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22:57:06

두웨이

두웨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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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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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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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중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셀틱의 레전드.jpg
<colbgcolor=#eee> 이름 두웨이
杜威 | Dù Wēi
출생 1982년 2월 9일 ([age(1982-02-09)]세) /
중국 허난성 뤄양시
국적
[[중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 체중 80kg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 / 은퇴)
소속 <colbgcolor=#eee><colcolor=#000> 선수 상하이 선화 (2002~2010)
셀틱 FC (2005~2006 / 임대)[1]
항저우 뤼청 (2010)
산둥 루넝 (2012~2014)
허베이 화샤 싱푸 (2015~2017)
구이저우 헝펑 즈청 (2017 / 임대)
구이저우 헝펑 즈청 (2018~2019)
국가대표 파일: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68경기 4골 ( 중국 / 2001~2016)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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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 번호 상하이 선화 - 5번
셀틱 FC - 5번
항저우 뤼청 - 5번
산둥 루넝 - 3번
허베이 화샤 싱푸 - 5번
구이저우 헝펑 즈청 - 3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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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셀틱 입단 이전2.2. 셀틱 FC (임대)
2.2.1. 입단 과정 및 비화2.2.2. 활약상
2.3. 그 후
3. 기록
3.1. 대회 기록
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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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前 축구선수.

2. 선수 경력

2.1. 셀틱 입단 이전

체격과 파워를 겸비한 유망한 수비수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었다. 그 키로 100미터를 10.7초 만에 주파할만큼 뛰어난 피지컬로 중국에서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 기대에 걸맞게 2000년 U-19 아시아 선수권 3위, 다음해 FIFA U-20 월드컵의 16강 진출을 이끌며 중국 청소년 대표 - 올림픽대표에 있어 전술축으로 여겨져 오죽하면 수비수인데도 공격시 두웨이의 세트 플레이 가담이 주요 공격 루트로 취급되었을 정도.

당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노리던 두웨이의 중국 대표팀을 중국에서는 초백금세대로 부를 정도로 기대감이 상당했다. 당시 중국 올림픽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국가 차원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특수부대급 훈련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최대 라이벌으로 지목했던 대한민국과의 두 경기에서 0-1, 0-2로 완패하고 약체인 말레이시아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는 등 졸전 끝에 광탈했다.

국대와는 별개로 클럽에서 두웨이 상하이 선화에서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2005시즌까지 활약했다. 그런 두웨이가 특출나게 유명해진 계기가 있으니, 바로 셀틱 FC 이적이다.

2.2. 셀틱 FC (임대)

2.2.1. 입단 과정 및 비화

당시 두웨이는 2005 시즌을 마치고 유럽 진출을 타진했는데, 셀틱이 두웨이에 관심을 보이자 두웨이의 에이전트가 적극적으로 이적을 주선했다. 그러나 당시 두웨이는 부상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상하이 선화의 구단주는 이에 반대했고, 두웨이를 팀 훈련에 참가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두웨이는 더 세계적인 클럽에서 뛰고 싶다며 이적을 요청했고, 최종적으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셀틱 FC로 2005-06시즌 기간 동안 임대됐다.

두웨이의 셀틱 이적이 더욱 주목받은건 다음과 같은 인터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이탄: 외국 진출이 유일한 길입니까?

두웨이: 사실 2002년 월드컵 뒤에 외국 진출을 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브라질전에서 호나우두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은 너무 강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청대에서 카카와의 시합을 준비했는데 그 때 나와 그의 차이는 지금과 같이 크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젊은이에게 성장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외국 진출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 한 명이 나를 몹시 자극했는데 그가 박지성입니다.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나는 그가 나보다 결코 강하다고 느끼지 않았었고 우리는 한국 팀을 이겼습니다.[2] 박지성은 그를 좋아하고 그에 대해 잘 아는 히딩크를 만나서 외국에 진출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는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했습니다. 나의 해외 진출의 어려움은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월드컵을 겪은 후 이미 외국에 진출해야겠다는 충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발전할 여지가 큽니다.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되도록 빨리 출국하는 것입니다.

타이탄: 많은 사람들이 유럽 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풀백은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보시나요?

두웨이: 사람들은 나에게 " 리웨이펑이 돌아왔는데 당신의 하드웨어가 비교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장기를 가지고 있고 특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키가 큽니다. 그러나 출중한 아시아 선수라도 유럽에서 발전하려면 실력 이외에 기회가 필요합니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없었다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만약에 유럽 축구에 적응할 수 있다면 나도 외국 진출 후 화려하게 나의 뜻을 이루고 기뻐서 놀랄 일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출국 전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Q. 앞서 큰 무대로 진출한 동양인인 박지성, 이영표 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그다지 출중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히딩크 감독을 만나게 된 것이 빅리그 진출의 계기가 된 것 같다.

Q. 명문 셀틱 FC에 입단했는데, 더 큰 꿈이 있는가?
A. 박지성처럼 환경이 좋아서 쉽게 큰 무대를 가는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셀틱에서 더욱 노력하겠다.

Q. 유럽 무대에서의 성적은 기대한다면?
A. 내 신체 조건(187cm)이 좋아서, 유럽에 나가더라도 밀릴 것이 없다. 오히려 유럽에 알맞는 것 같다.

두웨이는 해외 진출에 대해 오만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셀틱으로 향했다. 박지성 이영표에 대한 건방진 멘트를 하지 않고 실력, 하다못해 잠재력만이라도 받쳐줬다면, 그래도 진취적인 젊은이의 표본으로 높이 살 만한 멋진 자세였을 것이다.

2.2.2. 활약상

파일:attachment/두웨이/데뷰.jpg
셀틱에 임대로 이적한 두웨이
셀틱에 합류해 팀 훈련을 이어온 두웨이는 12월부터 벤치에 앉는 등 점진적으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드디어 2006년 1월 9일 스코티시컵 3라운드(32강)에서 만난 스코티시 디비전 2(3부 리그) 클라이드 FC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셀틱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컵대회 3라운드, 그것도 3부 리그 팀과의 대결인 만큼 원래는 크게 주목받을만한 경기는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로이 킨이 키노게이트[3]를 일으키고 맨유를 떠나 셀틱에 입단한 뒤 나선 첫 경기가 바로 이 경기라 사람들의 관심이 꽤나 컸다. 그래도 스코틀랜드 3부 리그의 수준[4]과 당시 리그 1위를 질주하던 셀틱의 전력을 고려하면 무난한 대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파일:attachment/두웨이/발려주기.jpg
두웨이의 데뷔전을 요약하는 로이 킨의 분노[5]
그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셀틱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영상.[6] 두웨이는 전반 45분 동안 3번의 헛발, 7번의 삽질로 모자라 PK 헌납까지 했다.
파일:attachment/두웨이/발리기.jpg
파일:attachment/두웨이/발리다.jpg
상대편 공격수 톰 브라이튼[7]이 뒤에서 달려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경합을 시도해보았으나 피지컬에서 밀려 나가떨어지고 오히려 옆에서 커버하려 달려오던 같은 팀 수비수를 태클했다. 덕분에 완전한 오픈 1:1 찬스를 얻은 브라이튼은 득점까지 성공했는데, 두웨이와의 경합에서 공격자 반칙 판정을 받아 골을 날렸다.[8] 아무튼 이를 비롯해 8번의 맞대결에서 7번을 발려 주었으며, 전반 중반 중앙에서 힐 패스가 들어왔을 때 감각적인 플레이로 상대편 공격수에게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두웨이의 삽질 플레이가 계속되자 브라이튼이 두웨이를 호구로 보고 그의 발에다 대놓고 스로인을 한 다음 그 공을 뺏으려고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9]

결국 두웨이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교체되었으며, 셀틱은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클라이드에 1:2로 참패해 3라운드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한 번의 용병술 실수로 디펜딩 챔피언+현재 리그 선두가 3부 리그 팀에게 패배하는 셀틱 역사에 남을 치욕적인 기록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셀틱의 고든 스트라칸 감독은 2005-06시즌 7월 챔피언스 리그 예선 2차전에서 슬로바키아 아르트메디아 브라티슬라바에 원정경기 0-5로 패했을 때 보다 더 실망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르트메디아는 비록 약체리그 소속팀이 일지언정 2004-05 슬로바키아 수페르리가 우승팀이자 슈퍼컵 우승팀으로 챔피언스 리그 예선까지 나가서 셀틱을 제치고 32강까지 올라갔던 팀이다. 셀틱은 안방에서 아르트메디아를 4:0으로 이기며 설욕은 했지만 골득실로 밀려 탈락했다. 아르트메디아는 32강까지 올라가서 3위로 밀려났지만 2위인 레인저스 FC에게 아쉬운 승점 1점차로 밀려날 정도로 선전했다. 1위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4위 조 꼴지는 바로 2003-04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FC 포르투였으니 아르트메디아가 만만치 않았다. 즉 3부 리그팀과 차원이 달랐던 팀이다.

이러한 처참한 경기력으로 두웨이는 출전 45분 만에 임대계약 해지라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을 만들고 15일 만에 방출되었다.

2.3. 그 후

이후 허베이 화샤 싱푸의 주전 수비수로 뛰었으며 놀랍게도 2010 동아시아 대회에서 3:0으로 한국이 충격적으로 패배했을 때 중국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피지컬로 한국 공격수들을 그라운드 위에서 지웠으며,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10] 중국에서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다.

그가 항저우 소속으로 FC 서울과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를 때 한 기자가 제목으로 전설 드립을 쳤다. #

2018년 구이저우 헝펑 즈청에서 뛴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4. 여담

파일:external/ww3.sinaimg.cn/48cf12c9jw1emvrw9i94uj20zk0qk79d.jpg
2014년 12월 2일 청혼에 성공했다.

2020년 김민재의 중국 축구 평가가 중국 내에서 논란이 되자, 자신의 SNS에 "정말로 자신이 세계적인 선수라 생각하나? 다른 선수를 존중하는 법을 알아야 사람들이 당신을 존중한다"라며 김민재를 저격했다. 정작 두웨이 본인은 현역 시절 박지성의 실력과 성과를 줄기차게 폄하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중적인 언행이며, 덧붙여 그의 형편없는 유럽 무대 경력도 재조명되어 '감히 누구한테 지적질이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2~3년 후 김민재는 SSC 나폴리에서의 엄청난 활약으로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33년만의 스쿠데토를 차지하였으며 수비 축구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시즌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된 것은 물론 이후 아시아 축구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5000만 유로) 독일 축구 명문팀인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여 정말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버리면서 두웨이의 '일침'은 거듭 비웃음을 사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전설의 45분 계약해지 [2] 두웨이의 중국이 3위를 차지한 2000년 U-19 아시아 선수권 대회 때의 일이다. 당시 한국 팀에는 박지성 외에도 이천수, 최태욱, 조재진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 이라크에게 밀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3] 2005-06 시즌 전반기에 맨유가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1:4로 대참패하는 참사를 일으켰는데, 이를 본 킨이 맨유 구단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동료 선수들을 직접적으로 디스하는 인터뷰를 해버린 것.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데이비드 길 단장은 인터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LOSC 릴에게 패하자 이 인터뷰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이미 이 시즌을 끝으로 맨유를 떠날 예정이었던 킨은 이 사건으로 인해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2005년 11월 18일에 상호 계약 해지로 맨유를 나왔다. [4] 여기서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수준은 EPL 팀과 비교해도 안 밀리는 셀틱과 레인저스를 제외하면 대략 잉글랜드 3부 리그와 가깝다는 것이 중평이며 실제 선수 이적도 이러한 위상 하에서 대개 이루어졌다. 이보다 낮은 2부 리그로 들어가면 프로 끝자락에 걸치며, 그 아래는 세미프로~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그나마 클라이드는 프로 선수 몇 명과 아마추어 선수 몇 명이 섞여있는 세미프로 팀이긴 했다. [5] 앞서 말했듯 로이 킨은 키노게이트 사건 이후 셀틱에 입단한 상황이였다. 그러나 새로 이적한 팀이 3부리그 팀에게도 안 될 정도로 답이 없다는 것과 두웨이의 활약을 본 로이 킨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시간상으로도 아직 전반 초반에 스코어가 0:0이었다는 점이 포인트인데 셀틱 선수단이 더 답이 없다는 것을 경기를 뛰자마자 느꼈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두웨이는 독보적이었다. [6] 유튜브 제목도 Chinese Legendary Football Player - Du Wei다. 유튜브 리플 중에는 "얘는 중국에서 온 개그맨인가요?"라며 조롱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7] 원래는 레인저스 출신의 유망주였고 스코틀랜드 U-21 국가대표팀에도 들어갔던 선수였다. 그러나 이후로 성장이 정체되면서 스코틀랜드 1부 리그 약팀~잉글랜드 3부 리그 팀을 주로 오갔다. 클라이드는 그런 와중에도 가장 부진할 때 소속되어 있던 팀으로, 아마추어 선수가 아닌 엄연한 프로 선수고 전형적인 잉글랜드 3부, 스코틀랜드 1부 하위권 수준의 선수였다. 30대까지는 선수 생활을 한 걸 보면 그래도 동아시아의 평범한 선수에게 얕보일 정도는 전혀 아니다. [8] 브라이튼이 경합하면서 팔을 과하게 썼다고 판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리플레이를 보면 정당한 어깨싸움으로 볼 여지도 있어 VAR이 있는 현재였다면 판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노릇. [9] 이는 스로인을 던지고 제3자의 터치 없이 자신이 받게 되면 반칙이기 때문에,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두웨이에게 던진 다음 뺏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무리 경기 진행이 급하다 한들 상대 수비수에게 맞추고 다시 가져오는 방안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수비수에게 모욕이나 다름 없다. [10] 동아시아 대회는 1진이 아닌 2진 또는 3진이 나가기는 한다지만 이 때는 남아공 월드컵이 눈앞이고 적지 않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K리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당시 출전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실험이 목적이었는지 몰라도 포메이션이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