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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엑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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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엑스타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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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애너하임 에인절스 엠블럼(2002~2004).svg 파일:2006-cardinals-champions.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2 2006

저메인 다이
( 시카고 화이트삭스)
데이비드 엑스타인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마이크 로웰
( 보스턴 레드삭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번호 22번
에드가르드 클레멘테
(2000)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1~2004)
켄드리스 모랄레스
(2006~200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2번
마이크 매시니
(2000~2004)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5~2007)
펠리페 로페스
(2008)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11번
존포드 그리핀
(2007)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8)
알렉스 곤잘레스
(201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등번호 4번
에밀리오 보니파시오
(2007~2008)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8)
러스티 라이얼
(2009~201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3번
루이스 듀랑고
(2009)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9)
크레이그 스탠스베리
(200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22번
카일 블랭크스
(2009)
데이비드 엑스타인
(2009~2010)
제임스 다넬
(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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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vid_Eckstein.jpg
데이비드 마크 엑스타인
David Mark Eckstein
생년월일 1975년 1월 20일 ([age(1975-01-20)]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플로리다 주 샌포드
신체 168cm / 77kg
포지션 유격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7년 드래프트 19라운드 (전체 581번, BOS)
소속팀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1~200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5~2007)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8)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9~2010)
가족 릭 엑스타인, 아내 애슐리 엑스타인
1. 개요2.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지명 ~ 마이너리그2.3. 애너하임 에인절스2.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5. 토론토 블루제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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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작은 거인' 데이빗 엑스타인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유격수. 별명은 작은 거인.

2.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75년 플로리다 주의 샌포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신장 질환이 유전적으로 되풀이되는 집안내력이 있었지만, 다행히 엑스타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1] 고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로 두각을 나타냈다. 2년 연속 주 대표 선수로 선출될 정도의 실력.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170조차 안되는 너무 작은 키 ... 메이저리그 구단은 커녕 대학교 야구부조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2] 플로리다 대학교에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 들어가야만 했다.[3] 대학교에서도 엑스타인의 실력은 변함없었다. 2학년과 3학년 시절인 95, 96년 두 차례나 대학교 리그 남동부 컨퍼런스의 베스트 라인업에 선출되며 96년에는 대학교 월드시리즈로 팀을 이끌기까지 한다.

2.2. 프로 지명 ~ 마이너리그

하지만 여전히 그의 볼품없는 체격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졸업반이던 1997년에야 간신히 19라운드 581순위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의해 지명된다. 그의 사이닝 보너스는 중남미에서 15~16살에 건너오는 어린 히스패닉 선수들의 계약금보다도 적은 단돈 1000달러였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야구가 간절했던 엑스타인은 이런 굴욕에 가까운 계약도 받아들인다. 그렇게 시작한 마이너리그 생활에서 엑스타인은 승승장구한다. 1999년에는 더블A에서 .313의 타율과 .440의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더블 A 최고의 2루수 유망주로 뽑히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보스턴은 여전히 엑스타인에게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고 다음해인 2000년 8월 엑스타인을 웨이버 공시한다.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였지만 다행히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그에게 클레임을 걸었고 그는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기회를 수여받는다.

2.3.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1년 스프링캠프에서 엑스타인을 유심히 지켜본 마이크 소시아 에인절스 감독은 그를 2루수에서 유격수로 포지션 전환을 시키는 대신, 공격의 첨병역할인 1번 타자라는 중책을 맡긴다. 그리고 엑스타인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2할8푼대의 타율과 3할5푼대의 높은 출루율로 데뷔시즌을 훌륭히 장식한다. 다음해였던 2002 시즌에도 엑스타인은 변함없는 활약을 펼친다. 2002 시즌 초반 에인절스가 7승 14패로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와중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엑스타인은 2경기 연속 만루홈런을 쏘아올린다.[4] 그리고 이 엑스타인의 만루홈런과 더불어 에인절스는 귀신같이 살아나 이후 벌어진 23경기에서 20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하고 와일드카드[5]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양키스와 미네소타를 연이어 물리치고 만난 상대는 배리 본즈가 버티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에인절스는 창단 41년만의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린다. 이 때 엑스타인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어느정도였냐하면 그 콧대높고 자기밖에 모르기로 소문난 약마가 월드시리즈 후 파티에서 엑스타인의 부모에게 "정말 대단한 아들을 두셨더군요."라고 칭찬할 정도.

하지만 2004 시즌 종료 후 그에게 다시 위기가 다가온다. 에드가 렌테리아가 세인트루이스에서 보스턴로 자리를 옮기고, 그로 인해 보스턴에서 밀려난 올랜도 카브레라가 에인절스에 입단하자 에인절스가 그를 방출시켜 버린 것.[6]

2.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다행히 인생을 돌고도는지라 에드가 렌테리아를 보스턴에게 갈취당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엑스타인을 렌테리아의 대체자로 영입한다. 그리고 2005 시즌 엑스타인은 타율 .292, 출루율 .363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버린 과거의 친정팀 보스턴과 에인절스에게 제대로 빅엿을 선사한다.[7] 다음해인 2006년에도 타율 .292 출루율 .350을 기록하며 수준급 활약을 보여줬지만 시즌 내내 햄스트링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8] 거기에 어깨 부상은 덤. 아픈 몸을 끌고 나선 포스트시즌에서 엑스타인은 부진했다. 월드시리즈 2차전까지 52타석 5안타라는 1할도 못 미치는 타율을 기록한 것.[9] 그런데 3차전부터 사람이 변했다. 이후 남은 세 경기에서 11타수 8안타 4타점을 기록한 것! 특히나 4,5차전에서 팀의 득점 중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놀라운 클러치 히팅 능력을 선보이면서 2006년 월드 시리즈 MVP로 선출됐다. 이후 다음 시즌인 2007 시즌까지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한 엑스타인은 은퇴 후 2011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친정팀 팬들의 기립 박수와 함께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데이비드 프리즈가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킨다.

2.5. 토론토 블루제이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7 시즌 종료 이후 FA 자격을 얻은 엑스타인은 1년간 450만 불이라는 조건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일정의 60% 정도밖에 출전하지 못하자 8월 3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된다.[10] 그렇게 이적한 애리조나에서는 뜬금없는 트레이드 여파 탓인지 타율 .201로 부진했다. [11]

2.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그렇게 부상과 부진으로 오갈 곳이 없어진 엑스타인을 불러준 것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다만 계약기간은 옵션을 제외시 1년에 불과했으며 연봉도 토론토 시절에 비해 깎였다. 또한 유격수 대신 2루수로 뛴다는 조건도 붙어있었다. 2009시즌 엑스타인은 타율 .260, 출루율 .323을 기록하며 전성기에 비해서는 성적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2005년 이후 4년만에 130 경기 이상을 출전했으며 이에 샌디에이고는 2009 시즌이 한창이던 8월 연장 옵션을 실시한다. 그렇지만 부상이 또다시 그의 발목을 잡으며 2010년 116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종료 후 방출, 2011년에는 아예 뛸 팀을 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1년 6월 무렵에 샌디에이고를 비롯한 몇몇 백업 내야수를 찾던 구단들이 엑스타인에게 계약을 제의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로 머무르던 엑스타인은 2012년에 공식적으로 선수생활 마감을 선언한다.

3. 플레이 스타일

2할 8푼~3할 정도의 타율과 함께 준수한 스피드를 지녀 리드오프로 자주 뛰었다. 특히나 적은 삼진 갯수로 유명한데, 통산 5041타수 418삼진으로 162경기 평균으로 단 52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것도 노년에 깎아먹은거고 전성기 시절인 애너하임~세인트루이스 2년간 기록만 보면 연간 45개정도의 삼진에 불과하다. 더구나 세인트루이스 시절 엑스타인이 타석에 많이 들어서는 리드오프에서 주로 활동했음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삼진 갯수.[12] 그러나 볼넷이 삼진보다 적은 탓에 출루율은 타율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즉, 선구안이 좋아서 삼진이 적은게 아닌, 컨택이 좋아서 삼진을 잘 안당하는 유형의 타자인 것. 실제로 엑스타인의 통산 Contact%는 92.7%에, 커리어하이라 할 수 있는 2005년에는 무려 94.8%인데 이는 전성기 스즈키 이치로보다도 높은 기록이다. 단순히 공을 갖다 맞추는 능력 하나만큼은 이치로보다도 좋다는 뜻. 즉 쉽게 말하면 공을 정확히 타격하기 보다는 일단 갖다 맞추고 열심히 달리는 유형의 선수였다


수비는 전반적으로 좋은 모습이었지만 딱 한가지 큰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물어깨라는 점. 2004년 ALDS에서 똥차 주자인 데이비드 오티즈에게 내야안타를 내준건 유명한 일. 때문에 수비범위나 필딩 자체는 준수함에도 불구하고 저평가가 있었다.

4. 여담

  • 부인인 애슐리 엑스타인(Ashley Eckstein[13])은 배우인데, 부인이 남편과 마찬가지로 키가 무척이나 작다. 150cm 초반 정도. 데이비드가 디즈니 랜드에서 행한 프로포즈라던지, 2011 시즌 도중 각팀들이 계약을 제안했음에도 부인의 배우 생활을 뒷바라지하고자 은퇴를 선택한 것을 보면 꽤나 애처가인듯.
  • 좋은 성품의 선수였던걸로 보여짐, 마이너리그시절을 한때 함께였던 김선우가 자신이 몰던 차가 고장나 난처할 때 오랜기간동안 경기장과 집까지 먼거리를 카풀해줬다고 한다. 김선우 본인은 엑스타인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
  • 프로레슬링의 열혈팬이어서 TNA의 각종 경기를 구경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 2006 월드 시리즈 MVP에 대한 부상으로 노란색 쉐보레 콜벳(Chevrolet Corvette Z06) Z06을 받았다. 하지만 차가 수동 기어였는데 못 다룬다고 형에게 그냥 선물로 줬다고 한다.[14]

5. 관련 문서


[1] 그를 포함한 5남매 중 그와 바로 위의 형을 빼면 다 신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2] 김형준 기자는 이를 두고 "배트보이보다 작은 선수를 데려가겠다고 하는 팀은 없었다."라고 쓰기도 했다. [3] 다행히 나중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운동선수 장학금을 받게 된다. [4] 그 중 두 번째 홈런은 끝내기 홈런이었다. [5] 이 해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는 미친 놈들 천지였다. 스즈키 이치로가 이끄는 전년도 116승의 시애틀 매리너스, 머니볼을 내세우며 빌리 빈 단장의 지휘하에 시즌 도중 20연승을 거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6] 사실 엑스타인의 어깨가 유격수치고 많이 약했다. [7] 렌테리아와 카브레라는 꽤나 삽을 푼데 반해 엑스타인은 올스타로도 뽑힐 정도의 활약이었으니 보스턴과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속이 무척이나 쓰렸을 것이다. [8] 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에서 40경기 가까이를 결장한다. [9] 근데 그 중에 뉴욕 메츠와의 NLCS 5차전 결승 석점 홈런이 있다. [10] 토론토에서의 성적은 타율 .277, 출루율 .354로 전성기보다는 약간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급속도로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11] 부진이라기에는 불과 18경기밖에 안뛰어서 표본이 너무 적기는 했지만... [12] 3000타석 이상 활동한 타자중 통산 218위로 낮은 8.9%의 피삼진률이다. 2002년 이후에 뛴 선수로 한정할 경우 엑스타인보다 낮은 피삼진율을 기록한 타자는 폴 로두카, 플라시도 폴랑코, 에릭 영, 후안 피에르 뿐이다. [13] 결혼전 성은 드레인(Drane) [14] 김형준 기자에 따르면 엑스타인은 차를 딱히 중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메이저리그에 어느 정도 자리잡은 뒤에도 새 차를 사지 않고 형과 누나가 타던 중고차를 물려받아 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