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12:02:33

데이비드 글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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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련 붕괴 전의 저작3. 소련 붕괴 후의 저작4. 연구 경향과 업적

1. 개요

David M. Glan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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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前 군인이자 군사학자.

독소전쟁 소련군, 러시아군 연구에서 높은 명성과 업적을 쌓은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2. 소련 붕괴 전의 저작

그는 1963년에 미합중국 육군 포병 장교로 입대했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포병으로 참전했다. 귀국한 후 러시아어 전문가로서 CIA DIA가 입수한 소련군 내부 자료들의 번역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소련군의 군사사 관련 정기 간행물인 <군사사 저널>이나 <군사 사상> 등이 있었다. 그는 소련군의 군사사 연구 자료들을 번역하면서 소련군의 제2차 세계 대전사 연구가 이념에 경도되어 있긴 하지만 서구권이 가진 편견보다 훨씬 뛰어난 연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시작된 그의 주된 문제의식인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소련군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 등에서 소련군과 소련 군사사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 이후 대두된 미군의 개혁을 위한 기동전 연구가 대두되고 있었는데 그도 이 흐름 속에서 소련군의 기동전과 작전술을 주제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시기 그의 주요한 논문으로는 <Soviet Ground Doctrine Since 1945>(1983), <Soviet Defensive Tactics at Kursk, July 1943>(1983), <August storm: the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1983)[1], <August Storm, Soviet Tactical and Operational Combat in Manchuria>, <Soviet Airborn Experience>(1984)가 있다. 이런 연구 저작들의 발표로 그는 서서히 미군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미군에서 '소련통'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글드는 업적을 인정받아 소련 군사 연구소(Soviet Army Studies Office; SASO. 현 해외 군사 연구소 Foreign Military Studies Office; FMSO) 소장으로 재임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는 미-소간 2차대전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서방과 소련의 독소전쟁사 인식을 논하는 논문인 <American Perspectives on Eastern Front Operations in World war II>를 러시아어로 써서 발표했다.

이 시기 그의 중요한 저작은 이렇다.
  • Soviet Military Deception in the Second World War (1989)
  • The role of intelligence in Soviet military strategy in World War II (1990)
  •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In Pursuit of Deep Battle (1991)
  • The Soviet Conduct of Tactical Maneuver: Spearhead of the Offensive (1991)
  • From the Don to the Dnepr: Soviet Offensive Operations, December 1942-August 1943 (1991)
  • The Military Strategy of the Soviet Union: A History (1991)

더불어 <The Journal of Soviet Military Studies>를 만들어 주필이 되었다.

3. 소련 붕괴 후의 저작

소련 1991년 붕괴되고 문서 보관소의 문이 열림에 따라 그도 소련 측 1, 2차 사료를 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는 1993년에 대령으로 전역한 후 <The Journal of Soviet Military Studies>를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로 바꾼 후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지휘 참모 대학에서 같이 일하던 조너선 M. 하우스와 함께 소련 붕괴 후 최초의 영어로 된 독소전쟁사 통사이자 글랜츠가 1970년대 후반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을 총정리했다고 볼 수 있는 <When Titans Clashed>(1995)[2]를 출간함으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실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지금 보면 다소 오류(특히 독일군 관해서)가 있는 편이지만 어쨌든 그 명성으로 인해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는 1988년에는 <Stumbling Colossus: The Red Army on the Eve of World War>를 출간해 러시아의 유사역사학자인 블라디미르 레준(필명 빅토르 수보로프)가 주장한 '소련 선제공격 준비설'[3]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Stumbling Colossus>는 순수하게 1941년의 소련군만 분석해 레준이 주장한 소련의 선제공격 준비가 당시의 소련군으로서는 불가능했고 이는 스탈린도 잘 알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 시기에서 지금까지의 중요한 저작들은 이렇다.
  • Zhukov's Greatest Defeat: The Red Army's Epic Disaster in Operation Mars, 1942 (1999)
  • The Battle of Kursk (1999)
  • Barbarossa: Hitler's Invasion of Russia 1941
  • The Siege of Leningrad, 1941-1944: 900 Days of Terror (2001)
  • The Battle for Leningrad, 1941-1944
  • Before Stalingrad: Barbarossa, Hitler's Invasion of Russia 1941 (Battles & Campaigns) (2003)
  • The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 1945: August Storm (2003)
  • Colossus Reborn: The Red Army at War, 1941-1943 (2005)
  • Companion to Colossus Reborn: Key Documents and Statistics (2005)
  • Red Storm Over the Balkans: The Failed Soviet Invasion of Romania, Spring 1944 (2006)
  • After Stalingrad: The Red Army's Winter Offensive, 1942-1943 (2009)
  • To the Gates of Stalingrad: Soviet-German Combat Operations, April-August 1942 (2009)
  • Armageddon in Stalingrad: September-November 1942 (2009)

이 외에도 시중에 공개하지 않은 개인 출판물인 <The Forgotton Battles of Eastern Front> 5권이 있다.

번역작으로는 해럴드 S. 오런스타인과 공역한 소련군 총참모부 내의 연구 저작들이 있다.

4. 연구 경향과 업적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의 문제 의식인 2차 대전에서의 소련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소련군에 대한 서방의 편견을 바로잡는 걸 강력히 피력해 왔다. 그는 냉전의 영향과 자료의 한계로 서방 측 시각[4]으로 독소전쟁을 바라본 기존 연구자들을 비판하고[5] 그가 가진 막대한 소련 측 자료들을 동원해 이 방면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선대 연구자인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그가 지속적으로 존경을 표한 존 에릭슨과 더불어 한 층 균형잡힌 군사사 서술과 소련군에 대한 편견 바로잡기를 시도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독소전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외에도 소련군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낳았는데 그 중 하나는 소련군이 만든 전략과 전술 사이에 존재하는 '작전술' 개념에 대한 의미 확립이었다. 소련의 알렉산드르 스베친이 정의한 '작전술'의 의미는 서방 학자들이 전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에릭슨조차 작전술이 '확대된 전술'을 뜻한다고 보고 있었는데 그는 서방 최초로 이 오류를 바로잡고 작전술이 전략과 전술 사이의 중간 단계로 전략과 전술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전략과 바로 직결되는 것이라는 정확한 해석을 했다.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 학계에서도 그의 연구 저작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균형잡힌 연구를 위한 노력의 결과 <Zhukov's Greatest Defeat>에서는 게오르기 주코프가 크게 패배한 '화성 작전'을 밝혀냈는데 화성 작전의 의의가 주코프와 바실렙스키의 회고록대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펼쳐진 천왕성 작전의 조공에 지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기존 학설을 새로이 뒤집는 글랜츠의 주장대로 천왕성 작전과 동시에 진행된 대규모 포위 섬멸전이었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그는 2006년 러시아판을 출간하면서 영문판에는 없었던 다량의 소련군 군사 문서를 함께 수록하여 자신의 주장에 새로이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동안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여과 없이 전달했다는 비판과 달리 화성 작전에서 대한 연구는 '소련군의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비난하며' 반대로 러시아 전사학자들의 크나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영미권 학자들의 밀도 높은 연구가 병행되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한국의 역사학자 이희진은 이글루스의 본인 블로그에서 글랜츠의 만주 작전 관련 서술 중 한달 안에 백만명을 이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글랜츠를 사이비 정도로 매도하다가 역덕, 밀덕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조리돌림을 당했다. 당연하지만 가능하고 역사적 기록으로 실증이 된 것인데 본인의 알량한 지식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우긴 케이스다.


[1] 2018년 11월 한국에도 '8월의 폭풍'이라는 제목으로 길찾기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판됐다. 만주 작전 당시 소련군의 기동전과 전략전술을 높게 평가했다. [2] 한국에는 '독소전쟁사'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전문 번역가들이 아닌 밀덕후들이 번역했으며 채승병이 감수를 맡아 책의 오류들을 죄다 수정하여 '원작보다도 낫다'는 찬사를 받았다. [3] 스탈린이 독일을 선제공격하려는 준비를 몰래 해 왔기 때문에 독일은 예방전쟁으로써 바르바로사 작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으로 결국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히틀러, 최소한 독일이나 독일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독일 극우 세력들은 이 책의 등장에 좋아서 날뛰었으며 레준의 책이 가장 인기가 좋았던 곳 중 하나가 독일이었고 반소, 반공적 입장을 취하는 저술가들은 레준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서서 한때 Icebreaker Thesis라는 열풍까지 불었으나 정작 학계에서 가루가 되도록 두들겨맞았으며 영국의 소련 군사사 연구의 거장인 존 에릭슨은 '환상'이라고 단언하면서 깠다. [4] 독일이 아니라 영-미의 시각에 훨씬 더 가깝다. [5] 사실 저서들에서 보이는 논조는 비판이라기 보다는 아쉬움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