만약 흑석캠퍼스에 현재 위치한 학문단위가 이전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학교 전체적으로 열린 소통을 하고 여러차례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것임을 선언했다. 고로 인천시와 신캠퍼스에 입주하기로 약속한 8000명은 안성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 유력하다.

2010년경, 인천시와 중앙대가 신캠퍼스 건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으나, 인천시의 중앙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대한 법적 위반문제와 더불어서 여러가지 문제(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사업추진의 어려움문제 및 연세대 송도식의 특혜시비 등)로 신캠퍼스 MOU는 지연되다가, 2013년 5월 13일 이용구 총장과 송영길 시장이 인천 캠퍼스 건립을 위한 기본협약을 체결함으로서 신캠퍼스 건립은 한발을 내딛었다.

일단 계획은 2013년 안에 건립계획을 구체화 하고 2014년 초 착공에 들어간다는 것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검단주민들의 앵커시설에 대한 압력과 더불어서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문제처럼 서구주민들의 정치적인 압력문제도 크게 작용했었다. 현실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체(프로젝트 파이낸싱 줄여서 PF)가 대학에 2천억원의 지원금 및 조성원가 이하로 택지공급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사업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보다못한 인천시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2천억원을 들여서 중앙대 캠퍼스까지 지하철을 연장해주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발표이후에도 어떤 상황변화도 일어나지 못했고 MOU기한만 1번 연장(2015년 5월 13일)조치했었다.

2014년 지방선거 이후 당선된 유정복 시장은 중앙대 검단캠퍼스 사업은 검단의 핵심 앵커시설로서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언급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사업전망에 대해 회의적으로 변했고, 결국 15년 초 인천도시공사는 10만평의 대학캠퍼스를 포함한 30만평의 사업계획을 철회하고 검단 1지구에 조성원가 수준으로 2만평의 대학병원과 의과대학 캠퍼스만을 옮기는 계획을 언론을 통해서 발표(사실상 인천시가 중앙대 반응을 간본수준)했으나, 대학에서는 인천도시공사의 새로운 계획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애초 원래계획은 2천억원의 지원금과 원가의 1/3이하로 10만평 부지공급이였으나, 인천시의 새로운 계획은 2만평의 부지를 조성원가수준으로 매입하고 병원과 의대캠퍼스를 중앙대 예산으로 지으라는 통보였으니 대학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였을지도. (8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만 짓는데 최하 3천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2015년 5월초 인천시는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이전에 체결한 사업기본혁약을 바꿔야 하나 중앙대 측이 이에 대한 협상을 나서지 않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박범훈 전 총장과 대학/재단에 대한 비리수사 및 막말파문으로 재단이사장이 사퇴한 상황이라서 사실상 중앙대 검단 캠퍼스 계획은 무산직전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5월 13일 기본협약 만료시한을 앞두고 대학에 대해 연장여부를 타진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고, 5월 7일 인천시는 중앙대가 인천캠퍼스 조성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의 회신을 보냈다고 밝힘으로써 무려 5년을 끌어온 중앙대 검단 신캠퍼스 사업은 결국 실패하였다. 참고

10. 사건사고 및 문제점

10.1. 2016년 생명공학대학 대학원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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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생명공학대학 소속 대학원 정원 모두 안성캠퍼스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뜨고 있다

다만 이것이 약간 과장된 부분이 있는것이 원래 생공대 대학원의 연구실은 안성에 있었고 소속만 서울에 해당했을 뿐이다.

10.2. 2017년 명덕3동 괴한 침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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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3일 0시 10분쯤 여자기숙사인 명덕3동에 괴한이 침입하여 자고 있던 여학생에게 칼이 있다며 조용히 하라고 입에 손을 넣어 협박하고 얼굴에 상해를 입혔다. 피해 학생이 저항하여 괴한은 달아났으나, 피해 학생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은 것으로 예상된다.
2층 방충망을 뜷고 잠입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명덕3동의 구조상 2층이 보통 건물의 1층만큼 낮아 침입이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워낙 시설이 노후화 되어있었고, 내리의 치안 역시 좋은 편은 아닌것이[54] 겹쳐져 대형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기숙사 외부 CCTV에 범인의 모습이 찍혔으나 화질이 좋지 않아 범인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있고 기숙사 내부 CCTV는 녹화조차 되지 않는, CCTV의 기능이 사실상 없는 감시용이어서 교내에서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이전부터 안성시에 치안을 올려달라 몇번 민원 등을 넣은 적이 있었으나, 파출소를 2017년 4월 중에 들어서야 짓기 시작하는 등 발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야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아카이브 댓글이 저장되지 않았으니 글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정상적인 아카이브로 바꾸기를 바람

[1] 현재 건물명과 몇 개가 다른데, 업데이트가 좀 늦는 모양이다. [2] 안성캠퍼스는 본분교 통폐합으로 인해 학문 단위들도 본교다. [3] 정확히 말하면 압박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서울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 박통이 행정수도 충청 이전을 검토했던 때다) 서울 지역 대학 정원 증원을 불허했을 때였고 정원확대가 필요한 대학들이 알아서 제2캠퍼스 설립에 앞장섰던 것. 당시 정부는 지방 거점 도시(부산,대구,대전 등)나 그 인근에 분교를 세우기를 원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은 서울에서 가까운, 그러나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분교를 세웠다.) [4] 그 당시 중앙대 서울캠퍼스에 있던 모든 예술대학과 농과대학(現 생명공학대학)이 안성으로 이전되었다. 다만 연극/영화전공이 2007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캠퍼스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이유는 해당 학과의 동문들이 기금을 모아서 동숭동 대학로에 교육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즉 학교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안성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 [5] 그런데 엄밀히 이야기하면 예술대학 자체를 내려보낸 것도 중앙대 예술대학이 '서라벌예술대학' 이라는 전문대를 흡수하여 중앙대 예술대학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전문대 학과 그 자체를 안성 분교로 보내버리는 게 가장 반발이 덜하기 때문에 보내버렸을 것이다. [6] 분교 포함. 양교의 본교 입학정원은 4,000명을 넘어선 일이 없다. [7] 인서울 대학의 정원 증원이 엄격하게 규제되었던 1980년대 말에는 서울캠퍼스 입학정원보다 안성캠퍼스 입학정원이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 성균관대학교도 마찬가지였고. [8] 안성은 정말 농사만 짓는 농촌인지라, 교육기관의 입지로서는 최악이다. 교통도 나빠서 다른 도시와의 연계도 불편하다. 하다못해 성균관대처럼 학교가 수원에만 있었어도 그 위상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왜나면 이런 지리적 약점을 가지고서도 2010년 당시 지방캠퍼스 중 대학평가 최상위를 차지할 정도기 때문이다. [9] 지금 용인시에 있는 그 수많은 광역버스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하나도 없었고 강남고속터미널 영동선에서 출발하여 예전 김량장 군청 인근 터미널로 도착하는 동부고속 서울 - 용인 고속버스와 서초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같은 곳에 도착하는 경남여객의 시외버스만 있었다. 엄연히 영동고속도로변의 지방 농촌으로 인식했다는 것. [10] 당시 정황을 좀 더 이야기하자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부청사가 과천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나왔을 때 공무원들의 분위기는 마치 지금 세종시로 내려가는 수준의 느낌이였으며, 197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가 동숭동에서 관악으로 이전할 당시에도 산골짜기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느낌이였다고 한다. 그 시절 1970년대 서울(종로)에서 관악산, 과천시까지의 거리감은 지금의 서울-안성 거리감보다 컸다. [11] 박통의 그 유명한 행정수도 공주 이전이라는 소위 백지계획이 나왔을 때이다. 그정도로 1970년대 후반은 서울 및 수도권 억제를 위해 노력했다. 물론 이런 정책은 19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많이 완화되었다. [12] 의정부시 등 서울 바로 북쪽. 신규 개발은 막고 기존에 개발된 곳을 재정비. [13] 수원시, 성남시 등 서울 남부 지역. 수도권 과밀우려로 추가 개발을 가급적 억제 [14] 파주, 연천 등 휴전선 접경지역으로 군사목적으로 개발 유보. [15] 가평, 양평 등 한강수계. 상수원보호를 위해 개발억제. 지금의 상수원보호구역과 비슷하다. [16] 주로 철도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접근성이 경기남부보다 더 좋은 충청남도 천안시가 많이 선택되었다. [17] 용인이 요즘처럼 개발되고 인구가 늘어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18] 많은이들이 수원시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는 용인군 서천리(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소재. 캠퍼스 설치부터 10여년 이상 완전 촌 한복판에 학교앞 편의시설도 전무했다. 직선거리만 가까왔지 지금 중앙대 안성캠퍼스의 환경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리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학교 바로 앞에 영통택지개발지구가 개발되고 10차선 도로가 나면서 천지개벽. [19] 여긴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학교가 4년제 정규 대학 인가를 받으면서 아예 통째로 용인시로 이전했다. [20] 한양대는 화성군 반월리에 캠퍼스를 세웠다. 안산시로 승격한 것은 한참 뒤의 일. [21] 게다가 성대 자과캠의 주변환경은 전철 역세권이라는것을 빼면 이전 당시에는 중대 안성캠과 비슷했다. 주변은 완전 농촌지역.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원시 번화가에서 성대 자과캠으로 직접 연결되는 버스노선조차 드물었다. 그나마 역세권이여서 조금씩 개발이 되었지만 오늘날처럼 아파트가 들어선 시가지로 변모한 것은 역시 1990년대 중반 - 정자, 천천지구 택지개발 - 이후다. [22] 고속철도 계획이 수립된 것이 제2캠 설립보다 많이 뒤의 일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는 않는다. 카더라로 보는게 좋을듯. [23] 최초 계획이 백지화 되고 나서도 전체 정원의 1/3 수준이 이동했는지라 소규모라 말할 수는 없다. [24] 학교의 안성 이전을 전제로 대학 재단은 안성 이전 후 남은 서울캠퍼스 토지(부동산)을 팔아서 갚을 작정으로 금융권에서 막대한 돈을 대출하게 된다. 그 돈은 앞서 언급한 재단 관계자의 정치자금으로 쓰였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안성 이전이 좌절되고 서울캠퍼스 부지를 매각하지도 못 한채로 대출한 돈의 만기가 돌아오자 결국 재단은 배째라. 결국 자금난으로 당시 중앙대 재단은 학교를 매각하게 된다. 학교를 인수한 곳은 잘 알려진 김희수재단인데 인수 즉시 700억이 넘는 부채를 상환했단다.(김희수씨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부동산 갑부로 유명했다. 하지만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면서 학교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참고자료. [25] 당시 예술대학의 교수진은 각 분야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령 문예창작학과의 경우 김동리가 소설을, 서정주가 시를 가르치던 시절이다. 서정주는 잘 알려진대로 독재 세력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박정희나 전두환과도 친분이 있었다! [26] 1953년에 개교한 이래 수많은 문인, 예술인, 배우의 산실이었던 곳이다. 김흥기, 민욱, 선우용녀, 이대근, 이정길, 이창훈, 이춘식, 전운, 조춘, 최불암, 홍순창 등 검색해보면 무릎을 칠만한 명 배우들이 이 곳 출신이다. 한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죽음의 한 연구'의 박상륭, ' 관촌수필'의 이문구, '장난감 도시'의 이동하, '저녁의 게임'의 오정희, '아름다운 얼굴'의 송기원, '만월'의 이시영 등 한국현대문학사의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이 곳 출신이다. 덧붙여 전유성 윤복희도 이 곳 출신. 참고로 서라벌예술대학을 운영했던 재단은 대학을 중앙대에 매각한 후 서라벌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는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27] 인수는 1972년, 중앙대 예술대로 개편한 것이 1974년. 중앙대 예술대학 개편 이전 졸업생도 중앙대 졸업으로 소급적용. [28] 이 두 학과는 별개의 학과지만, 전공 유사성으로 인해 다들 연극영화과라고 부른다. 2011년 공연영상창작학부 연극전공, 영화전공으로 개편되었다. [29] 참고로 연고대는 현재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다 판단하고 정원을 감원하여 교육의 질을 상승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연고대의 정원은 4000~5000명 수준에서 3500~4000명 수준으로 감축된 상태이다. [30] 수도권에 위치한 전문대학의 4년제 전환도 불가능한데, 그래서 신흥대학교는 4년제인 한북대학교와 통합을 했으며 서울예술대학은 규제가 부당하다는 위헌소송을 냈다. [31] 경기도 수원시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과 수의과대학이 서울로 이전한 것이 거의 유일한 수도권 대학 서울시 이전의 예인데, 이 경우도 1970년대 서울대 종합화 과정에서 추진되었던 것이므로 예외를 인정받은 것이고 그나마도 타 대학과의 형평성 때문에 수원의 농생대가 관악으로 이전했지만 서울(관악)캠퍼스의 총 입학정원을 늘릴 수가 없어서 서울대는 이후 그만큼 입학정원을 단계적으로 줄여야만 했다. 4500여명이 넘던 서울대 입학정원은 현재 3100명 전후로 많이 줄었다. 대학원 입학정원이 늘어난 것은 일단 잊자. [32] 물론 앞에서 서울대의 예처럼 학과의 이전은 가능해도 캠퍼스별 총 정원은 그전과 비슷하게 조절해야 한다. [33] 물론 예술대를 제외한 안성캠퍼스에 있던 대다수 학과들이 통폐합의 과정에서 중복/유사학과라는 명목하에 폐과 되어 많은 잉여정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정원 획득 과정에서 마찰이 없었다곤 할 수 없겠다. [34] 두산건설에서 차익을 최소화해서 원가에 가까운 금액으로 시공하는데에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웬만한 대학 건물 몇개 합쳐놓은 규모다. 실제로 서울캠퍼스에서 가장 큰 건물이 될 것이라고...2016년 완공예정. [35] 졸업증명서에는 서울 본교 학위로 나오고 성적증명서에는 안성 분교 입학, 서울 본교 졸업이 병기된다고 하는데 대놓고 안성 분교, 서울 본교 이렇게 적시하는 것도 아니고 단과대명으로만 구분된 거라 웬만한 기업들에서는 이 사람의 졸업 학위만 주로 보지 성적증명서의 입학단위까지 세세히 파고들어 보는 데는 드물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안성분교학생들이 서울본교학생으로 변경된 학적세탁이 맞다 [36] 국제물류학과,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에너지시스템공학부의 서울 이전으로 2014학년도부터는 예술대학과 이과 3개학과만 안성캠퍼스에서 모집한다. [37] '중대 다닌다'라고 하면 '서울캠이냐, 안성캠이냐'는 질문이 심심치않게 나온다. 안성캠 본교생들은 그런 질문을 들을때마다 '통합이 되어서 12학번부터는~'하는 식으로 설명을 하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고. [38] 중앙대보다 한달 늦게 통합한 경희대의 경우 서울캠과 국제캠 통합평가를 받았다. [39] 서울로 이미 복귀한 연극/영화전공도 당연히 안성에 소재했던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역사로 여기고 있다. 안성으로 이전해 있을 당시 동국대, 한양대 등의 후발주자들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 왔기 때문. [40] 학교측에서 지원해주던 실습 지원비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연히 이 조치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41] 예술대학 전체를 통틀어 수시, 정시모집에서 수학을 반영하는 전공은 20전공 중 영화전공, 문예창작전공, 패션디자인전공, 실내환경디자인전공, 사진전공 5전공에 불과하다. '수학 반영이 무슨 상관이냐'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예술대에서 수학을 반영하는 것은 입결의 주요 지표가 된다. 수학 반영으로 학생을 걸러내야 할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는 것 [42] 티머니 E-Pass 이용가능하기 때문에 수동으로 검표하지 않는다. [43] 국악대 교수였던 박범훈이 총장이 된 것도 05년 2월. [44] 학생식당 백반 기준 2800원, 교직원식당은 4500원이다. 물론 학기당 식비를 많이 신청할수록 할인된다. [45] 2013년 신설. [46] 2013년 신설. [47]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다. 2018년 대학알리미 전국대학 교육편제단위 표준분류에 따르면 졸업장 코드, 지역 정보가 일치하는 대학은 성균관대 수원, 경희대 국제, 외대 글로벌, 부산대 밀양, 경북대 상주뿐이다. [48] 재학생은 8000명이다. [49] 중앙대에서 대표 학과로 밀고 있는 글로벌금융, 공공인재, 융합공학, 국제물류, 에너지시스템공학, 시스템생명공학 중에 시스템생명공학은 안성에서 선발한다. [50]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중앙대는 두산재단 이후 학점부여 제도를 더 엄격하게 가다듬어서 현재는 학점이 짠 편에 속한다. 안성 입학 - 학적 세탁 - 서울 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막상 성적표를 받아본 후 좌절하는 케이스가 늘어난 것은 물론. [51] 요새는 사정이 급해졌는지 운동장에 잔디 깔라고 8억 준다고 한다기도... [52] 사실 중대 안성캠 정문은 정문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정문처럼 쓰고 있지만, 도로계획이 잘못돼서 그런거고... [53] 일단 서울 캠퍼스 마스터 플랜의 최종완성은 2023년으로 계획되어있다. [54] 실제로 주변 원룸촌에서는 창문으로 팔과 스마트폰을 넣어 도촬 등의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등 내리의 치안 상황은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