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20:50:59

암스트롱포

화포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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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armstrong.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rmstrongRifle.jpg
남북전쟁 당시 8인치 모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agahan_Armstrong_gun_used_at_the_Battle_of_Ueno_against_the_Shogitai_1868.jpg
일본 신정부군에 의해 사용된 12파운더 모델. 76mm 구경.

Armstrong Gun
1. 개요2. 특징3. 등장매체4. 둘러보기

1. 개요


19세기 영국 윌리엄 조지 암스트롱이 1855년 발명한 후미장전식 강선포. 빅 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개발초기형은 강선이 없었으나 이후 개량을 하면서 강선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2. 특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BL_7_inch_Armstrong_breech_diagram.jpg
암스트롱 포의 구조. 모델은 110파운드 해군용이지만 원리 자체는 같다. 나사산과 약실 사이에 끼워진 것이 바로 벤트 피스.

초창기 후미장전식 화포인만큼 시스템이 특이했는데 폐쇄기를 풀면 먼저 벤트피스(vent- piece)를 떼어낸다.[1] 그 다음 폐쇄기 중앙의 구멍으로 포탄과 장약을 장입한다. 약실까지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다음 벤트피스를 다시 끼우고 폐쇄기를 돌려 장입구를 막으면서 벤트피스를 단단히 밀어 약실을 폐쇄한다. 그 다음 벤트피스에 점화 침(Primer tube)[2]을 끼우고 줄을 달아 세게 당겨서 격발.

암스트롱 포를 알린 일본의 영향으로 흔히 8&12파운드 야전포를 암스트롱 포로 인식하지만 암스트롱 포의 특징은 장전 및 격발 방식에 있고 종류는 6파운드(구경 64mm) 야포에서 110파운드(구경 180mm)의 대형 함포까지 존재했다.

1858년, 영국군의 제식포에 채용되었고, 그 특허는 모두 영국 정부에 귀속되어 수출금지품으로 지정되었으며, 영국의 신병기로서 부상했지만 사쓰에이 전쟁 당시 전투에 참가한 21문으로부터 총 365발을 발사되었는데 28번이 발사 불능 상태에 빠졌고, 주력 유리아라스에 탑재된 1문에서는 폭발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3]

따라서 빠르게 신뢰성을 잃어버렸고, 영국에서 주문이 취소되고, 생산이 중단되어 과도기적인 무기로 사라져 갔다.

성능은 전장포에 비해 딱히 대단하지 않았다. 후장식 화포류의 최대 장점인 장전 속도조차 복잡한 구조 때문에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고,[4] 구조적으로 전장식 대포가 더 폐쇄성이 좋고 강하기에 같은 무게라도 더 긴 사거리를 얻을 수 있어서 군대는 19세기 말이 될 때까지 암스트롱 포를 완전히 채용하지는 않았다. 19세기 말의 암스트롱 포는 인터럽티드 스크류를 채용한 신구조로 변경되어 생산되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독자적인 후장식 포를 각자 생산하여 별 의미 없이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후 암스트롱 포는 수출 금지가 해제되어 당시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에 수출되었다. 남북 전쟁이 끝나자 에도 막부 말기의 일본에 매각되었고, 조슈 정벌 보신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막말 시기에 도입된 최신형 서양 무기 중 하나라서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으며, 비슷한 시기를 다른 작품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막부군과 유신 신정부군의 보신 전쟁에서 높은 위력을 자랑하며 쓰였다. 우에노 전쟁에서는 대대적인 측면 지원을 통해 신정부군과 격돌한 창의대의 격렬한 저항을 분쇄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사에서도 등장하는 대포인데, 병인양요시기에 프랑스군이 썼던 대포가 바로 암스트롱포였다.[5] 조선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무기의 격차를 실감했고 군대를 강화하면서 가장 먼저한 것이 개인화기를 화승 조총에서 동화모 조총으로 바꾸고 주력대포를 전장식 대포 후장식 대포[6][7]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이때 조선이 도입한 후장식 대포가 암스트롱포였다. 문제는 조선은 기술적인 문제[8]와 가격 문제로[9]로 암스트롱포를 대량으로 생산[10]하지 못했고 당시 이미 도태병기였던 암스트롱포보다 기술적으로 우수한 75mm 크루프 포를 수입하는 쪽으로 장비도입정책을 선회한다. 단 조선의 재정상황상 비싼 75mm 크루프 포를 사는 것은 쉽지 않아서[11] 크루프 포를 도입하기 전까지 암스트롱포를 계속 구매해서 비축했기 때문에 개화기부터 대한제국 때까지 주력대포는 암스트롱포였다. 성능부족으로 지방군의 무장으로나 쓰였고 대부분의 암스트롱포는 치장물자신세였다. 동학농민운동 시기에도 조선군 포병이 동원되었는데, 조선군 포병들이 애용한 무기는 암스트롱포가 아니라 개틀링 기관총이었다. 중앙군은 일찍이 암스트롱포를 도태시키고 크루프 포를 구매해서 사용했는데, 이 물건은 1차 세계대전 동맹국의 주력포로 사용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도 보조용 포로써 사용될 만큼 명작이었기에 대한제국이 면허생산에 실패한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12][13] 경술국치 이후 아무짝에 쓸모없던 암스트롱포는 일본제국이 전부 폐기처분한다. 따라서 구한말에 우리민족이 운용했던 암스트롱포는 현재 남아있는 것이 없다.

3. 등장매체

파일:external/www.imfdb.org/LS_Howitzer.jpg
파일:external/www.imfdb.org/Ls_Howitzer_2.jpg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일본의 신정부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사용하는 포가 바로 암스트롱포이다.

보신 전쟁을 배경으로 한 토탈 워 사가: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도 등장한다. 게임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가히 결전병기. 같이 등장하는 패럿포가 전장식 강선포인데 비해 후장식 강선포라 명중률도 높고 장전은 여느 전장식 소총보다도 빠르다! 기본 탄약이 고폭탄인 것도 흉악한데 전작이 포도탄을 사용한데 비해, 공중 폭발하는 유산탄을 사용하므로 살상력도 배가 된다.

AC/DC의 노래인 빅 건에서도 표지 그림에 암스트롱포가 쓰였다.

은혼에서는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로 패러디되었다.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에서는 시시오 마코토의 철갑선 연옥의 주포이기도 했고, 쿠지라나미 효고가 오른팔에 달고 사용하기도 했다.

4. 둘러보기

대한제국군 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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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기 <colcolor=#ffbc00> 볼트액션 소총 <colbgcolor=white,#191919> 게베어 1871, 그라 소총, 무라타 13년식, 베르단, 30년식 소총
단발 소총 레밍턴 롤링블럭, 스나이더-엔필드
권총 C78, M1879, MAS 1873, 르벨 리볼버, 웨블리 리볼버, 나강 M1895, 26년식 권총, 마우저 C96
지원화기 기관총 M1883 개틀링, 맥심 기관총
화포 암스트롱포, 크루프 포. 빅커스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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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벤트피스가 점화구와 약실 폐쇄를 담당하는 진짜 폐쇄기이고, 후방에서 돌려서 떼어내는 폐쇄기는 그냥 구멍 뚫린 나사나 다름없는 구조다. 벤트피스는 그래서 포신 뒤끝에 바로 끼워지는 게 아니라 좀 더 앞쪽에서 위로 끼우고 폐쇄기를 돌리면 폐쇄기가 벤트피스를 단단히 밀어 약실을 폐쇄하게 되는 구조다. [2] 끈을 달아 세게 당기면 점화구와 마찰하면서 불꽃이 발생, 장약을 점화시켰다. 암스트롱 포에 쓰던 건 점화약을 약간 넣어 불발률을 줄이고자 한 구조였다. [3] 그 원인은 장전을 위해 가동시키면 포통 뒤쪽에 거대한 팽창 계수를 가진 화약이 가스의 압력을 받기 때문에 아직 생산 기술이 미숙한 철제(강철이 아닌 단조) 꼬리 마개가 쉽게 파열되었기 때문이다. [4] 현대 야포에서 채택한 나사식 약실 폐쇄 법은 인터럽티드 스크류(Interrupted screw) 방식으로 한 바퀴도 안 돌리고 곧바로 해제가 가능하지만 암스트롱 포는 얄짤없이 끝까지 다 돌려서 풀어야만 장전이 가능했다. 거기에 나사만 돌린다고 끝이 아니었으니. [5] 신미양요 때의 미군은 달그렌 대포를 썼다. 개인장비도 프랑스군은 전장식 퍼커션 캡 화승총을 썼던 반면 미군은 초기형 탄피 소총인 후장식 레밍턴 롤링블럭을 사용했다. 병인양요( 1866년)와 신미양요( 1871년)의 사이는 고작 5년이지만 미군은 무기를 1~2세대 진보한 것으로 가져왔고 이러한 차이는 신미양요 당시 조선군의 대규모 피해를 야기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6] 물론 조선도 불랑기포라는 후장식대포가 있었지만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거리가 매우 짧았다. 미군과의 포격전에서 참패를 한 이유 중 하나가 사거리 때문이었기 때문에 포를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7] 다만 조선도 병자호란의 경험으로 속사가 가능한 후장식 대포를 주력으로 삼고자했고 조선군의 핵심주력은 후장식인 불랑기포였다고 한다. 두 차례의 양요에서 강화도의 부대가 주력으로 사용한 포가 홍이포였을 뿐이다. [8] 조선의 기술이 낙후해서 생산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생산단가를 봤을 때, 암스트롱포가 이미 세계적으로 도태병기취급이었기에 암스트롱포를 생산할 가치가 없었다. 조선의 개화는 1875년인데 이미 1860년부터 도태병기취급받고 있었다. [9] 조선은 초기형 암스트롱포의 주요 재료인 구리가 항상 부족했다. [10] 조선도 1887년에 세워진 기기창에서 자체적으로 2문을 생산한 바가 있다. 하지만 독일제국에서 더 진보한 75mm 크루프 포가 이미 1860년에 개발되었고 1870년에는 외국에 팔고 있었다. 조선은 도태병기인 암스트롱포의 자체생산 대신에 개틀링 포 크루프 포를 수입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11] 어떤 군용 장비든 어느정도 물량이 갖춰져야 위력을 발위할 수 있다. [12] 아이러니하게도 육군에 한정하면 일본제국의 무장수준보다 대한제국의 무장수준이 훨씬 월등했는데, 일본은 이미 징병제를 도입해서 다수의 병사들에게 싼 무기를 양산해서 들려준다는 기초적인 교리를 적립한 상태였고 대한제국은 행정력의 부재로 세금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판국에 근대적 징병제를 도입하는데 무리가 있던 만큼 무기를 최신화해서 전력을 끌어올리자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개틀링 기관총 맥심 기관총 그리고 75mm 크루프 포 모두 대한제국이 비싼 값에 사서 일본제국에 고스란이 넘겨주게 된다. [13] 여담으로 대한제국은 외교적 친교의 표시로 해당국의 최신무기를 도입하는 정책을 계속했는데, 여러나라에서 도입하는 바람에 같은 나라의 군대에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 참사가 벌어졌다. 대한제국 성립이전에 이미 볼트액션 소총을 주력소총으로 무장했으나 그러면 뭐하겠나 부대만 바뀌어도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 것을... 일본제국도 대한제국의 무기를 압수한 뒤 고가치 무기를 제외하고 전부 도태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