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16 22:51:35

문묘

파일:Joseon_little_white_minimal.png 조선 문묘 배향 18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김굉필 김인후 김장생 김집 박세채 설총
성혼 송시열 송준길 안향 이언적 이이
이황 정몽주 정여창 조광조 조헌 최치원
-1 {{{#9400d3 보라색}}}: 종묘에도 배향된 [[배향공신]] | {{{+3 {{{#e0ffff ■}}}}}}: 조선오현(동방오현)으로 추존
}}}||



文廟
1. 개요2. 상세3. 외국의 문묘
3.1. 중국
3.1.1. 공묘
3.2. 타이베이 공묘3.3. 베트남
4. 관련 문서

1. 개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문묘라는 명칭은 문선왕묘(文宣王廟)[1]의 약자이며, 공자묘라고도 한다.

2. 상세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과거제와 서원과 더불어 유교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요소였다. 조선조 말기에는 그 규모가 커져 공자 이하 133명을 모시게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일본 신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문묘에 배향되면 선정(先正)으로 인정받아 인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그 배향논의는 매우 신중하고 격론을 거쳐 오랜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는데, 광해군 때 조선오현이 우여곡절 끝에 배향된 이후, 특정 붕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그 이후 배향된 인물들은 배향과 출향을 반복하며 논란이 지속되었다. 즉, 한국의 문묘는 조선시대 판 명예의 전당이라 볼 수 있다.

서울의 성균관 및 지방의 향교에 두었는데, 서울 문묘 및 성균관<대성전ㆍ동무ㆍ서무ㆍ삼문ㆍ명륜당>(서울 文廟 및 成均館<大成殿ㆍ東廡ㆍ西廡ㆍ三門ㆍ明倫堂>)은 보물 제141호,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사적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대성전 중에도 보물 또는 유형문화재나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들이 다수 있다.

3. 외국의 문묘

3.1. 중국

문묘를 중국어로 읽어 원먀오(wén miào)라고 부르는데, 중국 전역에 수많은 문묘들이 존재한다.

3.1.1. 공묘

중국 산둥성 취푸(曲阜, 곡부)시에 위치한 문묘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어로는 콩먀오(孔庙, 공묘)라고 부른다.

공자의 무덤인 공림과는 다르다. 그 전에 무덤을 뜻하는 묘(墓)와 공묘는 한자가 다르다.

3.2. 타이베이 공묘

대만 타이베이 따통구(大同區) 따롱가(大龍街) 275호에 위치해 있다. 보통 타이베이 공자묘(臺北市孔廟)로 불린다. 본래 타이베이 공묘는 1879년 광서제 때 건설을 시작해서 3년 후인 1882년 완성되었다. 이후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점령한 일본이 공묘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병원과 여학교를 세웠다. 이후 1929년 대성전을 복원하고 석전대제를 부활했으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일본 총독부가 다시 제사를 금지해서 명맥이 끊겼다. 종전 후인 1946년 다시 석전대제가 부활하였고 이후 개보수를 거쳐서 1971년부터는 타이베이 시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중국의 다른 공묘와 달리 이 곳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공자의 종손인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이 직접 제례를 올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본래 공자의 종손들은 위에 언급한 취푸의 문묘에서 거주하며 제례를 지냈으나, 국부천대로 당시 종손인 초대 대성지성선사봉사관 쿵더청이 대만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쿵더청은 이 타이베이 공묘에서 석전대제를 올리게 되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취푸의 공묘에서 석전대제를 지내지 않다가 1990년대 이후에야 겨우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공자의 종손이 석전대제를 치루는 곳은 이 타이베이 공묘가 되었다.

3.3.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1070년에 세운 문묘가 있다. 판메우라고 부르는데, 1076년에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서 유학자를 양성한 곳이다.

1484년 진사(회시 합격자)들의 명단을 새긴 비를 세운 이래 1787년까지 진사 합격자 1306명(1442-1787년 간의 진사)의 명단을 새긴 진사제명비 82기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 곡부의 문묘를 본따 세운 곳이다.

4. 관련 문서



[1] 당현종이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증하였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