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2:08:00

보스호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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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과 소련의 유인 우주진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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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계획
1958~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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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보스호드 1호3. 보스호드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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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oskhod-1__1.jpg
Восход
Voskhod('일출'이라는 뜻이다.)

1. 개요

보스토크 계획에 이은 소련의 두번째 우주 계획.

미국 제미니 계획에 대항하는 우주 미션이었다. 제미니 계획이 먼저 수립되었으나, 실제로 미션이 실행된 것은 보스호드 계획이 먼저였다. 제미니 계획의 본 미션인 3호가 발사되기도 전에 보스호드 2호가 발사되었고, 나머지 계획은 모두 취소되며 조기 종료되었다.

우주선 자체는 보스토크를 개량한 것으로, 구조적으로는 별난 게 없었다. 하지만 지구 귀환시 낙하 속도가 너무 빨라지지 않도록 하는 역추진 로켓이 설치되어 보스토크와 달리 비행사가 우주선에 탄 채로 육상에 착륙할 수 있었다.

총 2회의 미션이 있었다. 단 2회의 미션이지만 각각 우주개발사에 큰 의의가 있는 우주비행이었다. 보스호드 1호에서는 최초로 다인승(3인) 우주비행이 성공했고, 보스호드 2호에서 최초로 우주유영( EVA)을 수행했다.

원래는 6호까지 계획이 있었지만, 이미 제미니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다인승 비행과 우주유영까지 실시하며 소기의 성과가 어느 정도 달성되자 나머지는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 계획인 소유즈 계획을 조기에 시작하게 된다.

보스호드 1, 2호는 미국이 머큐리 계획을 조기 종료하고 제미니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2년 간의 공백기에 수행되었다. 미국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에 소련은 보스호드 1, 2호의 성공으로 미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보스호드는 소련의 우주개발에 있어서 정점이었던 시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2. 보스호드 1호

1964년 10월 12일 발사.
파일럿은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콘스탄틴 페오키스토프, 보리스 예고로프.

인류 최초의 다인승 우주 비행선이다. 하지만 문제는 보스토크와 동일한 크기의 우주선에 3명을 우겨넣느라 사출 시트를 제거해버리고, 3개의 고정식 시트를 삽입했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낙하산 삑사리라도 나는 날에는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 우주왕복선도 그렇지 않나?[1]

여담이지만 발사된 1964년은 흐루쇼프가 실각된 해이기도 해서, 둘다 1964년에 '날아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공산주의 유머가 있다(...).

3. 보스호드 2호

1965년 3월 18일 발사.
파일럿은 파벨 벨라예프, 알렉세이 레오노프.

기본적인 사양은 보스호드 1호와 동일하다. 3인승 우주선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만 탑승한 것은 우주유영(EVA)를 위한 장비를 탑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낙하산 삑사리나면 다 죽는 것도 1호와 마찬가지다.

이 우주선의 의의는 인류 최초로 EVA(우주유영). 즉, 선외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스호드 2호의 EVA 영상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뉴스로 방송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파일:voskhod-2.jpg

하지만 레오노프는 EVA를 마치고 귀환할 때 예상치 못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우주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당시 보스호드 우주선은 우주선과 우주공간 사이의 출입구로 섬유재질로 된 튜브식의 에어록(우주선과 우주공간 사이의 기압조절을 위한 완충공간)을 고안했는데, 위의 개요도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에어록의 넓이가 사람 한 명이 우주복을 입고 차렷자세로 들어가면 꽉 차는 수준으로 작았다. 물론 소련도 이런 경우에 우주복 입고 각종 생명유지선을 단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복을 입고도 능숙하게 에어록 안으로 복귀하는 훈련을 했지만, 실제 우주공간에서 기압차 때문에 우주복이 부불어 오르는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다.[2] 당연히 우주복이 부풀면 팔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으므로 에어록에 다리를 집어넣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필사적인 사투 끝에 이 상태로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레오노프는 결국 우주복 내부의 공기를 빼내어 우주공간 수준의 사실상 진공 상태로 만드는 목숨을 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 간신히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죽을 뻔했으며 우주선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급격한 기압변화로 인한 잠수병 증상을 겪었다. 그러나 당시 레오노프가 죽을 뻔하며 간신히 에어록을 통과하여 귀환한 것은 당연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보스토크 시절부터 소련은 자세한 정보, 특히 실패와 관련된 정보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오노프의 에어록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면서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잘못 알려지게 된 유명한 가짜 과학 지식이 이때 생겨났다. 바로 인간이 우주복 없이 우주에 노출되면 터져버린다는 것. 이 사실은 오랫동안 진실인 것처럼 소개되던 과학지식이었다. 이것은 당시 보스호드 2호의 우주유영을 보도하던 영국 BBC 보도국의 높으신 분이 뭔가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주면서도 공포심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자 담당 기자가 이런 가짜 과학 지식을 방송에 소개하면서 진실인 것처럼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기레기의 역사는 유구하구나 그러나 레오노프는 본의 아니게 그 자신이 인간이 진공 상태에 노출되어도 터지지 않음을 이미 스스로 증명했다(...). 사실 소련 미국은 이미 동물 실험을 통해 포유류가 진공상태에 수십초 정도 노출되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68년 개봉된 고전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도 주인공이 잠시 우주공간의 진공에 노출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주인공이 죽지 않고 살아서 우주선 안으로 귀환한 것을 주고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우주공간에서의 기압요건을 참조하자.

레오노프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도 간신히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후에도 보스호드 2호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 돌출된 튜브식 해치가 대기권 재돌입 때 문제를 일으켜는 바람에 자동재진입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다시 한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결국 조종사 벨라예프가 수동으로 역추진 보조로켓을 점화시키며 대기권 진입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보스호드 2호는 원래 착륙 예정지에서 북쪽으로 1200마일이나 떨어진 우랄 산맥의 눈 덮인 전나무 숲에 추락하고 말았다. 보스호드 2호의 우주비행사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늑대가 캡슐 주변을 어슬렁대는 우랄 산맥의 숲 속에서 덜덜덜 떨어야 했다. 결국 다음 계획인 소유즈 계획 때는 한동안 조종사들이 권총을 휴대하게 된다. 외계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보스호드 2호 처럼 착륙 후 비행사들이 맹수들의 위협에 처했을 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3]

2017년에 러시아 영화 스페이스 워커로 영화화되었는데, 위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모두 그리고 있다.
[1] 더 문제는, 여기에 탔던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후일 소유즈 1호에 탔다가 낙하산 삑사리로 죽었다는 거다!(소유즈 1호의 추락은 낙하산 문제만은 아니지만, 여하튼 가장 큰 게 낙하산 삑사리) [2] 미국은 산소 100%의 공기를 공급하되 기압을 1/3 수준으로 낮춰서 적정량의 산소가 공급되면서도 기압차를 줄이도록 했지만, 소련은 통상적인 지구의 공기와 비슷한 성분비로 산소를 우주복에 공급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우주복 안은 1기압인데 밖은 0기압이라서 우주복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현재 러시아 연방의 우주복도 지구와 마찬가지의 성분비를 사용하긴 하지만, 레오노프 당시의 우주복은 초창기의 물건이라 부풀어 오르는 것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3] 이 과정에서 TP-82도 만들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