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제22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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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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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회
선거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580009><tablebgcolor=#580009> |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동 道峰區 甲 Dobong A |
}}} | |||
|
||||||
<colbgcolor=#580009><colcolor=#fff> 선거인 수 | 136,836명 (2024) | |||||
상위 행정구역 | 서울특별시 | |||||
관할 구역 |
|
|||||
신설년도 | 1996년 | |||||
국회의원 |
|
김재섭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도봉구 남부 지역을 포함하는 선거구다.[1] 현재 이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의 김재섭 의원이다.기본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노도강 지역인데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오랫동안 재임한 김근태 - 인재근 부부의 영향으로 민주당 승리 횟수가 많았다.
다만 40평 이상의 중대형 평수 아파트 단지들이 적지 않고, 인근에 산지를 많이 끼고 있어 토박이 비율이 높다는 점 등으로 인해 보수정당 소속 당선자들도 가끔씩 배출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및 선거 결과
<rowcolor=#fff> 총선 | 당선인 | 당적 | 임기 | 비고 |
양주군 을[2] | ||||
제1대 | 이진수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 |
제2대 | 이진수 |
|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 |
제3대 | 강승구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 |
양주군 을[3][4] | ||||
제4대 | 강성태 |
[[자유당(1951년)|]] |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 |
제5대 | 강승구 |
|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 |
성북구 을[5][6] | ||||
제6대 | 서범석 |
[[민정당| |
1963년 12월 27일 ~ 1967년 6월 30일 | |
제7대 |
[[신민당(1967년)| |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 ||
성북구 병[7] | ||||
제8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71년 7월 1일 ~ 1972년 10월 17일 | |
성북구[8] | ||||
제9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 |
정래혁 |
[[민주공화당| |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 ||
도봉구[9] | ||||
제10대 | 고흥문 |
[[신민당(1967년)|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8월 27일 | [10] |
홍성우 |
[[민주공화당|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10월 27일 | ||
제11대 | 홍성우 |
|
1981년 4월 11일 ~ 1985년 4월 10일 | |
김태수 |
[[민주한국당| |
|||
제12대 | 조순형 |
|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 |
홍성우 |
|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 ||
도봉구 갑(도봉구 미아3동, 미아4동, 번1동, 번2동, 수유3동,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방학1동, 방학2동 일대) | ||||
제13대 | 신오철 |
[[신민주공화당|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
도봉구 갑(도봉구 수유3동,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쌍문4동, 방학1동, 방학2동, 방학3동, 도봉1동, 도봉2동) | ||||
제14대 | 유인태 |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
14대의 도봉구 병(미아3동, 미아4동, 미아9동, 번1동, 번2동, 번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에서 창1~5동을 제외한 전역과 도봉구 을 전역, 도봉구 갑의 수유3동이 강북구로 분구되면서 도봉구 갑·을의 관할이 대대적으로 조정[11]되었다. | ||||
도봉구 갑(도봉구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제15대 | 김근태 |
[[새정치국민회의|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
제16대 |
[[새천년민주당|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
제17대 |
[[열린우리당|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
제18대 | 신지호 |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
제19대 | 인재근 |
[[민주통합당|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
제20대 |
|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 ||
제21대 |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 |||
제22대 | 김재섭 |
|
2024년 5월 30일~ |
2.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미아3동, 미아4동, 번1동, 번2동, 수유3동,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방학1동, 방학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장천석(張天錫) | 23,183 | 2위 |
|
19.34% | 낙선 | |
2 | 박정태(朴正泰) | 16,436 | 5위 |
[[통일민주당| |
13.71% | 낙선 | |
3 | 한호상(韓虎相) | 22,532 | 3위 |
[[평화민주당| |
18.80% | 낙선 | |
4 | 신오철(申五澈) | 39,873 | 1위 |
[[신민주공화당| |
33.27% | 당선 | |
5 | 조순형(趙舜衡) | 17,817 | 4위 |
[[한겨레민주당| |
14.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5,484 |
투표율 68.78% |
투표수 | 120,695 | ||
무효표수 | 854 |
2.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수유3동,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쌍문4동, 방학1동, 방학2동, 방학3동, 도봉1동, 도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오철(申五澈) | 27,838 | 2위 |
[[민주자유당| |
31.82% | 낙선 | |
2 | 유인태(柳寅泰) | 48,603 | 1위 |
|
40.88% | 당선 | |
3 | 한호상(韓虎相) | 23,766 | 3위 |
[[통일국민당| |
19.98% | 낙선 | |
4 | 윤응순(尹應淳) | 2,670 | 5위 |
[[신정치개혁당| |
2.24% | 낙선 | |
5 | 김종윤(金鍾潤) | 1,631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37% | 낙선 | |
6 | 박영철(朴永哲) | 1,166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98% | 낙선 | |
7 | 조성국(趙成國) | 3,216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7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7,153 |
투표율 67.77% |
투표 수 | 120,049 | ||
무효표 수 | 1,159 |
2.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경자(梁慶子) | 25,245 | 2위 |
[[신한국당| |
35.32% | 낙선 | |
2 | 김근태(金槿泰) | 27,768 | 1위 |
[[새정치국민회의| |
38.85% | 당선 | |
3 | 안평수(安平洙) | 7,396 | 4위 |
|
10.34% | 낙선 | |
4 | 신오철(申五澈) | 9,884 | 3위 |
[[자유민주연합| |
13.82% | 낙선 | |
5 | 조수휘(趙秀輝) | 1,176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6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9,140 |
투표율 60.92% |
투표 수 | 72,578 | ||
무효표 수 | 1,109 |
2.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경자(梁慶子) | 28,279 | 2위 |
|
42.01% | 낙선 | |
2 | 김근태(金槿泰) | 34,233 | 1위 |
[[새천년민주당| |
50.85% | 당선 | |
3 | 이희선(李羲善) | 2,464 | 3위 |
[[자유민주연합| |
3.66% | 낙선 | |
4 | 전진(全進) | 2,334 | 4위 |
|
3.4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3,917 |
투표율 54.73% |
투표 수 | 67,821 | ||
무효표 수 | 511 |
2.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경자(梁慶子) | 30,538 | 2위 |
[include(틀:한나라당)] | 37.38% | 낙선 | |
2 | 이경태(李景泰) | 4,596 | 3위 |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 5.62% | 낙선 | |
3 | 김근태(金槿泰) | 42,583 | 1위 |
[include(틀:열린우리당)] | 52.13% | 당선 | |
4 | 홍우철(洪禹哲) | 3,967 | 4위 |
[include(틀:민주노동당)] | 4.8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1,619 |
투표율 62.55% |
투표 수 | 82,325 | ||
무효표 수 | 641 |
한나라당에서는 15, 16대 총선에서 김근태에게 패했던 양경자 후보가 다시 출마했지만 이번에도 이기지 못하고 14.8% 차이로 크게 패했고 김근태 의원은 무난히 3선에 성공했다.
2.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근태(金槿泰) | 31,335 | 2위 |
[[통합민주당(2008년)| |
46.16% | 낙선 | |
2 | 신지호(申志鎬) | 32,613 | 1위 |
|
48.04% | 당선 | |
4 | 김승교(金承敎) | 2,347 | 3위 |
[[민주노동당| |
3.45% | 낙선 | |
6 | 이현재(李賢宰) | 603 | 5위 |
[[평화통일가정당| |
0.92% | 낙선 | |
8 | 홍우철(洪禹哲) | 951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1,137 |
투표율 48.38% |
투표 수 | 68,282 | ||
무효표 수 | 406 |
여기에 대항해 한나라당은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가 공천되었다. 신지호 후보는 이력이 특이한데, 연세대학교 재직 시절 사회주의 활동을 하고 진보정당에서 노회찬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러나 우파로 전향하고 경실련, 삼성경제연구소, KDI 등에서 근무하다가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되었다. 이로 인해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와 뉴라이트 총아 신지호의 이념 대결로 이슈가 되었다.
도봉구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인 곳이며 김근태의 위상으로 쉽게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 봤으나, 대선을 치르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이 53%를 넘어섰고 당세가 역전되어갔다.
뉴타운이나 법조타운, 삼성 계열사 유치 등 경제 이슈가 선거 전반을 끌고 갔고, 결국 여당 후보 신지호가 김근태를 1.9%p 차로 꺾고 당선에 성공한다.
이에 대해 "야권 민주당과 민노당이 분열했기에 얻은 어부지리 결과"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보수계/민주당계의 양대 정당 후보의 양강 구도에서 민노당계 진보정당의 득표율보다 작은 격차로 민주당계 후보가 패배했을 경우 그 전후 사정이나 맥락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민주당/진보정당의 분열로 인한 보수정당의 어부지리 승리'라는 해석을 가져다 붙이려 하는 것이지, 진지한 분석의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 이 점은 당장 본 문서에서 도봉 갑 선거구의 역대 선거결과만 비교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도봉 갑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돌풍 이전부터 청년진보당이 유의미한 득표를 거둔 적이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진보정당 지지세가 있지만, 진보정당이나 제3지대 정당, 민주당계 정당 분열로 인한 지지층 분열이 발생한 상황, 심지어 이중으로 발생하여 10% 이상의 표가 분산된 상황이 있음에도 민주당 후보가 가뿐히 과반득표로 압승한 선거가 (2024년 기준) 5회나 될 정도로 민주당 강세는 더욱 강력한 선거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18대 총선의 경우 그 2+3회 연속 과반득표 승리(16~17대+19~21대 총선)의 한가운데에 끼어있는 선거인데, 이 선거들에서 나온 각 정당들의 득표율 경향을 보면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40% 전후에서 왔다갔다하고, 범 민주당계+진보정당의 지지율 합산은 50%대 후반~60% 정도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민주당계 주류 정당의 코어 지지율이 50%대 초반 이상, 진보정당이나 범 민주당계 분당파, 제3지대 정당등으로 향할 수 있는 지지율은 한지릿수~높게 잡아야 10% 정도라는 경향을 확인 가능하다.
따라서 민주당 입장에서 도봉 갑은 굳이 정치공학에 신경쓸 필요 없이 코어 지지층을 계속 확보하는 것 만으로 안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선거구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패배한 두번의 사례인 18대, 22대 총선을 보면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살짝 위축된 감이 있지만 큰 변화는 없는 수준'이고, '양대정당의 지지율 합계 역시 큰 변화는 없는 수준'이다.
즉, 이 두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와 보수정당의 승리는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그냥 가만히 있고, 기존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이 이반하여 보수정당 지지로 유입된 것' 이외의 원인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기존 지지자의 표심 이반'이 왜 일어났는지는 18대 총선 문서에서 상세히 설명된 바와 같이 해당 총선 자체가 민주당이 개헌저지선조차 지키지 못한 역대급 참패를 맛본 선거, 특히 수도권 111개 선거구 중에서 고작 26개 선거구를 건지는데 그쳐 2000년 16대 총선 ~ 2024년 22대 총선까지 '7회의 총선중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패배한 총선' 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최대의 텃밭 선거구인 호남을 제외하면) 민노당이 나왔건 안 나왔건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처참하게 패배했고, 도봉 갑 역시 그런 대세 패배의 일부일 뿐인데 여기서 생뚱맞게 민노당과의 표 분열 이야기를 끌어다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런데 이런 전후의 상황이나 맥락, 지역구의 특징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그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지지자 사이에는 자주 교집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표 분산과 보수정당의 어부지리 당선이 있을 수 있다'는 피상적인 지식만 가진 이들이 민주당 후보가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수보다 작은 격차로 보수정당 후보에게 패배한 선거만 보면 무조건 "어부지리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식의 설명을 가져다붙이려 드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2.7.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유경희(柳京姬) | 31,361 | 2위 |
[[새누리당| |
40.13% | 낙선 | |
2 | 인재근(印在謹) | 45,682 | 1위 |
[[민주통합당| |
58.46% | 당선 | |
6 | 박춘엽(朴春燁) | 1,094 | 3위 |
|
1.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2,229 |
투표율 55.29% |
투표 수 | 78,644 | ||
무효표 수 | 507 |
도봉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유경희 | 인재근 | 격차 |
전체 | 38.8% | 60.2% | 21.4%p |
1987년 로버트케네디 인권상 수상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다가 남편의 작고 이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남편의 지역구에 경선도 없이 전략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과연 남편의 후광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에 맞서는 새누리당 후보는 여성기업인 유경희 유한콘크리트산업 대표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 부회장도 맡고 있었다. 여성 인권운동가와 여성 기업인의 대결로 화제가 되었고, 두 후보 모두 전략공천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유경희 후보는 낙후된 도봉구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성공한 여성기업인으로써 풍부한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이 있는 자신이 적격이라고 했다. 김근태 전 의원이 지역발전보다 중앙정치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자신은 중앙정치보다는 도봉구를 발전시키고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재근 후보는 도봉구에 30년간 살며 남편과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주장했다. 창동민자역사 건설과 쌍문동 둘리미술관 건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인권운동을 통해 인권 향상에 힘썼던 만큼 민주주의와 서민을 위해 노력할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 시기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 인재근 후보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파급력이 있었다.
개표 결과,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가 18.3% 차이로 크게 이기며 당선되었다.
2.8.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재범(李在範) | 33,050 | 2위 |
[[새누리당| |
39.90% | 낙선 | |
2 | 인재근(印在謹) | 49,780 | 1위 |
|
60.1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42,823 |
투표율 59.27% |
투표 수 | 84,661 | ||
무효표 수 | 1,831 |
도봉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이재범 | 인재근 | 격차 |
전체 | 38.4% | 61.6% | 23.2%p |
인재근 후보는 19대 국회의원 임기동안 동부간선도로 창동 구간 지하화 계획 관철, 쌍문동 둘리뮤지엄 건립 등의 공약을 지켰고, 20대 국회의원으로 재선하면 창동상계 신경제중심지 조성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시킬 것이라고 공약했다. 또한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통해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입법활동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범 후보는 25년 간 도봉구에서 살았던 변호사로서 갈등조정의 장점을 강조했다. 중앙정치보다는 지역을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서 고도제한 완화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개표 결과, 현역 국회의원인 인재근 후보가 19대 총선 때보다 더 큰 20.2%의 격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2.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인재근(印在謹) | 50,603 | 1위 |
|
54.02% | 당선 | |
2 | 김재섭(金宰燮) | 37,967 | 2위 |
[[미래통합당| |
40.49% | 낙선 | |
6 | 윤오(尹午) | 4,577 | 3위 |
[[정의당| |
4.88% | 낙선 | |
7 | 박영찬(朴永讚) | 554 | 4위 |
[[국가혁명배당금당| |
0.5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2,625 |
투표율 65.69% |
투표 수 | 93,701 | ||
무효표 수 | 950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ea2><bg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 21대 총선 서울 도봉구 갑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미래통합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인재근 | 김재섭 | ||
득표수 (득표율) |
50,653 (54.02%) |
37,967 (40.49%) |
+12,686 (△13.53) |
94,701 (66.39%) |
쌍문1동[A] | 53.71% | 40.82% | △12.89 | 60.28 |
쌍문3동[B] | 53.99% | 38.91% | △15.08 | 61.69 |
창1동[C] | 52.48% | 42.41% | △10.07 | 65.20 |
창2동 | 54.19% | 39.40% | △14.78 | 60.97 |
창3동 | 53.69% | 40.59% | △13.10 | 58.90 |
창4동[D] | 53.72% | 41.81% | △11.92 | 70.01 |
창5동[E] | 49.52% | 45.98% | △3.54 | 68.27 |
후보 | 인재근 | 김재섭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50.52% | 35.93% | △14.58 | |
관외사전투표 | 63.56% | 30.55% | △33.01 | |
재외투표 | 75.57% | 22.90% | △52.67 |
도봉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인재근 | 김재섭 | 격차 |
전체 | 51.5% | 41.0% | 11.5%p |
미래통합당에서는 이재범 변호사가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중앙당이 청년공천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김재섭 주식회사 레이터 최고운영책임을 공천했다.
정의당에서는 윤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이 출마했다.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의 인재근 후보가 미래통합당의 김재섭 후보를 14%p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도봉구 갑 쌍문1동, 쌍문3동, 창1동, 창2동, 창3동, 창4동, 창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안귀령(安貴朎) | 45,276 | 2위 |
|
47.89% | 낙선 | |
2 | 김재섭(金宰燮) | 46,374 | 1위 |
|
49.05% | 당선 | |
5 | 윤오(尹午) | 2,882 | 3위 |
|
3.0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6,836 |
투표율 69.72% |
투표 수 | 95,398 | ||
무효표 수 | 905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61e2b><bgcolor=#e61e2b> 22대 총선 서울 도봉구 갑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안귀령 | 김재섭 | ||
득표수 (득표율) |
45,276 (47.89%) |
46,374 (49.05%) |
-1,098 (▼1.16) |
95,398 (69.72%) |
쌍문1동[A] | 49.64% | 47.44% | △2.20 | 63.30 |
쌍문3동[B] | 48.48% | 47.90% | △0.58 | 64.10 |
창1동[C] | 45.35% | 51.88% | ▼6.53 | 67.59 |
창2동 | 48.27% | 48.21% | △0.06 | 64.56 |
창3동 | 47.82% | 48.67% | ▼0.85 | 61.52 |
창4동[D] | 45.12% | 52.50% | ▼7.38 | 73.33 |
창5동[E] | 43.00% | 54.14% | ▼11.14 | 69.77 |
후보 | 안귀령 | 김재섭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44.39% | 48.47% | ▼4.08 | |
관외사전투표 | 56.93% | 39.77% | △17.16 | |
재외투표 | 75.60% | 22.89% | △52.71 |
도봉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안귀령 | 김재섭 | 격차 |
전체 | 52.4% | 45.5% | 6.9%p경합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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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후보로는 지난 선거 때도 나섰던 김재섭 도봉구 갑 당협위원장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녹색정의당에서는 지난 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는 윤오 도봉구 지역위원장이 출마했다.
출구조사에서는 민주당 안귀령 후보의 6.9%p 우세가 예측되었으나, 개표 결과 국민의힘 김재섭 후보가 신승했다. 사실 이 지역은 1992년 이후 지금까지 뉴타운 바람이 불었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제외하고는 전부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당선된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만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로 당시 화성시 을과 함께 이번 국회의원 선거 최대 이변 지역구로 꼽혔다.[26]
지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이기고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긴 전국에서 유일한 국회의원 선거구이기도 했다.[27] 여담이지만, 이와 반대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이 이겼으나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긴 지역구는 전국에 무려 48개이다.[28]
패인 요소로는 안귀령 후보는 지역구에 아무 연고도 없었던데다, 공천 이후에도 지역구 사정에 어두운 모습을 보인 것이 패인으로 여겨진다.[29] 반면 김재섭 후보는 지역 연고가 확실하고 지난 총선 낙선 이후 지역구를 계속 다져왔으며, 친윤과 거리가 멀기에 정권 심판론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30]
동 이름도 제대로 몰랐던 안귀령 후보와 달리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직접 봐오면서 "이게 더 나을텐데" 싶은 지역현안들이 많다며 주민들에게 어필하기도 했고 창동역 개발 문제 같은 지역 현안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등 이미 지역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았던 편이었다.[31]
한편, 녹색정의당 윤오 후보의 득표율은 지난 선거보다도 낮았으며, 애초에 도봉갑 자체가 과거 다자 구도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과반 이상을 득표할 정도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선거구인데다 윤오는 3-4% 가량의 고정표가 있는 정치인이었기에 표 분산을 탓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정의당과 관계가 험악해진 상황에서 표 분산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없다.[32]
세부적으로 동별로 보았을 때, 김재섭 후보는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15%p차로 패배했던 쌍문3동, 창2동에서 각 51표, 9표 차로 따라붙었고, 쌍문1동에서도 226표 차로 선전했다.[33]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비중이 좀 더 높은 창1동(835표 차), 창4동(1140표 차), 창5동(1,501표 차)에서 격차를 벌린 결과, 관외사전투표(1,984표 차)와 재외투표(175표 차)에서 안귀령 후보에게 몰표가 쏟아졌음에도 2번째 도전만에 당선증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특히 창동역 역세권 재개발, 재건축이 몰려있는 창1동, 창4동, 창5동에서[34][35] 김재섭 후보가 안귀령 후보를 크게 따돌린 것이 이번 총선 김재섭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도봉구 갑 지역의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창1동, 창4동, 창5동은 안귀령 후보가 앞섰던 쌍문동 63~64% 투표율에 비해 투표율도 69~73%까지 올라가는 등 크게 높았다[36]. 그만큼 도봉구 지역 사람들도 대규모 개발 호재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셈이다.
도봉구 갑 지역은 창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추진구역이 15개로 늘어나면서 노도강 지역에서 도봉구가 처음으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등 앞으로 땅값이 크게 높아질 지역이다.
게다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C선이 창동역에 정차하게 되었고, 우이신설선 경전철 방학역 연장이 들어오면서 방학동 일대도 재개발이 활발해질 예정이어서 성동구처럼 변할 가능성도 높다.
경향신문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서울 지역 동별 아파트 실거래가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에 나타난 진보-보수 정치성향의 상관관계는 0.76으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상관관계지수 0.74보다도 높아졌다. 즉 아파트 실거래가가 높은 지역일 수록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게 힘이 실리는 것이다. 기사
오마이뉴스에서도 표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지만 부동산 표심이 점차 강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을 정도였다. 보수 성향 한국경제신문에서도 출구조사를 뒤집고 국힘이 당선된 선거구들의 공통점으로 고가 아파트 밀집지구가 존재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기사 중도보수 성향 머니투데이에서도 집값 비싼 동네일 수록 보수 성향으로 바뀐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사IN에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때부터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때까지 10년간 모든 선거[37]의 데이터를 놓고 지역 토지 공시지가 및 아파트 건물 공시가격과 선거 투표 결과의 진보-보수 성향을 분석한 결과, 일제히 지역 내 투표구별로 공시가격/공시지가가 높아질 수록 국민의힘 계열 후보들의 득표 결과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이 관찰될 정도였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미래통합당이 워낙 득표율이 낮았지만 그래도 한 지역구 내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높아질 수록 유의미하게 보수세가 상승하는 것이 관찰되었을 정도다. 기사
전체적으로 보자면,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많이 몰려 있는 송파구 갑, 송파구 병과 같이 민주당에게는 앞으로의 전망이 불리한 선거구이다.
이들 선거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본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선거구이지만 2022년 지방선거에도 나타난 것처럼 도봉구가 동북권 4개 구 중 민주당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지역이 아니므로 민주당이 하기 나름에 따라 향후 이 선거구의 당락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1]
대체로 4호선 연선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반대로
도봉구 을 선거구는 1호선 연선 지역.
[2]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지금의
도봉구 지역), 진건면, 진접면
[3]
양주군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 노해면, 진건면, 진접면, 별내면
[4]
양주군 갑 선거구에서 현재의
양주시,
의정부시 지역과 같이 선거를 치러 오던 별내면이 양주군 을 선거구로 변경되었다.
[5]
돈암동, 종암동, 상월곡동, 하월곡동, 미아동, 장위동, 석관동, 번동, 우이동, 수유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공릉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동, 도봉동, 방학동
[6]
1963년
1월 1일 부로, 노해면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북구의 관할로 들어가게 된다. 노해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공릉동,
월계동,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의 9개 동으로 나뉘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도 종전의 양주군 을 선거구에서 성북구 을 선거구로 조정되었다.
[7]
성북구 월곡동(현 성북구 하월곡동, 상월곡동 지역), 장석동(현 성북구 장위동, 석관동 지역), 창동(현 도봉구 창동,쌍문동, 노원구 월계동 지역), 태릉동(현 노원구 공릉동,하계동 지역),노원동(현 노원구 중계동, 상계동 지역), 도봉동(현 도봉구 방학동,도봉동 지역)
출처.
성북구의
인구가 증가하여 국회의원
선거구도 2개에서 3개로 분구되어, 지금의 도봉구 갑 선거구에 해당하는
창동과
도봉동은 성북구 병 선거구의 소속이 되었다.
[8]
제 9대 총선 부터 제 12대 총선까지는
중선거구제를 이용하여 한 선거구 당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에,
성북구 선거구는 하나로 합구되어 두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9]
1973년
7월 1일부로, 미아동, 번동, 수유동, 우이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도봉동, 방학동, 공릉동, 하계동이
도봉구로 분구되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에 맞게 종전의
성북구 선거구에서
도봉구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10]
1980년
8월 27일에 사직하였다.
[11]
기존의 도봉구 갑은 창1~5동을 받는 대신 쌍문1동과 쌍문3동을 제외한 쌍문2동, 쌍문4동과 방학1~3동, 도봉1·2동을 도봉구 을로 이관했다. 사실상 도봉구 을 선거구를 새로 분구한 셈.
[A]
덕성여자대학교가 있는 동네.
[B]
한일병원이 있는 동네.
[C]
창동 주공 3단지 아파트 등 다수의
아파트들과
다세대주택으로 구성된 동네.
[D]
창동 상계 신경제 중심지으로 조성된 동네이자,
창동(상계)주공아파트 17~19단지 등
아파트들이 밀집해있는 동네.
[E]
북한산 아이파크 등의
아파트들과
다세대주택이 공존해있는 동네.
[A]
[B]
[C]
[D]
[E]
[22]
이후 인재근 의원은 후임으로
민평련계인
유은혜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추천했지만,
이재명 대표가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3]
이번엔 인재근 의원 측에서 김남근으로의 지역조직 승계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남근 변호사는 현역 기동민 의원이 컷오프된
성북구 을에 전략 공천됐다.
[24]
그 외에 이동진 전 도봉구청장도 도전장을 냈으나 구청장 연속 3선에 성공한 것과는 달리 재임 당시 지역 민심이 점점 나빠지면서 결국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자리가 국민의힘으로 넘어가는 결과로 이어졌기에 자연히 배제되었다.
[25]
참고로 안귀령과 인재근은
이대
사회과학대학 동문 관계이기도 했다.
[26]
국민의힘이 가져온 또다른 강북 지역구로는
용산구와
마포구 갑이 있는데 용산은 이전부터
부촌 동네가 형성되면서
고소득층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강북에서 이례적으로
보수세가 상당히 강한 곳이였고 마포구 갑 역시 한강변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표심이 강해 이전부터 국민의힘 쪽으로 여론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27]
한편
개혁신당으로 넘어간 유일한 지역구는
이준석이 당선된
화성시 을 이였다.
[28]
이 말은 즉슨 개혁신당이 없다고 쳤을 때 당시 대선의 지지세가 그대로 갔다면 국민의힘이 155석 이상을 얻는, 민주화 이후 보수여당이 제일 큰 의석수를 확보하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9]
시장에 방문해 유세를 하는데 자신이 유세하고 있는 동네의 행정동 명칭도 모를 정도였다.
[30]
김성태 전 의원도 개인기로 당선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을 정도다.
[31]
김재섭도 계파를 분류하자면 범
이준석계에 까까운 편이지만,
김용태와 달리 어느 계파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편이다.
[32]
민주당 후보가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보다 작은 표차로 보수정당 후보에게 패배할 경우 자주 거론되는 문제가 '표 분산으로 인한 어부지리 패배'지만 본 문서의
18대 총선 문단에서도 설명된 바와 같이 민주당 우세가 강하고 튼튼한 도봉 갑에서 민주당의 패배 원인을 마냥 진보정당으로의 표 분산으로 돌리기는 힘들다.
[33]
특히, 창2동, 3동은 강북 수유, 쌍문과 맞닿아 있어서 지역표 특성상 진보계 선호도가 높았으나, 꾸준한 지역 발전 부진으로 인해 지난
지방선거때부터 점점 보수쪽으로 표가 이동하고 있었고 결국 창3동은 56표 차로 격차를 벌려 버렸다.
[34]
북한산 아이파크 관할 6투표소에서 김재섭 후보에게 몰표가 나온 영향이 컸다. 해당 투표소에서 안귀령은 30.3%, 김재섭은 67.5%를 득표하였다.
[35]
또한 창5동의 경우 강원도, 경기 북부권 출신 이주민들이 많아 이전부터 보수세가 만만치 않은 동네였기도 했다.
[36]
이번 22대 총선의 특징인데, 수도권 지역구를 뜯어보면 지역구 내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일 수록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았다.
성남시 분당구 갑이나
동작구 을,
마포구 갑, 도봉구 갑 등 수도권 국힘 승리 지역의 공통점이 주변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이고, 지역구 내부에서 세부적으로 가장 비싼 아파트가 있는 곳일 수록 투표율이 더 높았다.
[37]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 지방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