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7 19:49:50

장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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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의
2.1. 테마에 따른 정의2.2. 마케팅에 따른 정의2.3. 장르 판타지
3. 국가별 장르문학
3.1. 한국3.2. 일본
4. 논쟁과 오해
4.1.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5. 세부 분류

1. 개요

Genre Fiction, Genre Literature
장르문학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된 문학 작품을 가리킨다.

장르문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개별 작품에 등장하는 공통적인 요소들을 묶는 문학적 분류와, 읽는 시간, 구매하는 장소 등 문학 외적 조건에 따른 마케팅적 분류다. 한국에서는 '장르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경우 전자를 가리킨다.

2. 정의

2.1. 테마에 따른 정의

특정 장르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문학들을 가리킨다. 대본 집필 분야의 유명 교사인 리처드 매키의 말에 따르면, 장르적 관습(genre conventions)이란 "각 장르와 그 하위 장르를 정의하는 특정한 배경, 역할, 사건 따위"를 말한다( 1997년). 이러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 장르 소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러한 관습은 항상 유동적이고 암묵적이다. 사실 장르적 관습이 무엇인가 확정 짓는 정의법 따위는 없으며, 장르 그 자체를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경우조차 없다. 어떤 작품이 어떤 장르라고 말하는 경우 이는 매우 임의적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시장에 책을 내놓으려는 출판사나 작가들은 그러한 장르적 관습을 뚜렷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장르문학이란 단어는 사실 꽤 애매하다. 장르의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해외의 장르계에서는 "장르란 곧 퍼지 집합"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결론 내린다. 퍼지 집합, 즉 경계선이 흐릿하고, 서로 겹치기도 하며, 장르라고 부르면 다 장르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한 때 한국에서 창조된 말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장르"라는 개념은 해외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위키백과 장르 소설 항목 참조(2005년에 생성된 문서) 90년대 이후 등장한 단어로, 과거의 작품이나 작가에게 장르란 꼬리표를 붙였다가는 많은 오해를 빚을 수 있다.

사실, 장르가 없는 예술은 없기 때문에 '장르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있고. 이렇다 보니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장르는 제대로 정의하기 힘든 개념이라서 별 다른 수확은 없는 듯하다.

2.2. 마케팅에 따른 정의

출판사와 시장의 조건에 맞춘 소설은 소재에 관계 없이 어떤 장르로 분류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2.3. 장르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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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적 세계에 관한 장르적 관습을 주제로 하는 장르문학 갈래. J.R.R. 톨킨에 의해 대중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3. 국가별 장르문학

3.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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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일본

일본의 장르 문학은 많은 수가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과 유사성을 보인다. 특히 이름 있는 일본 판타지 소설( 구인사가, 로도스도 전기 등)과 일본 SF 소설( 은하영웅전설, 전투요정 유키카제 등)은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며,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에 끼친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일본이라고 해서 양판소 수준의 문학이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라이트 노벨 등장 이전의 일본의 장르 문학을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과 동일시하는 것은 일본의 장르 문학이 가진 역사와 특징을 잘 모르는 경우 벌어지게 되는 흔한 실수이기도 하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일본의 장르 소설은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과 비슷한 문고본 형태로 유통되었으며, 소설에 삽화를 싣는 방식도 라이트 노벨 등장 이전부터 이미 시도되고 있었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판타지 붐보다 늦게 나왔다. 때문에 오늘날의 일본 라이트 노벨 역시 라이트 노벨 등장 이전의 일본의 장르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문고본 스타일 소설 중 하나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일본도 오타쿠 중심의 라이트 노벨은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문고본 시장이 함께 융화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라이트 노벨 등장 이후로는 판타지 SF 등 많은 분야에서 일본의 장르 소설이 오타쿠를 타깃으로 한 라이트 노벨로 변천하는 흐름을 보이게 되었고,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일본의 장르 문학에서는 라이트 노벨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장르 문학 전체가 라이트 노벨과 동일해진 것은 물론 당연히 아니고, 추리소설이나 역사소설 등의 분야에서는 라이트 노벨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순수문학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독자적인 장르 문학으로서 오타쿠를 타겟으로 한 라이트 노벨이 아닌 일반인을 타깃으로 한 전통적인 형태의 장르 소설이 현존하는 사례도 많다. 이러한 전통적인 형태의 장르 소설 중에는 장르 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작품들도 있다. 때문에 오늘날의 일본의 장르 문학에서는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는 오타쿠 중심의 장르 소설과,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지 않는 일반인 중심의 전통적인 장르 소설이 각각 별개로 따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 둘은 모두 문고본 형태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문고본 시장이라는 같은 시장 내에서 융화되어 있기는 하다. 서로 특성을 달리 하는 두 종류의 장르 소설이 같은 시장 내에서 융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라이트 노벨의 내부적인 세분화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중견 작가들의 경우, 오타쿠를 타깃으로 한 라이트 노벨과 오타쿠가 아닌 일반인을 타겟으로 한 전통적인 형태의 장르 소설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작품들을 연재하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 중에는 (일반인 중심의 전통적인 장르 소설에서도 그러했듯이) 장르 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작품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작품들은 분류상으로는 여전히 라이트 노벨이지만, 일반적인 라이트 노벨의 레이블과는 다른 레이블을 통해서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1] 라이트 노벨로 분류되면서도 라이트 노벨을 위한 레이블이 아닌 일반인 중심의 전통적인 장르 소설을 위한 레이블로 출간되는 사례도 있을 정도.[2]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작품의 내용의 차이도 있고, 또 출간 레이블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출판사만이 아니라 독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라이트 노벨과는 구분해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물 러브 코미디 신전기 능력자 배틀물이 주축이었던 2000년대의 일반적인 라이트 노벨이나 이세계물이 주축인 2010년대~ 2020년대의 일반적인 라이트 노벨과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순수문학에 근접한 내용을 가지는 작품들을 일본에서는 이른바 라이트 문예라 호칭하고 있다.[3]

4. 논쟁과 오해

4.1. 장르문학은 순수문학보다 수준이 떨어지는가?

평범한 탐정 소설의 수준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과 아마 비슷하겠지만 독자들은 평범한 순문학 소설을 읽을 일이 없다. 그런 작품은 애초에 출간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혹은 그보다 조금 나은-탐정 소설은 출간이 된다. 출간될 뿐만 아니라 적은 양이나마 대여용 도서관에 판매가 되어 독자들 손으로 들어간다. 개중에 너그러운 사람들은 무언가 신선해 보이고 표지에 시체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달러라는 정가를 다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심플 아트 오브 머더, 1950년, 레이먼드 챈들러[4]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질적 차이에 대한 논란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논란이 생기는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간의 역사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읽는 상당수의 순수문학은 오랜 세월을 통해 수많은 평범한 순수문학 소설들이 잊혀지는 속에서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읽혀지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들이다.[5] 반면 장르문학은 그 수가 적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가까운 과거(대개 20세기 이후)에 출판되었으며 따라서 순수문학에 비해 그 가치를 검증할 과정과 시간이 부족하다. 비틀즈의 음악이 팝 음악으로서는 2020년대 기준 6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계속 사랑받았지만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그리고 오를지는 알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는가, 오문과 악문이 없는가, 맞춤법을 준수하는가 등의 기준을 적용시켜 문장력의 우위성을 근거로 장르문학보다 순수문학의 질이 높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문학의 질적 우위를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영미권 장르문학의 사례를 근거로 한 반론도 제기된다. 중세 영어를 전문적인 수준으로 연구해가며 써낸 반지의 제왕, 얼음과 불의 노래 등을 보면 장르문학이 꼭 순수문학보다 문장의 질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일명 ' 크툴루 신화'라고 불리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괴기소설들은 현대 영어에 통달한 수준의 문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6]

문장력의 우열이 아닌 작품의 내용 그 자체의 우열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문장의 질이 훌륭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묘사하는 내용까지 반드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고, 따라서 작가의 문장력이 작품의 종합적인 질과는 직결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르문학의 경우 문장의 질을 놓고 보면 어지간한 순수문학에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을 이룩했으나 정작 그 뛰어난 문장력을 통해 그려내는 내용은 불쏘시개 수준인 작품들이 매우 많다. 또한 순수문학 역시 수려하고 기품 있는 뛰어난 문장을 구사하지만 그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스노비즘이나 반지성주의 등의 요소가 발견되는 등 역시 불쏘시개에 가까운 그런 작품들도 의외로 적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 때문에 고전으로 분류되는 명작들조차도 후대의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제기하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에 국한하면, 순수문학 작가 대다수는 해당 업계의 전문가들이 마련한 나름의 심사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인기가 없어서 책 한 권 못 팔아먹은 작가라도 최소한 기본기는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르문학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당장 국내의 몇몇 라이트 노벨은 악문, 오문에다 무수한 오타들이 난무하며, 웹소설에 이르러서는 가독성 증진을 명분으로 하여 아예 대놓고 한국어의 문법/어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을 뿐더러 카카오페이지로 대표되는 여러 웹소설 플랫폼들 역시 모바일 환경에만 최적화된 뷰어를 통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순수문학은 문장 구사력과 기본기를 예술성 추구의 중요한 기준으로 보지만, 장르문학은 상업성을 중시하다 보니 이런 면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한다. 애초에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는가?""그 글이 어떤 식으로든 상업성이 있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완성도적 측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장르문학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을 전공하여 정식으로 순수문학을 배웠지만 장르문학 작가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작가 지망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순수문학만 읽고 써 왔기 때문에 잘 팔리는 장르문학을 쓰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이유. 문장은 뛰어나지만 장르문학으로서 좋은 작품은 쓰지 못하는 지망생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장르문학의 열악한 편집, 데스크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좋은 작품을 걸러내고 교정을 하며 작가를 이끌어야 할 출판사가 제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뜻이다. 서구권의 주류 출판사는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막론하고 막강한 데스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고위 편집자들은 상상도 못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작품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해당 업무에 대한 내공도 엄청난 수준이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 엄격한 기준선을 넘어야 출간된다. 예시로 80년대 미국 문학의 중요한 작가인 카버의 작품 일부는 편집자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는 증거가 있다. 또 은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의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편집자의 위상이 높다는 증거는 된다. 물론 이런 시스템의 폐해로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초히트 작품이 몇 번이나 빠꾸 먹었다는 일화들도 많다.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의 설득력은 떨어져도 최소한 문장력이나 외형은 멀쩡한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주류 출판사가 아니면 대한민국이나 서구권이나 열악할 수밖에 없고, 현실은 시궁창인 그런 불쏘시개도 많다. 다만 서구권은 튼실한 시장이 있으며 이것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거름망은 된다. 한국 장르문학의 질적 문제가 거듭 제기되는 데에는 시장 규모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 라이트 노벨도 문장 측면에서는 한국의 유사한 장르(웹소설 등)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어지간하면 출판되거나 웹소설로 데뷔하기 쉽고 특히 웹소설 시대가 열린 이후부터는 종이책을 통한 출판을 고려할 필요성이 줄어들어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웹소설 플랫폼의 뷰어에만 맞춰서 쓰면 되기 때문에 한국어의 문법/어법을 고려한 원문을 작성하라는 요구 역시 받지 않게 된 한국과는 달리, 여전히 종이책을 통한 출판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일본어의 문법/어법을 고려한 원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요구에 맞춰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데뷔가 어려운 편이고 그마저도 나름 걸러져서 수입되는 데다가 제2의 창작이라고 불리는 번역을 거치니 좀 나아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작품이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수준의 문장을 당당하게 쓰고 있다. 수입 초기에는 나름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을 들여와서 이런 문제는 적었으나 수입하는 작품이 늘어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문장이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구사하는 수준 높은 문장력이 작품의 종합적인 질과는 직결되지 않는 케이스도 적지 않기에 그런 의미에서도 한국과 상황이 그다지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상황까지 몰린 이유는 다르지만, 과거 출판되었던 외국 명작도 번역 문제가 컸다. 오래된 판본 중에는 중역 오역, 문학에 재능이 없는 번역자의 단순 번역 등이 넘쳐나서 원작의 유려한 문체나 표현력의 티끌조차 느낄 수 없는 작품도 많다. 많은 출판사들이 시대가 지날수록 새로운 번역 판본이나 완역본 등을 내는 이유이며, 요즘에 구판본을 찾아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딴 똥글을 명작이라면서 빨았다니, 내가 제정신이었나?"라고 느끼게 된다. 오타 문제를 제외하면 심지어 양판소 중에서 그나마 문장력이 좀 있다고 할만한 몇몇 작품보다 오문이 많은 등 읽기에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있다. 절대 양판소를 넘어선 그냥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말하는게 아니다. 그 양판소 중에서 말이다. 그때 그 시절의 번역 상태가 얼마나 시궁창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 대비가 된다는 관점은 한국 내에서의 장르문학의 발달과정을 생각하면 어폐가 크다. 대부분의 "장르" 문학의 시초는 해외의 기법을 오늘날 순문학 소설가라고 분류될 만한 사람들이 번안 등의 형태로 들여왔으며, 역사소설이나 무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한국 SF의 경우 지속적인 연재할 잡지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문학과 지성사라는 순문학계를 통해 복거일 듀나라는 주요 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장르문학에 대한 비평이 이뤄지는 공간도 의외로 주류문학계에서 (비록 큰 비중은 아닐지라도) 주도되고 있다.

수준이 높지 않고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는 인식도 뿌리가 깊다. 반면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움베르토 에코, J. R. R. 톨킨과 같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수준 높은 대중 작품을 쓴 작가들도 있으며, 로저 젤라즈니 스타니스와프 렘처럼 문제 의식의 다변화와 탈장르화를 시도한 작가들도 있다. 여기서도 "탈장르화"를 추구한 소설들까지 장르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라이트 노벨 문서의 설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라이트 노벨은 점차 무장르(제로장르)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소설을 "라이트 노벨" 장르로, 또 넓게는 "장르문학"으로 분류가 가능한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어필하는 유형은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이며, 소설이라는 포맷 자체가 영상매체나 스마트 기기 등 다른 매체에 밀려 대중문화의 첨단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된 21세기에 들어서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장르문학과 같은 과거의 대립 구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5. 세부 분류



[1]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작품들 중에서는 카쿠리요의 여관밥 등이 이런 쪽으로 분류된다. [2] 대표적으로 SF 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중심으로 다루는 오랜 역사를 지닌 레이블인 하야카와 문고를 통해 출간되고 있는 성계 시리즈 등이 이러한 사례로 분류된다. 고전부 시리즈의 경우 본래 라이트 노벨을 위한 레이블인 카도카와 스니커 문고를 통해 출간되었다가 이후 레이블이 변경되었다. [3]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작품들 중에서는 울려라! 유포니엄,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등이 이러한 라이트 문예로 분류된다. [4]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 [5] 비슷한 예로, 소위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음악도 '살리에리가 작곡한 곡'과 같이 평범한 수준의 음악이 잊히며 살아남은 것들이다. [6]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인식 자체는 딱히 현대 한국 문학의 인식도 아니다. 현대 영문학계의 중시조이자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찰스 디킨스는 당시 왕립 문학원을 비롯한 엘리트 문학인들에게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감정적이라면서 배척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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