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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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맷 홀랜드 Matt Hol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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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매튜 리스 홀랜드 Matthew Rhys Hol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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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4년 4월 11일 ([age(1974-04-11)]세) | |
영국 잉글랜드 베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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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5cm, 69kg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 |
소속 | 선수 |
아스날 FC (미상 /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 ~1992 / 유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2~1995) → 판버러 FC (1992~1993 / 임대) → AFC 본머스 (1994~1995 / 임대) AFC 본머스 (1995~1997) 입스위치 타운 FC (1997~2003) 찰턴 애슬레틱 FC (2003~2009) |
국가대표 | 49경기 5골 ( 아일랜드 / 1999~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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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아스날에서 축구를 시작한 홀랜드는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방출된 뒤 웨스트햄 아카데미로 둥지를 옮기게 된다. 이후 유스 과정을 밟아오며 성장했지만, 정작 1군에 데뷔하지 못하고 판버러로 임대를 떠나 21경기를 출전했다.2.2. AFC 본머스
임대 복귀 후에도 1군 자리는 요원했고, 결국 1995년 1월, 본머스에 입단했다. 그는 빠르게 1군에 녹아들었고, 1994-95 시즌 클럽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팀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며, 주장도 역임했다. 그는 본머스에서 2년 반동안 107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2.3. 입스위치 타운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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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시즌 반슬리와의 챔피언십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승리 후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 |
1997년 여름, 홀랜드는 80만 파운드에 입스위치 타운으로 이적한다. 그리고 1997-98 시즌 QPR과의 개막전을 통해 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으며, 9월 20일에 치러진 스토크 시티전에서 입스위치 소속으로 첫 골을 신고했다. 그는 첫 시즌부터 팀의 중요한 선수로 거듭났으며, 팀이 2부리그에서 5위를 차지하고 승격 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찰턴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이 무산되었고, 그렇게 아쉽게도 첫 시즌을 마치게 됐다. 홀란드는 클럽에서의 첫 시즌 동안 모든 대회에서 59경기를 출전하여 12골을 넣었고, 1997-98 시즌에 클럽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다.
두번째 시즌을 앞두고 홀랜드는 클럽의 주장으로 선임된다. 그리고 여전히 팀의 키플레이어로 활약하며 팀을 3위로 이끌고 다시 한번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볼턴을 만나 원정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0:1로 패한 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4:3 승리를 이끌었지만, 원정다득점에 의해 이번에도 결승 진출은 좌절되고 만다.
세번째 시즌에도 그는 3시즌 연속으로 리그 전경기에 출전했고, 거기에 리그 10골을 득점하며 지난 시즌에 이어 또 다시 3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또 다시 볼턴을 만나 이번에는 상대에게 결승 진출을 허락하지 않으며 결승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결승 상대는 반슬리였고, 2000년 5월 29일, 웸블리에서 열린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선발로 출전한 홀랜드는 90분 내내 중원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4:2 승리를 기여했고, 마침내 3전 4기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다.
생애 처음으로 최상위 리그인 PL에서 맞이한 2000-01 시즌, 홀랜드는 여전히 주장 완장을 달고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11월 11일 포트만 로드에서 열린 찰턴과의 홈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팀은 홀랜드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고, 풋볼 리그 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버밍엄을 만나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 2:4로 패하며 아쉽게도 결승 진출은 실패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후반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돌풍은 계속되었고, 결국 리그 5위로 마치는데 성공하며 창단 이후 PL 최고 순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1982-83 시즌 이후 처음으로 UEFA 컵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홀랜드는 시즌 동안 전 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팀의 상승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공적인 시즌을 뒤로 하고, 새롭게 시작한 2001-02 시즌에는 센세이셔널 했던 지난 시즌과 달리 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그는 그 시즌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컵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지만 결국 팀의 강등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홀랜드로서는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하게 된 셈.
팀은 2부리그로 강등당했지만, 홀랜드는 시즌을 앞두고 빌라의 400만 파운드 이적 제의를 거절하고 잔류를 천명하며 주장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그는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경기에 출전했고, 2002-03 시즌에 두번째로 입스위치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6년간 정들었던 팀을 떠나게 된다. 입스위치에서 6시즌간 314경기에 출전하여 46골을 득점했고, 223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4. 찰턴 애슬레틱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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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입스위치가 승격에 실패하자 홀랜드는 4년 계약에 75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프리미어리그 소속 찰턴에 입단했다. 그는 첫 시즌부터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8월 17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찰튼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11월 3일에는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찰턴 소속으로 첫 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찰턴에서의 첫 시즌 동안 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득점했고 찰튼을 리그 7위로 이끌며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데 기여했다.
다음 시즌에도 그는 여전히 찰턴의 키플레이어였고, 36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에도 팀의 주전으로 뛰며 팀이 중위권에 안착하는데 도왔지만, 2006-07 시즌에는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홀랜드는 강등 후에도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으며, 어느 덧 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
그는 2007-08 시즌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전체 투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2008-09 시즌 동안에는 34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체력과 기량을 과시하며 38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09년 4월 21일 카디프와 2:2로 비긴 경기였으며, 그는 찰턴이 리그 1로 강등된 뒤 방출됐고,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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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홀랜드 |
잉글랜드의 베리에서 태어난 홀랜드는 외할머니가 아일랜드 출신인 관계로 아일랜드 대표팀에서 뛸 수 있었다. 1999년 10월 9일, 유로 2000 지역예선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후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대표팀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2000년 10월 7일 포르투갈과의 한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팀은 홀랜드의 골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홀랜드는 지역예선 기간 동안 맥카시 감독의 신임을 받아 중용되며 대표팀의 선전을 이끌었고, 네덜란드를 밀어내고 본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1년 뒤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는 최종 엔트리에 무난히 승선했고, 카메룬과의 조별라운드 1차전 경기에서 0:1로 끌려가던 후반 7분에 시원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귀중한 승점 1점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독일과의 2차전, 사우디와의 3차전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16강에서 스페인을 만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을 펼쳤으나, 홀랜드는 2번 키커로 나서 실축을 범하고 만다. 결국 아일랜드는 승부차기에서 2:3으로 패하며 8강 도전을 아쉽게 마무리해야했다.
이후에도 대표팀의 레귤러 멤버로 활약했으나, 아일랜드가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2006년 2월 5일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