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 1988년 8월 2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평론가. 본명은 정군재.2. 일생
1928년 평안북도 평양부에서 태어나 1948년 월남한 후 여러 대학을 전전하다 1950년 6.25 전쟁 때 학병으로 참전하여 상이군인으로 제대했고, 전쟁 후 1954년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 명동의 돌체다방에서 DJ로 일하면서 손님들에게 이름을 날려 1959년 결혼 후 이듬해 조선일보에 입사했다.1987년 9월 30일 정년퇴임 때까지 27년 재직기간 동안 줄곧 영화전문 기자로 일하며 문화부장과 체육부장, 특집부장, 소년조선일보 주간, 편집위원 등의 간부 자리들을 거쳤으며, 1985년 10월 2일부터 1988년 5월 22일까지 <정영일 사랑방>을 고정연재했다.
방송 활동에도 열성을 보여 KBS 1TV 명화극장 등에서의 영화 소개로 유명했으며, KBS 2TV <사랑방중계> 고정패널로도 출연하여 원종배 MC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MBC FM <음악과 인생>에서도 출연해 음악 얘기를 하기도 했다.
주요 어록으로는 좋은 영화를 추천할 때 하는 이번 영화를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가 있다. 1980년대 중반 내내 대우전자가 '대우비디오테이프' 레이블로 낸 테이프들 뒷표지에서 그의 사진이 작게 나오고 영화감상도 나왔는데 영화 홍보성이 컸기에 지금 보면 닭살돋는 글귀가 많았다. 1987년에 낸 《슬럼버 파티에서 생긴 일》 비디오판에선 마지막에 "아 무서워!"라고 글을 쓰기도 했다. 또한 동생인 정완재는 그 시절 국내에 팝송 보급의 기수였던 월간팝송의 발행인/편집장이었으니, 형제가 비슷한 일을 했던 셈이다.
1988년 5월 20일에 과로로 쓰러져 서울 이촌동 금강병원에서 몸져 누웠고, 대세 및 병자성사를 거쳐 8월 25일 밤 10시 30분에 지병인 고혈압으로 향년 60세로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외동딸이 있으며, 장례 미사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거행되어 문화평론가인 김종원 선생과 변인식 선생, 안병섭 교수, 훗날 영화진흥위원회의 회장이 된 강한섭 교수, 고인이 평소에 아꼈던 영화감독인 정인엽 감독과 배창호 감독, 고교얄개의 석래명 감독, 여성 영화기획자인 채윤희, 스포츠조선의 문화부 기자인 이창세 기자, 영화자료 연구가로 유명한 정종화 선생이 참석하는 등 그를 애도했다.
사후인 1994년에 고인이 평소에 쓰던 글인 영화평과 음악에 관한 평론을 묶어서 간행한 <마지막 로맨티스트:정영일~그가 쓴 영화, 음악, 세상 이야기>가 나왔으며 절친한 후배였던 정중헌 스포츠조선 부사장이 엮었다. 여담으로 정중헌 부사장이 스포츠조선의 문화연예부장 재직시절에 제정한 정영일 영화 평론상이 청룡영화상에서 시상된 바가 있었지만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총 4차례의 수상자만을 내고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3. 참고 자료
- 한국언론 인물사전: 1883~2009 - 한국언론재단. 2009. p1299
- 1988년 8월 26일 조선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