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이세돌
1. 개요
이세돌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2. 데뷔 전
1983년,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비금도 도고리에서 태어났다.살던 집이 약 1,500평 정도로 부유했다고 한다. 논을 메워 집을 지었고, 이웃 빈집을 사들여 텃밭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5살 때부터 그에게 직접 바둑을 가르친, 부친 이수오씨는 아마 5단으로 광주교대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10년간 근무했고 1998년 암으로 사망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세돌은 아버지와 맞바둑을 두었고, 2학년 때 기력이 아버지를 완전히 넘어섰다고 한다.
2.1. 집안
- 첫째 이상희 - 아마 5단 (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 둘째 이상훈 - 프로 九단 (신안천일염팀 바둑 감독)
- 셋째 이세나 - 아마 6단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前 월간바둑 편집장)
- 넷째 이차돌 - 아마 5단 ( 목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컴공과 졸업)
- 다섯째 이세돌 - 프로 九단 (중학교 중퇴. 바둑에 전념하기 위해 학업 중단)
형제자매들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바둑을 뒀고, 대부분이 이후에도 바둑계에서 일한 모태 바둑 집안이다.
둘째 이상훈도 자신보다 바둑을 잘두는 이세돌을 보고 바둑으로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세돌을 뒷바라지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상훈 프로도 잠재된 기력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포터를 자처하게 한 천재. 이상훈 프로도 어린 나이에는 동명이인인 이상훈 기사와 구별되기 위해 '비금도 이상훈'이라고 불리며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 공교롭게 둘 다 바둑리그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다. 이세돌의 형 이상훈은 신안천일염 감독을 맡고 있다. 형은 감독으로, 동생은 선수로 뛴 셈.
5남매 중 가장 바둑 재능이 없던 넷째 이차돌만 바둑 대신 공부시켜서 보낸 게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둘째 누나 이세나의 말로는 넷째 이차돌이 서울대 컴공과를 나온 것은 사실이나, 바둑에 재능이 없어 공부를 시킨 것은 아니라 한다.[1] 다만 동생인 이세돌이 본인을 너무나 빨리 추월하자 이내 흥미를 잃은 것은 사실로 전해진다.
3. 활동 초기
1995년, 친형 이상훈을 따라 12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했다.2000년, 기량이 만개하여 32연승을 달리고[2] 세계대회인 LG배 결승에 진출하며[3]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이후 4년 동안 바둑계를 휩쓸었지만, 당시 이세돌의 단급은 고작 三단에 불과했다. 이는 이세돌이 승단대회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단급을 높이려면 한국기원이 주관하는 승단대회를 거쳐야만 했다. 이는 다른 대회에서 우승하는 정상급 기사라도 승단대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단급이 그대로라는 의미로, 스타 기사들을 혹사시키는 문제점이 있었다.[4]
이러한 승단대회 제도에 처음으로 정면 대항한 기사가 바로 이세돌이었다. 三단에 불과한 이세돌이 최우수기사로 선정된 후 메이저 세계대회인 후지쯔배를 우승하고 LG배 결승에 진출하자 승단대회 무용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5] 결국 한국기원은 2003년부터 기존의 승단전을 폐지하고 승단 규칙에 "세계대회 우승시 三단 승단, 준우승시 一단 승단"을 추가한다.[6]
다만 이 승단대회 폐지는 명암이 갈리는데, 승단전은 가난한 기사들에게 최소한의 대국료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사는 지면 대국이 없어지므로 돈을 못 버는데, 승단전은 의무적으로 대국을 해야 하므로 전부 다 져도 최소한의 대국료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 같은 탑급 기사야 영세한 규모인 승단대국에서 주는 대국료는 대기업에서 후원하는 대회의 큰 상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낭비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것도 소중한 기사는 분명 있다. 이런 '최저임금' 내지는 '기본소득'에 비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국료가 없으면 약한 기사는 명색이 프로 기사임에도 바둑을 전업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무언가 (바둑과 관계없을 수 있는)다른 일을 해야 하고, 결국 부익부빈익빈은 심화되어 도태되고 만다. 프로 세계에서 약자가 도태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일단 어떤 세계든 풀이 넓어야 하는데 최소한 먹고사는 건 보장이 되어야 풀이 넓어진다. 만약 프로바둑기사가 되어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 안 된다고 하면 누가 바둑기사를 하려고 할까? 유리바닥이 무너지면 유망주의 유입이 끊어지고, 하위권 기사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고, 그러면 그 위에서 버티던 차하위권 기사들이 또 하위권으로 전락해 떨어져 나가고 한 업계가 몰락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야구 등에서 아무리 2군에만 박혀있는 선수라 해도 최소 몇천만원씩은 최저연봉을 주는 것이다.
물론 승단은 있어도 강단은 없는 단급제도 특성상 단위 인플레이션이 늘어나서 단급이 의미를 상실한 것도 사실이고, 그 특성상 적자이기만 한 승단대국은 바둑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고는 하나,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놓고 없앴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기원이 있는 것이다. 대회는 흑자라서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스폰서를 물어오는 것이 협회의 일이 아니던가. 한국은 중국처럼 인구가 13억이 되어 그냥 방목해 놓고 강한 놈만 살아남게 두어도 끊임없이 인재가 나오는 나라가 아니다. 실제로 이전까지 중국에 결코 밀리지 않던, 오히려 중국에 있어 통곡의 벽이던 한국 바둑계는 이렇게 점점 쪼그라들어 2020년 기준 명백히 중국에 밀린다. 물론 그게 다 승단전 폐지의 나비효과만은 아니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승단대국 폐지도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하튼 승단 규정이 바뀌고 나서 이창호 九단을 꺾고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회 KT배 준우승, 제16회 후지쯔배 우승[7]을 하여 5개월 만에 九단이 된다.[8]
4. 전성기
전성기를 맞은 2006년 |
대리(大李)가 아직 가지 않았는데 또 소리(小李)가 오다니 (大李未走 小李又至)
중국 체육주보에서의 표제
이세돌의 전성기로는 통상적으로 세계대회 첫 우승을 거둔 2002년부터 마지막 우승을 한 2012년까지를 꼽는다.중국 체육주보에서의 표제
이창호의 시대를 무너뜨린 소장파 기사의 선두이다.[9] 2000년대 초중반 이창호와 이세돌의 승부는 바둑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2003년에 열린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에서 이세돌이 이겼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당시 이창호는 제1회 춘란배 결승에서 스승인 조훈현에게 패한 이후 4년간 국제 대회의 결승에서 무패행진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세돌에게 최초로 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기사 모두 사력을 다한 승부였기에 이긴 이세돌도 탈진, 진 이창호는 생전 안 하던 술을 마시며 쓰라린 마음을 달랬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이창호를 이기는 후세대 기사들이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참가하면서 이기면 돈을 받고 지면 돈을 받지 않는 계약을 최초로 한 한국 바둑기사이기도 했다. 2006년 중국갑조리그 관련기사 이세돌 이후부터 한국기사들은 용병으로 참가할 때 비슷한 조건을 달고 출전하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5빵(이기면 5만 위안, 지면 없음), 7빵이라는 프로기사들 사이의 은어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2009년, 한창 전성기 중에 6개월간 휴직계를 낸 적이 있다. 당시 기보 저작권 문제 및 대국료 문제[10]로 한국기원과 갈등을 겪다, 2009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하자 기사회에서 징계를 내린 것. 결국 이세돌은 '휴직계'를 내버렸다.[11] 이후 이세돌은 사과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이세돌 휴직사태 기자회견'.
우여곡절 끝에 한국기원과의 앙금을 청산하고, 바둑기사에 복직하자마자 파죽의 24연승을 달린다. 2010년 제2회 BC카드배 16강에서 중국 랭킹 1위이던 쿵제를 상대로 초반에 대마가 잡혀 약 85집을 잃은 상태에서 대역전승을 거두고,[12] 결승에서 창하오 九단을 3:0으로 압살하면서 세계 타이틀 하나를 더 추가한다. 세 판 모두 불계승.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바둑 종목이 추가되었고, 이세돌 九단도 한국 대표로 참가하였다. 결과는 한국이 전 종목(남자단체, 여자단체, 혼성페어)을 석권하였고(금3, 동1), 이세돌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바둑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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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마크 장발.[13] |
2012년 12월 13일,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에서 구리 九단을 1국 반집승, 2국 불계패, 3국 반집승으로 총 한집(반집+반집)으로 물리치는 희대의 드라마를 찍으며 2:1로 우승했다. 삼성화재배 통산 4번째 우승. 구리 九단과의 상대전적도 10승 1무 14패로 약간 만회했다.
2013년 1월 합천군 초청 '2013 새로운 물결, 영재 정상 바둑대결'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 최연소 프로기사 신진서 당시 初단이 이창호를 불계승으로 꺾어 파란을 일으킨 이 대회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승리한 것. 대회 후기에 따르면 넉넉하게 이길 수 있었는데 일부러 반집승으로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고서 "요즘 애들은 왜 다들 이렇게 똑같나"라고 했다고. 정말이라면 그다운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동갑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구리 九단과의 10번기를 시작했다. 이세돌-구리 10번기는 제한시간이 4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월드컵 기간인 6월을 제외하고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개최되며 먼저 6승자가 나오면 종료된다. 승자는 우승상금 500만 위안(약 8억 4000만 원)을 독식하고, 패자에게는 20만 위안(약 3500만 원)의 여비가 지급된다. 단, 최종 성적이 5승 5패일 경우 상금을 절반씩 나눈다. 자세한 내용은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 문서를 참고. 이세돌 9단이 6승 2패로 승리했다.
2016년에는 연초부터 굵직한 대국을 여럿 치렀다. 몽백합배 결승전에서 커제와 접전 끝에 준우승을 했고, 이후 박정환 9단과 제34기 KBS바둑왕전, 제43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결승대결을 펼치면서 일명 8번기를 펼쳤다.[14] 바둑왕전에서는 박정환에게 첫 판을 딴 후 내리 두 판을 내주며 준우승했으나, 명인전에서는 3승 1패로 박정환을 꺾으며 통산 4번째 명인전 우승을 차지하여 2014년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 이후 오랜만에 국내기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5.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자세한 내용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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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전 기자회견장에서 두 인물의 역사적인 만남 |
대국 | 날짜 및 시간 |
1국 | 3월 9일(패) |
2국 | 3월 10일(패) |
3국 | 3월 12일(패) |
4국 | 3월 13일(승) |
5국 | 3월 15일(패) |
그러나 이세돌 본인은 물론 커제나 이창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바둑기사가 판 후이와의 대결 양상을 기준으로 이세돌의 5-0 완승 또는 4-1로 이길 것을 자신했으나, 판 후이와의 대결 이후 알파고의 무서운 성능 향상으로 9일에 열린 1국에서 알파고가 186수 만에 불계승, 10일에 열린 2국에서도 알파고의 불계승으로 이세돌이 2패를 당했고, 12일에 열린 3국 역시 초읽기에 들어가는 접전 끝에 알파고의 176수 불계승으로 결국 3-0이 되며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나버리며 인공지능에 압도당하게 되었다. 한때 바둑계의 대사탄으로 간주되던 이세돌이 한낱 기계 앞에 대굴욕을 맛보며 처참하게 박살나는 모습에, 이때까지만 해도 바둑계 전체는 물론 인류가 인공지능 앞에 허무하게 몰락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된 패배주의 사상이 대한민국 전체를 강타하게 된다. 하지만...
마침내 4국에서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했다. 4국에서 불리한 형세에 들어간 알파고가 승률이 낮아질수록 더더욱 잦은 실수를 하였고 이세돌은 1개 남은 초읽기로 1시간가량 버티는 대혈전 끝에 알파고를 이겨 불계승을 거두었다.[17]
알파고가 어떤 특정 시점을 계기로 갑자기 실력이 아마추어급으로 급락해버린 지점이 있다.[18] 그 지점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세돌이 집요하게 노린 알파고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마주해보지 못한 계산 기계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비록 패함으로써 지구 최강의 자리는 내려놓게 됐지만, 그런데도 4판 만에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 첫 승리를 이끌어낸 이세돌이 새삼 대단해지는 부분. (뒤이어 제5국에서는 흑을 잡았으나 벽을 넘지 못하고 불계패 당하고 말았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이세돌은 이번 대국들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경기는 정말 원 없이 두어본 대국 같다"고 하고 " 구리[19]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대국이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중 마지막에 패배한 제5국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20] 많은 걸 느끼고 새로운 바둑을 연구해 봐야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고. 그리고 아자 황이 매우 인상 깊었던 듯하다. #
알파고와 바둑을 하면서 오히려 기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국을 중계하던 프로 9단 해설진들이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세돌은 표정에서 동요를 보이며 그 자리에서 바로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제3국에서 보인 이상한 수들도 해설진이 복기한 결과 다 의미가 있는 수였다는 걸 깨닫고 멘붕하는 등[21][22] 이세돌이 세 판 내리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계를 제외한 인간 중에서는 최정상급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국이 되었다.
알파고와 대국을 이후로 박영훈 9단을 이기고 9연승을 한 뒤 인터뷰에서 "알파고 이후 생각이 많아진만큼 좋은 내용의 바둑을 보일 수 있을 듯하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대국 이후 본인의 실력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
아무튼 공식전에서 알파고에게 1승을 거둔 최초이자 최후의 바둑기사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후 알파고에게 도전장을 내민 커제는 3전 3패의 성적으로 끝내 이기지 못했고, 커제와의 대결을 끝으로 알파고가 은퇴했기 때문이다.
알파고와의 대전이 끝난 후 첫 대회인 3월 30일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에서 이세돌 킬러라 불리는 김지석 9단을 172수만에 백 불계승으로 잡았다. 본인은 알파고 대전 이후 바둑을 즐기는 것을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6년 5월 시점에서 알파고와의 대국 후 8연승을 달리면서 맥심커피배 우승을 차지하였다. 두번째 전성기를 기대한다는 응원글도 많이 볼 수 있다. 그 대국을 계기로 동기부여가 생겼다는데, 다시 세계 1위가 되어 알파고와 다시 대국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이세돌이 YTN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은 신의 한 수가 된 78수보다 68수가 더 결정적이었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68수 당시 1. 평소 인간과 두는 것처럼 둔다. 2. 과감한 착수로 승부수를 띄운다. 3. 전략대로 실수를 유도할 수를 둔다. 3가지 방안 중 고민했다고 한다.
6. 프로기사회 탈퇴
2016년 5월 19일 이세돌은 자신의 형인 이상훈 9단과 함께 프로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하였다. 관련기사이세돌은 친목단체인 프로기사회에 불합리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며 이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세돌이 문제 삼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이다.
- 기사회에 소속된 기사만이 한국기원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규정된 점.
- 기사회에서 대회 상금을 일률적(3~5%)으로 공제하는 점.[23]
또한 한국기원이 아닌 중국기원에서 개최하는 대회의 상금도 공제한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24]
이세돌은 기사회를 탈퇴하면서도, 대회에는 참가하겠다는 입장이며, 이것이 문제가 될 경우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는 다른 조직이며, 이세돌은 한국기원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야구와 비교하면 한국기원은 대한야구협회, 기사회는 선수협에 견줄 수 있는 단체다. 이세돌이 지적하는 점은 이 기사회가 한국기원처럼 행세한다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셈이다. 특히 이세돌이 문제삼은 내용 중에서 '기사회에서 대회 상금을 일률적(3~5%)으로 공제하는 점'은 회사로 따지면 권한있는 자가 걷는 세금으로 모자라 노동조합까지 세금을 뜯어가는 것과 동일하다. 분노를 안 하는 게 이상하다.[25][26] 단, 이세돌 측에서는 한국기원에서 걷는 발전기금 10%은 계속 납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투쟁 대상을 프로기사회로 국한하고 한국기원과의 충돌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공제' 부분은 관행적인 것이며, 논의 가능하다고 한다.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 반응은 "기껏 열심히 해서 상금 땄더니 웬 꼰대가 상금 5% 내놓으라고 한다" 등 프로기사회에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넷 여론은 거의 십중팔구 이세돌을 지지하는 쪽이다. 또한 불합리한 관행을 이전에도 그렇게 이루어졌으니 그냥 참으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건 비논리적인 보상심리이기도 하다.
현재 프로기사회는 7년 전처럼 이세돌에게 강경하게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는 예상이 많다. 일단 7년 전 휴직사건과 비교해서 이세돌 9단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으며, 명분 또한 충분하다. 이세돌 9단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이 많지만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존재할 것이고, 본인으로서는 기사회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나이가 든 후 연금을 받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에 후배기사들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큰 공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세돌 9단과 형 이상훈 9단이 이미 법무법인과 접촉하였기 때문에 법으로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27][28]
일각에서는(특히 바둑계 관계자들) 이세돌의 기사회 탈퇴에 자신의 금전 이득을 이유로 다른 기사들의 생활은 생각해 주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이라든가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해져 멋대로 행동한다는 평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세돌이 지금껏 보여준 행동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단순히 돈만 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이세돌은 2008년 쓰촨성 지진 당시 TV 아시아배 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29]했고, 중국바둑리그 활동 시 자신이 주장으로 활약하여 을조에서 갑조로 승격시킨 광시 팀의 성적이 떨어져 다시 을조로 강등되자 책임감을 느껴 승리수당을 전혀 받지 않고 팀이 다시 갑조로 승격될 때까지 팀원들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다.[30] 애초에 돈 욕심 있는 사람 같았으면 저런 퍼포먼스도 한두 번 깔짝하고 말지 이렇게 일관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세를 얻기 한참 전부터 불합리한 바둑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만 그 방식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따라서 이제 와서 멋대로 행동한다고 볼 수도 없다.
5월 20일에는 맥심커피배 시상식에 참가하여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과 만나고, 인터뷰도 하였다. 관련기사 기사 내용을 보면 이세돌은 프로기사회와 대화는 하겠지만, 풀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기사회 적립금 문제는 일부에 불과하며 기사회 정관에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것들이 많아 완전히 뜯어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계속 고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자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고. 적립금을 바둑 보급 및 발전에 사용했다는 기사회장의 발언에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은퇴 위로금을 모으는 것뿐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관을 완전히 뜯어고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기사회를 와해하고 새로운 기사회를 창립하겠다고 밝혔다. 프로기사회 측에서는 자세한 정관은 공개할 수 없으며, 적립금 사용 내역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10번기 이후부터 탈퇴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세계대회 우승을 하고 나서 탈퇴를 하려고 했으나 마침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해진 지금이 적기라 탈퇴를 결심하였다고. 몽백합배 당시 일생일대의 대결이며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하는데, 우승이 좌절되고 나서 느꼈던 아쉬움은 단순히 패배로 인한 실망뿐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기회가 날아간 것의 안타까움이 같이 있었던 듯하다.
다만 프로기사회 회장 양건이 개혁파이고, 회장이 되기로 한 계기가 2009년 이세돌 휴직사태임을 고려할 때 원만히 해결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귀추를 주목해 볼 수 있을 듯. 서로 대화로 합의점을 찾기로 했다.
6월 2일 프로기사회가 기사총회를 열어 이세돌의 탈퇴 문제를 논의하였다. 탈퇴시 한국기원 주관 대회 출전불가 조항은 법으로 문제가 있어 삭제하기로 하였다[31]. 그러나 다시 2019년 7월, 프로기사회 회원만 한국기원 기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32]
기사회 적립금 문제나 이세돌의 탈퇴 문제는 일단 보류하고, 한국기원과 논의하기로 하였다.[33] 이에 모 바둑전문 기자는, "기사들을 위해 기원과 대립하며 기원과 기사회가 수뇌부가 같다는 것은 루머"라고 주장하는 기사회의 입장과 모순된다고 지적하였다. 그간 지적되왔던 기원과 기사회 구조는 사실상 이건희 회장이 삼성노조 회장까지 하는 격이라는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란 것이다. 애초에 기원과 대립구도라면 기사회 내부 정관 수정을 위해 기원과 협의 하는 것이 정상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사회 입장에서 초강수를 두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이세돌의 승부수가 먹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설수에 올랐던 수입 지출 내역이 공개되었는데 작년에만 10억 가량의 수익을 올렸으며, 대부분의 지출은 은퇴비 명목으로 쓰였음이 드러났다. 또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65억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면 애초에 친목 단체가 아니다. 다른 선수협처럼 법인 등록을 하여 투명하게 관리되어야할 규모이다. 각종 대외 활동과 수익 사업을 활발하게 해야할 현금을 저렇게 쌓아둔 것 자체가 확실히 효과적인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세돌 기사회 탈퇴 선언 이후로는 프로기사회의 사단법인화 또는 유한회사화, 현재 재단법인으로 원칙적으로 돈이 아닌 사인을 소속으로 둘 수 없는 한국기원의 사단법인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즉,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가 별도의 조직으로 완전히 분리되고, 이 조직은 사단법인화를 하여 프로기사들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 양쪽에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이 기사회 탈퇴 건으로 인해 한국바둑리그 2016년 시즌에서 도입된 각 선수별 세리머니를 촬영하지 못했다. 기사회 문제로 한국바둑리그 개막식날 불참해버렸기 때문이다. 형인 이상훈 九단은 감독이니까 개막식에 참석하고 신안천일염 나머지 선수들은 촬영을 마쳤지만, 이세돌 九단만 세리머니 사전촬영을 안 했다.
7. 탈퇴 이후
기사회 탈퇴 문제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한국바둑리그에 참가하여 백홍석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9연승을 이루어냈다. 연승이 바로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불계승으로 끝났다.5월 23일에는 박지은과 팀을 이루어 이창호-김윤영 팀과 대결해 승리하였다. 알파고 이후 10연승. 다만 페어대국은 공식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큰 의미는 없다.
5월 30일 LG배 32강에서 구리와 대결하여 흑으로 불계패했다. 이로써 이세돌의 연승 횟수는 9에서 멈추었다.
2016년 7월 이세돌 九단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여 알파고와의 대국 과정을 소개하고 바둑 홍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바둑기사 중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세돌 九단이 사상 최초이다.
9월 27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한국팀의 선봉으로 출격했으나 일본의 이치리키 료 七단에게 반집패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이 보여준 포석은 바로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이세돌이 패했던 5국의 내용과 동일했다. 농심배가 열렸을 당시에는 이미 알파고 측에서 공식 발표한 해설자료에 그 포석은 흑이 불리하다고 명시되어 있고, 중국 기원에서 최고 기사들을 모아 바둑 역사상 가장 엄밀하게 검증한 결과 그 포석은 흑이 망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러한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었음에도 이세돌 九단이 이 포석을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본인만의 형세 판단으로는 흑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JTBC와의 인터뷰 등에서 5국에서 박정환 등 젊은 기사들이 바둑을 뒀다면 이겼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가 있다.) 다른 모두가, 그리고 알파고까지도 아니라 고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불리한 포석을 사용했기에, 비교적 하수로 평가받는 이치리키 료 七단에게 패한 것으로 평가되며 바둑 뉴스와 커뮤니티에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11월 1일 삼성화재배 4강전 2국에서는 고집을 꺾고 국가대표 프로기사 의견을 따라 전략을 바꿨다. 이세돌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분석에 크게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스스로 맞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쉽게 자신의 수를 바꾸지 않는다. 이세돌 특유의 개성 넘치는 바둑을 둘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고집을 부리다 불리한 국면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세돌이 고수했던 수를 버리고 새로운 수를 선택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세돌은 이날 알파고 이후 '정형화 된' 포석을 사용했다. 2국에서 흑을 잡고 커제를 상대로 반격에 성공했다.
12월 26일 35기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2016년의 마지막 타이틀을 획득했다. 결승 상대는 나현 7단으로 12월 19일 1국에서 175수끝 흑 불계승, 12월 26일 속개된 2국에서 274수 끝 백 1집반승으로 승리해 종합전적 2-0으로 우승했다.
2017년 9월 25일 삼성화재배 16강전에서 퉈자시에 밀려 탈락했다.
2018년 1월 10일 중국 윈난성 바오산시에서 벌어진 제5회 동준약업배 세계바둑명인전 결승에서 중국의 롄샤오에게 191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다. 세계바둑명인전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명인전 타이틀 홀더들끼리 겨루는 대회로 올해 한국에서는 이세돌[34] 9단과 일본의 명인전 우승자인 이야마 유타 9단[35], 그리고 중국의 롄샤오 9단[36]이 참석했다.
이 대회 결승에서 롄샤오와 만난 이세돌은 후반 중반까지 누가 봐도 돌을 던져야 할만큼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었다. 중국 바둑 인공지능프로그램인 절예[37]가 예측한 이세돌의 승리 확률은 15.7%에 불과했다. 그때, 이세돌이 승부수인 163수를 놓자 절예가 계산한 이세돌의 승률이 48.7%까지 상승했고, 이후 174수째에 승률이 68.9%까지 올랐다. 결국 191수에서 롄샤오가 돌을 던져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
2018년 1월 13일 커제와 제주 해비치 호텔에서 열린 '2018 해비치 이세돌 대 커제 바둑대국' 에서 커제와 대결했다. 흑을 잡은 이세돌은 중반까지 커제와 팽팽한 대치를 이루었으나 우변에서 흑117수를 실수하면서 흐름이 백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이세돌은 특유의 흔들기로 야금야금 전세를 뒤집었고 결국 마무리에서도 미세한 승기를 얻으며 293수만에 1집 반으로 역전승했다. 경기 종료 후 서로를 존종하는 발언을 하고 알파고와 바둑을 둔 소회를 나누며 훈훈한 인터뷰를 마쳤다.
2018년 1월, 2월에는 22승을 하는 등 다승 선두를 독주했으나, 3월 21일 제12회 춘란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24강전에서 일본 모토키 가쓰야에게 패했다. 모토키 가쓰야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이세돌보다 한참 아래로 평가받는 기사인데, 대마를 잡히며 패배하여 국내 바둑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2018년 4월 2일 2차 Jtbc배에서 허영호를 이기고 우승했다.
5월 18일 GS칼텍스배에서 신진서에게 2승 3패로 밀려 준우승. 28일에는 LG배 32강전에서 장웨이제에게 지면서 탈락.
7월 28일 국수산맥 16강전에서 중국 판인에게 시간패하며 탈락했다.
2018년 들어 4월까지 나이를 잊은 듯한 맹활약을 펼치며 80%가 넘는 승률을 거두었으나, 5월부터 승률이 뚝 떨어지기 시작하며 20%대까지 하락했다. 랭킹 포인트도 많이 하락하여 2005년부터 시행된 랭킹제도에서 처음으로 5위로 떨어졌다. 랭킹 4위로 한단계 올라서며 이세돌과 자리를 바꾼 기사는 바로 변상일.
2018년 한국바둑리그에서 꽤나 부진하다. 사실 속기 일변도인 국내 바둑리그 규정상 어린기사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보니 이세돌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부진도 나름 이해할 측면은 있다. 한국바둑리그와는 별개로 jtbc배 우승, gs칼텍스배 준우승 같이 국내 토너먼트 대회 성적은 국내에선 여전히 정상권이다.
다만, 세계대회에서의 성적 하락은 확실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올해 치러진 세계대회인 춘란배, LG배, 국수산맥배에서 모두 본선 1회전에서 탈락했고, 백령배 출전권이 걸린 국내 선발전에서도 변상일에게 패하며 출전이 좌절됐다. 이창호9단 또한 세계정상권에서 확실히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 서른 중반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바로 지금의 이세돌의 나이 즈음.
한국바둑리그 전반기를 1승6패로 마감했다. 올시즌 바둑리거들 가운데 최하위 성적. 7판 모두 속기판에만 등판하였으나 1승밖에 거두지 못했으며, 특히 박하민, 송지훈, 설현준, 신진서 같이 어린 기사들에게 연달아 패하며,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8월 21일 올해 새롭게 신설된 세계대회인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 이영구 9단을 꺾고, 프로 통산 1300승을 달성했다. 1300승은 조훈현 9단(1949승), 이창호 9단(1749승), 서봉수 9단(1653승)에 이어 통산 다승 4위에 해당한다. 다음날 열린 대표선발전 결승에서 최철한 9단에게 패하며 대표선발은 좌절되고 말았다.
9월 랭킹에서 다시 포인트가 대거 깎이며 9위까지 하락했다.
9월 4~6일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타오신란에게만 두 번 지며 떨어졌다.
11월 25일 농심배에서 한국 4장으로 출전. 판팅위에게 6연승을 허용하며 탈락했다.
2018 한국 바둑리그에서 4승 10패 / 중국 갑조리그에서 5승 8패를 거두며 양국 리그를 마감했다.
2019년 3월 5일 블러드랜드배 특별 대국에서 커제에게 패했다.
2019년 7월, 이세돌은 그의 고문 변호사로 오랜 기간 함께 일하고 있는 손수호 변호사를 통하여 한국기원이 2016년 5월 기사회를 탈퇴했음에도 이후 3년간 부당하게 공제해간 상금 3200만 원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38][39]
한국기원은 이에 대응하여 이세돌, 이상훈 형제처럼 기사회에서 탈퇴한 기사는 한국기원 주최 대국에 아예 참여하지 못하도록 정관 자체를 개정했다. 다만 이러한 정관 개정이 문체부 승인을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40][41]
한국기원·이세돌, 3년 만에 갈등 재점화
'은퇴 카드' 꺼낼까? 이세돌 vs 기사회 정면승부 들여다보니…
현재까지 여론은 역시 어느 곳이든 협회가 문제라는 의견이 다수.
그리고 공정위에 신고도 되었던 정관 개정 관련 내용의 판단결과는 "기사회 탈퇴기사의 기전참가 제한이 반경쟁적 효과보단 프로바둑의 발전과 공동이익 증진을 위한 효과가 크다", 즉 딱히 문제 없는 정관 개정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8. 은퇴
2019년 11월 19일, 한국기원에 프로기사 사직서를 제출하며 24년 4개월간의 현역 프로기사 생활을 마감함과 동시에 은퇴했다. # 보통 이세돌 같은 톱레벨 기사가 이런행보를 보이면 은퇴를 만류하는 움직임이 있겠지만, 이 문서 곳곳에 언급되듯 한국기원 수뇌부와의 사이가 최악이라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게 중론이었고 실제로 한국기원에서 곧바로 사직서를 수리하며 공식적으로 프로기사가 아니게 되었다.[42]은퇴 이후엔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거나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구상을 하는 등 개인시간을 갖는데 투자를 하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아마추어들과 가볍게 두는 것 외에 프로들과의 대국은 한 번도 안했다고. 당구를 치며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한다. #
8.1. 은퇴대국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고치기 3번기
2019년 11월 19일 프로기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틀 뒤인 2019년 11월 21일,
NHN에서 개발한 한국 바둑 인공지능인 '
한돌'과 3번기 이벤트 대국을 한다는 공지가 나왔다. 한돌 탄생 2주년을 기념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사실상 이세돌이기에 가능한 이세돌의 프로 은퇴대국. 대전료는 1억 5,000만 원이 확정되어 있으며 승리 수당은 5,000만 원이다.[43]2019년 11월 25일 대국에 대한 세부내용이 공개되었는데, 동년 12월 18일/19일/21일에 걸쳐 3번기 대결을 펼치며 마지막 대국은 특별히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에서 치러진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세돌이 접바둑으로 입하며 치수 고치기가 적용된다는 부분. 알파고의 등장 이후 바둑 인공지능의 실력이 너무나도 향상되어 프로기사도 호선으로 이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인데, 이를 감안해 대국결과에 따라 까는 돌의 수를 조정한다는 소리. TV 방송용 공개대국에서 인공지능을 상대로 프로가 접바둑을 두고 치수 고치기까지 하는 건 이번이 세계 최초다.[44] 일단 제1국에서 이세돌이 2점 까는 걸 기준점으로 하며, 승패 유무에 따라 아래의 '경우의 수'를 따른다.
1. 제1국에서 이세돌이 승리: 제2국은 호선으로 둔다.
2. 제1국에서 이세돌이 패배: 제2국은 3점 깐다.
3. 제1~2국 모두 이세돌이 승리: 제3국은 한돌이 2점을 깐다.
4: 제1~2국 종료 후 이세돌이 1승 1패 기록: 제3국은 2점 깐다.
5. 제1~2국 모두 이세돌이 패배: 제3국은 4점 깐다.
[45]2. 제1국에서 이세돌이 패배: 제2국은 3점 깐다.
3. 제1~2국 모두 이세돌이 승리: 제3국은 한돌이 2점을 깐다.
4: 제1~2국 종료 후 이세돌이 1승 1패 기록: 제3국은 2점 깐다.
5. 제1~2국 모두 이세돌이 패배: 제3국은 4점 깐다.
2019년 기준 세계 톱클래스급 바둑 인공지능은 프로기사를 상대로 2점 접바둑을 두고도 승률 8~90%를 낼 만큼 그 실력이 엄청난데, 대표적으로 중국의 절예가 한큐바둑에서 커제를 필두로 한국/중국/일본 톱클래스 프로기사들을 접바둑으로 압살하고 다닌다. 인간 최고수의 기력 레이팅 점수는 3,500점가량인데 반해 한돌은 4,500점 정도이며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이세돌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게 세간의 평. 일부에선 프로의 4점 접바둑을 보고 싶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1국 시작 직전 대리 착수자가 누구인지 공개되었는데, 한국기원 연구생 1조 출신이자 아마추어 5단의 실력자인 NHN 이화섭 대리가 나섰다.
2019년 12월 18일에 열린 제1국에선 이세돌이 2점 접바둑의 우세를 지켜가는 가운데 한돌이 잘 공격하며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후 중앙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세돌이 흑 78수로 바둑 인공지능의 뒷통수를 때리는 명장면을 연출했는데, 마치 3년 전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신의 한 수로 불리는 백 78수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던 장면과 오버랩 되는 부분. 한돌은 이 수를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응했는데 백 81수까지 놓은 시점에서 이미 게임이 끝난 것과 다름이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바로 바둑 좀 둔다는 아마추어 레벨에서도 알 수 있는 '장문' 사활이었기 때문이며, 당사자인 이세돌도 "이걸 놓쳐?"라는 듯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이게 빌미가 되어 한돌은 접바둑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음도 20~30%대의 승률을 유지하는 좋은 모습을 보이다 판이 대차게 꼬이며 3%로 승률이 곤두박질 치게 되었고, 하변 쪽에 의미없는 수를 두다 이세돌이 최후의 수인 흑92로 중앙의 백돌 석 점을 '축'에 이은 '장문'으로 잡자 돌을 거두었다. 결과는 흑 92수 불계승 겸 이세돌의 1승.
제1국 승리로 인해 위의 경우의 수 2번 & 5번은 사라졌으며, 한돌이 바둑 인공지능이 간간이 보여주는 축버그를 일으켰다는 사실 때문에 실력이 허접하다, 이세돌 대신 은퇴해야 한다는 등의 조롱을 듣고 있다. 이세돌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인터뷰에서 실망스러웠으며, 한돌 측에서 좀 더 대비를 해줘야 한다는 뉘앙스의 코멘트를 했다. 이에 한돌 측에선 흑 78수를 둘 거란 사실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으며, 세간에선 축버그를 일으켰다고 말하는데 전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또한 호선이 아닌 접바둑에 대한 훈련기간이 2개월 정도로 적어서 미흡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제2국은 1번 경우의 수를 따라 호선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세돌 측에서 "호선으로 둘 거면 돌가리기를 하는 게 맞는다."라고 제안했고 그 과정을 거쳐 이세돌이 흑을 쥐게 되었다. 예상대로 한돌이 호선에선 아주 강력한 모습을 선보이며 초반부터 압박을 가했고, 이세돌은 이를 깨기 위해서 좌상 쪽에서 집을 만드는 싸움을 하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손해를 보고 말았다. 이 시점부터 한돌의 승률이 90%를 넘어 패색이 짙었는데, 이세돌은 특유의 흔들기를 시도해 한돌의 실수를 유발하려고 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아 결국 돌을 거두었다. 결과는 백 122수 불계승 겸 이세돌의 1승 1패.
제3국은 자신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에서 펼쳐졌으며, 25년 프로 바둑기사로서의 대미를 장식했다. 대국 방식은 2국 결과에 따라 다시 1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국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국 당일, 접바둑 특유의 이점 때문에 초반엔 유리하게 국면을 이끌어 갔으나, 한돌이 무섭게 싸움을 걸어오며 점점 많은 집을 먹어가게 되어 무난하게 승률이 역전되었다. 1~2국과 달리 이세돌이 제한시간 2시간을 다쓰고 초읽기까지 가는 끈질김을 보여주었지만, 유리한 상황의 끝내기에선 바둑 인공지능이 실수를 보여주지 않는터라 아쉽게도 돌을 거두었다. 결과는 백 180수 불계승 겸 이세돌의 1승 2패.
[1]
사실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바둑 재능이 없었던 것일 뿐, 이차돌 역시 어린 나이에 바둑책 한번 보지 않고 아마 5, 6단 수준이 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2]
역대 2위 기록.
공식 1위는 김인의 40연승.
[3]
이 때
LG배 결승 상대는
이창호 九단. 이창호 九단한테 이세돌 三단이 2:0으로 앞서나가면서 이창호의 시대는 끝났다며 도발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3, 4, 5국을
이창호가 다 이겨버리면서 이창호의 시대가 연장되는 충격의
리버스 스윕이 나온다.
[4]
단적인 예로 1989년 이창호 四단은 존재하던 모든 기전에 출전하고 승단대회까지 참여한 끝에 111국으로 연간 대국수 1위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다시 나와서는 안 될 혹사로 평가받고 있다.
[5]
1971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봉수 당시 二단이
조남철 당시 八단에게서 명인위를 따낸 것.
[6]
중국은 이전부터 비슷한 규정을 사용했는데, 세계대회 우승 1회 혹은 준우승 2회를 거두면 그 즉시 자동으로 九단이 되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제7회
응씨배 우승자인 판팅위 당시 三단. 17세의 나이에 九단이 되었다.
[7]
이세돌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이었던 제15회 후지쯔배에 이어 2연속 제패.
[8]
2003년 당시 역대 최단기간 九단 승단.
[9]
이세돌 본인도 '타도 이창호'에 매우 열심이었던 듯. 모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아직 입단하기 전 기원에서 바둑 공부할 때 이창호 9단이 가끔씩 기원에 와서 바둑을 둘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옆에 앉아 이창호 9단의 손만 빤히 쳐다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창호 9단은 추후 본인의 저서에서 라이벌을 소개할 때 요다 9단과 루이 9단과 같이 이세돌을 뽑았다.
[10]
이전까지 한국기원은 중국리그를 정식기전으로 인정하지 않아 한국리그 일정과 겹칠 때 대국일정을 전혀 조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리그와 중국리그 모두 계약을 맺은 이세돌은 예를 들면 중국리그 시합이 끝난 날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귀국하여 바로 한국리그 대국을 하는 등 꽤 고생을 했고 이는 당시 다른 정상급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리그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원은 중국리그 승리수당 10%를 공제하겠다고 주장하였고 이세돌은 일정조정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
바둑의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1인자이자 최고 인기기사인 이세돌의 바둑리그 참가는 필수적이었고, 심지어 신안군은 이세돌의 고향 비금도가 속한 기초자치단체로 그의 참가를 바라며 "신안 천일염" 팀을 창단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돌연 불참한 것이다.
[12]
그날 인터뷰에서는 초반에 밀려서 그냥 두는데에 의의를 뒀다고.
[13]
페이스북의 2011년 프로필 사진으로, 2011년 4월 구리 九단과의 제3회 BC카드배 결승 대국 당시에 촬영된 것. 머리를 손질하는 게 귀찮은지, 미용실을 가는 주기가 거의 1년이라 머리 길이가 장발급으로 길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14]
명인전 결승 5번기 + 바둑왕전 결승 3번기.
[15]
1997년 5월에
IBM에서 만든 인공지능
딥 블루가 러시아의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와 대전하여 2승 1패 3무로 승리한 적 있지만,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많고 복잡해서 웬만한 인공지능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고 여겨졌었고, 게다가 이번 판 후이와의 대국엔 5판 전승이라는 점에 더욱 놀라고 있다.
[16]
박정상 九단의 부인이다. "만약 자기 캐스터 차례에 이세돌이 알파고에 이긴다면 할 멘트"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미리 준비한 거 같다.
[17]
알파고가 경우의 수를 확률로 계산해 알파고가 승률이 10% 이하라고 생각하면 스크린에 팝업 창을 띄우고, 이에 따라 알파고의 대리 기사인
아자 황 박사가 실제로 돌을 거두게 된다고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밝힌 바 있다.
[18]
이는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MCTS)의 특징상 일어나는 일이다. 이 알고리즘하에서는 반상 위에 눈에 띄게 좋은 수가 없는 경우 악수와 나쁘지 않은 수 사이의 구분이 어렵게 된다. 바둑처럼 경우의 수가 많은 게임일수록 이 측면이 극대화한다.
[19]
이세돌과 구리는
Milly 몽백합 이세돌-구리 10번기라는 역사적인 대국을 했었다.
[20]
자신이 이겼던 4국이 아닌, 가장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국 패했던 5국을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으로 꼽은 것에 주목하자.
[21]
복기하면서 '이세돌 九단이 옳았던 것 같다. 더 나은 수가 안 보인다.'라고 평했다. 더불어 자신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둬도 알파고의
큰 그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더더욱 멘붕했다.
[22]
이후
넷플릭스에서 나온, 알파고의 개발자들과 구글 딥마인드 매치를 다룬 다큐멘터리 <
알파고(영화)>에 따르면 이세돌의 '
신의 한 수'라 불렸던 그 수를, 알파고가 백이었다면 둘 확률이 0.007%의 확률이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만명 중의 1명만이 생각할 수 있는 수였던 셈.
[23]
이미
한국기원에서 기원 발전기금으로 대회 상금의 10~15%를 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24]
한국기원 주최 대회의 상금 등 수입에서는 5%, 세계대회 등 외국 주최 대회 수입에서는 3%를 뗀다.
[25]
다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는 MLB 선수협회에서는 선수 연봉의 일정 %를 강제로 연금 명목으로 적립하게끔 하고 있다. 이러한 수단을 취하지 않으면 모든 MLB 출신 은퇴선수들에게 연금을 지급할 재원을 달리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액 연봉 선수가 훨씬 많은 연금 적립액을 뜯기고 있지만, 이 부분으로 문제제기는 없다. 프로기사회 또한 상금 수익으로부터 일률 공제한 비용 대부분을 은퇴기사 퇴직금(2016년 현재 약 4000만 원 상당)으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분노를 안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바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비롯, 한국 프로야구 선수협도 회비를 걷고, 무엇보다 노조도 조합비를 월급에서 공제한다. 이세돌 九단의 기사회 탈퇴 선언에 동료 기사들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다. 하지만 MLB 선수 협회는 기사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일단 선수협회는 MLB 구단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선수의 권익을 지킴과 동시에, 그 자금 운용이 투명하다. 또한 더 많은 연금을 적립한 은퇴선수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가는 구조이다. 기사회의 수뇌부는 사실상 기원의 수뇌부와 동일하여,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하기보단 기원과 항상 같은 의견을 공유해왔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도 행보를 보여왔다. 그 운영이 투명하지 않고 폐쇄적이라, 장부도, 정관도, 홈페이지도 공개되어있지 않은 단체이다. 만약 MLB 선수협회처럼 기사회가 운영되었다면, 이세돌이 탈퇴 요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세돌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이기 때문. 게다가 단순한 친목단체인 기사회는 법인인 MLB협회와 같은 역할을 넘어선 탈권적 영향력을 가질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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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이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기사회의 위세에 눌렸다기보단 당장 기사들도 그 기사회 퇴직금의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물론 기사회가 법인화도 되어있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조직인 것 또한 맞으나, 일단 한국기원 기사 수 자체가 500명이 채 안 되는 영세한 조직이라 수천억의 돈이 오가는 거대조직인 MLB 선수노조같은 경영을 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점은 일단 차치하고, 어쨌든 완전히 투명하지는 않을지언정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은퇴기사 퇴직금 등 기사 복지를 위해 쓰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 영세한 조직이라 위세고 뭐고 없어서 위세 때문에 말을 아낀다는 것은 추측에 가깝고 불투명하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그 혜택을 보긴 하고 사실 기사가 그리 잘 버는 직종도 아니기 때문에 많은 기사들은 그 돈이 필요해서 기사회의 편을 드는 것. 노조가 부패했을 수도 있고 분명 그렇다면 개혁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세돌의 주장은 노조는 필요없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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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휴직 사태 당시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는지라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한 듯하다. 당시 이세돌 9단이 랭킹 1위였다고는 해도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고, 징계의 이유도 표면상으로는 이세돌의 한국바둑리그 불참이었기 때문에 명분도 부족했던데다 당시에는 나이도 어렸다 보니 사실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들이받은 측면이 크다. 이 때는 바둑의 인기가 하향세였던 시기였고(세계 대회 우승이 한국 독식에서 점차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던 시기), 그걸 만회하기 위해 한국바둑리그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리고 2009년 바둑리그에는 이세돌 1지명권을 담보로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군에서 창단한 신안천일염 팀이 참가했기 때문에 바둑리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이세돌은 바둑계의 개혁을 바라는 바둑 팬들 입장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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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본인의 말로는 10번기 이후부터 프로기사회 탈퇴를 준비해 왔다고. 이미 명분은 있으니 자기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려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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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준우승자였던 조한승 기사도 준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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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시 팀 측에서는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하고 보수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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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법으로 문제가 있던 부분만 수정한 것이기에 사실상 총회에서 변경된 사항은 없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 노동법 위반 크리) 한발 물러서 양보한 것처럼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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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이세돌의 반응 : “정관에 관한 뉴스는 읽었어요. 대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이미 은퇴를 기정사실로 한 제게는 별로 상관없어요. 저도 바둑인이니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이미 제삼자예요. 앞으로 승부를 계속할 후배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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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는 정관에 관한 문제를 자체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한국기원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한국기원은 “대화로 해결하라”는 원론적인 대책만 내놓았다. 이후 별다른 해결책 없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세돌은 3년간 기사회가 가져간 자신의 대국 수입 공제액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진행했다. 이에 기사회와 한국기원은 정관 개정을 하면서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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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명인 타이틀전이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명인이었던 이세돌이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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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계의 독보적 1인자로 2017년에 연간 최다우승 신기록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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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커제를 꺾고 명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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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AI프로그램중에 알파고 다음으로 강하고, 한중일 프로들 모두 프로의 레벨을 넘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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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 탈퇴 후에도 이세돌은 국내외 기전에 참여했고 이 기간 기사회 공제금액은 약 3200만 원으로 알려졌다. 기사회의 요청에 따라 이 돈은 현재 한국기원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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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측은 3200만원이라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부당하다고 판단했기에 소송을 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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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요구에 정관을 개정했다. 개정 정관은 ▲본원이 정한 입단절차를 통해 전문기사가 된 자는 입단과 동시에 기사회의 회원이 된다 ▲본원이 주최, 주관, 협력, 후원하는 기전에는 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손을 들어준 것이고, 일각에서는 이세돌 은퇴 배경에 한국기원의 정관 개정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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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의 형인 이상훈 9단은 “7월에 정관이 변경되면서 대국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막혔고 예상보다 이른 은퇴를 하게 됐다”고 언론에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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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다른 한국 프로기사들은 한국기원에 찍히는게 무서운지 이세돌의 은퇴에 관해 코멘트 하는걸 엄청 꺼리고 있다. 외국기사들은 그나마 언급을 해주고 있는데, 그와 10번기를 뒀던 구리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웨이보에 계속해서 글을 남겼고, 시나바둑의 글을 보면 루이 9단과 중국의 신예 바둑기사들도 언급을 했다. 이후 시나바둑에서 이세돌 관련 특집기사까지 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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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스폰서인 브레인마사지에서 만든 안마의자도 선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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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바둑에선 많이 한다지만, 공개대국에서의 접바둑은 프로기사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안 하려는 경향이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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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국에서 승리하고, 2국에서 패배함으로써 1,4번 경우의 수를 따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