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1-23 17:42:36

문묘

조선 문묘 배향 18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bottom:-15px"
김굉필 김인후 김장생 김집 박세채 설총
성혼 송시열 송준길 안향 이언적 이이
이황 정몽주 정여창 조광조 조헌 최치원
}}}}}}||

파일:Joseon_little_white_minimal.png 문묘 및 종묘 배향 6현
이언적 이황 이이 김집 송시열 박세채

文廟
1. 개요2. 상세3. 외국의 문묘
3.1. 중국
3.1.1. 공묘
3.2. 베트남
4. 관련 문서

1. 개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문묘라는 명칭은 문선왕묘(文宣王廟)[1]의 약자이며, 공자묘라고도 한다.

2. 상세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과거제와 서원과 더불어 유교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요소였다. 조선조 말기에는 그 규모가 커져 공자 이하 133명을 모시게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일본 신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특히 조선시대 중요시 되었는데, 문묘에 배향되면 선정(先正)으로 인정받아 인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그 배향논의는 매우 신중하고 격론을 거쳐 오랜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는데, 광해군때 조선오현이 우여곡절 끝에 배향된 이후, 특정 붕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그 이후 배향된 인물들은 배향과 출향을 반복하며 논란이 지속되었다. 즉, 한국의 문묘는 조선시대 판 명예의 전당이라 볼 수 있다.

서울의 성균관 및 지방의 향교에 두었는데, 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ㆍ동무ㆍ서무ㆍ삼문ㆍ명륜당>(서울 文廟 및 成均館<大成殿ㆍ東廡ㆍ西廡ㆍ三門ㆍ明倫堂>)은 보물 제141호,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사적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대성전 중에도 보물 또는 유형문화재나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들이 다수 있다.

3. 외국의 문묘

3.1. 중국

원먀오(wén miào, 문묘文庙를 중국어로 읽은 것이다)라고 부르며, 전국에 수많은 문묘들이 존재한다.

3.1.1. 공묘

중화인민공화국 산둥성 취푸(曲阜(Qū fù), 곡부) 시에 위치한 문묘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어로는 콩먀오(孔庙, Kŏng miào)라고 부른다.

3.2.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1070년에 세워진 문묘가 있다. 판메우라고 부르며, 1076년도에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서 유학자를 양성한 곳이기도 하다.

1484년 진사(회시 합격자)들의 명단을 새긴 비를 세운 이래 1787년까지 진사 합격자 1,306명(1442-1787년 간의 진사)의 명단을 새긴 82개의 진사제명비가 세워져 있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 취푸의 문묘를 본따 세운 곳이다.

4. 관련 문서



[1] 당현종이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증하였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