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09:28:06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공녀

<colbgcolor=#FFECB3><colcolor=#000000> 프로이센 왕국의 왕세자비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Prinzessin Elisabeth Christine
von Braunschweig-Wolfenbüttel
파일:Elisabeth_Christine_Ulrike_von_Braunschweig-Wolfenbüttel_(Ziesenis)-01.jpg
이름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울리케
(Elisabeth Christine Ulrike)
출생 1746년 11월 8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볼펜뷔텔
사망 1840년 2월 18일 (향년 93세)
프로이센 왕국 슈테틴
배우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1765년 결혼 / 1769년 이혼)
자녀 프리데리케 샤를로테
아버지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
어머니 프로이센의 필리피네 샤를로테
형제 카를 2세, 게오르크 프란츠, 조피,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안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알브레히트 하인리히, 루이제, 빌헬름 아돌프, 프리데리케, 아우구스타 도로테아, 막시밀리안 율리우스 레오폴트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결혼2.3. 외도와 이혼2.4. 말년
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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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첫번째 아내이자, 프로이센 왕세자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혼하여 정식 왕비가 되지는 못하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와 프로이센의 필리피네 샤를로테의 3녀이자 7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4녀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동생이기도 했다.

2.2. 결혼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조카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로이센의 왕세자가 되었다.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가문에서는 문란하게 놀기 좋아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의 혼처를 매우 걱정하였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이자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왕비의 조카이기도 했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적합한 신붓감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결혼식은 1765년 7월 14일 볼펜뷔텔에서 거행됐다.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매우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춤도 잘 췄다. 또 매우 활동적인 성격으로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고 한다. 여성에 관심이 없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조차도 이러한 조카며느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후계자 문제가 시급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조카며느리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왕세자비가 빨리 아들(종손자)을 낳아주길 바랐다. 1767년 딸 프리데리케 샤를로테 공주를 낳았을 때 프리드리히 대왕은 아이의 성별이 딸인 것을 실망했으면서도, 언젠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생각해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에게 4만 탈러 가량의 아침 식사를 선물했다.

2.3. 외도와 이혼

프리드리히 대왕은 첫 딸을 낳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얼른 후계자를 낳아주길 바랐지만,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의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복수심으로 여러 남자들과 바람을 피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맞바람을 피고 있는 두 사람을 완곡하게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 사이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피에트로라는 음악가의 아이를 임신해버렸다. 외간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피에트로와 함께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일 무도회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가 이 계획을 알고,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에게 이혼하자고 말했다.

조카며느리를 불쌍하게 생각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처음에는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는 사생아를 임신한 왕세자비와 이혼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피에트로는 체포되어 참수당하였고, 두 사람의 외도를 도와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오빠 빌헬름 아돌프는 프로이센 왕국군 장교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약물로 낙태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 4년만인 1769년 4월 18일 이혼했다. 후계자 문제가 시급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는 이혼한 지 3개월 만에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카 루이제와 재혼했다.

2.4. 말년

이혼 후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친정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가문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고, 퀴스트린 요새로 추방당했다가 슈테틴에 수감됐다. 외향적이었던 성격인 그녀가 감금되어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베네치아로 탈출하려고도 시도해 보았지만, 조력자가 사라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결국 1774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수감 환경을 조금 완화시켜주긴 했다.

1786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사망하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즉위했다. 이후 전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를 찾아왔는데, 이혼한 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악감정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그녀의 수감 환경을 매우 개선시켜 주어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방문객을 맞이할 수도 있었고 승마도 즐길 수 있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슈테틴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 떠나도록 해주려고 했지만, 이미 슈테틴에서의 삶이 적응된 그녀는 제안을 거절했다. 1806년 프랑스군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그녀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근처의 작은 시골에 머무르다 다시 슈테틴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죽을 때까지 딸 프리데리케 샤를로테와 가족들을 볼 수 없었다. 이후 부모,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딸이 모두 죽고 난 1840년 무려 93세[1]를 일기로 사망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여공작
(Duchess Elisabeth Christine
of Brunswick-Wolfenbüttel)
<colbgcolor=#fff3e4,#331c00>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
(Charles I,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colbgcolor=#ffffe4,#323300>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페르디난트 알브레히트 2세
(Ferdinand Albert II,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베페른 공작
페르디난트 알브레히트 1세
(Ferdinand Albert I,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Bevern)
헤센에쉬베게의 크리스티네 공녀
(Princess Christine of Hesse-Eschwege)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안투아네테 여공작
(Duchess Antoinette of Brunswick-Wolfenbüttel)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루트비히 루돌프
(Louis Rudolph,
Duke of Brunswick-Wolfenbüttel)
외팅겐외팅겐의 크리스티네 루이제 공녀
(Princess Christine Louise of Oettingen-Oettingen)
프로이센의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Philippine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ederick William I)
프리드리히 1세
(Frederick I)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공녀
(Princess Sophia Charlotte of Hanover)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Princess Sophia Dorothea of Hanover)
조지 1세
(George I of Great Britain)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Princess Sophia Dorothea of Celle)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요크와 올버니 공작부인 프리데리카 샬럿
(Princess Frederica Charlotte, Duchess of York and Albany)
1767년 5월 7일 1820년 8월 6일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더릭 왕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딸 프리데리케 샤를로테가 유일했으며 이후 조지 3세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샤를로테의 차남 요크와 올버니 공작 프레더릭 왕자와 결혼하면서 영국식인 요크와 올버니 공작부인 프리데리카 샬럿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인 프레더릭 왕자는 공공연히 정부를 두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는 신혼 초부터 안 좋았고, 결국 프리데리케 샤를로테가 슬하의 자녀없이 사망하면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직계는 그대로 끊겼다.

[1] 의붓아들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같은 해에, 정확히는 약 3개월 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