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0-15 18:34:07

와카쓰키 레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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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쓰키 레이지로
[ruby(若槻 禮次郞, ruby=わかつき れいじろう)]
파일:Reijiro_Wakatsuki.jpg
일본제국 25,28대 내각총리대신
한문 若槻禮次郞
영문 Wakatsuki Reijirō
출생 1866년 3월 21일 에도 막부 이즈모국 마츠에
사망 1949년 11월 20일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즈오카현 이토시
정당 입헌민정당
학력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직업 정치가
총리
재임
25대 1926년 1월 30일 ~ 1927년 4월 20일
28대 1931년 4월 14일 ~ 1931년 12월 13일

1. 개요2. 생애
2.1. 초기2.2. 1차 내각2.3. 2차 내각2.4. 이후
3. 수훈4. 주요경력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관료. 제 15대, 17대 재무 장관을 지냈고, 이후 제 25대, 28대 총리를 역임했다. 입헌 민정당[1] 출신이다. 1차 내각(25대)은 1926년 1월 30일 ~ 1927년 4월 20일까지였고, 2차 내각(28대)은 1931년 4월 14일 ~ 1931년 12월 13일까지 유지되었다.

2. 생애

2.1. 초기

이즈모노쿠니(出雲国) 마쓰에(松江)[2]에서 태어났다. 당시 시마네현을 다스리고 있던 마쓰에번 소속이었는데, 많은 일본 근대화시기 정치인들처럼 좋지 않은 무사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나, 지금의 도쿄대학인 도쿄 제국대학 테크를 타서 대장성에까지 간 사람 중 한 명이다. 전간기 일본 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경제관료이자 정치가이며, 몇 안되는 평화주의자로서 유명하다.

2.2. 1차 내각

집권 직후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다. 검찰에게 수사를 받으면서 위증죄로 기소를 당하는 등 정치적 수모를 겪은 끝에 무죄가 되었으나, 이미 내각의 도덕성은 큰 타격을 입은 뒤였다. 1926년 12월 25일 다이쇼 덴노가 사망하고 히로히토 친왕이 즉위함에 따라 다이쇼에서 쇼와로 연호를 개원했으며 새 시대가 열렸으나, 예산을 통과시킬 수가 없어 곤경에 처한 와카쓰키는 정우회의 다나카 기이치와 타협을 시도하여, 새해 1월 7일 귀족원의 거물인 아오키 노부미쓰 자작을 통해 예산만 넘겨주면 알아서 물러가겠노라는 의사를 밝혔고, 다나카가 이를 받아들여 예산이 통과되었으나, 정작 예산이 통과시켰더니 이번에는 금융위기가 터져서 물러날 타이밍이 보이질 않았다고 한다. 와카쓰키는 일단 터진 봇물부터 막고 5월-6월 즈음에 사임하려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정우회에서는 그보다 일단 약속부터 지키라며 협력을 거부하고 정부가 거짓말쟁이라며 욕을 해대던 판이었다.

이 금융위기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었던 1927년 3월 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와타나베 은행이 실제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재무장관 카타오카 나오하루도쿄 와타나베 은행이 드디어 파산을 했습니다. 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1차대전 이후 무역량의 감소, 관동대지진의 여파 등 불안정했던 당시 경제 상황과 맞물려 경제 불안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쇼와 금융공황이 발생하였다. 정우회의 태도로 보아 야당이 의회에서 협력을 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와카쓰키는 의회를 제끼고 직접 천황을 통해 칙령을 내려서 일본은행을 위한 구제금융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의회가 멀쩡히 있으니 의회에서 상의하지 무슨 칙령을 내리냐며 추밀원이 위헌 딱지를 놓았다. 와카쓰키는 정책 수행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 이로 인해 내각 총사퇴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출범한 다나카 내각은 와카쓰키와 똑같은 내용의 구제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멀쩡히 잘 통과가 되었다. 그래서 법안을 제출조차 하지 않았던 와카쓰키의 실책이라며 구설수가 많았다.

이후 1930년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수석대표로 참여해서 각국 군비 축소를 주장했는데, 이로 인해 일본 국내의 군부 및 우익 세력에게 단단히 찍히게 된다.

2.3. 2차 내각

1931년 다시 총리대신 직에 올랐으나, 그해 9월 18일 일어난 류탸오후 사건을 계기로 만주사변이 발생하였다. 당시 일본 국내의 강경파는 불경기에 대한 돌파 수단으로 만주 및 몽골에 대한 침략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는데, 와카쓰키는 이에 거세게 반발하였다.[3] 의회를 무시하고 이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군부, 특히 육군[4]은 노골적인 항명을 하였으며, 심지어 내각의 일원이었던 내무대신 아다치 겐조가 "거국일치"를 주장하기에 이르자 내각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깨닫고 사퇴하게 된다.[5]

2.4. 이후

침략 시대와 제2차 세계 대전 시대를 거쳐 계속 반전 운동을 해 왔으나, 영향력이 미미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을 끝낸 이후는 중신 회의의 일원이 되어 쇼와 덴노의 측근으로 지냈으며,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는 시기에 와서는 도조 히데키의 경제 파탄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1945년에는 일본의 패망이 짙어질때, 당시 스즈키 간타로 총리에게 일본의 항복을 건의하였으며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도쿄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전쟁의 시대를 막지는 못했지만 평화주의자로서 전후 그의 식견은 재평가를 받았다.

3. 수훈

4. 주요경력

일본 역대 내각총리대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Emblem_of_the_Prime_Minister_of_Japan.svg.png
24대 25대 26대
가토 다카아키 와카쓰키 레이지로
( 1926년 1월 30일 ~ 1927년 4월 20일)
다나카 기이치
27대 28대 29대
하마구치 오사치 와카쓰키 레이지로
( 1931년 4월 14일 ~ 1931년 12월 13일)
이누카이 쓰요시


[1] 현재의 자유민주당의 전신 격이다. [2] 시마네 마쓰에 [3] 당시 중국정부에 만주침략에 대한 2차성명으로 군대철수까지 제안할 정도였다. [4] 만주사변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애초에 그 자체가 육군의 자작극이었으니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5] 생각해보면 그 자신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후임이었던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대신은 군부의 반발 때문에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