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26:52

마치에이 주라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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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에이 주라프스키의 역임 직책
{{{#!folding ▼
폴란드 국가대표팀 주장
야체크 봉크
(2005~2006)
마치에이 주라프스키
(2006~2008)
미하우 제브와코프
(2008~2010)
}}} ||
폴란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M.Zurawski_Retired.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치에이 주라프스키
Maciej Żurawski
본명 마치에이 스타니스와프 주라프스키
Maciej Stanisław Żurawski
출생 1976년 9월 12일 ([age(1976-09-12)]세)
폴란드 인민공화국 비엘코폴스키에 포즈난
국적
[[폴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포지션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바르타 포즈난 (1982~1994)
선수 바르타 포즈난 (1994~1997)
레흐 포즈난 (1997~1999)
비스와 크라쿠프 (1999~2005)
셀틱 FC (2005~2008)
라리사 FC (2008~2009)
AC 오모니아 (2009~2010)
비스와 크라쿠프 (2010~2011)
국가대표 72경기 17골 ( 폴란드 / 1998~2008)

1. 개요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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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前 축구선수. 2000년대 초중반 자국을 대표했던 골잡이였다.

2. 클럽 경력

2.1. 바르타 포즈난

포즈난 출생으로, 아버지가 코치로 재직해있던 로컬팀 바르타 포즈난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1994년 7월 31일 비제프 우치를 상대로 엑스트라클라사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으나, 소속팀은 곧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2.2. 레흐 포즈난

그렇게 2부리그에서 출전 경험을 쌓아오던 주라프스키는 1997년 11월에 레흐 포즈난으로 6개월간 임대를 떠났다. 임대 기간동안 구르니크 자브제와의 경기에서 1부리그 데뷔골을 신고했고, 임대 기간을 마친 뒤 완전 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리그에서 30경기동안 11골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9년 9월 26일, 비스와 크라쿠프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가 레흐 소속으로 치른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다음 행선지는 멀티골을 기록했던 상대인 비스와 크라쿠프였다.

2.3. 비스와 크라쿠프

클럽 레코드로 영입된 그는 비스와에 합류한 뒤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2000-01 시즌 리그 우승을 공헌했다. 그리고 2001-02 시즌부터 골 결정력이 무르익으며 리그에서만 21골을 기록했고, 생애 처음으로 득점왕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 시즌에도 리그 22골을 기록하며 자국 무대는 물론이고, UEFA 컵에서는 전 경기를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하며 유럽대항전에서도 절륜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의 활약 덕분에 팀은 2년만에 리그 타이틀을 가져오는데 성공했으며, 본인은 2002년 폴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3-04 시즌부터는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었고, 리그 20골로 리그 득점왕을 수상함과 동시에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다음 시즌에도 절정의 골감각을 과시하며 리그 25경기에 나서 24골을 넣고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4. 셀틱 FC

이제 그에게 있어 자국 리그는 너무나도 좁은 무대였고, 2005-06 시즌을 앞두고 셀틱 FC에 입단하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단행한다. 그는 주니뉴 파울리스타 헨릭 라르손가 달았던 7번을 물려받았고, 팬들에게 "Magic Żurawski"라는 별명까지 부여받으며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시즌 초부터 8경기동안 4골을 터트리며 활약을 이어가는 듯 했으나, 10월 1일부터 다음해 1월 초까지 3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자리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2006년 1월 14일 22라운드 킬마녹전에 선발로 나서 오래간만에 득점을 신고한 뒤 이후 3경기 연속골로 서서히 폼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27라운드 던펌린 애슬레틱전에서는 포르트릭을 작렬하면서 8:1 대승을 이끌며 마침내 폴란드산 골잡이가 부활했음을 팬들에게 알렸다. 던펌린전 4골을 포함 2월 한달간 5골을 기록하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이후 시즌이 끝날때 까지 주전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공헌했다.

2006-07 시즌에는 케니 밀러와 얀 페네호르오프헤셀링크가 영입되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으나, 그는 매 경기 거의 선발로 출전하며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정작 득점포는 주춤하며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지 못했고, 시즌 후반기에는 부상으로 2달 가까이 결장한 뒤 남은 리그 3경기는 전부 교체로 출전했으며,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시즌 성적은 리그 26경기 6골, 스코티시 컵 3경기 4골, 챔피언스리그 5경기 0골로 총 34경기 10골을 기록하면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2007-08 시즌은 영입생 크리스 킬렌과 스콧 맥도널드에게 밀리면서 전반기동안 8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맨시티에서 뛰던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가 입단하자 이적을 모색하게 된다.

2.5. FC 라리사

2008년 겨울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그는 50만 유로에 그리스의 라리사에 입단한다. 2월 9일 AEK 아테네와의 홈경기에서 첫 선을 보였고, 데뷔골까지 넣고 1:0 승리를 이끌며 홈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후반기동안 12경기에 나서 6골을 기록하였고, 다음 시즌에는 시즌 9골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 득점자로 준수한 활약을 했다.

2.6. AC 오모니아

2009년 6월 2일, 키프로스 팀인 오모니아로 이적했다. 활약한 기간은 딱 한 시즌 뿐이었지만, 팀이 5년만에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공헌했다.

2.7. 비스와 크라쿠프 2기

2010년 6월 30일, 5년만에 비스와 크라쿠프로 복귀했다. 비록 전성기에서 내려왔지만, 고참으로서 리그 우승에 힘을 보탰고, 시즌을 마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8. 국가대표 경력

자국 리그에서 절정의 득점력을 과시하던 시절에 큰 기대감을 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출전했으나, 그는 조별라운드 3경기 모두 출전했음에도 무기력한 모습만 일관했고, 미국과의 3차전에서는 PK 실축까지 해버리며 무득점으로 팀의 조별리그 탈락(25등)을 막지 못하고 쓸쓸히 대회를 마감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기간 동안 7골을 작렬하며 본선 진출에 큰 공을 세웠으나, 정작 이번에도 본선에서는 3경기 무득점에 그치며 월드컵 잔혹사를 끊지 못했다.

주장으로 참가한 유로 2008 16개국 본선에서는 독일과의 1차전에서 경기 중간 부상으로 하프타임에 교체되었고, 부상으로 남은 2,3차전은 모두 결장하면서 허무하게 대회를 마쳐야했다. 그리고 대회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폴란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임에도 정작 국제 메이저대회에서는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두며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