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1:35:33

런던 보이즈

파일:런던 보이즈.jpg }}}||
왼쪽이 데니스 풀러(Dennis Fuller), 오른쪽이 에뎀 에프라임(Edem Ephraim)이다.
1. 개요
1.1. 한국에서의 인기
2. 생애3. 디스코그래피
3.1. 음반
4. 히트곡

1. 개요

런던 보이즈(London Boys)는 영국 출신의 유로댄스 듀오다. 유로 디스코 음악을 말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그룹이자 댄스 그룹의 선두자이기도 하다. 1986년에 결성되고 1996년에 해체된 그룹이다. 양쪽 모두 런던 그리니치 출신의 1959년 생 동갑내기인 에뎀 에프라임(Edem Ephraim, 리드 싱어 담당)과 데니스 풀러(Dennis Fuller, 백킹 보컬과 안무 담당)로 구성된 댄스 듀오로 둘 다 보컬과 댄스를 맡았다.

1988년 첫 음반으로 내놓은 "The Twelve Commandments Of Dance"가 인기를 끌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음반의 곡들 중 "London Nights", "Harlem Desire"와 "Requiem" 등이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1980년대에 대중매체에서 노출된 빈도가 잦았던 노래이며, 오프라인 등지에서도 많이 재생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이 노래들이 런던 보이즈를 인지도가 높은 그룹으로 만들어 준 것을 알 수 있다.

1992년에 일시 해체되었다가 1995년에 재결성되었다. 그러나 1996년 1월 21일, 알프스로 떠난 휴가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상대편 차량이 충돌하여 타고 있던 다섯 사람 모두 사망하면서[1]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쳤다.

"I'm Gonna Give My Heart"의 전주 부분이 가수 코요태의 노래 순정에 멜로디로 쓰였다. 밴드 디아블로가 2012년 EP 음반인 Dumb에 런던 보이즈의 곡인 "Harlem Desire"를 편곡하여 수록하기도 하였다. #

댄싱퀸에도 엄정화가 나오는 클럽 신에서 "Harlem Desire"가 나온다. 그리고 유세윤의 프로젝트 그룹 UV의 노래 "이태원 프리덤"에서는 "Harlem Desire" 뮤직비디오의 세트장과 연출 등을 오마주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김판호의 나이트 클럽 장면에 " I'm Gonna Give My Heart"의 앞 부분이 나온다.

다만 차트성적은 크게 좋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유인 즉슨 이들의 곡들은 실질적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음악의 척도라고도 평가받는 빌보드에서는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그에 따라 미국본토에서는 이들의 존재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권에서는 그야말로 대히트를 친 그룹이며 때문에 아직도 유로댄스 역사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될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1.1. 한국에서의 인기

아시아권과 유럽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던 그룹이지만 한국에서 런던보이스의 인기는 간단하게 말해 파격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 클럽, 나이트, 롤러장 같이 댄스곡이 필수인 곳에서는 거의 항상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졌으며 심지어 대도시권의 번화가에는 항상 이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소풍이나 캠핑같은 야외활동에서도 휴대용 카세트 라디오에 런던 보이즈의 노래 테이프를 틀고 노는 것은 거의 정해진 코스였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나올 정도. 이런 선풍적인 인기 덕분에 이 시절 10대 후반~20대를 지낸 586세대들은 아직도 런던 보이즈를 추억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에서의 선풍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이전에 단 한번도 내한공연을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을 후에 알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2. 생애

두 사람 다 1959년 생으로, 데니스[2] 자메이카 출신, 에뎀은 런던 출신이다. 둘은 런던 그리니치의 학창 시절부터 만난 사이이며 가수로 뜨기 전에는 "록시 롤러스(Roxy Rollers)"라는 롤러블레이드 댄싱팀의 같은 팀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며 지냈다. 1981년 영국 BBC 록시 롤러스 동영상으로 에뎀과 데니스가 나온다.

두 사람 다 1981년 이후 독일 함부르크 근처에서 살았는데 1986년에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랄프 르네 모에(Ralf-René Maué)[3]를 만나 런던 보이즈를 결성하고 데뷔 싱글 "I'm Gonna Give My Heart"를 내놓았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여 어떤 곡도 차트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1987년에 추가로 세 개의 싱글과 한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역시 또 모든 곡이 차트에 들지 못하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더니 "Requiem"이 점점 차트 순위를 오르기 시작하더니 1989년 4월에는 영국 싱글 차트 4위에 오르면서 이후 3주간 자리를 지키면서 처음으로 히트를 치게 된다. 이 곡은 아일랜드 차트 8위, 오스트리아 차트 11위, 독일 차트 37위, 벨기에 차트 36위에 오른다. 이 첫 성공에 힘입어 곧바로 "London Nights"를 발표하였고 1989년 7월 16일에는 차트 2위에 올라 이들의 역대 최대 히트곡이 된다.

런던 보이즈는 노래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공연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무대에서 백플립을 하고 헤드스핀을 한다든지 이미 록시롤러스에서 이러한 안무를 보여준 바 있다.

파일:3E1B71E6-8812-4D83-BC54-130BE65C0917.jpg

이어 데뷔 음반의 두 번째 판(2nd edition)으로 내놓은 음반인 "The Twelve Commandments Of Dance(댄스의 12계명)"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오른다. 싱글 "Harlem Desire"를 재발매하였는데[4] 이 곡 역시 제법 인기를 얻어 영국 차트 17위에 올랐다. 이후 또 예전 데뷔 음반 속에 묻혔던 곡을 다시 발표하니 바로 데뷔 음반의 네 번째 싱글이었던 "My Love"의 리믹스 버전이 그것이다. 이 곡 역시 "Harlem Desire"처럼 원래 1987년에 발표했던 곡이지만 상업적으로는 당시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My Love" 리믹스 버전은 영국 Top 40에는 들지 못했다. 46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후 런던 보이즈는 대중들로부터 잊혀 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음반인 "Sweet Soul Music"과 몇 개의 싱글들이 영국 Top 40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1990년에 내놓은 싱글 "Chapel of Love"가 차트 75위라는 저조한 성과를 보이고 뒤이어 "Freedom"마저 차트 54위를 보이면서 인기가 잦아드는 모습을 보이자 음반 회사는 발을 빼게 되었고 1992년 런던 보이즈도 해체에 이른다. 그러나 1995년 이들은 다시 재결합하여 "Hallelujah Hits"라는 새 음반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6년 1월 21일에 자동차 사고로 두 사람 모두 3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그날은 에뎀, 에뎀의 부인 베티나(Bettina), 데니스, 그리고 랄프 르네 모에가 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 스키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궂은 날씨의 험한 산길을 운전하던 중이었는데 맞은 편에는 한 스위스인이 몇 마일 전부터 음주운전을 하면서 앞 차를 따라잡으며 난폭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에뎀과 데니스가 탄 차 앞으로 달려와 두 차는 정면충돌하고 말았고 두 차의 승차인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에뎀과 베티나 사이의 아들인 스티비(Stevie, 당시 3세), 데니스의 딸인 로라(Laura, 당시 10세)가 유족이다.

3. 디스코그래피

3.1. 음반

연도 제목
1988 The Twelve Commandments of Dance
1991 Sweet Soul Music
1993 Love 4 Unity
1995 Hallelujah Hits
2009 The Twelve Commandments of Dance (Special Edition)

4. 히트곡


Harlem Desire

London Nights

I'm gonna Give My Heart

Sweet Soul Music

My Love

London Nights(Wembley Live)

Harlem Desire(Wembley Live)


Requiem


[1] 뒤에 자세히 후술. [2] 데니스는 1979년에 "I Need A Holiday"라는 타이틀의 싱글 앨범은 낸 바 있다. [3] 세 번째 런던 보이(the third London boy)로 불렸다. [4] 원래 1987년에 발표했으나 실패했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