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5:48:11

리아우링가 술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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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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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Kesultanan Riau-Lingga( 마인어)
국기 파일:Flag_of_Riau-Lingga_Sultanate.svg
존속기간 1824년 ~ 1911년
통치자 술탄
수도 다익(Daik, 1824–1900)
프녕앗인드라삭티(Penyengat Inderasakti, 1900–1911)
위치 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
언어 말레이어
종교 이슬람교
성립 이전 조호르 술탄국
성립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

1. 개요

리아우링가 술탄국은 인도네시아의 리아우 제도에 있던 술탄국이다.

2. 역사

1810년대에 조호르 술탄국은 서양 열강의 위협을 받고 있었고 내부에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1811년에 조호르 븐다하라(Bendahara, بنداهارا) 술탄조의 마뭇 샤 3세(Mahmud Shah III, 재위 1770–1811)가 사망하자 두 왕자 사이에서 조호르 술탄위를 놓고 계승 분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둘째 왕자인 압둘 라만 무아잠 샤(Abdul Rahman Muazzam Shah, 조호르 술탄 재위 1811–1819, 리아우링가 술탄 재위 1811–1832)가 승리하여 조호르의 술탄이 된다. 하지만 술탄의 이복형이 살아서 술탄의 경쟁 세력을 이끌고 있었고, 1810년대 말 네덜란드의 지지를 받아 술탄의 세력을 밀어내고 후세인 샤(Hussein Shah, 재위 1819–1835)로서 조호르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이복형에게 밀려난 압둘 라만 무아잠 샤는 1819년 부왕(Yang Dipertuan Muda) 라자 자아파르(Raja Ja'afar, 부왕 재위 1805–1831)의 지지를 받아 싱아푸라 남쪽의 리아우 제도(기존 조호르의 영토)로 세력을 이끌고 내려가 독립하고, 리아우링가 술탄국을 세워 초대 술탄이 되었다. 리아우링가 술탄국은 기본적으로 리아우 제도의 주석 후추를 주요 교역품으로 삼은 무역 국가였으나, 영국과 네덜란드의 간섭을 받아 정치적으로는 초기부터 불안정하였다. 두 식민 제국의 세력권을 확정한 1824년의 영국–네덜란드 조약으로 조호르와 싱아푸라는 영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리아우 제도와 수마트라 동부에서는 영국의 세력이 억제되고 네덜란드가 독점적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리아우링가 술탄국 지역은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었으며, 조호르와 리아우링가의 분리가 확정되었다. 조호르의 영토는 말레이 반도 지역으로 국한되어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해양 세력 조호르는 크게 약화되었다.

리아우링가 술탄국은 초기부터 부왕이 네덜란드 산하에서 사실상 간접 통치를 수행하였으나, 술탄 마뭇 4세(Mahmud IV, 재위 1842–1857)의 치세 말기에 술탄이 이러한 구조에 반발하여 정치적 위기가 발발한다. 술탄은 부왕과 네덜란드의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싱가포르, 트렝가누, 파항 등지를 자주 여행하며 영국 세력과 인근 말레이 국가들의 인정을 받아 직접 통치를 수행하려 했으나, 영국은 1824년의 영국–네덜란드 조약을 위반할 의사가 없어 네덜란드 쪽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네덜란드는 마뭇 4세에게 말레이 반도로의 이동을 금지하였으나 술탄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여행을 다녔다.

1857년, 부왕 라자 알리(Raja Ali bin Raja Ja'afar, 부왕 재위 1844–1857)가 사망하자 술탄은 기존 부왕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새로운 부왕을 임명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기존 부기스 부왕가에서 부왕을 임명하지 않고 싱가포르에서 온 후보에게 부왕직을 넘겨주려 시도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심지어 부왕을 확실히 임명하지도 않고서 마뭇 4세가 네덜란드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나 버리자 네덜란드는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1857년 10월 7일 마뭇 4세를 폐위하였다. 마뭇 4세는 이때 싱가포르에 있었는데, 네덜란드와 협상해 보려 했으나 실패했고 영국도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려 퇴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와 새 부왕 라자 하지 압둘라(Raja Haji Abdullah, 부왕 재위 1857–1858)는 마뭇 4세의 삼촌을 바드룰 알람 샤 2세(Badrul Alam Syah II, 재위 1857–1883)로 옹립하였다.

19세기 말, 네덜란드 산하에서 존속하던 리아우링가 술탄국에서도 말레이 민족주의가 태동하였다. 리아우링가 술탄국에서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네덜란드 투쟁은 초기에 여러 행사와 리아우링가 술탄궁에서 종종 네덜란드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 등 비폭력적이고 수동적인 저항의 양상을 띠었다. 1902년과 1903년에 술탄이 궁전에서 네덜란드 국기를 게양하지 않은 것이 문제시되었고, 특히 1903년 1월 1일 네덜란드 통감(resident)이 이를 보고 총독에게 "술탄이 온전한 주권을 가진 군주처럼 자신의 국기만 게양하였다"고 보고하여 술탄이 동인도 총독에게 사과하는 '국기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국 1905년 5월 18일 네덜란드는 술탄에게, 술탄의 주권을 추가적으로 제약하고 특히 네덜란드 국기가 리아우링가 술탄국의 국기보다 높이 게양되어야 하도록 명시하는 협정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술탄은 거부하고, 군대를 모아 자위 태세를 취하며 네덜란드 식민 정부를 위협하였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1911년 2월 11일, 네덜란드 식민 정부는 군함을 보내 무력으로 반항적인 술탄을 폐위했다. 술탄과 신료들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네덜란드의 공격에 저항하지 않고 싱가포르로 망명하였다. 이후 네덜란드는 새로운 술탄을 임명하지 않고, 리아우링가 술탄국의 기존 영토를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합병하였다.

3. 역대 술탄

  • 븐다하라 술탄조
    • 1대 압둘 라만 무아잠 샤(Abdul Rahman Muazzam Shah, 재위 1811–1832)
    • 2대 무하맛 2세 무아잠 샤(Muhammad II Muazzam Shah, 재위 1832–1842)
    • 3대 마뭇 4세 무자파르 샤(Mahmud IV Muzaffar Shah, 재위 1842–1857)
    • 4대 술라이만 바드룰 알람 샤 2세(Sulaiman Badrul Alam Shah II, 재위 1857–1883)
  • 부기스 술탄조(Yang Dipertuan Muda Dynasty)
    • 5대 압둘 라만 2세 무아잠 샤(Abdul Rahman II Muazzam Shah, 재위 1883–1911)

4. 기타

현재 리아우 제도의 모태가 된 술탄국이다.

오늘날 리아우 제도가 인도네시아령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19세기까지 리아우링가 술탄국의 역사는 자바섬보다는 말레이 반도의 역사와 접점이 많다.[1] 현대 리아우 제도 주민의 절반은 말레이인과 화인이며 리아우 제도는 인도네시아에서 상당히 부유한 지역으로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와 일인당 GDP도 별 차이가 없다.
[1] 이런 이유로 일부 극우 세력은 리아우 제도가 조호르령이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선 이들을 극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