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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외교문서상 하자로 연장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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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3.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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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그리스 왕국 카자르 왕조가 기원전 491년부터 2392년[1]간 지속해 온 페르시아 전쟁을 끝내기로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만평

실질적으로 끝난 지 오래되었으나 종전협정에서 서류상 미비로 인해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들을 일컫는다. 흔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로 평화협정 당시에 평화협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국가가 멸망하여 그 국가를 대변할 정부가 사라졌거나 평화협정에서 특정 전쟁 당사국이 협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던가, 단순히 서류상 미비로 당사국을 누락하는 실수가 벌어지거나 주요 당사국과 협정을 맺어 놓고 듣보잡들은 잊어버리는 바람에 종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다. 또한 고대에는 선전포고 종전협정을 공식 문서로 남기지 않고 군대를 진군시키거나 후퇴하는 것만으로 전쟁을 개시/종료하는 경우도 흔했다.

물론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이라기보다는 외교적 촌극에 가까우며, 이 사실을 역사학자들이 발견해서 양국 친선의 의미로 이런 의미 없는 전쟁을 종결하는 퍼포먼스로 쓰인다. 특히 왕정과 봉건제의 전통이 남아 있던 국가들특히 기행의 영국에 이런 황당한 절차가 남아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전쟁이 발견되어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떡밥들 중에는 그냥 사실과 다른 도시전설인 경우도 많다. 심하게 말하면 민간에 구전되는 헛소리란 뜻이다. 그리고 뒤늦은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사실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하며 외교적 측면에서 효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약 체결을 통한 종전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고대의 전쟁을 후계 국가/지역끼리 조약을 체결한다든지, 외교권이 없는 지역이 조약 체결에 낀다든지 등등... 다만 이런 전쟁을 굳이 밝혀내서 종전 선언 쇼까지 하는 이유는 당사자들끼리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거나 해당 지역에 전쟁 당사국의 외교관이나 지자체장이 방문한 김에 덤으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고자 하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래의 포에니 전쟁 종전 선언.

이들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확전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만약 일으킨다고 해도 전쟁범죄로 간주받을 가능성이 높다.

2. 사례

  • 335년 전쟁( 영국-네덜란드 전쟁, 실제 전쟁은 1651년부터 1654년까지 3년 만에 종전)
    잉글랜드 서남부의 실리 제도(Isles of Scilly)[2] 네덜란드 간에 335년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본래 이 섬은 청교도 혁명 당시 밀린 왕당파의 해군이 피신한 곳이었다. 이 당시 네덜란드는 의회파의 편을 들어 이 섬을 공격했다가 철수하고 의회파가 잉글랜드 공화국을 설립한 뒤 1차 영란전쟁이 벌어졌을때 의회파는 이 섬을 장악하고 왕당파의 항복을 받아냈다. 1654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종전에 합의하지만 네덜란드가 선전포고를 했던 왕당파가 장악했던 실리 섬은 어느새 잊히고 말았다. 그 후 1985년 역사학자이자 실리 제도의 의장인 로이 던컨이 역사 기록을 뒤져내어 런던의 네덜란드 대사관에 아직도 실리 제도와 네덜란드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통보했고 섬에 네덜란드 대사를 초빙하여 335년간의 전쟁을 끝내는 조약을 형식상 체결한다. 어차피 실리 제도는 독자적인 주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이 조약 자체는 법적으로 무효이고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 베릭-러시아 전쟁( 크림 전쟁, 실제 전쟁은 1853년 ~ 1856년까지 3년 만에 종전)
    베릭어폰트위드(Berwick-upon-Tweed)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117년간 전쟁이 지속된 촌극.

    마을 하나 정도야 누락되어도 상관없지 않나 싶겠지만 이 마을은 브리튼 섬 역사상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몇 번이나 그 주인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두 나라가 연합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을 때 베릭시는 상징적으로 두 나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시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국 국왕은 관습적으로 외교 문서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더불어 베릭의 군주임을 명시했는데 실제로 빅토리아 여왕이 크림 전쟁 선전 포고에 서명할 때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 베릭과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하였다. 정작 종전 협정에서는 베릭을 빼먹고 "빅토리아, 대 브리튼, 아일랜드와 모든 브리튼 세력권의 국왕"이라고 적어넣어 베릭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소련이 등장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언론사 등지에서 이 사실이 알려졌고 당시 베릭의 녹스 시장이 소련의 관리를 초대하여 1966년 베릭어폰트위드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종전 협정을 주도했고, 영국 촌동네와 소련 간의 전쟁은 그렇게 끝나 이를 기념하는 크림 전쟁 리인액트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장이며 실제와는 맞지 않는 얘기이다. 1970년대에 BBC에서 다시 확인한 결과 사실 베릭시를 외교 공문에 포함시키는 관습은 1746년부터 아무도 쓰지 않는 관습이 되었고 이 해에 ' 웨일스 및 베릭 법'이 통과되어 법 해석상 베릭시는 잉글랜드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3] 게다가 사실 선전 포고 때조차 베릭시는 서명에 빠져 있었다. 소련 사람을 초대한 건 맞지만, 사실 관리가 아니라 프라우다 기자를 초청했다. 그래도 녹스 시장은 기자에게 "러시아 사람들에게 더 이상 베릭과의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문에 써 달라"는 말을 남겼다. 전형적인 영국식 블랙 코미디.
  • 제3차 포에니 전쟁 (실제 전쟁은 기원전 149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3년간)
    카르타고 로마에게 패배하였지만, 카르타고가 멸망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종전선언을 하지 않았다.

    1985년 1월에 이탈리아 로마 시장 우고 베테레와 튀니지 튀니스(현재의 카르타고 지역) 시장 체드리 쿠리빈이 만나 공식적으로 전쟁 종결에 서명함으로써 2131년이 경과한 후에서야 전쟁이 끝났다.

    물론 위 문단에서 서술하듯이 이것은 튀니지와 이탈리아의 우호 증진을 위한 퍼포먼스이다. 기원전 2세기 당시에 종전 선언 같은 개념은 없었고, 포에니 전쟁 당사국인 카르타고와 로마 모두 멸망한 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난 상태였으며[4] 튀니지와 이탈리아가 카르타고와 로마를 직접적으로 승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3. 기타


[1] 0년은 기원전에도 기원후에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빼고 계산한다. [2] 전통적으로 콘월의 일부였고, 현재도 넓은 의미의 콘월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다만 현재 지방 행정상 콘월 본토와 별개의 자치단체를 이루고 있어서 좁은 의미의 콘월에서는 제외된다. 실리 영국 해군 참사가 터진 곳이기도 하다. [3] 사실 웨일스도 과거에 작성된 법적 문서에서 '잉글랜드'라고 하면 웨일스를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웨일스도 포함한 걸로 전제한다. 관련 문서. [4] 각각 기원전 146년과 1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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