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03:22:20

명탐정의 규칙


1. 개요2. 내용3. 주요 등장인물
3.1. 덴카이치 다이고로(天下一 大五郞)3.2. 오가와라 반조(大河原 番三)3.3. 후지이 마나(藤井 茉奈)3.4. 모리야마 미즈키(森山 瑞希)3.5. 우에마츠 케이타(植松 慶太)
4.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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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探偵の掟

1. 개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집으로 1996년에 단행본화되었다. 1990년에 "조연의 우울(脇役の憂鬱)" 오디오북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신초(小説新潮)에 실린 단편을 파티에서 만난 동료 작가들이 절찬한 것이 연작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 1997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3위를 뽑히면서 <방과후> 이후로 별다른 히트작이 없었던 작가에게 이 작품은 출세작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 작품 이후로 작가는 how done it? 같은 본격 추리보다는 Why done it? 같은 사회파 소설로 치중하게 된다.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하게 되는 작품.

2. 내용

자칭 "두뇌명석 신출귀몰의 명탐정"이라 불리는 덴카이치 다이고로와, 경감 오가와라 반조가 "덴카이치 시리즈"라는 본격 추리소설 세계의 약속이 있는 이야기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면서 캐릭터로서의 자신들의 처지도 이야기하는데 그 속에서 작가와 독자, 모두를 비꼬기도 한다. 추리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이건 말도 안되는 억지 아니야?"라는 비판을 추리소설 등장인물이 스스로 까발리면서 자폭, 자학하기도 하는 등 이른바 메타픽션 유머소설이다. 본격 추리소설의 룰에 의문을 품고 반기를 든 작품. 추리소설 혹은 추리만화 매니아라면 즐겁게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놓는 경우도 많다.

후속작으로 " 명탐정의 저주(名探偵の呪縛)"가 있으며, 본작은 일본에서는 2009년 4월 17일에서 6월 19일까지 테레비 아사히계 " 금요 나이트 드라마"에서 방영되었다. 총 10화. 드라마 내에서 덴카이치가 원작 소설의 무분별한 드라마화를 까는 대사도 나온다.자기 디스?

3. 주요 등장인물

3.1. 덴카이치 다이고로(天下一 大五郞)

23세. 배우는 마츠다 쇼타.
원작보다 허당끼가 약간 강화. 자전거광.
그리고 양복에 귀걸이, 나이키 운동화 등 뭔가 언밸런스한 스타일이 특징.
원작보다 많이 망가진다... 특히 첫화에서 범인이 자살했을 때의 멘붕한 표정이 압권.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딴지를 거는 후지이 때문에 매번 골머리를 앓는다.
원작에서는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을 쓰고 체크 무늬 양복과 함께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그런데 드라마화를 통해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3.2. 오가와라 반조(大河原 番三)

45세, 경감. 배우는 키무라 유이치(木村 祐一)
책 내에서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인데, "헛다리 경감"으로 통하지만 이야기 내에서 벗어나 둘이서만 이야기할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 그러나 이야기의 거의 끝에서 "범인"이 되어 체포되지만 그러는 속에서도 "독자에게 충격을 쓰기 위해 이런 수작"을 쓰는 작가를 비판하고 있다.
드라마 내에서도 그 역할은 변함이 없지만 신참 하나가 붙은 덕에 역할이 더 강조된다. 간사이사투리가 특징.

3.3. 후지이 마나(藤井 茉奈)

드라마 오리지널, 23세. 배우는 카시이 유우(香椎 由宇).
하카타(博多) 출신으로 첫 등장은 오가와라 경감 휘하 신참 "미녀" 형사로 1화부터 "덴카이치를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에 몸서리쳤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진짜로 좋아하게 되는 듯 한데… 덴카이치와 오가와라는 몰라도 드라마 내에서 어디든지 존재하는 "등장인물의 본심을 이야기하는 비밀의 방"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녀도 처음에는 놀랐다.
3인조중에서 대책없는 두 사람, 덴카이치와 오오가와라 경감에게 츳코미로 태클거는 역이지만 "현실"과 "작품"의 괴리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

3.4. 모리야마 미즈키(森山 瑞希)

드라마 오리지널, 25세. 배우는 치슨(ちすん).[1]
매 회마다 등장하는 조연 순경으로 "덴카이치를 좋아하고" 있지만 결코 그녀에게 차례는 안 올 거라는 건 분명하다.

3.5. 우에마츠 케이타(植松 慶太)

드라마 오리지널, 17세. 배우는 이리에 진기(入江 甚儀).
덴카이치의 단골 자전거 카페 점원. 가끔 힌트를 던져주기도 하고 조연이란 자신의 처지를 넘어 덴카이치의 조수를 맡기도 한다.

4. 작품 해설

글쓴이 무라카미 타카시
1
1985년 본격 청춘 추리 소설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일본 추리 소설계에 등장한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본격 추리 소설뿐 아니라 서스펜스, 유머, 나아가 SF적 기법을 활용하는 실험적 소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에서 걸작을 발표해 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에도가와 란포상 외에는 그다지 상복이 없었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에는 다섯 번에 걸쳐 여섯 작품이 추천됐지만 번번이 수상하지 못했다.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도 다섯 차례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9년 마침내 『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거머쥐었다. 딸의 몸에 아내의 영혼이 깃드는 묘한 상황을 그린 이 작품은 그의 소설 중 본격 추리 소설 이외 분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격 추리 소설의 대표작은? 바로 『명탐정의 규칙』이다. 이 작품이 문고본으로 나온 것을 계기로, 본격 추리 작가로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면모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2
본격 추리 소설의 세계에서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다양한 약속이 존재한다. 명탐정이나 멍청한 경찰의 존재 같은 것이 거기에 해당된다. 다잉 메시지나 밀실 살인, 동요 살인 등도 하나의 약속이다. 그런 약속이 아무리 부자연스럽다 할지라도 거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제해야 할 일이다. 이 책 역시 그런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본격 추리 소설의 약속들을 역으로 활용해 신선한 ‘웃음’을 자아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러한 시도는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1996년,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3위, ‘주간문춘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8위로 올랐다. 참고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베스트 10에 들어간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순위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를 얻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다.
지지를 받은 원인 중 하나로 이 책의 본질을 ‘본격 추리의 자학이 재미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절묘하게 묘사했던 추리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北村薰)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그저 과도한 농담이나 정형에 대한 냉소로 그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웃음’ 뒤편에 본격 추리에 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의와 이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의가 독자에게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의외의 결말이 각 편마다 준비돼 있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본격 추리 소설에 대한 독자의 시각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품을 읽고 단순히 웃어 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웃음 뒤편의 격렬한 분노까지 느낄 것인가. 독자의 반응이 본격 추리 소설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측량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본격 추리 소설의 대표적 테마인 밀실에 대해 ‘트릭의 제왕’이라는 부제를 붙인 첫 번째 이야기 〈밀실 선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트릭 따위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에요. 밀실의 비밀? 흥, 너무 진부해서 웃음도 안 나오네.”
또 〈흉기 이야기〉에서는 용의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는 대목이 있다.
A, B, C는 분명, 작가가 독자들을 교란하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일 것이다. 소설의 핵심 내용과는 관계없는 인물들로, 그런 사실은 독자들도 한눈에 알 수 있을 테니까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투숙객이 너무 적으면 상황이 부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 작가가 억지로 출연시켰음에 틀림없다. 이런 인물들은 이름을 붙일 가치도 없기 때문에 그냥 알파벳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그저 개그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도 안이한 생각이다. 그보다는 트릭이나 밀실만 만들어 놓고 남은 일은 독자를 속이기 위해 등장인물 수만 맞추면 된다는 식의 싸구려 추리 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본격 추리의 약속에만 안주함으로써 아무런 비판 없이 그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싸구려 작품을 규탄하는 표현은 물론 이것만이 아니다. 〈Who done it〉 〈최후의 한마디〉 〈절단의 이유〉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 〈내가 그를 죽였다〉 〈목 없는 시체〉 등 각 편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덴카이치와 오가와라가 명탐정과 평범한 경감이라는 역할을 벗어던지고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싸구려 추리 소설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 한편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것이 〈Who done it〉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이다.
이번 소설은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독자가 아무리 메모를 해 가며 꼼꼼히 읽는다 한들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소설에 나오는 힌트만으로는 결코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것이 이번 소설의 구조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처럼 논리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려는 독자란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대부분 직감과 경험으로 범인을 간파해 낸다.
이 대목은 작가가 알려 주는 해결 방식을 그저 멍하니 입 벌리고 받아먹으려는 독자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이다. 즉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에서 싸구려 작가와 싸구려 독자를 한꺼번에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그 비판은 ‘웃음’이라는 보자기 속에 들어 있지만, 비판의 칼날은 결코 무디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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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결코 비판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신, 앞에서 언급한 작가와 독자의 안이함을 날려 버릴 수단을 고안해 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이 책과 마찬가지로 1996년 신서판으로 간행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이다.
작품을 읽어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부분을 묘사하지 않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는 그 강도를 조절하는 데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던 듯하며 “막판에 줄거리를 뒤집는 소설이 오히려 쉽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다른 작가들도 이런 방식의 소설을 써 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이 작품은 리들 스토리(riddle story.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종료되는 작품—옮긴이)가 아니라 본격 추리 소설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진실이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수수께끼 푸는 장면을 생략했기 때문에 독자가 진실을 알려면 좋건 싫건 작품 속 힌트를 통해 추리를 해야 한다. 즉 명탐정의 수수께끼 풀기 작업에 마냥 기댈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편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필요하고도 충분한 힌트를 제시해야 한다. 일반적인 본격 추리소설이라면 복선이 불충분하다거나 다른 인물에게 범행 가능성이 남더라도 마지막에 명탐정이 등장해서 “진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실마리는 이것과 저런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 소설 속 인물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독자 역시 “아, 그런 거였군.”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범인’이라는 패턴에서는 수수께끼 풀기 작업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싸구려 해결 방식을 사용할 일도 없다.
이 작품에서 히가시노는 용의자를 남녀 각 한 명으로 좁혀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A, B, C라는 표기 방식으로도 충분할 만한 인물은 아예 배제된다. 또 사건 자체도 평범하며, 밀실이나 토막 살인같이 ‘겉모습’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명탐정의 규칙에서 제기한 비판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명탐정의 규칙』은 하나의 대칭 구도를 이룬 작품들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보여 주는 대사는 『명탐정의 규칙』의 〈알리바이 선언〉 편에도 나온다.
“제 생각엔 말이죠, 알리바이 허점 찾기에는 범인을 찾아낸다거나 동기를 추론하는 따위의 즐거움이 아무래도 적잖아요,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 대사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동기’를 파고드는 것이다. 범인이 누구냐 하는 흥미 위주의 시점이 아니라, 그 인물이 ‘왜’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것을 소설 전체를 통해 깊이 파헤치는 것이다. 본격 추리 소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명탐정의 규칙』과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출판한 1996년은 커다란 전환기다. 그해 이후 그가 출판한 본격 추리 소설은 모두 탐정 소설의 싸구려적 측면을 철저히 배제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1998년 간행된 단편집 『탐정 갈릴레오』는 범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오늘날 본격 추리 소설의 세계에서는 기계적 트릭이나 물리적 트릭 패턴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히가시노는 물리적 트릭 패턴을 작품의 핵심에 놓았던 것이다.
『탐정 갈릴레오』에서 그는 ‘어떻게 탐정 소설’의 정점을 보여 준다. 드러난 진상은 모두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나는 지식을 활용한 것이지만 현대의 기술로 실행 가능하다는 것이 이 작품 최대의 특징이다. 이공계적 지식을 아낌없이 활용해 상상을 초월하는 흉기와 트릭을 멋지게 살림으로써 ‘어떻게’에 대한 독자의 흥미를 만족시켰던 그 수완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이 책 『명탐정의 규칙』의 〈흉기 이야기〉 편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하이테크 기계를 사용하는 복잡한 트릭의 경우 감동이나 충격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나이프 따위가 등장하면 흥미가 반감될 거야.”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내는 트릭이야말로 우리 탐정들의 입장에서는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고 보람도 크지요.”
“그럼, 그럼. 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들 본격 추리 소설의 등장인물들도 활동의 폭이 좁아지고 있어.”
이런 투덜거림에 대해 『탐정 갈릴레오』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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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세계의 전환점이라고 했지만, 사실 1996년에만 주목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분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내용이 ‘조연의 우울’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신초(小說新潮)』에 발표된 것이 1990년이기 때문이다. 그해를 기점으로 1996년까지를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본격 추리 소설의 존재 방식에 대해 다양한 고찰과 창조를 거듭한 시기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명탐정의 규칙』의 각 편을 전후해 간행된 『가면산장 살인 사건』 『회랑정 살인 사건』 『어느 폐쇄된 눈 내린 산장에서』 등의 작품에서 그가 본격 추리 소설의 정형을 비틀어 버린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싸구려 의식이 횡행하는 본격 추리 소설 세계에 대한 그 나름의 문제 제기였다.
예를 들어 ‘다잉 메시지’가 등장하는 『회랑정 살인 사건』은 1991년에 쓴 작품인데, 그 2년 뒤에 쓴 〈최후의 한마디〉에서는 다잉 메시지에 대해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손쉽게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서스펜스를 높여 주는 효과도 있으니 편리하겠지.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스토리 전개가 부자연스러워져.”
“왜 죽기 직전에 남기는 메시지가 암호여야 하지요? 범인의 이름을 정확히 써 놓으면 안 되나요?”
『회랑정 살인 사건』은 다잉 메시지가 중심인 작품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그의 고민이 스며들어 있었고, 후에 덴카이치나 오가와라가 제기하는 비판을 견뎌 낼 만한 존재가 이미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먼저 그 스스로 모범 답안을 제시한 뒤, 전형적 패턴에 안주하는 자세를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제목 자체가 본격 추리 소설의 전형인 『어느 폐쇄된 눈 내린 산장에서』(1992년)도 마찬가지다.
“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 될까?”
산장은 언제나 폭설로 고립되고, 외딴섬의 별장도 폭풍우로 늘 고립된다. 이런 식이라면 독자들도 곧 질려 버릴 것이 뻔하다. 등장인물 역시 진절머리 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대를 고립시키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립시키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걸까.
『명탐정의 규칙』 중 〈폐쇄된 산장의 비밀〉 편에서는 위와 같은 비판이 나오는데, 작가는 『어느 폐쇄된 눈 내린 산장에서』에서 이미 공간을 고립시키는 이유와 범인이 그런 장소를 선택한 이유를 독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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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1990년에 이르러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일까. 1986년 『백마산장 살인 사건』 출간 당시 그는 “밀실 혹은 암호 등 소위 고전적 소도구를 매우 좋아해서,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듣더라도 계속 이런 유의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1990년 〈조연의 우울〉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 계기는 『십자 저택의 피에로』라는,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가 1987년 개척한 소위 ‘집 패턴’ 소설, 즉 저택을 주 무대로 삼는 작품을 쓴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시대순으로 보면 『십자 저택의 피에로』는 ‘집 패턴’ 추종자에게는 우타노 쇼고(歌野晶午)의 1988년 작 『긴 집의 살인』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집의 구조를 이용한 트릭에 의존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피에로 인형의 시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충격적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郞)의 해설에 따르면 원래 아야쓰지의 데뷔와 거의 동시기에 완성된 작품인데, 유감스럽게도 그 후 찾아온 ‘집 패턴’ 붐 속에서 그 아류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밀실 선언〉에 등장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아, 또 밀실 트릭인가.”
한마디로 지겹다. (중략) 그런 종류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명탐정은 ‘밀실 선언’을 하고, 우리 조연들은 놀라는 시늉을 한다. 실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도 말이다. 똑같은 술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는 기분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마술의 속임수를 공개하는 방식 정도랄까. 하지만 공개 방식이 아무리 달라도 감동은 받지 않는다. 미녀를 공중에 띄우는 마술은 비록 속이는 데 사용된 기술이 다를지라도 거듭되면 관중이 지루해한다. 그런데도 ‘밀실’은 반성도 없이 나오고 또 나온다. 도대체 왜 그럴까. 독자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 정말로 밀실 살인 사건이 재미있습니까?”
‘밀실’을 ‘집 패턴’으로 바꾸고, 이를 당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심경이라고 생각해 보자. 『십자 저택의 피에로』는 신서판으로 간행될 당시에는 ‘본격 추리 소설 시리즈 경악의 제1탄’이라고 되어 있었음에도 이후 속편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집 패턴’(정확히 말하자면 집 패턴의 아류적 존재)으로 상징되는 본격 추리 소설에 이별을 고했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대신 그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 인간 계획(鳥人計劃)』에서 ‘왜 점프 선수의 비거리가 급격히 늘었는가’라는 매혹적인 수수께끼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본격 추리 소설로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다시 말해 『십자……』 같은 고전적 스타일과는 다른 형태의 본격 추리 소설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는 1990년에 발간된 『숙명』이라는 작품의 〈저자의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트릭을 사용했나, 등등 마술을 구사하는 식의 수수께끼도 좋지만, 좀 더 다른 유형의 의외성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십자 저택의 피에로』 시리즈를 계속한다는 것은 ‘독자의 요구에 부응한다’(〈알리바이 선언〉, 〈마지막 선택〉)는 그럴듯한 구실 아래 고전적인 수수께끼와 집 패턴 속에서 작가의 존재가 서서히 썩어 가고 만다는 것을 의미했으리라. 그래서 히가시노는 시리즈를 중단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밀실 선언〉 편에서 데뷔작 『방과 후』와 마찬가지로 내부에서 걸어 놓은 막대기에 의한 밀실을 다룬 것이 아니었을까.
1990년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실험을 거듭했고 그 결과 『탐정 갈릴레오』 『내가 그를 죽였다』와 같이 그만이 할 수 있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속속 선보였다. 이렇게 방향 전환에 성공한 것은 그가 본격 추리 소설에서 고전적 요소가 아니라 ‘추리’ 자체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추리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라 ‘본격 추리’ 혹은 ‘추리 소설’이라는 표현을 선호한 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해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스터리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즉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작품의 기둥은 어디까지나 추리지 밀실이나 암호는 아니다. 추리가 동반되지 않는 밀실 소설이나 암호 소설 등은 그가 이상으로 삼는 본격 추리 소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로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비밀』의 저자이자 철저히 본격 추리 소설을 추구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의 요소를 마음껏 쏟아 부은 토대 위에 『십자 저택의 피에로』의 속편을 발표해 줄 것을. 고전과 모던이 밀접하게, 필연성을 갖고 융합된 본격 추리 소설을 발표해 줄 것을.
그때야말로 일본의 본격 추리 소설이 행복하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것이다.

[1] 재일교포 출신의 배우로 본명은 김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