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8 02:44:40

특임장관실

무임소장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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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장관실
特任長官室 | Office of Minister for Special Affairs
파일:특임장관실 MI.svg
설립일 2008년 2월 29일
폐지 2013년 3월 23일
장관 고흥길
차관 권택기
후신 국무총리비서실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209, 8층
(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원 41명
1. 개요2. 상세3. 역사
3.1. 무임소장관3.2. 정무장관3.3. 특임장관
4. 장관5.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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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舊정부조직법 제17조(특임장관)
①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 또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특히 지정하는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1명의 국무위원(이하 “특임장관”이라 한다)을 둘 수 있다.

특임장관실은 이명박 정부 당시 존재했던 현재는 폐지된 국가행정조직이다.

2. 상세

특임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했던 직위로 특정한 부처를 맡지 않고 국무위원 직위만을 가지는 장관으로, 특임장관실이 특임장관을 보좌했다.

특임장관은 이승만 정부부터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무임소장관 (無任所)장관(minister without portfolio)이란 이름이었는데, 명칭과 관련된 논란 때문에 역대 정부조직법에서는 전두환 정부에서 정무장관으로 명칭을 바꾸어 문민정부까지 이어졌고, 국민의 정부에서 폐지되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로는 다시 폐지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임장관은 특별한 부처를 이끌지 않아 주로 대통령이 맡기는 정치적 임무를 수행한다.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 또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특히 지정하는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설치하긴 했는데 행정부가 이미 각 전문분야를 두고 작동하고 있어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선거보상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출범 당시에는 해외 자원개발, 투자유치 등과 같이 여러 부처와 관련되면서도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핵심 국책과제 전담을 목표로 출범했다. 그러나 부처 특성상 명확한 업무가 없다보니 특임장관에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보다는 정권에 우호적인 정치인이 임명되었고, 역대 특임장관 3명 모두 친이계가 임명되었다. 초대 주호영 장관, 이재오 장관, 마지막 고흥길 장관 3명 모두 친이계 실세로 분류되었다.

출범은 정부 출범 시기인 2008년 2월 29일에 했지만, 초대 주호영 장관을 임명하며 실제로 가동된 것은 2009년 10월 경으로 3년 4개월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동되는 동안에도 역할 부재론 논란에 휩싸였다. 특임장관은 과거에는 정무장관이라는 명칭이라는 것에도 알 수 있듯이 정무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년 예산안만 보더라도 특명과제 현장활동과 여론조사, 정당원ㆍ시민단에 해외연수 등 정무기능이 주이다. 문제는 대부분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과 중복되었다는 것이다.

3. 역사

특임장관실은 이명박 정부에서 5년(실제 운영기간 3년 4개월)동안만 운영한 뒤 정권이 바뀌자 폐지되며 짧은 역사를 보유하고 있으나, 그 전신인(무임소장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부처이다.

3.1. 무임소장관

{{{#!wiki style="margin: 0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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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초대
지청천
이윤영
2대
윤영선
이윤영
3대
이윤영
허정
4대
이윤영
5대
박현숙
6대
손도심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000080>
장면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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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김선태
8대
김선태
신현돈
9대
오위영
||<-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835b38>
박정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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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조시형 (정무)
김재춘 (경제)
박원빈 (경제)
11대
김홍식 (정무)
김용식 (경제)
12대
윤주영 (정무)
원용석 (경제)
13대
윤주영 (정무)
원용석 (경제)
14대
김윤기 (정무)
원용석 (경제)
15대
김원태 (정무)
황종률 (경제)
16대
김원태 (정무)
김윤기 (경제)
17대
길재호 (정무)
이병옥 (경제)
18대
오치성 (정무)
이병옥 (경제)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835b38>
박정희 정부
||
19대
이병희 (정무)
이병옥 (경제)
20대
이병희 (정무)
구태회 (경제)
1975년 제1무임소장관과 제2무임소장관으로 분리 개편
(정무 담당: 제1무임소
경제 담당: 제2무임소)
}}}}}}}}} ||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부 출범 직후부터 설치되어 장면 내각까지 무임소국무위원이라는 명칭으로 존재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가 출범하면서 무임소국무위원의 수는 2명이 되었고 각각 정무와 경제를 담당했다.

그러다 1970년 8월 무임소장관실이 설치되며 하나의 정식 부처로 자리 잡는다.

1975년 9월 제1무임소장관실, 제2무임소장관실로 분리된다.

제2무임소장관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의 당무를 겸하기도 했다.

3.2. 정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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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무임소장관 (1975~1981)
초대
이병희
제2대
신형식
제3대
장경순
제4대
김용태
제5대
김좌겸
제6대
최광수
정무제1장관 (1981~1998)
초대
정종택
제2대
오세응
제3대
이태섭
제4대
정재철
제5대
조기상
제6대
이종률
제7대
김윤환
제8대
이종찬
제9대
정종택
제10대
박철언
제11대
김윤환
제12대
김동영
제13대
최형우
제14대
김용채
제15대
김종호
제16대
김동익
제17대
김덕룡
제18대
서청원
제19대
김윤환
제20대
김영구
1998년 내무부, 총무처와 통합
제21대
주돈식
제22대
김덕룡
제23대
신경식
제24대
홍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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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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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제2장관 (1988~1998)
제2대
조경희
제3대
김영정
제4·5대
이계순
제6대
김갑현
제7대
권영자
제8대
김장숙
제9대
김윤덕
제10대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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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1998~2001)
초대
윤후정
제2대
강기원
제3대
백경남
여성부장관 (2001~2005)
초대
한명숙
제2대
지은희
제3대
장하진
여성가족부장관 (2005~2008) 여성부장관 (2008~2010)
초대
장하진
초대
변도윤
제2대
백희영
}}}
{{{#!wiki style="margin: -33px -1px -11px"
여성가족부장관 (2010~현재)
초대
백희영
제2대
김금래
제3대
조윤선
제4대
김희정
제5대
강은희
제6대
정현백
제7대
진선미
제8대
이정옥
제9대
정영애
제10대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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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월 전두환 정부가 출범하면서 제1무임소장관실과 제2무임소장관실은 각각 정무장관(제1)실, 정무장관(제2)실로 개편되었으며 정무장관(제3)실이 신설되었다.

정무장관(제1)실은 당정간 정책관련 협의 업무, 국회와 행정부 간의 업무를 지원하는 정무수석 비슷한 업무를 수행했다. 물론 당시에도 정무수석비서관은 존재했다.

이후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총무처와 함께 행정자치부로 통합되며 폐지되었다.

정무장관(제2)실은 처음에는 외교·안보 관련 업무를 관장했다. 당시 초대 장관이 다음 정부에서 대통령이 되는 노태우였다. 그러나 1982년 3월 폐지되었으나 정무장관(제3)실이 정무장관(제2)실로 개편해 여성·아동·청소년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1982년 이후로 공석이었던 정무제2장관에 조경희 장관이 임명되며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했다.

조경희 장관을 포함해 1998년 폐지 직전까지의 8명의 장관은 모두 여성이었다.

정무제2장관은 현 여성가족부장관의 전신으로 당시에도 명칭만 정무제2장관이었을뿐 사실상의 여성부장관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1998년 2월 여성특별위원회로 개편되며 정식으로 폐지되었다.

여담으로 여성특별위원회는 3년 뒤인 2001년 여성부가 설치되면서 해산되었다.

3.3. 특임장관

특임장관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설치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원래 인수위 초기만 하더라도 특임장관은 2자리를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중이었다.

인수위원회에서 부처 통폐합으로 13개 부처로 조정하는 안을 계획했는데 장관인 국무위원이 13명에 불과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88조 2항은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셈이었다. 이로 인해 각종 명분을 세우며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특임장관을 2자리로 계획 중이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반대로 인해 통일부 여성가족부는 존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며 15명의 국무위원 수를 충족하게 되었고 특임장관실 인선도 1년 넘게 늦어지며 자연스레 1명의 특임장관 직을 설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4.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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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초대
주호영
제2대
이재오
제3대
고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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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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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초대
정하경
제2대
김해진
제3대
조윤명
제4대
권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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