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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생도 | 석가출가도 |
1. 개요
釋迦誕生圖·釋迦出家圖. 조선 전기인 1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한국의 불화 2점. 세조 시기 또는 성종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석가탄생도는 일본 후쿠오카의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되어 있고, 석가출가도는 독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원래는 두 회화가 한 세트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찢어져서 각각 다른 나라로 유출된 것이다. 두 점 모두 해외에 유출되어 있어 인지도는 매우 낮으나 몇몇 한국인들에겐 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된 조선 전기의 경복궁을 묘사한 그림 중 하나로 유명하다.
2. 제작 시기 논란
- 이 단락과 내용 단락은 현재 논란 중인 임진왜란 전의 경복궁을 그렸다는 회화 "대출행(大出行)" 분석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회화의 대략적인 제작 연대와 장소는 15세기 중후반의 조선임이 확실시되는데, 다음과 같은 근거가 존재한다.
- 이 그림은 산수화의 구도와 필법 등을 볼 때 15세기 중엽 한국의 작품이 확실하다.
- 전각 건물 기둥 장식(공포)은 1488년 중창한 남대문의 공포와 비슷해 그림은 아무리 늦어도 15세기 후반을 넘지 않는다.
- 이중 채색법이나 구름 윤곽에 금물을 살짝 덧입히는 채색 기법 또한 15세기 중엽만의 특징이다.
- 칠보수레를 이끄는 하늘 신령, 새로 생긴 네개 우물, 숱한 동물들의 출산 등 석가 탄생의 이적들이 찬불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며, 이러한 서술과정은 오직 한국에서만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왕의 치세에 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성종 시기에 연산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불교 회화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와 할머니인 정희왕후 등이 독실한 불교 후원자였음을 감안한다면, 〈석가탄생도〉는 분명히 세자인 연산군의 탄생을 기리는 기념비적 궁중 발원도였으리라는 것이다. #
또한 세조 시기에 왕실의 불교 문화 중흥 차원에서 만들어진 불교 회화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볼 때 조선 왕조에서 주도하여 만든 왕실 판본이 확실한데, 성종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억불 군주로 꼽히는 국왕이다. 아무리 세자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불교 억압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성종이 이를 추진했을 가능성은 낮다. 반대로 세조의 경우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 숭불 군주로, 수많은 불교 작품을 만들고 지원한 전과가 있다. 아울러 이 회화들은 조선 세조가 직접 편찬한 월인석보 내의 삽화와 구도와 기법 등이 거의 동일한데, 특히 월인석보의 비람강생(毘藍降生) 삽화와 석가탄생도의 모습의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미지 출처
3. 내용
전체적인 그림의 내용은 세조가 직접 편찬했던 석보상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인터넷 상에서는 세조~성종 대의 경복궁을 묘사한 작품으로 더 유명하다.이 그림이 임진왜란 이전의 옛 경복궁을 보고 그렸다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석가출가도를 보면 성문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조선에 성문이 있었던 궁궐은 단 하나, 바로 경복궁 밖에 없었다. 당시 창덕궁과 창경궁은 궁궐을 담장으로 두르고 있긴 했지만 성문은 없었다.
- 전각 건물의 기둥 장식(공포) 등은 1488년에 중창한 숭례문의 공포와 매우 유사하다.
- 그림에 등장하는 왕이 조선 초 왕의 실제 복식을 그대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면복 특유의 12개 문양까지 일일이 그려넣었다. 즉 실제 조선 시대 왕의 모습을 그대로 참조해 그린 것이다.
- 회화의 궁궐 지붕에 현어(懸魚)가 그려져 있다. 현어는 임진왜란 이전의 건물에만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궁궐에서만 사용되었다.
다만 여기에 반대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이 그림에 등장하는 궁궐들은 엄청나게 화려한 황금색 기와와 청기와를 쓰고 있다. 청기와야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황금색 기와는 천자의 나라에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후국인 조선이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결론적으로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 묘사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문화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 기타
이 중 일본으로 건너간 석가탄생도는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수많은 모사본이 나왔고, 임진왜란 이후 제작된 일본 불화들의 모본이 되었다. #5. 외부 링크
- 현재 논란 중인 임진왜란 전의 경복궁을 그렸다는 회화 "대출행(大出行)" 분석
- 부처님 일생 도상화한 팔상도. 구성 순서는 ‘석보상절’과 동일. 장면 4개로만 구성한 남방 불교
- 상서로운 빛의 탄생 <석가탄생도>
- 부처님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리다. 월인석보와 석씨원류응화사적
- 조선 초 석가탄생도 일본에 영향
- 日 후쿠오카 본악사(本岳寺) 소장 '석가탄생도'(상)
- 日 후쿠오카 혼카쿠지 소장 ‘석가탄생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