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倭놈일본어 표기로는 ウェノム. 한국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일본의 옛 이름인 왜(倭)에 고유어 놈
[
者]
을 붙인
욕설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한국어 욕 중 하나다.[1] 비슷한 말로는 중국에서 쓰이는
왜노([ruby(倭,ruby=Wǒ)][ruby(奴,ruby=nú)], 워누)가 있다. 실제 한국어에서는 다르지만 한국어 '놈'으로 번역되는 일본어 'やつ'의 한자가 '奴'이기 때문에 "왜놈'을 일본어로 '[ruby(倭,ruby=ウェ)][ruby(奴,ruby=ノム)]'라고 쓰기도 한다. 과거에는 "왜놈 순사 온다"가 우는 아이를 달래는 데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초등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에서 쪽바리와 함께 일본을 욕할 때 널리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쪽바리와 마찬가지로 그리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2]
실제 옛 국가 이름을 사용한 것뿐인데도 욕설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 조센징(조선인)'과 비슷한 뉘앙스이기도 하다. '조센징'도 '왜'와 마찬가지로 사전적 의미로는 단순히 한국의 옛 국호 조선을 붙인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맥락에 있어 이를 비속어로 취급하고 실제로 현대 일본에서도 맥락상 명백히 북한(북조선)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비하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기타
섬 오랑캐 또는 섬나라 오랑캐라는 뜻의 도이(島夷)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왜놈이나 일본놈, 쪽발이 등에 비해서는 매우 드문 편이다."귀국의 문집을 보다보면 일본에 대하여 반드시 왜적이라거나 야만이라고 하는데 참을 수 없다. 도쿠가와(이에노부) 장군도 가끔 조선의 문헌을 보고 군신들에게 조선은 이 정도로 우리를 미워하는가 하고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공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떤가!"
라고 호슈는 심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그 뜻은 쉽게 알 수 있으나 바라건대 귀국이야말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이 본 우리나라의 문헌이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글일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이고 종묘사직의 훼손, 영혼의 원한, 실로 만세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민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위로는 지존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욕하고 적으로 말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문장에 반영되어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여 부산에 왜관을 개설하여 교역하고 더구나 일본의 산하에는 히데요시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로 사절을 파견하여 화목을 도모하고 국서를 교환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지나간 원한을 다시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그의 반응을 보는 동안에 오사카에 도착하였다.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을 목격하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호슈 왈,
"그것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금도 일행의 종자들조차 일본 사람을 부를 때 왜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금부터는 일본사람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럼 귀국의 사람은 우리를 부를 때 당인(唐人)[3]으로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유한의 <해유록> 중에서
조선 시대에 왜(倭)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왜놈이란 말은 엄연히 멸칭으로 사용되어서 논란이 많았듯이
조선통신사들이 왕래하던 18세기에도 조선 사람이 일본인을 '
왜인'으로 부르는 것에 일본인들 스스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당대 일본 최고의 유학자로 평가받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불만을 제기하자 당시 조선통신사 일행이었던 신유한은 "왜 일본인은 조선 사람을 보고 '당나라 사람'이라 부르느냐!"라고 맞수를 놓았는데 이에 호슈는 "조선이 중국에 못지 않게 문화가 뛰어나서 그러하다"라고 변명하였다. 노골적인 멸시가 아닐 뿐이지 '당인'이라는 표현이 조선을 돌려 무시하는 표현인 것은 맞다. 전근대 일본에서 '당'은 중국을 의미했다. 그리고 당시 일본에선 아시아에 인도, 중국(당), 일본의 3개의 독자적 문명권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호슈는 심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그 뜻은 쉽게 알 수 있으나 바라건대 귀국이야말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신이 본 우리나라의 문헌이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글일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이고 종묘사직의 훼손, 영혼의 원한, 실로 만세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민은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위로는 지존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욕하고 적으로 말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문장에 반영되어도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여 부산에 왜관을 개설하여 교역하고 더구나 일본의 산하에는 히데요시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로 사절을 파견하여 화목을 도모하고 국서를 교환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지나간 원한을 다시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그의 반응을 보는 동안에 오사카에 도착하였다.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을 목격하고 머리가 쭈뼛해짐을 느꼈다.
호슈 왈,
"그것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금도 일행의 종자들조차 일본 사람을 부를 때 왜인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금부터는 일본사람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럼 귀국의 사람은 우리를 부를 때 당인(唐人)[3]으로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유한의 <해유록> 중에서
이런 인식 하에서 조선인을 '당인'으로 부른 것은 조선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중국의 일부로 격하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서로 다른 걸 알면서도 튀르키예인에게 이란인이라고 한다든가, 백인들은 전부 미국인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냥 무식 내지 자기들 편의에 따른 것이라 정당한 반박은 아니지만 18세기에도 이러한 호칭의 사용을 통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서로의 인식에 대해 많은 간극이 있었던 듯하다. #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구입한 일본인 노예들을 왜놈은 아니지만 '왜노(倭奴)'라고 불렀다. 이는 실록의 기록들에서도 꾸준히 확인된다. #, 왜인 노비를 사는 것을 금하다,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왜노(倭奴)를 궁벽한 곳에 옮겨 두게 하다, 전주 판관 유서종이 왜인을 끌어들여 말썽을 일으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