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植 物 學 / Botany식물학은 식물형태학, 식물생리학, 식물분류학 등을 포괄하는, 간단히 말하자면 식물에 대해 연구하는 생물학의 하위 학문이다. 영명인 Botany는 목초지, 풀, 여물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βοτάνη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배울 수 있는 학과로는 생물학과, 식물자원학과, 식물의학과, 조경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2. 역사
2.1. 근대 이전
자세한 내용은 본초학 문서 참고하십시오.식물학은 아주 오랜 옛날에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약초를 분류하는 본초학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대의 식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테오프라스토스가 저술한 식물 분류에 관련된 저서들에 기반한다. 이후 대 플리니우스가 다시 정비하였지만, 식물에 대한 고찰이 없는 단순히 나열에 불과했고, 중세에까지 식물학은 다시 본초학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렇게 다져진 기본에 새로운 정보들을 추가하는 수준이었으나, 레온하르트 푹스가 약용 식물이나 독초가 아닌 일반 식물을 다루기 시작했고[1] 새로운 식민지들이 개척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식물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향신료 때문에 새로운 식물의 정보를 요구하는 큰 손들이 늘어났으며 지식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생물들을 더욱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연구할 필요가 제기되었으며,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을 나누는 결정적인 분류법을 체계화한 것은 식물학의 대가이자 17세기의 생물학자 존 레이에서 시작해. 현대적인 식물분류학의 시작은 18세기의 카를 폰 린네라고 본다.
2.2. 근대
식물생태학의 역사는 진화생물학의 대가 찰스 로버트 다윈을 빼놓을 수 없다. 다윈은 비록 비글호에 승선할 때 까지는 스스로 "나는 민들레와 데이지도 구분 못 한다."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으나 말년 20년동안에는 식물을 주로 연구했으며, 특히 식충식물과 난초가 그의 전문이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된 엄청나게 긴 밀선을 지닌 난초에 대해, 그만큼 혀가 긴 나방이 존재할 것임을 예측했고, 다윈 사후 들어맞았다.식물생리학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짧아서, 식물생리학의 경우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1627년에 수행한 수경재배에 관한 연구를 최초로 보고, 본격적인 연구는 18세기가 되어야 활성화된다. 식물유전학은 당연히 그레고어 멘델의 19세기 연구에 기반하며, GMO 등이 생겨난지는 당연히 백 년도 되지 않았다.
식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데이비드 애튼버러에 따르면 식물학자들은 대체로 인내심이 특히 강하다고 한다. 움직임이 거의 없거나 느린 식물을 연구하다 보니 그럴지도.
3. 과제
간단히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을 분류하고(식물분류학) 그 식물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사하고(식물지리학) "식물은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식물발생학) 야생에 있는 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다른 생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찾으면서(식물생태학) 식물은 어떻게 생명현상을 일으키고 있는지 알아내고(식물생리학) 인간의 필요식물기능유전체학 등의 연구 분야도 있다.
4. 응용 학문
4.1. 식물분류학
새로운 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견되고 있다. 수많은 식물분류학자들또한, 유전자 분석 기법이 발달하면서 이전까지 가까운 친척으로 생각되었던 식물들이 사실은 남남이라던가, 반대로 남남이었다고 생각되었던 식물들이 사실은 친척이었다던가[2] 하는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계통분류학 항목 참조
4.2. 식물생리학
식물호르몬과 같은 물질들을 사용해 식물들의 행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농업 분야에서 이러한 물질들을 활발하게 사용하게 되었다.주요 연구과제는 다음과 같다.
4.3. 식물유전공학
윤리적 문제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인해 우리가 흔히 보는 채소에서는 GMO를 쉽게 찾을 수 없지만, 독소를 직접 생산하여 해충을 방제하는 식물 등이 수십 년 전부터 개발되어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데에 널리 쓰이고 있다. 사실 유전자 변형 생물 자체가 동물보다는 식물에 더 적용하기 쉬운 편이다. 특히 배수성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경우 식물에 더욱 적합하다.자세한 내용은 생명공학, 유전공학 항목 참조
5. 관련 문서
[1]
레온하르트 푹스는 당시 유행하던 발한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등, 의사였으나 신기하게도 일반 식물도 다루는 것을 고집했다. 특히 의사나 약초학자들에게 식물을 직접 관찰할 것을 요구했다. 약초꾼들이나 약초캐는 아낙을 못 믿겠다는 이유에서이다. 덕분에 레온하르트 푹스는 식물학의 아버지 중 하나가 되었다.
[2]
예를들면,
알로에속에 있던 식물들이 비슷하지만 남남이라서 알로에족으로 분리되었고,
산세비에리아속이
드라세나속과 똑같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산세비에리아속 전체가 드라세나속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