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5:34:21

데이비드 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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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d2d0><colcolor=#000> 데이비드 게타
David Guetta
파일:David_Guetta.jpg
본명 Pierre David Guetta
피에르 다비드 게타
출생 1967년 11월 7일 ([age(1967-11-07)]세)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직업 DJ, 프로듀서
활동 1984년 - 현재
데뷔 1990년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f01916;"
Nation Rap
장르 EDM, 하우스, 댄스팝, 퓨쳐 레이브
가족 아버지 피에르 구에타
어머니 모니크 구에타
이복형 버나드 게타
이복누나 나탈리에 게타
배우자 캐서린 로베(1992년 결혼~2014년 이혼)
자녀 아들 팀 게타
앤지 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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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The grandfather of ED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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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파일:David_Guetta_Autograph.png

1. 개요2. 특징
2.1. 인기 및 위상2.2. 로고
3. 생애 및 활동4. 음반5. 논란
5.1. 재평가?
6. 여담

[clearfix]

1. 개요

프랑스 프로듀서이자 일렉트로니카 DJ.

2. 특징

2.1. 인기 및 위상

1980 ~ 90년대에는 나이트클럽 DJ를 하다가 2002년 데뷔 앨범 <Just a Little More Love>가 UK 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이후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하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도 진입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며, 여러 쟁쟁한 트랜스 DJ들을 제치고 2010년 DJ매거진 Top 100 DJ에서 아민 반 뷰렌에 이어 2위, 2011년 4년 연속 1위를 하던 아민 반 뷰렌을 제치고 1위에 랭크되었다. 2020년 TOP 100 DJ MAG에서 9년 만에 1위를 하였다. 2021년에 또 1위를 차지했다. 2023년에도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드러냈다.

데이비드 게타의 성공에는 트랜스 씬의 몰락과 하우스의 대흥행이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단순히 국가 및 개인 주도의 변동이라기보다는 트랜스 및 하우스의 프로그래시브 음악화가 진행되면서 일어난 씬의 변화가 크다고 볼 수 있다.[2]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빌보드 핫 100에 오르고, 지금까지 약 600만 장의 앨범과 1,500만 장의 싱글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내 일렉트로닉 차트 부문에서도 항상 인기도 1위를 고수할 만큼 세계적으로 매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윌.아이.엠, 리아나, 니키 미나즈, 어셔, 에이콘, 시아, 존 레전드, MAGIC! 등 막강한 피쳐링 멤버를 자랑하기도 한다.

케스케이드, 티에스토와 함께 최고령 DJ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역 DJ 중 DJ MAG TOP 100 정도의 인지도로 범위를 좁힌다면 게타가 최고령이다. 대체로 세대교체가 빠른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특성상 EDM 시장에서 이렇게 장수하는 인물이 드물다.[3]

그래미 어워드를 두 번이나 수상하며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4]

2.2. 로고

파일:logo-light@2x.png
2017년 - 현재[5]
이전 로고
파일:be96bae10525da4ec157277908f9897c.jpg
파일:42cd8a9726093b4f5babccdade135986.png
<rowcolor=#fff> 2002년 - 2009년[6] 2009년 - 2011년
4집 One Love 로고
파일:David_guetta_Logo_1.5.png
파일:maxresdefault_remastered.jpg
2011년 ~ 2017년[7] 2014년 ~ 2015년
6집 Listen 로고

3. 생애 및 활동

1967년 1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모로코계 유대인 프랑스인 아버지와 벨기에계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디제잉을 시작한 때는 17살인 1984년이었으며, 나이트클럽 DJ를 하면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왔고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0년에 Sidney라는 흑인 래퍼와 함께 Nation Rap이라는 싱글을 발매하게 된다. 1994년에도 로버트 오웬스라는 아티스트와 Up & Away라는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렇게 쭉 나이트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면서 생활하다가 프로듀서인 요아킴 가라우드(Joachim Garraud)를 만나게 되면서 인생의 변환점을 찍게 된다. Gum Productions라는 레이블에 들어가면서 크리스 윌리스(Chris Willis)도 만나게 되고 이 셋은 2001년에 Just A Little More Love를 같이 만들게 된다. 1년 뒤인 2002년에는 동명의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 셋이 같이 만든 Just A Little More Love는 2002년 UK 싱글 차트 19위를 찍을 정도로 첫 판부터 좋은 시작을 보이게 된다. 또 Love Don't Let Me Go도 크게 히트를 치게 되면서 게타는 한 순간에 나이트클럽 DJ에서 정식 프로듀서로 올라서게 된다.
파일:David Guetta And Joachim Garraud.jpg
2000년대 초중반에 찍은 게타와 가라우드의 모습.[8]

첫 판부터 대히트를 치던 게타는 2004년에 Guetta Blaster를 발매한다. 요아킴 가라우드, 크리스 윌리스와 또 다시 같이 작업을 했으며 작업 중 JD 데이비스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JD 데이비스 피쳐링의 The World Is Mine은 또 다시 UK 일렉트로닉 차트 1위를 찍게 되며 다시금 빛을 보게 된다. 그 외에도 Stay, Open Your Eyes 등 여러 대표곡들을 뽑게 되면서 또 다시 크게 히트를 치게 된다. 그러나 1집 만큼의 성적을 뽑지는 못했다.
파일:gettyimages-111517261-1024x1024.jpg
2007년 디제잉 도중 찍힌 게타의 모습

2004년 발매한 Guetta Blaster의 실패로 그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게 되었지만 오히려 실패가 원동력이 되어 게타가 프로듀서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요아킴 가라우드와 같이 디제잉 공연도 하는 등 게타는 여러 클럽이나 페스티벌에 들어가면서 디제잉을 하며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며 친분을 쌓는 일명 '오프라인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앨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게타는 Cozi Costi와 Tara McDonald같은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 크리스 윌리스와 같이 곡 작업을 했다. 요아킴하고는 딱 한 곡만 작업했다고 한다.

도중에 1집 수록곡인 Love Don't Let Me Go의 리믹스 버전인 Walking Away를 공개했다. [9]

그렇게 2007년에 Pop Life를 발매하면서 게타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먼저 Love Is Gone 리믹스가 UK 싱글 차트 9위에 오르게 되고 빌보드 메인 차트에도 오르고 DJ MAG TOP 100 10위 안에도 들어가는 등 여러모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며, 이는 현재까지 쭉 이어지게 된다.

4. 음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데이비드 게타/음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논란

파일:external/www.thissongslaps.com/Guetta-Tripping.png
Tomorrowland 2014 공연 도중 찍힌 모습

디제잉에 대해 논란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페이크 디제잉을 했다는 논란이다. 바로 디제잉을 하는 척 하면서 그냥 재생버튼을 눌렀다는 것. 게타는 가짜 DJ?[10] 믹스중에 두 곡이 동시에 정지된다?[11]

즉, 현장에서 디제잉을 하는 것이 아닌 이미 믹스되어 있던 셋을 틀어놓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것 또한 근거없는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고, 해당 베플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효과음을 사용해 단번에 곡을 전환시키는 스킬을 사용하던 도중에 일어난 사고로써, 두 노래가 동시에 플레이되는 시간은 불과 2초 정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원이 꺼지는 사고가 일어날 시점엔 이미 한 곡만 플레이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게타가 당연히 디제잉을 전혀 못 하는 것도 아니다. 17살 때부터 디제잉을 시작했고 대형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서는 것이 일상이니까 아마 저 영상이 진짜라면 라이브로 하기 귀찮아서 저런 것일 것이다. 물론, 그게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 deadmau5에 의해 게타만 이러는 게 아니라며 크게 떡밥이 돈 적이 있었으나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 외에도 우려먹기로 질타를 받기도 하는데 특히 최고 인기 앨범인 5집 Nothing but the Beat는 선행 싱글만 8개, 그리고 Deluxe Edition, 2.0, Ultimate까지 1년 넘게 우려먹은 적도 있다.

심지어 2011년 DJ MAG Top 1위를 발표하는 현장에서 1위가 게타라고 발표할 때 야유가 나오는 사건까지 벌어졌을 정도.[12][13]

투모로우랜드에서 디제잉을 하던 중 아예 손을 놓고 멍을 때리는 영상[14]이 나돌고 있다. 이를 두고 데이비드 게타가 마약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지난 7월에는 6백 만 달러에 이르는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기사에 의하면 Andre Dudek이라는 작곡가가 자신이 만든 Illuminations라는 곡을 1980년도에 만들어 2015년까지 저작권 등록을 안 해놨다고 한다. 그런데 이곡이 Listen의 수록곡이기도 한 Dangerous가 자신의 곡과 똑같다며 6백 만 달러의 소송을 냈다. #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기사가 없어서 소송이 진행 중인걸로 보인다. 웃긴 건 Dangerous는 게타가 먼저 작곡한 게 아니라 Sam Martin과 Jason Evigan가 먼저 어쿠스틱으로 곡을 만들고 David Guetta가 Giorgio Tuinfort와 함께 전자음악 스타일로 편곡한 곡이라는 게 함정이다.

또한 2016년에 Showtek과 발매한 Death of EDM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다. 드랍부분이 테크노 아티스트 Gesaffelstein의 Pursuit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의견. BPM, 멜로디 라인, 드럼 등이 거의 똑같다.
Death of EDM Pursuit 본격 까는 영상. 지금은 Gesaffelstein가 주로 한 미드 템포, 신스웨이브가 큰 인기를 구사하고 있어 Death of EDM과 같은 수많은 비슷한 음악이 나오면서 논란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Death of EDM은 표절과 오마주의 애매한 틈에 끼어 있어 논란의 여지는 잔재해 있다.

5.1. 재평가?

2013년, Tenashar라는 DJ가 실력은 매우 허접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외모로 DJ MAG 랭킹에 난입하는데 성공하는 일이 터졌다. 또 Steve Aoki의 여전히 높은 순위 등으로 다른 DJ들이 어그로를 먹자 게타는 그래도 일렉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며 Hardwell과 함께 이미지가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또 2010년대에 들어 무수한 팟캐스트들을 통해 미리 믹스된 셋들이 대중화되면서 DJ라도 디제잉보다는 프로듀싱을 잘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면서 욕먹는 일이 없어지고 있다. 유명 디제이들의 페스티벌 믹스에서는 거의 필수요소 수준이라... 대형 공연을 주로하는 게타의 입장상 무대 세팅 및 폭죽등 효과를 사전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6. 여담

  • 2016년 때까지만 해도 장발이었는데, 2017년부터는 항상 이발된 상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중이다.

[1] EDM 장르인 Titanium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면서 EDM의 할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2] 특히 그 대표주자인 티에스토는 2009년부터 트랜스씬과 인연을 끊은지 오래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3] 나이로 치면 62년생 칼 콕스가 본좌이다. 경력으로 치면 훨씬 더 오래된 파울 반 디크, 93년 데뷔해서 97년부터 14년까지 그래미 어워드에 12번 후보로 올라가서 7번 상을 탄 전설적인 듀오 다프트 펑크는 물론이며 ATB도 페리 코스텐도 100위 안에 장수하고 있다. 물론 게타는 여전히 고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4] 최우수 리믹스 레코딩, 논-클래시컬 2개를 받았다. [5] 이전에 사용하던 글꼴 자체를 갈아엎고 새로 쓰는 폰트. 2018년 7집 7에서 나온 로고는 DAVID의 'I'자가 왼쪽 윗부분이 약간 파인 형태이다. [6] ITC-아방가르드(ITC-Avant Garde)라고 불리는 상업용 폰트이며 197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2022년 기준으로 약 50년 정도로 오래된 폰트이며 이 글꼴을 사용하는 기업은 예를 들어 아디다스가 있다. 캐나다 가수 저스틴 비버도 초창기 때 이 폰트를 쓰며 활동했었다. [7] 폰트의 선이 굵어지고 A자 옆에 역사다리꼴 형태의 선이 추가되었다. [8] 여담으로 가라우드의 티셔츠에 그려진 외계인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나오는 크랩이라는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다. 저작권 때문인지 눈이 커진 형태가 된 건 덤. 그리고 이 캐릭터로 문신을 새긴 유명한 DJ도 있다. [9] 현재도 간간히 쓰이는 곡이다. [10] 터무니 없는 악성루머에 불과한 영상이다. 더 강한 빛이 CDJ 위를 덮고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CDJ의 불빛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것일뿐, 심지어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계기판에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와 있는 것마저 확인 가능하다. [11] 이 동영상의 베스트 댓글은 누가 내 아이튠즈를 껐지? [12] 발표는 2010년 1위를 차지했던 아민 반 뷰렌이 했는데 발표 후에 야유가 나오자 '여러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는 투표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라고 했을 정도다. [13] 심지어 이 영상의 싫어요가 좋아요보다 많다. 지금은 유튜브 정책에 따라 좋아요밖에 보지 못한다. [14] 해당 문단 최상단의 짤이 그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