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7:44:59

일제 사격

일제사격에서 넘어옴
1. 개요2. 개인화기3. 전함의 함포
3.1. 범선 시대3.2. 근대의 철갑선 등장 ~ 2차대전3.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 개요



약속된 지시에 따라 지정된 다량의 화기를 정해진 목표에 동시에 사격하는 사격 전술. 보병을 제외하면 포병 등 포를 다루는 병과에서 주로 쓰였다. 아래에서도 등장하는 해군에서도 함포를 일제사격하곤 했으나 최근에는 함포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일제사격도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2. 개인화기

Volley

여러 사수가 지휘에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함께 사격하는 걸 뜻한다. 개인화기에는 전부 적용되어서, 머스킷부터 현대 소총, 심지어는 화기가 아닌 활에 대해서도 일제사격한다면 두루 Volley 개념으로 부를 수 있다.

반대 개념으로는 자유 사격(Fire at Will, 각자 의지에 따라 사격)이 있다. 자유사격은 사수가 각자 표적을 선정하고 각자 알아서 사격하고 장전하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사격을 뜻한다. 물론 일제사격도 자유사격도 아닌 공포에 질려서 막 쏘는 눈 먼 사격도 있기는 있다.

쇠뇌를 쓰던 시절에는 목표에 대고 각자 개별적으로 쏘아 쉴 새 없이 화살비를 뿌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병, 보병 대열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야전에서는 신호에 따라 일제히 쏘는 기법을 쓰기도 하였다. 화기 등장 이전 일제사격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활은 초기 총기보다는 연사가 편했으므로, 자유사격과 일제사격을 자유롭게 섞어 썼다.

전열보병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소총 등 보병의 개인화기가 연사력을 갖추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조준 사격도 힘들어, 정확한 조준 사격은 경보병에게 맡기고 일반 전열보병은 일제사격을 주로 쓰게 되었다. 이는 당시 총의 한계 때문이었는데, 다수가 대열을 짜고 동시에 화망을 구성하면 제대 하나가 커다란 산탄총이 된 것마냥 목표 지점에 뭐라도 맞출 가능성이 높아지며, 백병전이 벌어졌을 때도 와해될 위험성이 줄어든다. 특히 전장에서 기병이 현역이었기 때문에, 기병을 저지하려면 진형을 짜고 동시에 사격해서 돌격당하기 전에 미리 맞히기도, 돌격당한 뒤에 저지하기도 조금 더 나았다.

머스킷 시대 일제사격 기법은 몇 가지가 있다.
  • 1. 카운터 마치(거꾸로 행군)
    앞 줄이 사격하고 뒤로 빠지면 다음 줄이 쏘는 걸 반복한다. 종대 진형에서 열별로 쏘기만 하면 될 정도로 단순해서 창병&총병이 공존하던 화승총 시대에도 기본이었다.
  • 2. 2열 횡대 일제사격
    전원이 2열 횡대로 서서, 두 줄이 전부 사격한다. 영국군의 씬 레드 라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게임이나 재현행사 등과 달리, 앞줄이 무릎꿇는 대신 그냥 어깨 너머로 총구를 빼서 서서 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쿨하게 쏘기만 하면 되어서 훈련만 받쳐주면 사격통제가 용이하고, 동시에 사격하는 총기 수가 제일 많다.
  • 3. 교대 기동사격
    종대를 짜고 사격하는 경우 그냥 뒷 줄은 예비대처럼 대기하고 앞 2열 정도만 쏘거나, 그냥 1열만 쏘고 쏜 열만 빠지며 돌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1열씩 쏘고 빠지면서 종대가 전진/후진하는 경우는 그냥 상기한 카운터 마치에 기동성을 추가한 형태다. 일부 제대는 사격, 일부 제대는 기동한다는 개념 자체는 현대 보병전술에도 축차/교대(Bounding/Peeling)전진 개념으로 남아있다.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3열까지 쏘자니 전쟁터에서 오발사고 안 내고 무사히 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중시한 프로이센에서 앞 열 무릎꿁고 4열 동시 조준하는 그림 등을 매뉴얼에 넣었지만, 실제로 자주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 4. 소대별 사격
    전열보병 사격기법의 끝판왕 같은 개념으로, 소대편제를 활용해 소대별로 일제사격한다. 예컨대 6개 소대가 든 대대가 있다면, 1-2-3-4-5-6소대 순으로 일제사격해 화력 공백을 줄인다. 동시에 사격하는 총구 수는 조금 줄어들지만, 꾸준히 끊임없이 쏘면서도 사격통제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대대, 연대 전체를 지휘하느라 진 뺄 것 없이 소대장의 지휘에만 따라도 되기 때문이다.
  • 5. 1열 무릎쏴
    전장식 머스킷 시대에는 대기병 방진이나 은엄폐 사격시 쓰였으며, 후미장전식에 강선 파인 소총과 전열보병 전술이 공존하던 시대에는 일반적이었다. 1열은 무릎꿇고 2열은 서서, 열 별로 돌아가며 일제사격한다. 전장식 머스킷이 쓰이던 때와 달리, 장전 동작이 간단해서 1열 무릎쏴, 2열 서서쏴로 각자 장전하고 사격해도 오발사고 낼 가능성이 확 줄어들었기에 잘 쓰였다. 또한 당시 전열보병이 맞서싸운 군대가 대부분 구식 편제를 쓰는 식민지 군대였기 때문에, 1열 무릎꿇은 진형을 취하기만 해도 백병전 거는 적은 총검으로, 사격전 거는 적은 연사력,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좋아진 소총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대기병 방진이 기병을 때려잡은 원리와 동일하다. 이 시기 보불전쟁, 미국 남북전쟁 등 서구식 군대끼리 맞붙은 경우에는 최대한 엄폐하거나, 엎드려 쏘거나, 전열보병 개념을 거의 버리고 진형을 푸는 등 최대한 총에 맞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왔다. 이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기가 워낙 강력해서 많이들 죽었으며, 기병 또한 현역이었기 때문에 진형을 완전 내다버리기에도 애매했다.
  • 6. 열별 교대사격(?)
    영화, 게임, 드라마 등 대중매체에서는 자주 묘사되지만, 실제로 쓰였는지는 논란이 있는 사격기법이다. 이 교대한다는 개념이, 실존했던 전진사격이나 카운터마치같이 사격한 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사격한 열이 무릎꿇고 다음 열이 사격한다는 개념이다. 흔히 오다 노부나가의 3단 철포사격설로 유명하다. 적어도 장전 중에는 총기를 세워야 했던 전장식 총기로는 아무리 무릎을 꿇어도 후열이 쏘는 총에 오발당하기 쉬운데다, 어차피 열별로 앉게 시키느니 그냥 전원(서서) 일제사격을 하거나, 자유사격을 했으리라는 게 당대 기록에 비추어보았을 때 유력하다. 당장 땅바닥을 쏘거나 화약 안 붓고 총알부터 넣는 걸 걱정해야 할 비숙련병들에게 사격하고 꿇어앉고 일어나서 사격하는 복잡한 지시를 내리기에는 당시의 지휘통제 기술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무릎꿇어가며 교대사격하는 방식은 후미장전식 소총으로 교대사격하는 모습을 보고 후대 사람들이 창작해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보병의 화기가 연사력을 갖추고 정확하며 빠른 사격이 가능해지면서 보병의 화력투사 수단으로서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야전에서 속사 가능한 개인무기가 있다면 오히려 무작정 일제히 쏘기보다는 한 조가 쏠 때 다른 조가 기동하거나 장전하는 등, 교대로 돌아가며 쏘는 게 화력 낭비도 덜하고 경제적이다. 이렇게 화력을 적절히 분배하고 화력/기동을 적절히 섞는 건 나폴레옹 시대 근대전에서도 무지막지하게 중요했는데, 보병 개개인이 자동화기를 든 현대에는 소부대전술에서도 중요해지고 규칙도 복잡해졌다고 보면 된다.

일제사격이 비효율적인 상황의 예시로, 한 대만 맞으먼 죽는 적 수십마리가 들이닥치는데도 멍청하게 맨 앞줄에 있는 적 한 마리에게 모두가 일제사격을 해서 화력 공백을 만드는 옛날 전략게임 유닛들을 생각하면 된다. 현대전에선 그에 준하는 상황에 단발도 아니고 자동으로 제압사해야 할 수 있는데, 전원이 한 놈 잡자고, 수상한 소리 들렸다고 자동으로 탄창을 비워버리면 적의 후속 병력에 무방비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소대장, 분대장 등의 사격통제가 중요하다.

반면, 아직도 일제사격이 유효한 경우도 있다. 바로 야간전, 대공사격, 기습 등이다.

야간전 시에는 야간투시경을 장착했더라도 저격수, 지정사수가 아닌 이상 표적지시기 불빛에 따라 지향사격을 가해야 하는데, 이럴 땐 시야를 넓게 두고 제압사격하듯이 많이 쏘아서 거의 면 단위의 공격을 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야간엔 면 단위 공격이 그나마 맞히기 쉬워서, 야간전 장비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냥 사격보다 수류탄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가르쳤다. 대낮에는 화력낭비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야간에는 일제사격이라도 해야 뭐라도 맞힐 수 있다.

대공사격 역시 마찬가지인데, 날아다니는 걸 맞히기 워낙 어려워서 대공포의 화망사격처럼 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전투기를 맞힐 수는 없지만, 속도가 매우 느린 안둘기, 또는 상대적으로 연약한 드론 등등에 대공사격해야 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전에서는 소형 드론이 골칫거리라서 의외로 중요해졌다. 옛날식으로 안둘기 잡는 기지방어 상황 등에서는 아예 작전과(기작과) 단위로 적기 방향 리드 잡아서 일제사격하라고 시킨다.그리고 이어지는 입총 또는 멜빵소리 탁탁탁

기습 시에는 목표물을 배분하여 동시사격에 가깝게 빠른 속도로 목표물을 처리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이 경우에는 한 표적에 무작정 쏘는 게 아니라, 표적을 어느 정도 나눠서 화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특히 기습을 가한다면 은폐한 채로 일제사격 표적 및 사격방향을 미리 고를 수 있기에 더욱 위력적이다.

근대에 쓰인 총기 볼리 건은 자체적으로 일제사격마냥 여러 발을 퍼부을 수 있는 다발총을 총칭한다. 조선 화차도 일종의 발리 건이다.

전열보병이 등장하는 전략게임 엠파이어 토탈 워 나폴레옹 토탈워에서는 상기한 일제사격 기법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엠토에서는 기술 발달에 따라 1열만 사격->소대별 사격 및 3열 교대사격->교대전진사격으로 사격법이 변한다. 나토에서는 1열만 사격 및 교대전진사격으로 간소화되었는데, 우습게도 이게 역사적 고증에 조금 더 부합한다. 후장식 소총이 보급된 19세기 전열보병이 나오는 사무라이의 몰락에는 1열 무릎쏴 사격도 등장한다. 햄탈워의 총병들은 진형과 관계없이 무조건 전원 일제사격한다.

3. 전함의 함포

3.1. 범선 시대

broadside

나폴레옹 시대의 대포는 제조기술이 후달려서 같은 9인치 대포라도 포신의 구경이 약간씩 달랐고, 포탄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포강과 포탄 사이의 틈, 유극이 너무 커서 화약의 밀어내는 힘이 탄에 전부 전달되지 않아 탄의 위력이 많이 낮았다.[1] 물론 아무리 조잡한 대포라도 볼링공 무게의 쇳덩이를 고속으로 날리는 것이며, 당시에는 밀집대형 전투가 기본이었으므로 명중률이 나쁘다는 것이나 폭발력이 없다는 것은 그리 심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강 쏘면 대열에 맞고, 맞으면 사람이고 이고 그냥 날아가니까. 따라서 인마살상력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대신 요새나 전함 등 구조물을 공격하는데 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이 시기 전함들은 모두 나무를 주재료로 썼기 때문에 해전이 벌어졌을 때에는 포를 쏴 맞춰도 적함에 구멍만 뻥 뚫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때에는 숙련된 사수들이라도 대포를 장전하는데는 약 2분이 걸릴 정도로 긴 시간이 소요되어서 화력을 집중하기가 어려웠으며 안 그래도 명중률 나쁜 대포를 파도치는 바다에 떠 있는 배에서 쏘다보니 많이 맞추기도 힘들고, 맞춰봐야 구멍도 깔끔하게 뻥 뚫리다보니 외벽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데도 그렇게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순식간에 돛대가 부러지거나 흘수선 부근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두들겨 맞지만 않는다면 포격전에서 빠져나간 다음에 얼마 있지 않아서 현지에서 응급수리를 한 다음에 다시 전열에 복귀해줄 수 있었다. 다만 돛이 사라지면 당연히 기동력이 거의 상실되버리므로 돛대를 노리기 위해 사슬로 두 발을 묶어놓은 사슬탄이 있기는 했다.

당시의 대포는 적함에 충격을 줘서 적 승무원이나 교전능력을 상실하게 하는게 목적이었는데도 실제로는 그냥 구멍만 뚫리고 끝인 경우가 많았다. 일단 포탄이 나무로 만들어진 벽을 뚫으면서 많은 파편을 발생시키긴 했지만 나무 조각은 밀도가 너무 낮았기에 치명상을 입히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대포의 기술수준으로는 1~2차 대전 시기와 달리 수면 밑의 함체를 타격할 수 없었고 대포의 사각도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흘수선 부근을 타격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흘수선 부근에 낮게 포를 설치하면 거기로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3단 포갑판을 갖춘 대형 전열함의 경우에는 흘수선에서 꽤 높게 포가 달려 있었음에도 파도가 심하거나 하면 맨 밑의 포문들을 열수가 없어 전투력이 제한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열함이라도 대포를 다량 탑재하는 데는 비용과 자재 및 기술상의 문제가 많았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명한 빅토리호(트라팔가 해전당시 넬슨 제독의 기함)도 3단 포갑판을 가지고 있지만 범선시대 최강의 해군국이던 영국 해군에서도 3단 전열함은 얼마 없었고 대부분의 전열함은 프랑스의 테메레르급같이 2단포갑판을 가진 74문함들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4단전열함도 있었는데[2] 사상최대의 전열함은 스페인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함으로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해군에게 나포되었다가 예인도중 폭풍우로 인해 침몰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쏠 수 있는 대포의 숫자도 크게 제한되는 상황에서 이걸 드문드문 발사하면 적함에는 거의 타격을 못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측면에 설치된 수많은 대포를 순차적으로 또는 한번에 발사함으로써 적함 측면에 설치된 포를 날려버리거나 적함 자체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전술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야전에서는 수리할 수가 없을만큼 커다란 손실을 단시간 내에 일으키려는 게 일제사격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의 포격으로 침몰하는 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따금 핫샷이 화약고를 때리거나 화약고 인근에 화재를 일으켜 유폭으로 터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적의 전함을 가라앉히기보다는 나포하는 쪽이 더 이득이었던 만큼[3] 격침시킨 쪽에서도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할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소설 혼블로워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를 보면 당시의 해전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일제사격의 위력을 알 수 있다.

3.2. 근대의 철갑선 등장 ~ 2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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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61 USS 아이오와의 일제사격

salvo

전탄발사와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 다르다.

해상의 포격전은 대략 러일전쟁 직전 무렵까지도 범선 시대부터 흔히 사용된 독립 사격(independent firing)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각 포탑의 포술사관이 발사한 포탄의 탄착을 관측하고 차탄의 조준을 수정하는 방식인데, 함포의 사정거리가 짧아 탄환의 명중지점을 목측할 수 있던 시절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기술의 발달로 함선의 속도가 빨라지고 함포의 사정거리가 길어지면서 원거리에 있는 적함을 발견하고 사격 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오차를 수정할 동안에 적함이 한참 이동해있는 경우가 빈번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드레드노트급 전함 이전의 구식전함들은 주포를 근거리에서 치명타를 먹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대신 등장한 것이 일제사격으로, 4문 이상의 함포를 동시에 발사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는 각 포탑 선이 아닌 함교에서 발사를 통제하게 되며 조준 수정 또한 각 포탑이 아니라 기함의 포술장이 맡게 된다.

여기에 협차(straddle)사격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명중율을 올리는데, 이것을 일제사격과 조합하면 전함등의 대형선박이 3-4척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역에 주포탄이 밀집해서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해당 구역내에 적 함선이 들어가거나, 적 함선이 해당 구역내에 들어가도록 편차를 조정하면 확률적으로 최소한 1-2발 이상의 주포탄이 적 함선에 명중하며, 최상의 경우에는 4-5발 이상의 주포탄이 동시에 명중돼서 적 함선이 전투력을 일시에 상실하고 불타면서 떠돌아다니는 표적으로 전락하게 된다. 함포의 명중율을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 하나 오해하는 것은, 각각의 포탑이 평행하게 사격해서 탄막을 칠거라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함포의 위치별로 제원을 수정해서 한 점에 모이도록 쐈다. 그래서, 실제 전함의 일제 사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좌우로 퍼지는게 아니라 앞뒤로 퍼지게 된다.[4] 왜냐하면 주포 발사 순간의 반동은 각각의 포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고, 이것만은 당대의 기술로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군의 경우 러일전쟁에서 함대결전 경험을 얻은 이후 일제사격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1908년도에 발행된 함포사격술 교본에서는 아예 이 일제사격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일제사격 대신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교호(交互)사격으로, 한번의 사격에 발사가능한 함포중 절반만을 발사하고, 이 사격의 결과를 관측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나머지 절반의 함포를 발사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렇게 교차로 발사하는 방식은 일본의 적지 않은 전함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다 그렇듯이 영국에서 고안한 것을 일본에서 수입해온 것이다. 광학 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이용한 광학식 레인지 파인더의 발전으로 거리 측정은 수월해졌지만, 적의 함속을 측정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이 나온 것. 영국은 이 외에도 전술한 일제 사격의 포탑별 제원 수정을 하지 않고 좌우로 흩어지게 쏘는 방식도 연구하였는데, 이것 역시 적의 상대 함속을 알아내서 차탄 수정을 더 원할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영국해군의 경우는 착탄 관측으로 함속을 측정하는 것은 기존처럼 한곳으로 모아서 일제 사격할때와 큰 차이가 없다 여겨지는 반면, 수반되는 귀찮음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일제 사격이 퇴출되진 않았다. 다만 2차 대전까지도 교차 사격은 여전히 교범에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일제 사격을 교호 사격으로 대체하는 교리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일제사격(斉射)'은 기본적으로 이 교호사격을 가리킨다.

3.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는 함선의 주포 자체의 구경이 소형화되고 자동장전장치를 채용해서 분당 발사율이 높아졌으며, 함포 자체가 상륙작전 지원용이나 근거리나 중거리에서 고속정 같은 작은 적의 기습을 방어하는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조준 및 착탄수정을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치가 수행하기 때문에 일제사격방식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또한 현대 군함들의 함포는 소구경인 57~130mm가 주류이고 이런 소구경 함포들은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가 없던 초보적인 광학기기와 계산법만을 사용하던 19세기 시절에도 명중률은 6천미터에서 40%대였다. 좀더 좋은 관측/계산 장비를 사용하면 동일 사거리에서 70% 이상의 명중률이 나오는데, 이런 소구경포들은 확률적 계산에 의지하는 일제사격법이 없어도 상당히 높은 명중률이 나온다는 이야기.

게다가 현대 군함들이 장비하는 함포는 포탑 1기의 단장포가 주류이고 연장포탑 1기를 사용하는 경우조차 드문 편이다. 따라서 일제사격을 하고 싶어도 못하며, 대신 현대 군함에는 함포의 위력을 높이기 위하여 함포발사속도가 증가되었고 유도포탄이 도입되었다.


[1] 전장식 화포인데 포탄 크기가 다 제멋대로다 보니 포신 사이즈를 좀 여유있게 만들수밖에 없었다. 딱 맞게 만들었는데 좀 큰 포탄이 걸리면 아예 장전할수가 없으니까... [2] 미국에도 있었다 [3] 영국 해군의 경우 적함을 나포하면 해당 함선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함장 및 승무원들에게 '포획상금'으로 분배해줬다고 한다. 이때 가치를 8등분하여 함장 한사람에게 1/8을 주고 수백명의 승무원들에겐 2/8가 주어졌다고 하는데 영국해군 역사상 가장 많은 포획상금이 주어진 사례때 함장은 백수십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거액을 받았고 승무원들도 1인당 약 48년치 급료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는 대박을 냈다고…. 물론 로또맞은 함장과 승무원 외에도 영국 해군 입장에선 새로운 군함을 얻는 것이니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었다. 이것을 "나포 포상금" (prize money)이라고 하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쪽을 참조. [4] T자 대형에 걸리면 불리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거의 반드시 함교에 맞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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