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3 20:40:03

독신

미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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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의 단계
결혼을
포기했다
결혼에
관심이 없다
결혼이
아예 싫다
N포세대
빙하기세대
사토리 세대
혐혼파



1. 설명2. 탄압과 차별의 역사3. 이유 - 국내의 경우
3.1. 독신 생활의 편의3.2. 복지 증가3.3. 경제적 문제3.4. 남성에게 강요되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염증3.5. 여성에게 과중된 육아에 대한 부담감3.6. 비자발적 독신3.7. 부모의 반대3.8. 종교적인 이유에 따른 독신3.9. 기타
4. 독신귀족5. 비혼?6. 독신의 특징
6.1. 자유
6.1.1. 육아 스트레스에서 해방6.1.2. 시댁, 처가 스트레스에서의 해방
6.2. 금전적 여유
7. 단점
7.1. 정서적 불안과 외로움7.2. 재정적 불안7.3. 건강관리에 취약7.4. 복합적 리스크
8. 관련 문서



1. 설명

독신(,)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 혹은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최근에는 미혼, 비혼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용례나 함축하는 의미에서 다소간의 차이가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현재 본 문서는 독신, 비혼, 미혼이 포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영어로는 Single이라고 하며, 흔히 쓰이는 솔로라는 말은 이탈리아어이다.

평생 독신인 비율도 늘고 더 나아가 비혼 비출산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경제문제, 사회문제, 성역할문제, 독신유행, 종교문제, 나이문제, 남녀문제 기타등등 잡다하고 복잡한 결혼/독신간의 논쟁이 병림픽처럼 이어지지만, 핵심은 자식 문제이다. 자식을 생각한다면 인간사회에서 독신은 어리석은 짓이고, 자식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혼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가족이 생기면 책임져야 할 것이 독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때문. 다만 결혼만 하고 아이는 갖지 않으려는 사람들( 딩크족)도 있기 때문에 자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곧 독신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 2세가 집단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에 사회나 국가, 공동체 입장에서는 개인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사회가 붕괴되어 매우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인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단위가 가정인데,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정이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사회가 파편화된다. 또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들은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회 계층별로 독신주의자의 비율은 다소 차이가 있다. 연예계를 비롯한 예술업계쪽은 특히 독신율이 높은 편이다. 일본 성우업계나 연예계도 제법 독신률이 높은 편이며, 이것은 꽤나 과거부터 그러한 편이었다. 최근에는 실업 등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일반인 중에서도 독신주의자가 많아졌다. 혼수문제 및 결혼자금 등에 대한 갈등이나, 서로 안 맞는 사람이랑 살다가 이혼하느니 처음부터 혼자 살겠다거나, 자신의 사생활을 마음놓고 보내고 싶다는 등 다양한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된 것도 이유이다. "난 솔로가 좋아" 전세계 독신인구 날로 는다 한편 동성애자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경우, 위장결혼을 거부하기 위해 독신을 택하는 경우도 잦다. 이 때문에, 역으로 독신인 사람은 주위에서 동성애자로 의심받기도 한다.

2. 탄압과 차별의 역사

한국뿐 아니라 과거 서구권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선택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여겨 왔고, 독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연구는 미국과 유럽에서 일찍부터 연구되어 왔다. 앞서 말했듯 독신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사회 붕괴가 가속화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떤 국가에서도 독신인 사람을 좋아한 적은 없다. 그래서 인권의식이 없던 과거엔 대놓고 탄압을 가했다. 인권과 민주의식이 생긴 현대에는 대놓고 탄압을 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결혼을 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현대에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금 제도를 독신자에게 불리하게 하거나, 이혼 관련 법률도 경제력을 가진 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하여 이혼을 최대한 억제하는 등 독신을 막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물론 대놓고 독신세를 부과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대신 결혼 가정에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식의 편법을 쓴다.

일찍이 독신은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진 생활방식이었다. 인구가 국력이자 자원이었던 옛날에는 자손을 두지 않고 홀로 생활하는 자는 체제를 뒤흔드는 '이단'이었다. 과거 서양에서 독신은 거의 죄악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중세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오히려 극초기 초대 교회 사도 바울로는 코린토1서 7장에서 독신으로 사는 것을 존중했는데, 탄압받는 상황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박함 때문에 정신적인 결백함을 추구하던 특성 때문이다. 7장 7절~9절에서는 '미혼이나 배우자가 사망한 사람은 나처럼 그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보며, 정 참을 수 없다면 결혼하시라. 성욕이 불처럼 들끓는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결혼한 사람의 성생활이 낫다'라고 했는데, 항시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결혼과 남녀간의 성욕을 죄악시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욕구와 감정을 초월하려는 초기 기독교의 사상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고 사회를 통치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자리잡고 나서는 현실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미덕들을 더 강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부부간, 자손 번영에 국한된 절제된 관계였다. 결혼이나 성관계가 욕망 충족의 수단이 되는 것에는 여전히 반발하였으나 출산과 번영은 덕목으로 칭송하였다.[1][2] 과거 그리스도교는 성직자, 수도자를 제외한 독신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여겼는데 가족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하는 전통사회에서 독신은 기존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독신자는 불신자와 동급이고 지옥에 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신이 죄악시되었는데, 가족들이 보는 데에서 임종을 맞은 기혼자가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가는 것을 그린 그림과, 그와 반대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독신자의 비참한 최후를 그린 그림이 아직도 전해져올 정도.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사제, 수도자들의 독신을 비난하면서 독신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다. # 지금도 개신교 근본주의 계열에서는 독신 자체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본다.[3]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고 또 기독교 자체가 과거에 비해서 많이 세속화되어, 현대 서구권에서 개개인의 가정사에 시시콜콜 간섭하면 눈총을 받는 분위기로 변했으며 한국에서도 점차 이러한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의 시골 사회라면 비혼에 대한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다.

독신자에 대한 세금의 추가 징수는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어서 로마 제국시대부터 독신세가 거두어졌고, 제정시대에는 독신자의 상속권도 박탈되었다. 유대교 역시 독신에 대단히 부정적이었는데 유대법전에서 독신자는 상해죄나 명예훼손죄와 맞먹는 형벌이 부가되었다. 종교 교리를 통해서 독신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힌두교에서는 독신자가 죽으면 3대가 아사 지옥에 간다고 주장했으며 페르시아에서도 독신은 3대에 걸쳐 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독신자가 죽을 때 미치는 화를 피하기 위하여 독신자들끼리 영혼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였다. 출처 마녀사냥이 성행하던 시절, 미망인이나 독거노인같은 비자발적 독신자뿐 아니라 결혼을 거부한 자발적 독신주의자들이 마녀로 몰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스파르타에선 겨울에 독신자들을 강제로 벌거벗겨서 광장을 돌게 하는 모욕을 주고 독신자들이 법을 어긴 만큼 벌을 받아도 싸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비단 고대나 중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도 독신자에 대한 탄압은 별로 줄어든 것이 없었는데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는 남성 독신세를 신설했고, 프랑스 학자 폴 오리(Paul Haury)는 독신자와 무자녀 기혼자들을 '무덤 하나만 남기는 번식하지 않는 세포'라고 부르며 프랑스를 죽인 살인용의자는 독신자라고 주장했다. #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고대 한반도의 경우 가뭄이 심하거나 수해가 들어 대흉년이 오면 합동결혼을 소홀히한 것에 대한 천신의 노여움으로 알고 독신자 색출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 또한 독신자를 족보에 올리지 않았으며 혈연에서도 소외시켰다. 조선의 경우 결혼을 못하는 처녀들에게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 혼인장려책[4]을 펼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처녀가 30살까지 결혼을 못 할 경우 가장을 처벌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차별과 탄압 사례를 보려면 장 클로드 볼로뉴의 ' 독신과 독신자의 역사(Histoire du celibat et des celibataires)'[5]를 보면 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독신의 수난사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결혼 독촉을 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할 의사가 있지만 결혼을 못하고 있는 비자발적 독신자들 뿐 아니라 독신을 선호하는 자발적 독신자들에게도 결혼과 자녀 출산을 강요하고 있는데 특히 셩뉘(剩女)라고 불리는 여성 독신자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3. 이유 - 국내의 경우

독신에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이유, 사연이 있겠지만 결혼이나 억압, 제도, 규범 등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 개인주의 인권의식 향상, 권리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된 것, 과거 농경사회나 가부장제 시대, 전체주의 문화와는 달리 한쪽이 상대방에게 갑질을 하면 참지 않는 것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구시대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힘과 권리, 지위를 이용해서 갑질을 하면 보통 한쪽이 수용하거나 혹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아서 인간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개인주의 인권의식 향상, 권리에 대한 정보가 향상되면서 그런 갑질과 일방적으로 참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확산되었다.

현재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2~30대의 경우 '결혼=효도'라는 구시대적 발상이 통하지도 않으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오히려 부모가 먼저 자녀에게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면 굳이 억지로 결혼하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권유하거나, 설령 그것까진 아니라도 자녀의 결혼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3.1. 독신 생활의 편의

과거에는 가사생활을 함에 있어 결혼이 확실히 효율적인 면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혼자 살아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각종 환경들이 척척 갖추어지고 있다. 식사 편의점 마트에서 즉시 섭취가 가능하거나,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에 짧은 시간 내에 조리가 가능한 것이 많다. 손맛이 나는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국, 찌개, 반찬을 포장해서 파는 가게가 지천에 널려 있다. 건강에 신경을 써서 직접 만들어 먹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손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게끔 필요한 재료들이 적절한 양으로 포장된 채로 판매되는 제품들이 늘고 있으며, 혼자서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식재료들 역시 1인 가구에 적합하도록 소량 포장되어 판매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6]

빨래도 세탁기로 처리하거나 빨래방, 세탁소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세탁소에 따라 다림질이나 옷별로 특성에 따른 관리도 해준다. 신발도 마찬가지. 심한 오지 수준의 시골이나 지방이 아니라면 대도시나 신도시의 번화가는 치안상태도 좋아서 범죄율도 낮으며, 각 자동차의 블랙박스나 CCTV, 각종 카메라 등도 범죄율을 낮추게 된다. 대도시, 신도시 위주로 여성이나 장애인이 밤에 혼자 활보하는 것도 치안이나 안전에 별 무리가 없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고 키우며 외로움을 달래거나 게임, 인터넷, 동영상 매체[7] 등을 취미로 하는 등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에 애정과 애착을 품는 일도 늘게 되면서 별로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정서적, 감정적으로도 별로 연애나 결혼을 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혼자서도 충분히 불편함이나 부족함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데, 감정 소모를 하면서까지 타인과 연애, 결혼을 해야 할 당위성,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결혼이나 연애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시간적/금전적 투자, 정서적 소모 대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3.2. 복지 증가

복지제도가 점차적으로 정비되는 것 역시 혼자 살고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제거해준다.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 및 취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장기 실업자나 장애인, 부상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 등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나 취약자에 대한 관심 및 지원도 점차 확산 중에 있다.

3.3. 경제적 문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 고용없는 성장, 비정규직 양산, 글로벌 경제 위기가 겹치면서, 이들 세대, 특히 남자들은 취업난과 함께 주택 마련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편으로 가부장제 가치관 하에서 남성은 경제적 부양을 강요받기 싫어[8] 비혼을 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일본의 경우 경제위기와 버블붕괴가 어느정도 진행된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남자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결혼 제도와 연애에 염증을 느끼고 이를 기피하는 남성들이 급증했다. 기존의 가부장제 군국주의적인 가치관에 입각해 이들을 비난, 멸시했지만 결혼, 연애를 기피하는 남성들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초식남, 절식남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연애 대신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몰두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 또한 IMF 외환위기의 후유증과 만성화된 청년실업으로 인해 2010년 이후로는 결혼, 연애에 관심없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의 경우 결혼적령기를 넘어서 독신을 결심하는 경우는 대개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을 갖춘 경우이다. 특히 능력이 좋은 여성일수록, 맞벌이는 당연히 요구되면서도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되는 육아, 집안일 기여도가 다르다는 것, 시댁의 부담 등으로 인해 자신이 잃게될 것들이 크게 다가오므로 독신을 고집한다. 꼭 고집하진 않더라도 여자의 커리어를 자신의 커리어보다 존중해주거나 혹은 동일하게 취급해줄 남성을 찾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독신으로 살아간다. 특히 2015년 이후 미디어에서 여러 형태의 싱글라이프를 보여주고 여러 비혼 여성 연예인들이 친숙하게 다가오면서 젊은 세대일수록 독신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 독신자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3.4. 남성에게 강요되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염증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남자의 비혼율(생애미혼율)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남성 10.9%, 여성 5.0%). 농촌 남성들이 장가를 못가기 때문에 남성의 비혼율이 높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도 과거 얘기일 뿐이다. 2015년 통계청 발표에서는 서울(12.3%), 부산(13.1%) 등 대도시의 비혼율이 농촌 지역의 평균 비혼율보다 높게 나왔다. 즉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장가를 못가서 비혼인 사람들보다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독신, 비혼을 선택하는 남성의 비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비혼율은 2000년 1.8%에서 2010년 5.8%, 2015년 10.9%로 급증하면서 빠르게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5년 생애미혼율이 남성 23.4%, 여성 14.1%에 달하며, 도쿄 등 도시 지역에서는 비혼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남성의 거의 1/4이 평생 독신으로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에게는 남녀평등, 남녀동권의 가치관이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 반면, 남성에게는 가장이라는 미명하에 과도한 의무를 강요하는 전근대적 가치관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이중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남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남성들에게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남아 있는 유교 가부장제의 잔재가 적용되고 있다. '양성'평등의 확산으로 가장의 권위는 사라졌지만 가장의 의무는 여전히 남자에게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연애, 데이트를 할 때에도 더치페이가 아닌 남성이 비용의 대부분 또는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결혼 후 남자가 처자식을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양 강요의 가치관, 결혼 시 남성이 주택과 자동차를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부장제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잔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때문에 결혼비용에서 남자가 책임져야 하는 부담은 가장의 권위가 존중받던 과거보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남녀평등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가정에서 경제력의 대부분 또는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남성인 것이 현실이다.

남녀평등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아내가 전업주부가 되고 남자가 외벌이로 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반대로 남자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전업으로 가사를 돌보는 경우 매우 무능력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지탄받거나, 설령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요즘 세상에 전업주부인 며느리를 나무라는 시어머니가 있다면 시어머니가 몹쓸 인간으로 비판받지만, 남자가 경제활동을 안하고 가사만 전담할 경우 장모님에게 면박당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남녀평등 시대를 맞았다고 하면서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맞벌이 안하는 집이 어디있느냐고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43.6%)과 외벌이 가정(42.3%)의 비율이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은 맞벌이를 반대하는 편인데 맞벌이 문서에서의 설문조사만 보더라도 맞벌이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특히 육아를 하는 20 ~ 30대에서 전업주부의 비율이 크게 높게 나타나다가 50대로 가면서 맞벌이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애초에 결혼 시점에서 직업이 없는 백수 여성의 비율도 약 40%을 차지하고 있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경우보다 그냥 원래부터 직장이 없었던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아직도 남자가 외벌이로 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도 많다. 또 맞벌이를 한다 해도 아내보다 남편의 수입이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여성이 혼자 외벌이로 돈을 벌거나, 혹은 맞벌이지만 여성의 연봉이 남편보다 더 높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처럼 현실에서는 남성이 가정의 경제력의 전부 혹은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남자가 가정의 경제력의 대부분, 혹은 맞벌이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최소한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지만, 집안일은 공평하게 반반으로 나눠서 하는 것이 트렌드다. 외벌이 남편이라 하더라도 아내로부터 일정부분 가사 노동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분담을 요구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0세기 이후 각종 가전 기구의 발달로 가사 노동의 강도가 크게 줄어 들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여성이 하루 종일 전업으로 가사를 돌봐야 했던 것이 이제는 맞벌이를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가사 노동의 강도가 낮아졌다. 게다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가사일의 부담은 대폭 줄어든다.

여성들은 '육아에 대한 부담감'을 주문처럼 읊어 대지만, 2017년 통계에 따르면 2세부터 7세까지 미취학 아동의 84%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미 2세 유아의 75%가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한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어린이집에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들이 맞벌이 엄마보다 아이를 더 빨리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후 6시에 어린이집에서 하원한다. 그러니 평일 낮시간에 백화점, 문화센터, 카페가 주부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더욱 모순적인 것은 남편이 가정의 경제적 수입의 대부분 혹은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경제권은 여성이 장악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자신의 수입을 그대로 몰수 당하고 10 ~ 30만원의 용돈만으로 생활하도록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비와 식비를 제외하면 고등학생보다 실질적인 용돈이 낮은 경우도 적지 않다. 거의 아무런 취미 활동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없으며, 혹시라도 용돈을 초과 지출할 경우 유흥업소에라도 갔냐면서 시달림을 당하는 등 매우 피곤해 지는 경우가 많다. 비자금을 마련해 놨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이혼할 때까지 평생 약점잡히게 된다. 반면 아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남편은 드물다. 생활비 지출 내역에 대해 묻기라도 하면 지금 나를 의심하냐면서 성질부터 낸다.

남편의 용돈은 고등학생 수준으로 제한하지만, 몇몇 주부들은 낮시간에 문화센터, 백화점, 카페, 헬스장에서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며 카페에 모여서 서로 남편 뒷담화를 까고, 남편을 조련한 무용담을 늘어 놓으며, 남편을 더 벗겨먹고 굴려먹기 위한 각종 노하우들을 공유한다.

낮 시간에 전업주부들은 가사에 소비하는 일정 시간을 제외하고는 문화센터 등에서 자유롭게 자기계발(?!)을 하고 친구들이나 맘카페 회원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지만, 남편이 1년에 단 한두번 친구들이랑 만나 늦게 들어오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 남편이 친구들이랑 술마시다가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기라도 하면 이혼 사유가 추가된다.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지위가 올라감과 동시에 책임이 커지고 한편으로 퇴직의 압박감이 조여오면서 하루하루 더욱 힘겨워지지만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매일 전쟁터와 같은 직장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 와중에 집안에 충분한 신경을 쓰지 못할 경우 자녀들이 성장하여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가정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가정 내에서 남자의 존재는 더이상 전혀 존중되지 않고 오로지 가정을 위한 ATM기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 가장의 현실이다.

경제적 부담과 별개로 처가에 대한 부담도 있다. 여자에게만 지옥같은 시월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에게는 처가가 있다. 여성이 시댁에 가는 것보다야 부담이 덜하겠지만 그래도 남성 입장에서 처가에 가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요즘은 시부모들도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고, 서로 불편할까봐 며느리에게 시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최근에는 남자에게 있어 처가의 부담이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빈도보다 사위가 처가에 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시댁에 가는 경우는 거의 명절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처가의 경우 자녀 양육과 결부되어 빈번하게 왕래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 내내 처가에서 보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처가에 가서 아무일도 안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처가에서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남자가 이혼의 유책이 없으며, 남자가 결혼할 때 집을 마련했고, 결혼 후에도 외벌이로 가정의 수입을 홀로 책임졌다 하더라도 재산의 거의 절반을 내줘야 한다. 여기에 양육비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사실상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줘야 하는 경우도 많다.

원론적으로 이혼시 재산 분할의 대상은 결혼 이후 공동으로 형성한 자산에 한정된 것이며, 상당수의 남자들도 이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판례에서는 남자가 결혼 전에 보유했던 자산도 예외없이 고스란히 분할 대상이 되며, 그 비율도 결혼 후 형성된 자산의 분할 비율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결혼 전부터 보유하고 있었던 자산까지 분할해야 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 하는 경우도 많지만, 법조계에서는 아내가 가사, 육아 등을 통해 결혼 전 자산이 손실되지 않고 유지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끔 남자의 결혼 전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결혼 기간이 1년 이하로 매우 짧으며, 배우자의 기여도가 전혀 없고, 남자에게 이혼의 유책 사유가 없는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앞으로 얻게 될 미래 수입도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된다.(...) 퇴직금은 아직 받지 않았더라도 이혼 시점을 기준으로 예상 퇴직금을 산정하여 분할하게 된다. 남자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일정한 미래 수입이 예상되는 경우 남자의 미래 수입도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된다.(...) 맞벌이인 경우 남편과 아내의 연봉 차이가 현격히 크더라도 거의 예외없이 50대50으로 재산을 분할하게 된다.(...) 그러나 채무는 공동 명의의 채무가 아닌 이상 이혼시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혼 관련 법률은 정의와 원칙에서 상당히 벗어난 부조리와 모순이 가득차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혼 관련 법들은 과거 남자가 거의 경제 활동을 도맡아 하고 여성이 전업 주부인 경우가 보편적이었던 시절, 가정을 보호하고 이혼할 경우 경제 활동을 영위하기가 힘든 여성과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여성에게 매우 유리하고 남자에게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다. 과거에는 이혼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이혼법이 여성에게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혼하려는 경우가 드물었다. 법률 또한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감안하여 이혼을 악용하는 사례가 거의 없을 것으로 감안하고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혼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요즘 많은 여성들이 혼테크의 완성을 위해 이혼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또 실제로 이혼까지는 안가더라도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성들은 이혼을 빌미로 가정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악용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혼시 양육비 문제로 여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양육권을 가져가려 한다. 직장이 있는 남자들 또한 직장 문제로 양육권을 넘겨주고 양육비를 지불하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양육권이라는 칼자루를 넘겨주고 나면 이제는 보고 싶은 자식 얼굴 조차 마음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양육비는 양육비대로 나가지만 각종 핑계로 자녀 접견권조차 제한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면 아내의 본격적인 멘탈 쪼이기가 시작된다. 남편이 조기 퇴직하여 노후 자금이 충분치 않은 데다가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 보이는 경우 아내는 재빨리 제몫을 챙기기 위해 이혼하려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황혼이혼은 남편의 퇴직 시점에 집중되고 있다.

드물게 60대 정년 퇴직 때까지 버티는데 성공한 경우, 노후자금도 충분히 마련하여 이제는 은퇴하여 자택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지 하면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정년 퇴직을 하지만, 경제력이 떨어지고 가정 내에서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약한 남성들이 집 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집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렇게 평생 동안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을 하며 남성 나름대로의 가정에 대한 헌신을 바치지만, 최근 가사노동의 가치가 재조명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남성의 노동에 대한 대가가 폄하받는 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대부분 20대에 결혼을 했지만, 취업 전쟁 및 집값 폭등 등으로 점차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이제는 남성의 평균 결혼 연령도 30대 초중반으로 늦춰졌다. 과거에는 20대의 젊은 혈기에 사랑에 빠져 덥썩 결혼을 선택했지만, 이제는 30대에 이르러 현실을 보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결혼( 취집, 혼테크 등)에 대해도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결혼기피, 비혼, 독신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처럼 남자는 대를 이어야하기 때문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지면서 결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부모들 또한 아들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남자의 비혼율(생애미혼율)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것(2015년 기준 남성 10.9%, 여성 5.0%)은 이러한 모순적이고 편향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젊은 남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일본 남성의 생애미혼율(평생비혼율)은 거의 25%에 달하며 계속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 여성의 생애미혼율은 14.1%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이 결혼에 적극적인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며, 젊은 여성들의 결혼을 위한 노력을 '구직 활동'을 일컫는 조어인 취활(就活, しゅうかつ)[9] 에 빗대어서 취집 혼활(婚活, こんかつ)[10] 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3.5. 여성에게 과중된 육아에 대한 부담감

여성은 여성대로 돈을 벌어오면서도 집안일과 육아의 총책임자는 일단 여자라는 사회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던가, 결국 일과 가정 둘 다 온전히 챙기지 못하고 양측에서 욕만 먹는다. 2014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도 집안일과 육아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한다고 한다. 출처

최근 미디어에서 각광 받고 있는 슈퍼맘 이미지 또한 직업을 가진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과 가사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은 칭찬 받아 마땅하나 남성은 제외시키고 여성에게만 그런 이미지를 투영하고 압박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지금 세대의 여성들 사이에선 페미니즘이 퍼지기 전에도 무조건적 희생으로 자신의 삶이 없다시피 한 어머니, 시댁과의 불편한 관계를 보고 자라오면서 결혼제도에 대한 염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구권에서 처음 페미니즘이 대두하면서 일부 여성 운동가들이 자발적 독신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독신 생활을 고수하였다. 이들은 결혼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와 기득권층에 맞서 주체적 여성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독신을 택했다. 급격히 불고있는 한국 내 급진적 페미니즘 또한 기본적으로 비혼과 비출산을 모토로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여성에게 부과되는 책임감이 여성이 가진 사회적 인정 욕구, 권력 욕구를 빼앗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유명한 금혼 규정도 이처럼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었다. 1886년 미국인 여성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했을 때, 당시 조선 여성의 인권은 시궁창이었으며, 특히 조혼의 악습이 성행했다. 학교를 다니다가도 부모와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강제로 시집가는 소녀들이 많았다. 이화학당은 기숙학교였는데, 방학 중 고향에 내려갔다가 강제로 시집보내져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때문에 이화학당을 운영하던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은 학부모들을 설득하느라 애먹었고, 심지어 방학을 없애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만든 것이 결국 금혼 학칙이었던 것. 다만 시대가 변하면서 현대에 들어서는 이 교칙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었고,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학칙을 폐지했다.

3.6. 비자발적 독신

위와 같은 자발적 독신 이외에도 본인이 결혼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독신으로 눌러앉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80년대 말~90년대 초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었던 농어촌 지역 노총각의 급증 문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농어업인들은 암암리에 결혼 기피 대상이었기에,[11][12] 농어촌 지역의 처녀들은 도시로 빠져나가는 반면, 농어촌으로 시집오는 처녀가 없어서 농어촌 지역의 청년 상당수가 배우자를 찾지 못하고 총각인 채로 늙어가는 일이 흔했고, 이로 인해 나이 들도록 장가를 못간 농촌 총각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일도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은 대부분 국제결혼으로 대충 때우고 있는 실정. 그래서 농어촌 지역에 이른바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는 국제결혼 가정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2010년도 기준 중장년층을 끝으로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으며, 청년층은 매매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도 기피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전 세대는 어떻게든 결혼을 반드시 해야된다는 집단사고가 존재했기 때문에[13] 국제결혼이라도 해서 결혼을 했던 반면, 국제결혼의 단점이 부각된 이후의 세대는 개인주의가 퍼졌기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안한다는 식의 사고가 퍼졌기 때문이다.

3.7. 부모의 반대

남성들의 부모는 연애 권력을 부정하며 반대를 한다. 이런 경우 살 집을 구할 수 없으면 결혼이 불가능해진다. 여성들의 부모 역시 딸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빠른 결혼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남성의 집안, 학력, 학벌 등 판단 가능한 모든 부분을 따지고 간섭하기는 마찬가지.

3.8. 종교적인 이유에 따른 독신

Celibacy

가톨릭 성직자[14] 수도자 불교[15] 비구승과 비구니승은 종교 규율상 출가한 이후로는 평생동안 독신으로 살아야만 한다. 정교회 역시 미혼자들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될 수 있지만, 성직자에 한해서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이미 결혼한 상태라 해도 성직자가 될 수 있다. 단, 성직자가 된 이후에는 결혼할 수 없다. 그리고 결혼한 상태에서 사제가 된 이들은 주교도 될 수가 없다. 원칙적으로 주교가 될 수 있는 이는 오직 독신 성직자만이다[16].

원불교의 경우 남성 교무는 비혼이 강제되지 않으나, 여성 교무('정녀')의 경우에는 비혼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사실 원불교의 비혼 규칙은 처음엔 여자를 위한 정책이었다. 원불교가 처음 등장했을 때인 일제강점기 및 직후의 시기는 여자가 강제로 일찍 결혼( 조혼)해서 시집살이 육아를 강요받던 시기였다. 이를 막고, 나아가 여자의 자유로운 사회 생활을 위해 원불교의 여성 교직자의 결혼을 막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대에는 결혼도 여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자 오히려 자유로운 결혼 생활을 막는 방해물이 됐다. 그래서 원불교 내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전부터 있어 왔고, 여성 교무의 혼인을 허용하기로 규칙을 바꾸는 가시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고 2019년부로 여성 교무도 혼인이 가능하도록 규칙이 개정되었다.

가톨릭 교회법에 의하면 혼인성사를 유효하게 받으려면 고자가 아니고 혼인에 대해 이해할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자이거나 지적장애인 경우는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3.9. 기타

20세기 들어 독신자를 탄압한 정권들을 살펴보면 1920년대의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시스트 혹은 독재 정권이었다.[17] 이에 대한 반동으로 68운동 세대와 히피 등은 독신에 대해 우호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독신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개선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또 다른 이유로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범죄 등의 트라우마를 겪어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18] 이러한 사건들은 개인의 이성관, 가정관 자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이성과의 만남 자체에 대한 기피나 공포, 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감 부족 등[19]을 초래하여 결혼을 꺼리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건 결혼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인격 형성과 정신의 문제인지라 아직 트라우마가 채 남아있는 사람에게 결혼 문제를 운운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볼 수도 있다.[20]

그냥 이성에게 관심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게 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어 연애를 안 하는 초식남, 절식남, 건어물녀 역시 최종 테크는 결국 독신이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말이 되냐는 시각과 달리 주변에 찾아보면 절대 없지는 않다. 이는 성적 지향에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타고난 성적 지향이 이성애자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성에게 관심이 없고 그 외의 다른 취미활동 등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 부류는 타인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독신주의를 버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특징이 있기도 하다. 애초에 본인이 관심이 없다는데 남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선천적으로 어떤 성별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지향성인 무성애 또한 독신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무성애자는 무조건 독신자'라는 공식도 잘못된 편견이다. 애초에 독신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자발적 선택'이나, 개인의 선천적으로 고유한 성지향성인 무성애는 그렇지 않기에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21] [22] 어쩌면 무성애자가 독신이 되는 경우는 처음부터 타고난 성향 자체가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이므로 N포세대처럼 '결혼을 포기했다'거나, 독신주의자처럼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미래에 태어날 자녀에게 고통을 물려주지 않게 하고 싶다는 점에서 반출생주의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결혼을 하면서도 딩크족 등의 방식으로 반출생주의자는 될 수 있다.

비혼주의자들은 결혼을 해야,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성갈등이 극대화된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미 일부라고 하기는 힘들 만큼 상당히 퍼져버린 레디컬 페미니즘 마인드[23]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종종 보이곤 한다. 레디컬 페미니즘 주류가 20대 여성인 만큼 지금 당장의 혼인에는 영향이 없을지 모르나, 앞으로의 혼인율에는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독신귀족

주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독신을 선호한다고 한다. 사실 독신으로 사는 남녀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기는 어렵지 않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아이 양육비, 사교육비 등으로 돈이 나갈 일이 없고, 이성을 만나지 않으니 데이트 비용을 쓸 일도 없고, 외식할 때도 한 사람 몫만 내면 되고 하다보면 그다지 돈 쓸 일이 없기 때문.[24] 규모의 경제 논리가 나올 여지는 있지만, 기껏해야 샴푸 같은 소모품 일부에 한정된다.월세는 크다.[25] 식료품도 많이 사면 조금 싸긴 한데, 어차피 대부분 혼자 다 못 먹는다...

단, 금전 감각이 없거나 돈 많이 나가는 취미를 가졌을 경우에는 예외다. 이 때는 아는 사람이 적절히 말려주지 않으면 독신이든 비혼자든 집안 기둥뿌리 뽑을 때가 있다. 물론 독신자는 최악의 경우의 수가 나와 낭비로 인해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가정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부담이 적다. 최소한 자기 피붙이들을 굶길 일은 없으니까. 문제는 오랫동안 혼자 사는 경우 금전감각도 떨어지고 돈 많이 나가는 취미를 가지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이 일만 하고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이미 충분히 돈을 잘 벌지만 나의 생활을 가지고 싶어 독신이 되는 일보다는,[26] 월급이 정말 너무너무 적어 독신으로 살지 않을 경우 생존이 불가능해(...) 강제로 독신의 삶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이 늘고 있다. 2019~20년 1인가구 중위소득은 176만원 가량인데, 여기서 세금때면 160만 조금 안되는데 여기서 평균 월세비 54만원을 빼면 100만원 정도 남는다.(...)

사실상 60~80년대에도 독신자들은 꽤 있었다. 그 당시에도 아이 양육비와 사교육비가 절대로 싸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정부주도로 가족계획을 실시하던 그 70년대에도 오히려 독신자들은 세금 때문에 못살겠다고 호소하는 판국이었다. 독일의 경우, 이미 90년대부터 세금공제 때문에 결혼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정도. 저출산 문제가 이슈화된 지금의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독신귀족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다만 독신자들의 경우 배우자나 양육할 자녀가 없기 때문에, 양육비와 교육비로 스트레스받는[27] 기혼자들과는 다르게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다. 게다가 일단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양육비와 교육비와 같은 경제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소모에다가 막중한 책임감과 의무감까지 감당해야 한다. 결국에는 개인이 어떻게 자산을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5. 비혼?

한국에서 법적으로 독신인 사람은 모두 '미혼'인데 자의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고 싶은 사람은 '비혼'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혼(未婚)의 뉘앙스는 아직 혼인하지 않은 다시말하자면 언젠가는 혼인할 것이고 결혼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재로 쓰는 말이지만 비혼(非婚)은 혼인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이유. 일본에서 쓰던 용어가 그대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요즘 쓰이는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미혼은 재고, 불혼은 유통기간 지난 상품, 비혼은 비매품.[28]

비혼은 신조어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라서 일반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점차 자리잡아가는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그냥 '독신'은 본인의 의지 여부나 사유가 개입되지 않은 포괄적인 단어[29]이므로 '독신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고, 아직 '비혼'이라고 하면 그 뜻이 뭔지 몰라서 발음이 얼핏 비슷하면서 정반대 의미인 '기혼'으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다.

6. 독신의 특징

6.1.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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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나 혼자 생활하는 식이기 때문에 누구하나 간섭하거나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내 마음대로 자체적인 생활과 여유 등을 즐길 수 있고 벌은 돈을 모두 내 것으로 저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만큼 근본적으로 책임질 일 자체가 줄어든다. 특히 최근 경제불황과 누구의 간섭 등을 받고싶지 않아서 홀로 살겠다는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 현대 한국에선 대부분 부모가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오랫동안 부양하기도 하는 편이라 굳이 독신으로 살아도 부모들의 후속 지원도 있고, 부모들도 자식들이 결혼한답시고 (특히 남자의 경우 더더욱) 집을 비롯한 각종 살림 장만 등에 도와달라고 손을 얹느니 차라리 결혼을 안 시키는게 편하다는 부모들도 있다. 자신만의 여가문화를 자유롭고 많이 즐길 수 있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인 장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연구진에 따르면 미혼자는 기혼자보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긍정적인 마인드가 강하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가는 것에 이점이 있는 것이다. "솔로, 결혼한 사람보다 더 긍정적"...과학적 입증 기사링크

정서적으로도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서적 소모를 피하고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일, 자기계발, 취미에 투입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데이트 폭력, 피임 실패 시 원하지 않는 임신역시 신경쓸 필요가 없다. 덧붙여 소홀했던 인간관계을 복원하거나 취미생활, 자기계발 등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커리어적인 측면에서도 자유가 생긴다. 기혼자는 배우자와 자식들의 삶의 질도 책임을 져야 하기에 제약이 많지만, 독신자는 창업을 하든, 직업을 바꾸든, 유학을 가든, 전문 투자자가 되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6.1.1. 육아 스트레스에서 해방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결혼은 자손, 즉 출산과 양육을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출산, 육아, 교육은 절대 쉽지 않다. 설사 경제적 능력이 있어도 어려운데[30],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덧붙여, 올바른 인격체 하나를 키워낸다는게 경제적 능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부모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자식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성찰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는 사소한 행동이 자식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곧 부모로서의 무책임을 의미한다. 독신을 선택하게 되면 이런 고난이도의 육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육아 스트레스라는 건 자신의 인생을 깎아서 아이에게 바치는 행위라고 여겨질 정도로 압도적이다. 자신이 독신자라고 해서 주변 사람도 독신자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 독신자든 여자 독신자든 결국 언젠가는 육아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지인/친구 등을 주위에서 신물나도록 보게 되므로 이에 대해 상당한 공포심과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6.1.2. 시댁, 처가 스트레스에서의 해방

결혼을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보지 않는 전근대적 사회나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제정일치 사회, 그밖에 편견과 인습이 강한 사회에서는 결혼을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만남, 거래 등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결혼 후 상대방이 시댁이나 처가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갈등과 스트레스, 모욕 등에 시달린다.

그밖에도 시댁과 처가와의 분쟁, 갈등의 위험이 존재한다. 비혼을 선택했다면 시댁, 처가로 인한 스트레스에서는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시댁, 처가의 간섭과 시선의식, 시댁 체면, 처가 체면이라는 점과 용돈 압박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6.2. 금전적 여유

자녀가 없는 맞벌이 가정이 아닌 이상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가장의 지출이 클 수 밖에 없다. 결혼 가정의 경우 맞벌이가 아닐 시 배우자를 먹여살려야 하는 것은 물론, 자녀까지 있을 경우 자녀에 수에 비례하여 생활비가 급증하게 되는 반면 독신은 조세 제도에서 보는 약간의 불이익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의 기본 지출이 적어진다.[31] 그중 가장 큰 것은 내집마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대개의 경우 혼자 사는 사람은 딱히 집이 작더라도 상관없고, 오히려 집이 너무 크면 청소 등의 관리를 하기 번거로워질 뿐이기 때문.

미혼자의 경우 정규직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투잡을 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심에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라서 최소한 생활빚을 안 지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회사 정규직인 미혼자일 경우 추가적으로 돈이 나가는 일이 없으므로, 특별히 취미생활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 한은 돈이 쌓일 수밖에 없다.

다만, 독신자로 살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보다 금전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종종 외벌이 가장임에도 아내에게 아주 약간의 용돈만 타쓴다는 식의 이야기가 보일때도 있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돈을 헤프게 쓸 경우 막아줄 아내라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뜻이다.[32] 독신이면 어디에 돈을 수십 수백만을 쓰든 의논하지 않는 이상 말려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본인 스스로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본의 아니게 헤프게 쓰는 것 외에도 돈을 써야할 지 말아야할 지 애매한 상황일 때 가정이 있는 사람은 배우자와 논의해 어떤게 합리적인지 끝까지 같이 생각할 수 있지만 독신자는 끝까지 스스로 혼자서 결론을 내야 한다. 친구나 지인한테 상담하는 방법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가족인 사람과 지인인 사람과의 상담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돈 좀 써서 바로 타격이 오는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혹시나 타이밍이 영 좋지 않게 상술한 일이 생긴다면 말 그대로 한순간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이 될 수가 있다.

7.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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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은 안정적인 삶이란 측면에서 결혼보다 불리하다. 정서적, 재정적, 신체적 삶의 안정성이란 측면에서 독신자는 기혼자에게 열세에 있으며, 삶의 부정적인 충격에 대응하기도, 재기하기도 훨씬 더 어렵다. 물론 기혼이든 독신이든 자기하기 나름이며, 자신의 성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일부 단점은 극복할 수 있거나 아예 상쇄할 수 있다. 허나, 다른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기혼/독신을 고려하면 후자가 훨씬 더 리스크가 심하다. 독신을 고른다면 이러한 단점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심사숙고해야한다. 결혼/독신은 현실이며, 일생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의사결정임을 잊으면 안된다.

7.1. 정서적 불안과 외로움

독신은 기본적으로 자신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특성 상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외로움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적은 사람에게는 단점이 안 되지만, 많이 타는 사람은 견딜 수 없는 부담이자 큰 단점이다.[33] 혼자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자신 곁에 있어주고 깊게 이해해주는 가족이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청장년층까지는 아직 대부분 부모가 있으므로 그나마 외로움이 덜하겠지만, 부모가 사망한 후에는 정말로 혼자만 남게 되어 외로움이 심화될 수 있다.

형제자매나 친구, 애완동물 또는 여러 미디어 매체들이 어느정도 그 빈자리를 대신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형제자매의 경우는 그들도 역시 독신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삶이 있기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만큼 깊은 관계가 되기는 쉽지 않으며, 친구나 애완동물은 근본적으로 남이거나 동물이기 때문에 가족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정서적 유대를 나누기는 힘들고, 미디어 매체들은 당장의 외로움이나 따분함, 욕구 등은 해소할 수 있어도 사람 간의 정과 사랑이라는 정서적 욕구는 채울 수 없다. 독신에 비해 기혼자가 월등히 많은 현실상, 상당수의 친구들은 자신의 가정이 있어 가정을 제1순위로 두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한정된 시간과 돈, 에너지, 주의력을 고려하면 독신자의 기혼 친구들은 일과 가정 때문에 친구들에게 소흘하게 된다. 하물며 연애만 해도 만나기 힘들어지는게 친구다. 독신자들이 과도하게 기혼자인 친구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단점은 바라볼 사람이 친구밖에 없는 독신자 입장에선 뼈아픈 단점이다. 그나마 자신과 같은 독신자인 형제자매가 있고,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깊을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게 되어 외로움을 많이 달래 줄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런 케이스는 결코 흔하지 않다.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독신자들은 기혼자들보다 우울장애 등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정신질환에 더 취약하며, 특히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이 있는 사람들과 달리 이를 극복하기가 더 어렵고 결국 그대로 무너져 비참하게 살아가거나,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34]

7.2. 재정적 불안

비혼을 택한다는 것은 결혼이 제공해주는 삶의 재정적 안정성을 포기하는 선택이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해야해서 비출산 기혼자에 비하면 경제적 자유가 많지 않다.[35] 비록 오늘날에는 결혼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져가고 있다고는 하나 결혼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복지 및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했음을 잊어선 안된다.

대한민국은 보편적 복지는 몰라도 정부가 보장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크지 않고, 경직적 노동시장으로 기업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보니 독신자인 사람이 해고라도 당하면 정말 당장 먹고살 일 부터가 막막해 진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유일한 희망이라는 복지제도조차도 무상 공교육 등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독신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극히 적다. 사실상 독거노인이 될 때까지 독신자를 위한 복지제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맞벌이 부부 같은 경우에는 한 쪽이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어도 다른 한 쪽이 수입을 유지한다면 건강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을 때까지 버티기가 어느정도 용이하다. 하지만 독신자의 경우 질병이나 사고, 경제불황에 의한 실직 등으로 인해 수입이 줄거나 없어져버리면 생활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이 오게 된다. 독신자는 삶의 부정적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이 필수다. 그 때문에 저축을 하고 남은 임금은 생각보다 적으며, 그렇게 저축을 해도 완벽히 대비하기는 힘들다. 결론적으로, 미래에 닥칠 수 있는 리스크를 방만하고 소비생활을 즐기면 미래에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 감당해내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고, 이러한 미래를 걱정해서 저축을 많이 하면 현재 쓸 수 있는 소비 수준이 줄어들어 현재의 삶이 팍팍해지기 쉽다. 결국 그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7.3. 건강관리에 취약

평상시의 건강관리도 기혼자에게 수월하다. 나와 정서적 일체감을 느끼며 내 건강을 자신의 건강처럼 챙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큰 이득이며, 한국은 아직 독신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혼자에 비해 야근과 초과업무 등 과도한 업무지시를 거리낌 없이 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때문에 사회적 여건으로도 건강관리할 시간과 여유가 오히려 기혼자에 비해 부족해질 수 있다.

특히 아플때에 생기는 문제와 리스크는 독신자가 훨씬 크다. 가벼운 감기같은거야 혼자 누웠다 일어나면 그만이지만 가령 손을 다쳐서 한동안 한쪽 손을 못쓸 경우 집안일이나 각종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기혼자들은 가족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독신자는 한손을 못써서 얻는 불편함을 모두 혼자 감내해야 한다. 갑자기 몸을 다치거나 했을 경우 기혼자들은 가족의 도움으로 일차적인 응급치료는 받을 수 있지만 독신자들은 혼자 응급치료를 해야하고 안되면 무조건 병원을 가야 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 생활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이조차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이지만[36], 결국 혼자이기 때문에 오는 불편함과 패널티는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자택에 혼자 있는 상황에서 뇌졸증이나 심장마비라도 오거나, 갑작스럽게 큰 부상을 입거나, 혈당 쇼크와 같은 스스로 응급처치가 불가능하고, 구조요청도 취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이 찾아오게 되면 가족이 있는 사람보다 독신자가 사망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 설령 중대한 위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몸이 아프게 되면 정서적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독신인 사람은 몸이 아플 때 물리적,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매우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7.4. 복합적 리스크

이러한 요인들이 동시에 찾아오면 독신자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일은 늘 다른 부정적인 일을 동반한다. 기혼자들은 부정적인 일이 닥쳤을 때 그래도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식들이 추가로 찾아올 부정적인 일을 막아줄 방패가 될 수 있지만, 독신자들은 부정적인 일의 연쇄 작용에 그대로 노출된다. 신체적 질병은 정서적 고통과 갑작스러운 지출도 동반하기 마련이고, 외로움이 건강을 악화시키고 직장생활에서의 생산성을 낮출 수도 있다. 해고되고 무너진 삶의 질이 신체적 질병과 정서적 불안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이게 하나의 악순환을 이루면서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가게 된다. 독신을 선택하면 살다가 복합적 난관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하고 대비해야하며, 이러한 난관에 완벽히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점 또한 받아들여야한다.

8. 관련 문서


[1]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함께 경전으로 인정하는 구약성서에서는 출산과 번영을 신이 내려주는 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위 문단에 나온 바울서신을 비롯한 신약성서에서도 무조건 독신이 좋다고 하는건 아니다. [2] 자발적 독신자들을 무신론자로 여기는 성향이 있었는데 과거 기독교 문화권에서 무신론자들에 대한 반응과 대우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3] 특히 최근 들어서는 독신과 저출산 문제에 대해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자주 인용된다. 그 중에서도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를 많이 언급한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라는 히브리서 13장 4절에 나오는 구절도 많이 언급한다. 이들은 동성애에 대해서도 '생육의 의무'를 져버린 죄악으로 보고 강력히 반대한다. [4] 예나 지금이나 인구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기에 부목군현에 파견된 수령의 업무인 7사 중 '호구 확보'는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업무였으며, 호구 확보의 최우선책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결혼장려책이었다. [5] 한국에서는 '독신의 수난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6] 예를 들어, 수박의 경우 혼자서 한 통을 모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반통이나 1/4통으로 잘라 판매하는 식. [7]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8] 매달 수백만원 이상의 월급을 벌어 오면서도 정작 이 급여의 대부분을 배우자에게 모두 가져다 바치다시피 하고 자신이 벌어온 것의 1/10도 안되는 푼돈을 용돈으로 받아 쓰는 생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 역시 포함된다. 당장 기혼 남성이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비상금을 숨겨두고, 이것이 발각돼서 아내에게 폭풍같은 잔소리를 듣거나 하는 장면은 각종 매체에서 많이 묘사된 바 있으며, 실제로도 이런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 이것 역시 자신이 벌어온 돈의 대부분을 자기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가족 부양에 써야만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심지어 이유를 막론하고 실직하면 곧바로 재취업하지 않는 이상 바로 가정 해체 단계로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이 경우 남성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결혼을 안한 독신주의자들과 달리 가족 부양에 힘써왔는데 결국 이 꼴이 났다는 자괴감과 허무주의에 빠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9] '취직 활동'의 준말이다. [10] '결혼 활동'의 준말 [11] 영세농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군(郡)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농들조차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2] 농어업인을 결혼대상으로 기피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농어업이 고된 노동 강도에 비해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 지역에 비해 여러 모로 열악한 인프라 및 농어촌의 공동체적, 가부장적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13]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어야 책임감 있는 성숙한 사회인으로 대접했고, 동시에 사회적 평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였다. 때문에 성직자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당대의 독신자들은 책임감이 없는 방탕한 사람이거나, 뭔가 정신적/신체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해 이로 인한 사회적 불이익도 감수해야 했다. [14] 반대로 개신교에서는 독신자는 (사별한 경우 외에는)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종파도 존재한다. 바울서신에서 직분자의 자격 중 하나로 "한 아내 남편"이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 [15] 다만, 불교 내에서도 태고종 등 몇몇 종단 및 일본 불교의 일부 종파 등에서는 ( 승려에게) 대처(帶妻)를 허용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는 아예 대를 이어서 절을 물려받는 경우까지 있다. [16] 하지만 원칙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인 모양이다. 어디든 예외는 있어서, 몬테네그로의 현 왕실은 본래 대대로 정교회의 몬테네그로 교구의 대주교를 지낸 가문이었다. 대주교 직위를 대놓고 부자세습으로 유지하다보니, 일반적인 세속 군주와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몬테네그로가 독립한 뒤로는, 몬테네그로 교구의 대주교 직위는 전속 성직자들에게 넘겨버리고, 본래의 대주교 가문은 세속화하여 세속의 작위를 칭하게 됐다. [17] 무솔리니, 히틀러, 차우셰스쿠 등. [18] 예: 부모님 (아내나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안 재산을 몰래 탕진해 가족 전체를 파산시키거나 하는 일, 성폭력 피해 경험, 근친성범죄 등 [19] 부모님이 한 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가정에서 배운 바가 없어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20] 물론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하여 무조건 결혼 부적격자로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 개인의 회복탄력성이 높을 경우 오히려 외상 후 성장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은 트라우마를 극복했냐가 제일 중요하다. 대부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1] 무성애자 중에서도 일부는 성적인 끌림이 아니라 친밀감 등 '인간적인 끌림'과 같은 감정이나,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감추기 위한 위장 결혼 등을 이유로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무성애 항목 참조. [22] 위에서 언급한 이성에 관심이 없는 초식남, 절식남, 건어물녀 또한 무성애자를 가리키는 것 아닌가 할 수 있는데, 이 단어들도 사회적 현상을 표현하기 위한 신조어인지라 성지향성인 무성애와는 완전히 같은 개념이 아니다. [23]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을 사회적 배려 대상 내지 약자 취급하는 여성가산점은 적극 찬성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등. [24] 사실 독신주의자 중에서는 '연애'는 즐겨도 '육아', '결혼'은 안하는 경우도 많아 이 부분은 다를 수도 있다. 즉 독신주의자라도 데이트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 다만 결혼을 고려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연애감정의 비중이 낮다 보니 과시적 소비는 줄어들 수 있다. [25] 줄 그어놓긴했지만 이게 제일 문제다. 서울시 1인 가구는 월급의 30% 가량을 월세로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일 경우 오피스텔 월세 평균이 54만원이라고 한다. 세후 200을 번다면 이중 1/4가 주거비로 사라지는 셈이며, 1년이면 650만원이 주거비로 소모된다. 2020년 기준 1인 중위소득 175만 6천원 가량에서 세금때면 160만이 좀 안되는데 여기서 54만원을 빼면 100만 정도가 남는데, 여기에 관리비가 때이는 경우도 많으니 실질적으로 손에 남는건 100만 밑으로 떨어져버린다. 부모님 집이 있거나 물려받을 집이 있다면 나머지는 전부 자기 돈으로 남으니 160만 정도로 한달을 보내는 셈이다. 물론 전기세나 수도세도 있으나, 월세보단 싸다. [26] 물론 이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성별간 갈등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의 확산 등이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자신의 능력에 관계없이 결혼 그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27] 사실 한국의 양육비는 거품이 엄청나게 끼어 있고, 교육비의 경우는 하필 이들이 결혼하는 타이밍이 사회 계급이 닫혀가는 그 시점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1990년대생이나 2000년대생이 30대에 진입할 즈음에는 둘 다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인식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이미 벌어진 현상이다. [28] 요즘 쓰이는 표현인 기혼자 = 품절(남/녀), 이혼 = 반품에 빗댄 표현. [29]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결혼했으나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인한 혼인관계가 해소된 것을 모두 포함 [30]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돈으로도 안되는게 자식이다. 물론 돈이 많은 편이 없는 편보다 좋은 것은 당연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31] 당장 식비만 따져보더라도 먹는 입이 하나인 것과 둘 이상인 것은 지출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식이 생기면 아이의 성장과 영양상태를 필수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출이 예상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32] 물론 이것도 극단적으로 가면 용돈은 극단적으로 적고 관리자가 헤프게 쓰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과하면 좋을 게 없다. [33] 여기에서 파생되는 최악의 상황이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 동시에 비자발적인 독신자이다. [34] 물론 자녀가 있는 기혼자라고 해서 자살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최소한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가족의 존재로 인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동기가 더 크다. 반면 독신자의 경우 오직 자신 뿐이기 때문에 그러한 동기가 비교적 약한 편이다. [35] 물론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기혼자 쪽이 압도적으로 경제적 자유가 없다. 자녀의 양육에는 결코 적지 않은 금전적 투자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 [36] 물론 스스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정말 위급한 응급치료가 필요한 경우 119를 부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