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밀워키 벅스
1. 개요
밀워키 벅스의 1970년대 중반-80년대 관련 내용임. 아래 문단에 기재된 내용은 밀워키 벅스 문서의 개정 제598판 '2.4. 꾸준했던 1980년대' 항목이며 과거 내용인 관계로 별도 분리함.2. 내용
1974년에 오스카가 은퇴했고, 자바가 오프시즌 와중 손이 부러져서 정규시즌 초반 16경기밖에 못 나왔으며 나머지 선수들도 풀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동년 11월에 루셔스 알렌을 LA 레이커스의 짐 프라이스랑 맞바꿨으나 프라이스조차 무릎 연골 파열로 50경기에 그치는 등 악재가 생겨 38승 44패에 7위로 5시즌만에 플옵 진출을 못 했다. 1975년에 자바가 시즌 내내 부진에 시달려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FA로 어차피 떠날 선수라 팀에서 잡는게 불가능하다라고 판단해서 그를 월트 웨슬리와 묶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시키고[1], 그 댓가로 주니어 브릿지맨과 데이브 마이어스, 엘모어 스미스, 브라이언 윈터스 4명을 받았다. 정규시즌에선 자바 대신 댄드릿지가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여 38승 44패임에도 지구 1위를 했고, 플옵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맞붙다가 1승 2패로 졌다.1976년 오프시즌 때 주주이던 짐 피츠제럴드(1926~2012)[2]가 이끄는 투자 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했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7번으로 인디애나 대학교 농구부의 우승멤버 퀸 버크너를 뽑았다. 정규시즌 초반 18게임 시점에 3승 15패로 코스텔로 감독이 물러나자 돈 넬슨 코치가 감독으로 자리를 메꿨고, 댄드릿지가 득점에서 선두에 섰고 스웬 네이터도 같이 활약했지만 30승 52패로 굴러떨어져 플레이오프에 못 갔다. 1977년에 엠브리 단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하자 넬슨 감독이 단장까지 겸해서 보스턴 때 인연이 있던 존 킬릴리 코치를 모시고, 스웬 네이터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버팔로 브레이브스의 픽과 맞바꿨다. 드래프트에선 인디애나 대학교 출신 켄트 벤슨[3]을 1번, UCLA 출신 마키스 존슨을 3번, 테네시 대학교 녹스빌 캠퍼스 출신 어니 그룬필드를 11번으로 각각 뽑고, 댄드릿지를 FA로 풀어 워싱턴 불리츠로 보내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정규시즌에선 44승 38패로 플옵에 다시 나가 1회전에서 피닉스를 상대로 2전 전승을 거두고, 2회전에서 데이비드 톰슨과 댄 이젤이 이끄는 덴버 너기츠랑 치열하게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78-79 시즌 전에 데이브 마이어스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자 정규시즌에선 존슨과 브릿지맨이 분전해서 38승 44패를 찍었지만 플옵권에는 못 들었다.
1979년 드래프트에서 아칸소대 출신 시드니 몽크리프를 5번으로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존 지아넬리를 뉴저지 네츠의 하비 캐칭스랑 맞바꿨다. 정규시즌 도중인 1980년 2월에 벤슨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리더였던 밥 레이니어와 맞바꿔서 49승 33패로 4시즌만에 지구 1위를 땄다. 뒤이어 플옵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랑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80-81 시즌부터 서부에서 동부 컨퍼런스로 옮긴 뒤 7시즌만에 정규시즌에서 퀸 버크너의 막강 수비력 등으로 60승 고지에 도달해서 또 지구 1위를 한 후, 플옵에서 줄리어스 어빙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랑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81년 드래프트 때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출신 앨튼 리스터를 전체 21번으로 뽑고, 댄드릿지도 FA로 다시 영입했지만 며칠 후 방출했다. 정규시즌에서 마키스 존슨과 버크너, 브릿지맨 등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55승 27패로 또 지구 1위를 해서 필라델피아랑 맞붙다가 2승 4패로 졌다.
1982년 드래프트 때 털사 대학교 출신 폴 프레시를 전체 20번으로 뽑고, 버크너를 보스턴에서 부상으로 2년을 쉬던 노장 데이브 코웬스랑 맞바꿨다. 정규시즌에서 몽크리프의 강력한 수비력으로 51승 31패로 또 지구 1위를 찍어 첫 관문에서 보스턴을 4전 전승으로 이기고, 컨파에서 모제스 말론-줄리어스 어빙 콤비의 필라델피아랑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1983년 드래프트 때 미네소타대 출신 랜디 브루어를 18번으로 뽑은 후, 보스턴에서 방출된 노장 네이트 아치발드를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서 존슨, 브릿지맨, 몽클리프의 활약으로 50승 32패로 지구 1위를 또 차지해 플옵에서 애틀랜타 호크스와 뉴저지 네츠를 차례로 꺾고, 컨파에서 래리 버드-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시 3인방의 보스턴과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또한 레이니어도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1984년 오프시즌 때 브릿지맨-존슨-캐칭스 3종 세트 + 현금을 LA 클리퍼스의 테리 커밍스, 리키 피어스, 크레익 호지스 3명이랑 맞바꾸고, 정규시즌에서 몽크리프와 프레시의 막강 수비로 59승 23패를 찍어 지구 1위로 플옵 1차전에서 마이클 조던과 올랜도 울릿지의 시카고 불스를 1승 3패로 꺾고 2회전에서 필라델피아랑 맞붙다가 4전 전패를 당했다. 1985년 오프시즌 때 슈퍼마켓 체인업체 '콜즈(Kohl's) 사' 의 창업주 허브 콜[4]이 팀을 샀고, 정규시즌에서 호지스와 프레시 등의 활약으로 6년 연속 지구 1위를 따내 플옵에서 뉴저지, 필라델피아를 차례로 꺾어 컨파에서 또 보스턴이랑 맞붙다가, 보스턴에게 4전 전패를 당했다. 1986년 오프시즌 때 리스터 및 드래프트 픽 2장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잭 시크마 및 드래프트 픽 2장이랑 맞바꾸고, 드래프트에서 미시건 주립대 출신 스캇 스카일스를 전체 22번으로 뽑았다. 정규시즌 도중에는 찰스 데이비스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래리 크리스트코비악과 맞바꿔가며 50승 32패를 찍었으나 애틀랜타 때문에 3위로 떨어졌고, 플옵에 나가 필라델피아를 3승 2패로 꺾어 2회전에서 보스턴과 맞붙다가 3승 4패로 졌다.
1987년에 넬슨 감독은 콜 구단주와 운영 등지에서 갈등을 겪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부사장 겸 단장으로 이직했고, 델 해리스 코치가 운영부사장 겸 단장 및 감독으로 승진했다. 정규시즌에서 시크마 등의 활약으로 42승 40패를 찍어 플옵에 나갔다가 도미니크 윌킨스의 애틀랜타에게 2승 3패로 스윕당했고, 1988-89 시즌에는 커밍스와 프레시의 부상 등의 악재에도 49승 33패로 플옵에 나가 1회전에서 애틀랜타에게 3승 2패로 설욕하고 2회전에서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를 상대했다가 4전 전패를 당했다. 1989년 오프시즌 때 몽크리프가 잠정 은퇴한 뒤, 커밍스 및 드래프트 픽 1장을 샌안토니오의 그렉 앤더슨 및 앨빈 로버트슨 + 드래프트 픽 1장과 맞바꾸고, 정규시즌에서 피어스의 부상 등에도 불구하고 44승 38패로 플옵에 나갔으나 시카고에게 1승 3패로 졌다.
[1]
본인 문서에 나와있듯 원래 제1 선호 구단은
뉴욕 닉스였지만 협상 과정에서 2순위인 레이커스로 방향을 틀었다.
[2]
지역 케이블SO 토털TV(1998년 파산)의 소유주였다.
[3]
1976년 NCAA 전국대회 때 인디애나대 우승멤버 중 하나로, 재학 시절 두 살 적은 후배였던
래리 버드를 괴롭힌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4]
민주당 소속으로, 1989~2013년까지 위스콘신 주 연방상원의원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