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05:29:46

제5공수특전여단 동사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3. 괴소문4. 기타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98년 4월 1일 수요일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5공수특전여단[1] 군인들이 천리행군을 하던 중에 일어난 참사. 원인은 기상이변, 그리고 기상이변에도 불구하고 대대장이 무리하게 훈련강행을 명령한 탓이었다.

대대장이 이런 무리한 결정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들이 육군 특수부대특전사라는 점이었다. 특전사는 적지가 어떠한 악조건이라도 작전을 해야 하는데 만약 대대장이 비가 온다고 훈련을 멈추었다면 대대장 개인뿐만 아니라 특전사 전체의 평판이 낮아진다는 것 때문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군인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지휘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당시에는 안전불감증이 지금보다 심각했고 대대장이 행군을 계속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무렵에는 부대가 심각한 상황에 처하진 않았기 때문에 '신속하게 행군해서 지역을 이탈하자.'는 중대한 오판을 했다.

특전사 대원들은 민주지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온 몸이 흠뻑 젖었지만 그대로 산악행군을 계속하였다. 계속 정상을 향해 걷는데 기상이 급변하였다. 4월 봄인데도 갑자기 추워지고 체감온도가 영하 30도에 이르면서 비가 눈으로 바뀌어 거센 눈보라까지 몰아치자 대원들이 저체온증으로 쓰러졌다.[2] 게다가 심한 악천후로 헬기도 못 뜨는 등 구조가 늦어져 결국 여단 예하 제23특전대대 소속 김광석 대위( 학군 30기)[3], 이수봉 중사, 오수남ㆍ이광암ㆍ한오환ㆍ전해경 하사 등 총 6명이 저체온증으로 동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 #)

2. 상세

1998년 3월 28일 토요일 특전사 제5공수특전여단 제23특전대대 소속 대원들이 천리행군을 시작하였는데 칠갑산에서 출발하여 약 8일 동안 속리산 월악산을 거쳐 대모산에서 훈련을 종료하는 일정이었다.

5일차인 4월 1일 수요일 오후 1시 대원들은 전라북도 무주군 하두 마을에서 출발하여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에 소재한 민주지산(1241m) 정상으로 항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비가 조금 내린다고 하였으나 출발한 지 1시간쯤 뒤부터 비가 많이 쏟아져 내렸다.

오후 3시 민주지산 6부능선을 통과할 즈음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서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뀌더니 오후 4시 8부능선을 지날 무렵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눈보라가 몰아쳤다. 봄에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고 기상청의 일기예보도 예측하지 못한 드문 기상이변이었다. 이후 부대의 행군속도가 느려지더니 4시 50분 무렵에는 일부 인원들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기상이 정상화될 때까지 훈련일정을 잠시 중단하고 일단 휴식을 취해도 될지 대대본부에 문의했으나 당시 대대장은 "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하라."고 지시하였다. 아직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현장을 통과하자고 오판한 것이다.

오후 5시 선두 인원이 민주지산 정상에 도달하였으나 날씨가 워낙 춥고 기상이 나빠 통신장애가 생겼다. 이 무렵 체감온도가 영하 30도에 달했다고 한다. 5시 30분부터는 부대에 서 탈진자가 다수 나왔고 오후 6시 20분에는 9부능선 후미부대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후미 인원도 얼마 뒤에 정상에 도달했다.

오후 6시 반 산을 내려가면서 첫 구호소를 설치하여 저체온증으로 의식을 잃은 인원을 구호하였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인원들은 그대로 하산하였으나 오후 7시 10분 5부능선에서 결국 선두부대에서도 탈진환자가 다수 발생하여 2차 구호소를 설치했다. 다른 병력들은 계속 하산하였으나 또다시 3차 구호소를 설치해야 했다. 병력 일부가 겨우 겨우 하산하여 민가에 도착한 때는 오후 8시 10분이었다. 이들은 민가의 전화기를 빌려 부대에 구조를 요청하고 물한분교[4]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였다.

영동소방서 119 구조대는 부대로부터 헬리콥터를 띄워 달라는 요청을 접수하였으나 기상이 워낙 나빠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었기 때문에 구조까지 시간이 오래 늦어지는 바람에 사망자가 더 늘어났다. 구조대는 오후 9시 10분에야 도착하여 환자들을 후송하였으나 어두운 밤중인 데다 눈 쌓인 산속이고 대원들이 흩어져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이 사고로 후송 도중 사망한 인원까지 포함하여 총 6명이 숨을 거두었다.[5] 이 과정에서 김광석 대위는 먼저 저체온증에 걸려 대열에서 낙오된 한오환 하사를 구하려다 같이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

사망자들은 1계급씩 추서되었다.[6] 대대장 이춘일 중령(3사 15기)은 사고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되었고 여단장 천연우 준장(육사 29기)[7], 여단 정보참모 김학영 소령(단기 15기)은 징계조치되었으며 고어텍스가 전군에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11월에 영동군수와 부대가 합동으로 위령비를 민주지산 입구에 세웠으나 도로 근처라 장소도 좁고 위험하여 2017년 12월 4일에 이전하였다. 위령비와 별도로 국제평화지원단은 2017년 6월 1일 민주지산의 첫 구호소를 세웠던 터에 작은 추모비를 세웠다.

3. 괴소문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서 여러 황당한 괴소문들이 돌아다녔다.

특전사 부대 초소에 쇠사슬로 묶인 관 6개를 끌고 다니는 귀신(정확히는 노인 귀신)이 목격되었고 사망자들이 전부 그때 귀신이 들어갔던 선발대 내무반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것 외에도 이 괴담에 기반해서 창작한 여러 가지 괴담들도 인터넷상에서 떠돌았다. 이것이 확실한 헛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정작 이들이 사고를 당한 민주지산 인근에서는 이런 괴담이 전혀 나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민주지산 안보공원이 형성되면서 사라졌으나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물한계곡) 가래점에는 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존재했다.[8] 고인들이 사망하고 위령비까지 있었던 곳에서는 괴담이 없었는데 정작 부대 내에서 귀신이 보였다느니 하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때문에 그 사고가 난 대대가 아예 해체되어서 원래 여단급 부대였던 제5공수특전여단이 더 작은 급부대인 특수임무단으로 개편되었다는 아무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황당한 소문도 언젠가부터 인터넷상에 떠돌았지만 사고는 1998년 4월에 제23특전대대에서 일어났는데 특수임무단으로 개편된 시기는 2년 뒤인 2000년 6월이고 이때 신설 특수임무단의 소수정예화 방침 때문에 규모를 축소하느라 해체된 곳은 제25특전대대다.[9] 즉 개편 시기든 해체된 대대든 민주지산 사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10]

5여단은 다른 여단들과는 달리 북한 내 특정한 침투담당지역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예비대라[11] 평상시에 다른 여단들이 늘 하는 북한 특정지역에 대한 연구와 예행연습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다른 여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상시 훈련 스케줄 부담이 적었던 5여단을 평시에 별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고 결국 국가재난과 테러에 대비하는 부대로 개편하기로 결정했을 뿐이다.[12]

즉, 부대개편과 이 사고는 전혀 무관하므로 불행한 사건을 흥미거리로 삼아 누군가 창작해서 인터넷에 퍼트린 사실무근의 헛소문들에 낚이지 말자.

4. 기타

  • 국방홍보원에서 이 사고를 바탕으로 <아! 민주지산>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1999년에 제작하였으며 현재 국방홍보원 홈페이지의 영상자료실에서 제목검색을 통해 영상을 찾아 시청할 수 있다.
  • 전쟁소설 데프콘 한미전쟁편 4권에서도 이 사건을 언급한다.
  • MBC 단편드라마 아르곤에서도 해당 사고가 언급된다.
  • 1956년 2월 28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탈영병을 잡으러 출동한 육군 이규홍 중위와 병사 6명이 탈영병을 체포하여 돌아오다가 8명 모두 폭설 속에서 핫코다산 참사와 같이 선 자세로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

5. 둘러보기

<rowcolor=#fff> 문서가 있는 한국사상 군 사건사고 목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고조선~대한제국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tablewidth=100%><rowcolor=#000,#fff> 위만의 정변(B.C. 194)C 강조의 정변(1009)C 김훈·최질의 난(1014)C 무신정변(1170)C 위화도 회군(1388)C 이괄의 난(1624)C 임오군란(1882)C 대한제국군 해산(1907.8.)I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일제 강점기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제암리 학살사건(1919)I P 일본군 위안부(1940년대)I P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광복~195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제주 4.3 사건(1948)A P 여수·순천 10.19 사건A C P 1946-1950년 한국군의 숙군Na 해상의용군 사건(1948)Na 국민방위군 사건(1950~1951)Na 불륜처 타살사건(1954)P 하늘집 유아 학대 사건(1955)A P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1959)A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196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5.16 군사정변(1961)C 최영오 일병 살인 사건(1962)A Na 무장군인 법원 난입 사건(1964)A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1966)F N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1967)F 1.21 사태(1968)Nk P 국방부 초병 강간치상 사건(1968)F P 육군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1968)A P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197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1974)A P 서울 UFO 격추미수 사건(1976)A ? 12.12 군사반란(1979)C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198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5.17 내란(1980)C 5.18 민주화운동/학살A Na P 제주 C-123 추락사고(1982)A F 청계산 C-123 추락사고(1982)A F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1984)A 여우고개 사건(1985)A 정연관 상병 구타 사망사건(1987)A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199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0,#fff>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1990)A Na
밀양 C-123 추락사고(1991)F 군 부재자투표 부정 폭로 사건(1992)A Na 17사단 종교시설 무단폐쇄 사건(1992)A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1993)A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1993)A P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1994)A 화성 해안초소 K2 소총 사취 사건(1997)A ? 김훈 중위 사건(1998)A ? 제5공수특전여단 동사사고(1998)A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200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677718><colcolor=#fff> 2000년 <colcolor=#373a3c,#ddd>
2001년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A ? 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A P
2002년 함광열 이병 의문사 사건A ?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I P
2003년 육군 21항공단 헬기추락 사건A
2004년
2005년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A 해군 동검도 제초제 사건N 노충국 사건A
2006년 가평 이등병 무장탈영 사건A
2007년 일산 육군 중사 애인 토막 살인 사건A P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N P
2008년
2009년 대청해전N Nk
}}} }}}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201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677718><colcolor=#fff> 2010년 <colcolor=#373a3c,#ddd> 천안함 피격 사건N Nk 연평도 포격전N Nk P
2011년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A P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N
2012년 특전사 중사의 이명박 상관모욕 사건A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A
2013년 임진강 월북 시도자 사살 사건A 국군춘천병원 도끼 살인사건A
2014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A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A 제1전투비행단 가혹행위 은폐 사건F
2015년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A 공릉동 살인사건A P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A Nk 서부전선 포격 사건A Nk 군 부상자 치료비 부담 논란A 영월 혹한기 훈련 이등병 무장탈영 사건A
2016년 분당 예비군 사망사건? 진해 해군기지 잠수정 폭발사건N 울산 군부대 폭발 사고A 홍정기 일병 사망 사건A
2017년 성폭력 피해 해군 대위 사망사건N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 갑질 사건A 제6보병사단 소속 일등병 유탄 사망사건A 제5포병여단 K-9 자주곡사포 폭발 사고A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A Nk
2018년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D Na 제203특공여단 사격장 총기 사망사건A 문재인 정부 GP 파괴 부실검증 의혹Na Nk 육군 통신장교 석면 사망사고A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N 양구 GP 일병 총기 사망 사건A ?
2019년 2019년 러시아 군용기 독도 영공 무단 침범 사건I
}}}}}}}}} ||
<row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2020년대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677718><colcolor=#fff> 2020년 <colcolor=#373a3c,#ddd> 태안 보트 밀입국 사건A 2020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소송P N 부사관 성전환 사건A
2021년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F 성추행 피해 해군 부사관 사망 사건N 육군 여성 장교 사조직 구성 논란A 조재윤 하사 사망사건A 공군 여군 성희롱 노트 사건(~2022)F
2022년 현역 해병대원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전 미수 사건N 현역 대위 군사기밀 유출 사건A Nk 강릉시 현무-IIC 미사일 낙탄 사고A F 제21보병사단 안보전시관 폭발물 폭발사고A 해군 병장 이적표현물 제작 및 군사기밀 유출 사건N 강원 전방부대 이병 총상 사건A
2023년 태백 혹한기 훈련 이병 사망사건A 대구 공군 정일병 자살 사건F 제9공수특전여단 상병 사망사건A 해병대 하사 부대원 개인정보 유출 사건N 김해 예비군 의식불명 뒤 사망사고A P 양주 육군부대 일병 총기 사망사고A ? 부승찬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 사건Na 부산 해군 중사 택시기사 폭행사건N P 고성 제진검문소 공포탄 발사 사건A P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N 제9보병사단 지휘부 복지회관 특혜 의혹A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A Na 전남 무안 육군부대 일병 사망 사건A 포천 주한 미8군 영평사격장 민간차량 피탄 사건I 파주 육군 상병 흉기난동 사건A 예비역 간부 휴가비 환불 통보 사건A 아내 성인방송 강요 사망사건A
2024년 2024년 연평도 해역 포격 사건Nk 동해 훈련 해군 부사관 사망 사건N }}} }}} }}}
A: 육군 관련 사건 | C: 쿠데타 | D: 국방부 및 직할부대 관련 사건 | F: 공군 관련 사건 | I: 외국군 관련 및 연루
N: 해군 및 해병대 관련 사건 | Na: 국가조직 연루 및 개입 | Nk: 북한군 관련 및 연루 | P: 민간인 피해 및 연루 | ?: 사건 경위 불명
관련 문서: 대한민국 국군/사건 사고 }}} }}} }}}




[1] 국제평화지원단의 전신. [2] 옷과 몸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기온이 급하강하면 바로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빨리 따뜻한 곳으로 옮겨서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불로 몸을 말려 체온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 [3] 학군 30기는 1992년에 임관한 장교들로 1998년 시점에서 전역을 2개월 앞둔 말년대위였다. 김광석 대위 역시 당시 말년대위들이 참모 대신 하는 보직인 3차 중대장이었고 이 천리행군만 종료하면 제대할 예정이었다. [4] 충북 영동 상촌초등학교의 분교. 상촌면 물한리에 있다. 지금은 폐교되었다. [5] 당시 기사에는 사망한 6명 외에도 실종자 1명이 더 있다고 보도했으나( #, #) 다음날 탈영병으로 밝혀졌다.( #, #) [6] 본 항목에서는 사고 당시의 계급으로 기록하였다. [7] 사고에도 불구하고 2001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합참 작전부장직을 마지막으로 예편하였다. 참고로 12.12 군사반란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전속부관이었다. [8] 네이버지도 거리뷰로 2013년, 2015년 판에서는 확인해 볼 수 있다. 호도나무집, 지산가든 근처에 있는 위령탑이 이것이다. [9] 참고로 해체된 이 제25특전대대는 국제평화지원단으로 개편한 뒤 증가하는 파병수요 때문에 2013년에 재창설되었다. [10] 참고로 2000년에 특수임무단으로 개편하면서 더욱 소수정예 부대로 운용한다는 목표에 따라 1개 대대를 줄여 3개 대대로 편제와 인원이 축소되었다. 그래서 이때부턴 여단이 아니라 '단'이 되었기 때문에 부대장도 준장인 여단장이 아니라 대령이 부대장인 '단장'이 되었다. 이후 다시 바뀐 국제평화유지단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단보다 작은 '단'급 부대라서 여전히 대령이 부대장인 '단장'이다. 이후 25대대가 부활해서 부대 인원 수로는 다른 특전여단들과 다시 비슷해졌지만 장군 숫자를 계속 줄여나간다는 군 정책 방향 때문에 장군 수를 줄이는 건 가능해도 일단 줄어든 별을 다시 늘리는 길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국제평화유지단은 여전히 대령이 부대장인 단급 부대로 남아 있다. [11] 이미 침투한 다른 특전여단 팀들의 작전 추이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지역에 후속으로 추가 침투되기 때문에 북한의 어느 지역에 침투하게 될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12] 그래서 부대개편 초기에는 707특임대가 이 특수임무단 예하로 소속되기도 하였다. 이후 특수임무단으로서의 실질적인 임무변화가 흐지부지되자 707특임대도 다시 사령부 직할로 원위치되었다. 특수임무단은 2010년에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다시 개편되었는데 이것도 무슨 사고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그저 임무가 변경되어 그에 맞게 개편되었을 뿐이다. 국제평화지원단은 평상시엔 해외파병의 중추 부대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고 전쟁시엔 선침투한 다른 공수특전여단들에 대한 예비적인 추가 대북침투 게릴라부대 역할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