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6-10-21 01: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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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례 모음
1.1. 군국주의의 최후 스파르타1.2. 50년간 벌어진 막장 올림픽 서진 ★◆1.3. 안에서도 밖으로도 막장이었던 말기 고구려 ★◆1.4. 삼국을 통일하여 쪼개지다 - 신라 ☆◆1.5. 수탈을 위해 세워진 콩고 자유국 ★◆♨1.6. 내외부의 문제 - 오스만 제국1.7.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 추축국 ★♨1.8. 사회주의 꿈, 그 끝 - 소련 ★◆1.9. 삼민주의로 세워졌으나 군벌과 재벌에 의해 타이완으로 쫓겨난 중화민국1.10. 총체적 난국 -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1.11.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는 그리스1.12. 이젠 더 말할 것도 없다... - 북한 ★♨1.13. 본격 현실판 북두의 권 + 매드 맥스 시리즈 + 대해적시대 - 소말리아 ★◆♨1.14. 다른 의미로서의 자원의 저주의 대표 사례 - 콩고 민주 공화국(자이르) ★◆1.15. 지도자 하나 잘못 만나 개판된 짐바브웨☆♨1.16. 중동판 삼국지 - 이라크 ★◆1.17. 이슬람 테러리즘의 고향 - 아프가니스탄 ★♨1.18. 대충 통일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 - 예멘 ★◆1.19. 존재 가치가 없는 나라 - 아이티1.20. 내우외환 - 시리아 ★◆1.21. 동화와 현실은 다르다 - 리비아1.22. 독립하자마자 막장테크 - 남수단1.23. 인간임을 포기했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1.24. 기타
2. 취약 국가 지수


1. 사례 모음

1. '일반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막장 테크를 겪는 국가나, 겪었던 국가.
1-1. 동시기에 10개 이상의 막장 테크에 복합적으로 해당하거나 해당하였던 국가.(★)
1-2. 막장 테크는 10개 미만이지만 사회의 붕괴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국가.(☆)
1-3. 5개 부문 모두에 해당하는 그랜드슬램에 해당하거나 해당하였던 국가.(◆)

2. 인류의 나쁜 선택을 제거하여 인류 진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는 국가. 1과 중복 가능.(♨)

사라진 국가는 멸망한 순서대로, 현존하는 국가는 건국된 순서대로 기재한다. 다만 그 역사적 인접성이나 파급성을 인정하면 나란히, 또는 추축국과 같이 그 상호 연관성이 밀접하면 더해서 서술한다. 또한 각 항목에는 반드시 그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세부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본 항목들은 단순히 순위만 나열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내용이 불충분한 국가들은 기타 항목에 기재한다. 그 국가 앞에 막장화 테크를 한 줄로 요약해서 넣어야 되며

(예: 군국주의의 최후 - 스파르타)

사라진 국가는 검은색으로 표기하고, 현재 진행형으로 겪는 국가는 빨간색, 겨우 탈출한 경우 노란색, 국가 막장 테크 탈출,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룬 국가는 초록색으로 표기할 것.

1.1. 군국주의의 최후 스파르타


스파르타의 영토와 영향권
해당하는 테크
전쟁 패전해 정복을 겪음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란 봉기
내정 실패로 돌아간 개혁
국론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우선 스파르타가 이렇게나 막장이 된데는 헤일로타이란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 후술할 내용을 요약하면 이들이 괴롭혀서 스파르타 막장이 되었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파르타가 이들을 쥐어짜서 스파르타 자신들이 이토록 막장이 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스파르타는 과거 이들의 국가였던 메세니아를 공격해 정복하여 괴뢰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대 사회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여기 구성원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어버리고 생산물의 절반을 무조건 납부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쨋든 형식상으론 멸망하지 않은 메세니아에게 매년 전쟁선포를 하여 반란 위험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도 메세니아에선 심심치 않게 반란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타국과 전쟁해서 얻은 점령지에 군사들을 장기 주둔시키지 못해 후기에는 점령지가 반란으로 인해 떨어져 나가는 걸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겐 또한 우생학 이념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스파르타에선 영아살해란 악독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강인한 전사들만 필요하고 나약한 이들은 필요가 없다는 스파르타인들의 이념에 기반한 것이였다. 이러한 우생학적 관념의 적용 대상은 그들이 정복한 헤일로타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였는데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을 달고 다니게 하고 혼혈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헤일로타이와의 결혼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런 폐쇄적인 사회 탓에 경제는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스파르타에서 사용되는 화폐는 외부에선 거의 쓰레기 취급 받았고[1] 게다가 헤일로타이의 사보타주 농업 기술 발전의 의도적인 저지는 잉여생산물 산출을 막아 상업의 발전이 늦어져 고전기 그리스 내내 가난한 국가란 인식을 떨쳐 내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시대가 변해 개인 군사적능력 보단 집단 전술, 결속력등이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군사의 전투력에 의존하는 전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파르타 특유의 우생학 영아살해, 외부이민의 차단[2] 및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인적 자원 소모로 인해 말기엔 스파르타 중장 보병의 핵심인 '스파르타 완전시민(스파르티아티코스)'의 숫자는 최전성기 10000명에서 수백 명[3]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스파르타인의 20배나 많은 헤일로타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들을 모두 전장에 보낼 수도 없었다.

또한 식민지인 메세니아는 "어차피 수확물이 늘어도 스파르타에 다 바쳐야 하는데 뭐하러 열심히?"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농업 기술 발전은 제자리걸음, 덕분에 타국과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군사력 증강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전체적 군사력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기이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나마도 나중엔 테베에게 시비걸었다가 역관광당해 메세니아를 독립시키란 요구를 승낙하면서 돈줄이 사라진 스파르타는 쇠락의 길로 돌아서게 된다.

허나 개혁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고대 스파르타 전통 부활시키려는 복고적 개혁의 시도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일시적이나마 효과가 있기는 하였으나 귀족들과 외국의 반발로 무산되어 결국 얼마 뒤엔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1.2. 50년간 벌어진 막장 올림픽 서진 ★◆


서진의 초대 황제 사마염


서진의 영토
해당하는 테크
전쟁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전
내란 봉기
정변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막장인 지도자
실패로 돌아간 개혁
__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__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비정상적인 세율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전근대에 나올 국가 막장 테크는 모두 보여주었다. 오오 서진 오오 초대 사마염부터가 1만 궁녀와 함께 개념을 우주 끝에 특급 소포로 보내고 통치를 시작했으며, 귀족들도 역시 돈지랄을 해댔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 당연히 백성들을 쥐어짜서 나온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석숭은 형주자사로 있으면서 지나다니는 상인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냈다고. 따라서 사회에는 죽림칠현이 선도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사상이 팽배했다. 구품관인법과 지나친 사치 등의 문제가 거듭 나왔으나 오로지 지적에만 그치고 개혁 따위는 시도조차 없었다.

더욱 심각하게 사마염이 이제 난세는 끝났다며 국내의 군대를 해산시키고, 대신 친족들을 각지의 왕으로 책봉하여 치안을 맡겼으니 문제였다. 달리 말하자면 황위 계승권을 지닌 사람이 군대를 거느리고 이제는 지방에 할거한 셈이다. 때마침 적절하게 소빙기가 오면서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찾아오고 기근이 벌어지며 민생이 파탄났고 농민들은 굶어죽기 싫으면 귀족들에게 투탁해서 반노예 상태의 객(客)으로 떨어져야 했다.

여기에 대귀족들의 횡포로 중앙에서 밀려난 중소귀족들이 지방에 있던 황족들의 밑으로 들어가서 바람을 불어넣자, 마침내 야심을 가진 황족들이 일어나 자기들끼리 황제를 두고 싸워댔다.

그런데 이걸로도 모자라 국경 안팎에서는 오랑캐와 도적들이 준동했다. 익주에서는 저족 이특이, 형주에서는 만족 장창이, 화북에서는 갈족 석륵이, 산동에서는 한족 왕미가 반군을 이끌었다. 결정적으로 중국에 침투해서 살던 흉노족이 황족들의 내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하고 석륵·왕미와 함께 마음껏 화북을 휩쓸어갔다.

이미 널리 초토화한 진나라에서는 사마월이 마지막으로 발악했지만 황제의 배신 탓에 울화통이 터져서 죽었다. 이렇게 수도 낙양이 함락하고 어찌어찌 장안에 망명정부가 나왔지만, 주위 군벌들에게 치이며 타고 다닐 마차도 없어 찌질거리다가 3년 만에 망했다. 정통성은 강남의 2차 망명정부로 이어졌지만, 여기부터는 동진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나눈다. 그리고 화북은 멸망했다.

왕조국가에서 이렇게 하면 망하십니다라는 너무나도 모범적인 사례. 반면교사의 아주 모범적인 예 보다시피 총체적 난국이다. 참고로 동진과 기타 남조의 왕국들도 비슷하게 돌아가며 망했다. 촉한정통론도 제도와 사회 구조상으로는 촉이 배는 나아서였다. 유선과 황호의 주도하에 11년간 나라를 말아먹었는데도 강유 지휘 하에 검각에서 저항할 수 있는 수만의 군대+제갈첨의 성도 방위군이 남아 있었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마소가 원래 오부터 멸망시키고 촉을 노리기로 했다가 강유의 북벌에 질려 갑자기 촉부터 치기로 목표를 수정했을까.

1.3. 안에서도 밖으로도 막장이었던 말기 고구려 ★◆

해당하는 테크
전쟁 패전해 정복을 겪음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개입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전
내란 적국에
투항
내정 권력 기반이 취약한 원수
극단주의 세력의 집권
폭군
국론의 관리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고난의 시작은 고구려-수 전쟁이었다. 이 때는 을지문덕 영류왕 고건무의 맹활약으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격퇴하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전쟁 과정에서 정작 전쟁 영웅인 그조차도 통일된 중국의 무지막지한 물량을 직접 경험해보고서는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해 이후 들어선 당나라의 지나친 요구를 들어주면서 전승기념관에 해당하는 경관을 허무는 등 비굴해 보일 정도로 친당정책을 펼친다.

물론 여기에 반발하는 강경파도 있었는데, 영류왕은 충분한 국정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연개소문 쿠데타로 영류왕을 토막살인하고 대신 수백 명을 죽인 뒤 독재자로 올라선다. 당나라와는 다시 대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처음 몇 번은 막아냈지만 결국 이런 반당정책이 고구려를 파멸로 이끈다.

당나라와는 연개소문 개인의 카리스마는 상당했는지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당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수십년간 수백만이 동원된 전쟁과 반복된 청야전술은 고구려 국토를 초토화시켰으며, 연개소문 1인의 통치력으로 유지되던 나라는 연개소문이 죽자마자 연씨들끼리 권력투쟁이 시작되어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장남 연남생 vs 차남 연남건+삼남 연남산의 구도로 붙어서 연남생이 패배한다.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남쪽 신라 국경 방면 12개 성과 수천 명의 주민을 바치면서 항복했고, 권력투쟁에서 패한 장남 연남생도 고구려의 옛 수도인 국내성을 포함한 3개 성을 당나라에 공짜로 들어바치면서 거기다 고구려를 쳐서 동생들을 응징해 달라고 당에 요청하기까지 했다. 완전한 콩가루 집안이 된 것. 결국 당나라는 연남생을 앞잡이로 세우고 고구려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주민들은 대부분 당나라나 신라로 끌려가 평양성을 비롯한 옛 고구려 중심지는 공동화에 황폐화되었다.

일반적으로 대중매체에서는 고구려 말기를 처음에 중국군을 몇 번 잘 막아낸 부분만 간지나게 포장해서 자존심을 지키며 장렬하게 싸웠다고 그려내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부실한 상태로 위태하게 버티다가 한순간에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1.4. 삼국을 통일하여 쪼개지다 - 신라 ☆◆

해당하는 테크
전쟁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전
내란 봉기
내정 막장인 지도자
국론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권력·재력 독점
공황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끊임없는 자연재해

한때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했던 신라였지만 멸망 과정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몰락 과정이었다. 자연재해는 끊임이 없었고, 지방에 세금을 걷으려니 반란을 일으키는 통에 국고가 얼마나 텅 비었는지 수천의 해적을 보내 일본 서부를 대대적으로 약탈하기도 했다. 일본 측 기록에만 있는데, 현춘 신라구들의 변명이었을 수도 있다.

행정체계가 붕괴해 지방 관리가 되지 않아 말기에는 수도 서라벌 외에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도시국가 정도의 상태까지 갔다. 교과서의 후삼국시대 지도에는 신라가 경상도 지역 정도는 간수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이것도 후삼국시대 초반부에나 이 정도로 볼 수 있었지 저것보다 더 안습이었어? 중반부만 가도 경북 북부의 아자개, 서부 경남의 왕봉규 등은 완전히 따로 놀았고 결국 후삼국시대 후반부에는 경주에서 코 앞이나 다름없는 지금의 김해시,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지역까지 죄다 후백제와 고려에 투항했다. 하지만 신라는 멸망하는 그 날까지 진골 혈통 귀족들의 공고한 권력 독점 구조는 따로 깨어지지 않았던 것도 다른 점이다.

근성 견훤은 신라 최후의 보루 대야성에서 몇 번이나 막혔지만 기어코 뚫어내고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4] 경애왕을 죽이고 왕후를 겁탈했다.

그나마 천년왕조의 정통성을 감안했는지 견훤은 완전히 신라 체제의 마지막 숨통까지 끊지는 않았고 반속국 정도로 남겼는데, 결국 고창 전투와 견훤 실각 이후 고려에 자발적 귀순하는 형태로 평화적으로 멸망할 수는 있었다.

1.5. 수탈을 위해 세워진 콩고 자유국 ★◆♨


콩고 자유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개입
내전
내란 봉기
내정 막장인 지도자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국민 대부분을 심각하게 탄압
일부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권력·재력 독점
공황 비정상적인 세율
자원의 저주
재해 초강력 범유행전염병

최소한의 명분이 있었던 일부 막장 국가와 달리 이 나라의 레오폴드 2세는 처음부터 넓은 콩고를 자신의 사유지로 만들고 운용해서 이들보다 더 막장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원주민을 혹사시켜서 얻은 재물들은 모두 레오폴드 2세에게로 갔으며 원주민들에게는 단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콩고 자유국 레오폴드 2세의 착취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였는데 각 사람들마다 감당하기 힘들도록 일할 할당량을 줘 만약 맞추지 못할 시 처음엔 을, 두번째엔 을, 세번째엔 을 잘랐다. 4번째는? 부관참시 이 곳 관리들은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절단 부위들을 소쿠리에 넣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특히 콩고 자유국 정부와 레오폴드 2세는 당시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던 고무 채집에 열을 내어 국토 절반을 고무나무로 이뤄진 플랜테이션으로 만든 뒤 원주민들을 착취했다. 그 때의 고무는 100% 나무에서 채집해야 되었는데 얼마 안 가 마을 근처의 넝굴이 동이 나자 원주민들은 나무 높은 곳에 올라가 고무를 채집하거나 사람들이 안 사는 깊은 정글 속에 들어가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굶어 죽거나 아니면 나무에 추락해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보호장비나 식량 혹은 보험은 일절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착취에 대해서 원주민들의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원주민들의 봉기와 내전은 계속 지속되었다. 허나 그때마다 콩고 자유국군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최신 소총 대포로 무장한 이들에게 원주민들의 저항은 그저 지렁이가 꿈틀내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학정으로 당시 콩고지역은 인구1000만여명이 죽었다. 물론 이 모든 수치가 직접적인 처형으로 채운것이 아니라 기아나 질병같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의 수치도 포함이 된 것이다.

레오폴드 2세는 이 일이 외국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계조작을 하거나 언론 매수를 시도하였다. 처음엔 이것이 먹혀들었으나 결국 몇몇 의인들의 활약으로 증거가 쌓이자 비난이 거세지고 결국 이 지역은 벨기에 식민지가 되었다. 이렇듯 나라가 주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운영되었고 원주민들은 부속품 내지는 도구 취급 받았다는 점에서 콩고 자유국은 기업국가의 한 전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6. 내외부의 문제 - 오스만 제국


1453년부터 1844년까지 쓰인 국기.

1844년 이후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패전해 정복을 겪음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전[5]
내란 봉기
내정 막장인 지도자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__'
공황 바닥을 드러낸 국고
국가 경제의 파탄
비정상적인 세율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16세기 중엽에 시작되는데, 먼저 쉴레이만 대제의 황후인 휘렘 술탄이 하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정치에 끼어든 것. 이 결과 쉴레이만은 황후의 말만 믿고 이브라힘 파샤 같은 명신들과 자신의 친아들을 때려잡는 암군으로 변해 갔고, 그의 뒤를 이은 황제가 술을 마시고 노는 것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셀림 2세였다.

한편 이 무렵, 예니체리를 비롯한 데브시르메 징집 세력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에 이른다. 오스만의 전제군주정을 확립한 메메드 2세 이래 황제들은 개국공신들인 투르크계와 데브시르메 출신을 적당히 견제시키며 황권을 유지했는데, 이게 무너진 것. 따라서 황제의 지위는 상당히 애매해졌는데, 본의 아니게 황제의 권위를 흔든 꼴이 된 쉴레이만 대제의 뒤를 이은 셀림은 황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뒤이은 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문제는 더욱 심화되기 시작하는데, 먼저 유럽의 가격혁명이 오스만에까지 영향을 준 결과 국고가 텅 비게 되었다. 그에 따라 군사 장교와 관료들의 녹봉도 줄어들었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매관매직과 뇌물로 이어졌다.

한편 국고가 비다 보니 오스만은 피지배민들에게 점차 무거운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는데, 특히 원래부터 세금을 조금 더 내던 짐미, 즉 비(非)무슬림들의 부담이 계속해서 가중되었다. 결국 조세 부담을 이기지 못한 세르비아를 시작으로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오스만 제국은 반란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군사를 보내 강경진압했을 뿐만 아니라 세르비아의 반란을 진압한 이후 세르비아 정교의 창립자로 최고의 성인이라 할 수 있는 성(聖) 사바의 유골을 불태우는 병크를 저지르고 만다.
물론 ‘반역자’ 들의 기세를 꺾는다고 한 일이었지만, 이게 오히려 반란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 한국사로 조악하게나마 비유하자면,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있는 일본이 태조 이성계의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날려버린 격이다.

마지막으로 17세기는, There is only WAR의 세기이기도 했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폴란드,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등과 돌아가며 전쟁을 벌였던 것. 이거야 오스만이 잘 나가던 14, 15세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17세기에는 나라에 돈이 없는데도 WAAAGH!!를 시전했으니 문제. 실제로 거의 매년이다시피 정복전쟁을 벌였던 메메드 2세의 뒤를 이은 바예지드 2세는 재정 부담을 완화하고 제국에 휴식을 주기 위해 내정에만 골몰할 뿐 군사 원정은 되도록 자제하거나 비용이 덜 드는 지방 비정규군만으로 수행했고, '입법자' 라 불리는 쉴레이만 1세는 군사적 업적 못지않게 내정에서의 업적도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 쾨셈 술탄을 비롯해 황제가 아닌 모후나 애첩이 정권을 장악하고 군공을 세워 승진할 욕심에 지방 총독들이 멋대로 군사행동에 나선 17세기에는 이런 배려가 없었다. 그리고 1683년에 오스만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공격하는데, 여기에서 완전히 박살이 났을 뿐만 아니라 그간 오스만에게 쌓인 것이 있었던 베네치아, 폴란드,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등이 손에 손을 잡고 오스만을 후두려 패러 나섰다.[6] 결국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 영토 전체를 잃고, 쇠퇴하기 시작한다.

제국이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에도, 황제를 비롯한 오스만의 위정자들은 영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에는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튤립이나 기르고 앉아있었던 반면,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흑해와 지중해로 진출하려 하는 러시아가 ‘튀르크’ 의 목을 따러 내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으로 일어난 민족주의의 바람이 오스만에까지 불어왔고, 결국 세르비아, 그리스를 시작으로 대규모 봉기[7]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오스만은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고, 결국 동유럽에서의 영토를 크게 잃고 만다.

한편,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조리 막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사 교과서에까지 나오는 탄지마트를 비롯해,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꾸준히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 하지만 기득권층이 된 지 오래인 예니체리와 성직자들은 이에 꾸준히 태클을 걸어댔고, 셀림 3세처럼 아예 폐위당하고 시해되는 황제도 있었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은 국방장관이자 실질적인 최고권력자였던 엔베르 파샤의 주도로 ‘독일과 손잡고 러시아를 친다!’ 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는 지난 수백년 동안 오스만에 계속해서 전쟁을 선포, 승리하여 이권을 빼앗아갔던 러시아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그 결과는... 결국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 반도 일부까지 빼앗기고 멸망 직전에까지 이르렀고, 그 와중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봉기를 일으켜 터키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1.7.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 추축국 ★♨

나치 독일 일본 제국 [8] 이탈리아 왕국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패전해 정복을 겪음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란
정변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막장인 도자
국론의 관리 실패
피정복민들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피정복민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세금

후발 제국주의 열강인 만큼, 선진 제국주의 열강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을 몰아서 상대하는 어마어마한 시도를 했다. 물론 프랑스는 이 와중에 독일에 먹혀서 대전 내내 유효한 연합국으로 기능하진 못했다. 하지만 나머지 연합국 셋의 저력만으로도 이미 추축국은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탈리아는 심각하게 자기 능력을 초과하여 영국령 이집트에 먼저 쳐들어가선 자기 본진 리비아까지 밀려버리고, 쓸데 없이 그리스를 침공해서 동맹군에게 도움을 구하는 추태를 보인다. 독일은 처음에는 잘 나갔지만 모스크바에서 패배하고, 결국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에서 전세가 뒤집혀 수도까지 빼앗겼다. 일본은 독자적으로 승산 없는 전쟁을 시작한 끝에, 길가의 풀을 뜯어먹고 진격했다.

명색이 합동참모본부인데 나치당의 군 통솔 기관으로 취급받아 각군 참모본부에서 무시당한 국방군(OKW, 국방군 최고사령부), 전통적으로 자신을 최고 국가 엘리트라 자부하던 육군(OKH, 육군 최고사령부), 최고사령관이 나치 정부의 2인자 헤르만 괴링이라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됐는데도 육해군 최고사령부를 찍어누르던 공군(OKL, 공군 최고사령부), 다른 사령부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조직과 자산을 지키기 바빴던 해군(OKM, 해군 최고사령부), 히틀러의 친위대 슈츠슈타펠, 지방장관들(Gauleiters), 기타 당국자들의 파벌 싸움과 자원 분배 다툼으로 독일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육해군이 영국 침공 계획에서 상륙 전술을 놓고 싸우는데, 정작 이걸 조율할 국방군사령부는 손도 못대고 이런 전술적인 문제를 히틀러가 직접 손봐야 했을 정도. 끝내 전략적 식견을 갖춰야 할 이들 최고사령부들은 그저 작전급 전역사령부로 스스로의 역할을 떨어뜨렸다.
합참이 서부전선에서, 육군은 육군대로 동부전선에서 동등한 지위로 지휘한다라 생각해보라. 더 세부적으로는 히틀러 독대권을 가진 국방군의 빌헬름 카이텔 알프레드 요들, 육군의 쿠르트 차이츨러와 하인츠 구데리안, 나중 가면 괴벨스의 선전부[9]까지 끼어들고 온갖 기관들의 아귀다툼 사이에 낀 알베르트 슈페어의 군수부도 히틀러에게 달려가 문제를 호소했다. 공군의 기갑사단, 공군 야전사단들은 이런 개싸움의 극단적인 예다.

그나마 독일은 히틀러라는 교통정리기라도 있지, 일본은 텐노가 시라스(知らす)[10]를 하느라 구체적인 정책에는 관여하지 못하는 동안 육군성, 해군성, 관동군, 연합함대[11]가 싸워 댔다. 육군과 관동군은 또 그 안에 황도파와 통제파가 갈리고, 해군과 연합함대는 항공파 전함파가 싸워댔다.

더욱 세부적으로는 인간들 줄타기에 좌우받는 경향으로 임팔 작전 같은 것도 통과되었고 도조 히데키는 정치권에서 시라스 파에겐 독재라고, 중앙집권주의자들에겐 사상이 불충분하다라 까였으며 일본 제국 헌법 자체가 기관들을 나누는 경향이 컸다. 배경 자체가 이정도로 콩가루이니, 극한의 상황에서는 아예 덴노고 같은 일본인이고 할 것 없이 서로 을 했다.

이탈리아라고 멀쩡할 리 있나. 각 지역별로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조직에 지역적 요소가 들어가다보니 효율적인 조직 체계가 없었다. 자주포중대와 전차중대를 묶어놓았는데 지휘권 재편을 못해서 각 서로 다른 연대에 속해있다던가. 이처럼 조직 상황이 막장인 데다 뭔가 하려면 죄다 줄타기와 인맥빨에 매달려야만 하였다.

여기에 추축국 사이에서도 자기들끼리 분열이 없을 리 만무하다. 서로 엇박자를 내는 통에 그야말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상황이 자꾸만 벌어졌는데 이들이 어떻게 엇박자를 냈는지 보자면 우선 독일은 일본의 적국인 중화민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일본은 독일에서 요청하는 소련 침공은 안하고 미국을 공격한다. 게다가 학살광 일본은 파시즘 우방국인 스페인 대사관이나 독일, 헝가리 목사와 수녀들을 학살하는 미친 짓을 했다.

게다가 이들 정권도 홀로코스트 대동아공영권같이 다른 집단을 차별하며 지지를 얻은 집단인 데다가, 정권 자신이 극단주의 세력이었다. 난징대학살 같은 개막장 학살은 다반사.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바르샤바 봉기, 레지스탕스, 파르티잔 같은 저항조직이 끊이지 않고,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까지 일어난다. 지도자들도 모두 막장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열강들이었지만, 상대들이 너무 세서 끝내 경제가 파탄에 빠졌다. 특히 일본은 진주만 공습 때 미국이 평균적으로 60배의 자원 우위를 지녔고, 전쟁 말기가 되면 차이가 2배로 커져 120배였다. 그리고 석유가 모자라 전쟁을 개시했는데, 비축할 생각도 없었는지 시작부터 석유 차이가 1000배 가량인 막장 상황. 병력동원에 있어서도 비슷한데 독일은 1800만명, 소련은 2900만명으로 1000만명 차이가 난다.

그만큼 독일보다 소련이 사상자는 제일 많았지만, 각각 천만이 넘게 본국민과 식민지인을 동원한 미국과 영국 및 일본, 이탈리아를 더해 비교하면 차이는 더 크다. 또한 경제규모의 차이도 어마어마했는데 독일을 제외하면 2차 대전 발발 당시, 후에 주요 승전국이 되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GDP를 뛰어넘는 추축국은 단 하나도 없었다.

1.8. 사회주의 꿈, 그 끝 - 소련 ★◆


소비에트 연방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란 정변
내정 갑자기 사망하거나 부재 상태인 지도자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막장인 지도자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국론의 관리 실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블랙기업이 창궐함
재해 국가 단위의 환경재해

서진과 함께 5개 부문 모두 해당하는 그랜드 슬램이지만, 하나하나가 강력하게 작용했다기보다는 문제가 복합적이었다는 점이 더 컸다. 사실 근대화된 국가라면 방향을 잘못 설정하지 않는 한 지엽적인 막장 테크 하나하나는 잡을 수 있다. 그래도 어지간한 나라는 요것들 중 하나만 터져도 망할 터인데 이런 재앙이 몇개씩 연달아 터져서야 겨우 망한 것을 보았을때 미국 자웅을 겨룬 초강대국이었다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미국과 냉전을 하며 세계에 혁명을 수출했으니, 부담도 세계구급. 동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여러 위성국가와 쿠바등을 데리고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과 군비 전쟁을 하려니(...).[12][13] 게다가 얼마전까지 동지였던 유고슬라비아 중국, 알바니아는 통수를 쳤고. 따라서 냉전 후반인 70-80년대에는 미국, 서방도 모자라서 중국과도 군비 경쟁을 해야 했다. 또한 트로핌 리센코라는 아주 걸출한(...) 농학자 때문에 그 광활하기만 할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옥토지대를 가지고도 농업이 폭망해 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 와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상대가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으로 전쟁하러 간다는 시망 플래그를 찍어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해먹던 브레즈네프의 사망 뒤에는 브레즈네프-체르넨코 계와 안드로포프-고르바초프 계의 대립으로 국론까지 갈라진다.[14]

거기에다가 80년대는 위기였는데, 브레즈네프가 너무 오래 한 탓에 그 뒤로 올라갈 관료들이 폭삭 늙어서 서기장이 1~2년마다 죽었다. 거기에 브레즈네프 자체가 급진파인 흐루쇼프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딱히 별다른 개혁적 조치는 없었으나 군비는 계속 늘어나서 국고는 텅 비었다. 브레즈네프 사후 안드로포프가 그나마 현실을 직시하고 뭔가 하려 들었으나, 위에 말했다시피 브레즈네프가 너무 오래(...) 살았고 안드로포프도 지병으로 죽었다. 심지어 그 뒤에 올라간 체르넨코는 안드로포프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거기에 브레즈네프 계파인 사람답게 딱히 무언가 움직임 없이 현상유지하다가 사망.

그렇다고 그 이후가 평탄한 것도 아닌데, 당장 고르바초프 집권 초기에 터진 체르노빌.(...)[15] 거기에다가 고르바초프도 정말로 안드로포프가 밀어준 그 후계자가 맞나 싶은 모습을 보이며 삽질을 거듭해, 국가의 통제력 자체가 흐트러졌다. 그나마 말기에는 신연방 조약 비준 등으로 어떻게든 연방을 지켜보려 했으나, 군부의 쿠데타 뒤 옐친이 화려하게 신연방 조약을 거부해서 그대로 해체.

1.9. 삼민주의로 세워졌으나 군벌과 재벌에 의해 타이완으로 쫓겨난 중화민국

태생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혁명 국가이자 군벌 재벌이 국가 건전성을 착실히 말아먹은 사례


1918년에서 28년까지의 중화민국 국기 오색기. 중국을 구성하는 다섯 민족의 화합을 상징한다.

28년 이후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
1912~1945 1945~1949 1949~현재[16]
줄어들 국가는 줄어든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전
내란 정변
혁명
내정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국론의 관리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비정상적인 세율
재해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는 무너져 중화민국이 나왔지만,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은 위안스카이라는 명목상의 국가원수를 모시는 수준이었고 이마저도 위안스카이 사후 바로 분열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위안스카이 취하에서 성장한 북양 군벌들과 그에 반대하는 지방군벌들이 중앙정부라는 이름하나때문에 한바탕 내전을 치른 것은 덤. 한편 신해혁명으로 유명한 쑨원은 중국 본토의 최남단인 광둥 성에 중화민국 원년약법을 회복한다는 명목의 호법정부를 세웠지만 이것도 지방 군벌들과의 갈등으로 2번씩이나 달아났다가 간신히 돌아왔다. 초장부터 이 무슨 막장.(...)

군벌들에게 2번이나 호되게 당한 쑨원은 이 못 믿을 군벌들 대신 자신에게 충성하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중국 국민당을 창설하고 이제 소련의 제안대로 신설조직인 중국 공산당 손을 잡았다. 이후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분열을 해결하기위해 쑨원을 초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와중에 간암으로 죽었다. 손문 사후 광둥정부는 주인을 잃어 좌파의 수장 랴오중카이가 암살을 겪으며 우파의 수장인 후한민이 쫓겨나는 등 갈피를 못 잡았다. 이 때 장제스는 1926년에 중산함 사건을 기준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다. 곧장 쑨원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에 돌입한 장제스는 1928년 상하이에서 4.12 사건으로 공산당을 제거하고 난징정부를 세웠다. 이에 국민당 좌파가 반발하였으나 결국 그해 10월 10일에 공산당과 결별하였고 1928년에는 전 중국의 유일합법정부인 난징 국민정부를 세운다. 이내 각지의 군벌들을 해체시키려다 전국적인 반발을 불러와 중국은 1930년에 다시 내전을 겪었다. 한편 저 북쪽에서는 만주사변이 터지고, 남중국일대에서는 공산당이 여전히 각 도시와 농촌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도 1928~1937년까지의 중화민국은 황금 10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도의 발전을 이룩하던 시기였다. 연이은 자연재해에도 농촌에 대한 구제와 구조개혁을 통해 정치적 불안으로 번지는것을 막고 각지의 공산당 조직과 지방 군벌들로부터 중앙정부의 권력을 확보하고 강력한 공업화정책으로 중일전쟁에 대비할 준비를 갖춤과 동시에 외교적 접촉으로 일본을 고립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공한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버텼으나, 역사상 처음으로 총력전을 수행하는 중국에게 중일전쟁은 너무나도 거대한 파도였다. 일본의 침략정책으로 전국적인 반일감정이 일어나 반정부움직임이 거의 없어진 것은 다행이었으나 직속군+군벌군을 더한 국민당군은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웠고, 상해전투 등 초반 장제스의 오판으로 정예병력을 상당수 날려먹으며, 군벌들은 갑자기 튀어 중앙군의 포위를 방임하는 등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중공은 통설과는 다르게 하라는 항일은 안 하고 오히려 국민당 유격대를 공격해 해방구만 늘리는 등 약은 행동을 일삼았다. 게다가 전쟁을 대비하기위한 군수공장과 제철소라고는 무한에만 다 있었는데 건설을 완료하기도 전에 함락되어버려서(...) 총력전은 서남지역으로 이전한 극소수의 공장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장제스는 항복을 거부하였고 개막장 일본군의 침공을 견디고 또 견뎌낸 끝에 1945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국제연합 상임이사국에 올라 상승가도를 달리는 듯하였으나 속으로 국민당은 완전히 곪아들어가고있었다. 장기간의 항전을 수행하기위해서는 국가경제를 집중화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등장한것이 이른바 4대가족이라 불리는 장가(蔣家), 송가(宋家), 공가(孔家), 진가(陳家)였고 이들이 중화민국의 정치·경제를 장악했다. 이들은 각각 장제스의 가문,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의 가문, 쑹메이링의 매부 쿵샹시의 가문, 장제스의 선배 천치메이의 가문이었다. 즉, 끼리끼리 다 해먹은 것이다. 이 가운데 중심은 단연 쑹메이링과 쑹아이링의 송씨 집안이었는데, 이들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금융자본을 온갖 산업분야(미곡, 연초, 철로, 방직, 제분, 제지, 출판, 광산 등)에 확장시켜서 온갖 회사를 한 손에 거머쥔 재벌이었다. 또한 천치메이는 이미 죽었지만 그 조카 천궈푸와 천리푸는 암흑가 출신으로 경찰과 특무조직를 장악하며 장제스의 정치력을 뒷받침했다. 악명 높은 CC단이 바로 이것.

결국 곧바로 닥친 국공내전국토의 99.7%를 날려버리고 타이완으로 쫓겨났으니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못볼 비극... 그나마 위안은 장제스가 내전에서 진 뒤 기존 군벌들과 재벌들의 견제에서 벗어나면서 중화민국은 타이완의 기적(경험)이라고 불리는 고도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또 한반도에서 김일성이 여럿 안고 자폭한 덕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타이완 침공을 안 해 지금까지 국체를 유지한다.

다만 197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17]으로 국제연합에서도 쫓겨나 본격 미승인국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는다. 실제로는 미국 등 주요국들이 독립 국가로 대접하고, 중국도 여기까지는 못 막지만.

그래도 이전까지 보았던 막장국가들과 앞으로 보게될 현실의 지옥들과 비교하자면 사실 이전의 삽질과 패권을 장악하려는 어떤 사회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 일당독재국가가 나라 내놔라고(...) 협박해서 그렇지 이전의 중화민국과 민주화 이후의 현재의 중화민국을 따로보면 나름대로 아시아에서 선진국이며 아시아에 세개밖에 없는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현재 중화민국(즉 대만)이 막장국가라 할순없다. 오히려 비교하는게 불쌍하다.

1.10. 총체적 난국 -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

정통성도, 국민의 관심도, 국가 지도층의 양심도 없는 국가는 외부 세력의 공격에 제대로 못 대응함을 보이는 대표적인 예


베트남 공화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전
내란 정변
내정 막장인 지도자
지도층에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권력·재력 독점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지도자인 응오딘지엠은 초기에는 군벌화한 불교도 세력을 토벌하여 치안을 안정시키고 북베트남의 무리한 토지개혁과 종교탄압 등으로 생긴 80만이 넘는 탈북난민들을 무사히 재정착시키는데 성공해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 그대로 끝까지 통치했으면 그래도 나라의 기틀을 잡았겠지만, 이후 엄청난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서 남베트남을 말아먹는다. 국가 요직에는 죄다 친인척을 앉히고, 종교 정책에서 베트남인들이 대다수 믿는 불교를 탄압하고 소수인 기독교를 우대하고 역시 공직에 기독교도만 골라서 앉히는 크나큰 병크를 저지르고 마침 아내인 쩐레쑤언이 불교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 소신공양)한 고승 틱광둑에 대해 바베큐 드립을 치는 바람에 말그대로 남베트남 국민여론은 폭발했다. 결국 즈엉반민 장군이 CIA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응오딘지엠 정부를 무너뜨렸다. 허나 그 이후에는 군인들 간의 권력다툼으로 쿠데타가 밥먹듯 일어나 남베트남의 정치판은 개판이 되었다.그 이후 안정을 찾나 싶었지만,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며 다시 막장이 되었다. 응오딘지엠이 무능하고 광범위하게 미움을 샀지만,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국정을 추구할 만한 인물이 남베트남에는 지엠 뿐이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이 시점 이후로는 그나마 미국에게 받아 먹을 건 받아 먹으면서도 독자적인 정책을 시도하던 지엠 시절과 달리 전형적인 괴뢰 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결국 남베트남은 존립 시기 내내 결코 정상적이고 제대로 작동하며, 자립 가능한 행정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로는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한 탓에 독자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이 남베트남이 패전하는것을 보다 못해 직접 미군을 파견하여 북베트남에 맞섰으나, 피해만 잔뜩 입은 후 철군시키고 대신 막대한 군사지원을 해줘서 미군 철수 이후 남베트남군은 수치상으로 당시 세계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군사력을 가졌으나, 정작 1975년 북베트남의 공세에선 반 이상이 탈영하고 군사정보를 입수한 북베트남의 침공에 허망하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초반에는 미국의 원조, 풍부한 쌀 수확량 등으로 북베트남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으나, 이마저도 베트남 전쟁이후로 재정적자, 무역적자, 인플레이션의 3박자가 겹치면서 경제도 막장화되고 농촌지역의 상당수가 베트콩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또한 가공할 수준의 부정부패가 멸망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솔직히 이게 가장 크다. 천조국에서 원조한 무기를 적국에 팔아먹은 나라인데, 더 설명이 필요한지? 오죽하면 남베트남의 멸망 원인이 공산 세력의 내부 중상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한국의 반공 세력들조차도 저렇게 썩었으니 언젠가 망할 줄 알았다. 망해 마땅한 나라라고 비난할 정도다.

1.11.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는 그리스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란
내정 막장인 지도자
각계층에서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비정상적인 세율
재해 국가 단위의 환경 재해[18]

다른 막장국가들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막장 테크를 충실하게 타고 있는 나라. 부정부패와 낮은 세율. 나태하고 비효율적인 사회구조[19], 유로의 한계 등이 겹쳐 21세기 들어 사상 첫번째로 순수하게 돈이 없어서 디폴트를 하게 생긴 극소수 국가 중 하나에 등극하게 생겼고 마침내 2015년 7월 1일, 결국 국가 부도를 선언하였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그 한국이 외환위기 당시 처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때는 당장 지불할 외화만 부족했다 뿐 그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반면 '그리스는 현재 정부가 지불할 돈 자체가 진짜로 없다!

게다가 정권을 잡은 시리자 그렉시트, 한번 해보겠다는 식의 베짱이나 부리고 있으며 국민들도 자신들이 처할 참혹한 상황은 관심갖지 않고 한번 디폴트 해보자는 식의 배째라 자세로 일관하면서 국가 막장 테크 진입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상태.

유럽 내부에서도 그리스의 유로존 및 유럽 연합 잔류보다는 탈퇴 및 국가 해체 가능성[20]을 기정사실로 보고 그 여파가 발칸권 국가들[21]로 확산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금이 지나치게 낮다. 게다가 그리스 IMF 문서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좋은 의도로 소갈비만큼 써댄 것도 아니고 있는 사람들끼리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1.12. 이젠 더 말할 것도 없다... - 북한 ★♨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란
내정 갑자기 사망하거나 부재 상태인 지도자
국민 대부분을 심각하게 탄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막장인 지도자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일부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권력·재력 독점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국민들의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세금
재해 지도자의 뻘짓으로 인한 장기적인 환경 악화

지구상에 있는 헬게이트 가운데 하나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2]

내정 부문의 모든 막장 테크를 정확히 탄다. 끝내 북베트남에 망한 베트남 공화국도 저 막장 테크를 충실히 밟았고, 해당 항목에 보다시피 북베트남과 간첩들은 어차피 망할 운명이던 남베트남의 멸망을 좀더 앞당겼을 뿐이다. 하지만 북한의 당과 관료층이 남한의 흡수를 절대 안 바라는 데다가[23] 중국의 완충지대인 북한 수호 의지가 확고하기에 왕조는 멸망해도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는 새로운 정부 아래서 버틸 수도 있다.

궁극의 흑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쓰는 나라. 광복 당시만 해도 일제가 세워둔 각종 산업 시설과 풍부한 지하 자원이 있었고, 전쟁으로 그것들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지만 공산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거쳐 다시 한번 상당한 수준의 공업 국가에 오른다. 당장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 국제 사회는 남한이 조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북한이 적화통일을 시도하면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 이는 북한의 경제가 공산권 안에서도 수준급일 만큼 엄청나게 잘 나가는 반면[24], 남한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내내 경제적인 침체를 겪었으며 1970년대 초부터야 월남 특수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거쳐 그럭저럭 커갔을 만큼 상황이 나빠서였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좋은 기회를 김씨 왕조 의 삽질 세습 독재에 집착해 날려버리고, 오히려 국가를 폐쇄적으로 만든다. 그 결과는 특수한 소수 계층을 뺀 다수의 국민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도 제대로 받기 힘든, 사실상 경제의 붕괴였다. 게다가 국가 및 사회 전반적인 기반이 완벽하게 무너진 상태라 김씨 왕조를 기적적으로 붕괴시켜도 과연 재건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완충지대로 국가만 지키지만, 이마저도 북한 자체의 역량이 아니라 김씨왕조 정리까지는 주변국들 모두가 동의하는데 그 다음 처리에 못 합의해서다. 하다못해 중국이 대놓고 북한 분할 방안을 문서화해 미국에 제시하고, 미국이 그걸 한국에 보내줬을 정도.[25]

여담으로 위의 그리스는 최근 국가부도를 선언했지만, 북한은 이미 아~~~주 옛날에 디폴트가 선언된 상태. 하지만 이 부도채권은 아직 완벽한 휴지조각은 아닌데 그건 대한민국의 존재 때문. 덕분에 통일이나 전쟁관련 소식이 들리면 이 부도채권의 가격이 날뛰기도 한다.(...) 자세한 건 북한의 국채 참고.

1.13. 본격 현실판 북두의 권 + 매드 맥스 시리즈 + 대해적시대 - 소말리아 ★◆♨


소말리아 연방 공화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내전
내란 정변
내정 정부의 부재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막장인 지도자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소말리아의 현 상황 지도. 파랑색이 소말리아 과도정부, 노랑색이 소말릴란드, 암녹색이 알샤바브, 회색이 중립지역, 깃발 꽃인 곳은 UN 평화유지군 주둔지다.

흔히들 시리아처럼 내전 이후로 소말리아가 막장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내전 이전 정부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이미 개막장이었다. 모가디슈 전투 항목의 발단 부분에 설명된 바레 정권의 서술과 오가덴 전쟁 항목 참고. 다만 내전으로 소말리아가 이전 독재정부시절보다 더한 개막장 헬게이트로 바뀐 것은 사실이다(...).

이쪽은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통치에 반발한 여러 무장세력들이 연합하여 정부를 전복시킨 뒤 자기들도 분열하여 총질하는 바람에 새 정부를 세우지 못했고, 덕분에 한동안 중앙정부 자체가 없으니 공권력 자체가 사라져 치안 유지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상태가 되었다 . 늦게나마 과도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공권력이 자국에도 뻗치지 못해서[26] 부족단위 국가인 7~8지역으로 나뉘었다.이들 중 소말릴란드는 아예 "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를 빠져 나가야 겠어"를 외치며 독립국 선포를 해버렸다.

소말릴란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승인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주권국가인 소말리아보다 정부, 경찰, 정부군 모두 자리를 잘 잡아 치안 상태가 본국인 소말리아보다 양호하고 오히려 국가 노릇도 이쪽이 더 잘하고 있는 상황... 이러니 가난한 시민들은 돈을 벌러 해적을 하거나, 알 카에다 알 샤바브같은 테러 조직에도 들어간다. 이미 온 국토에 군벌들이 난립하며 힘 없고 돈이 없는 시민들을 쥐어 짠다. 그나마 부유한 사람들도 치안을 유지하는 소말릴란드로도 떠난다. 하지만 이조차 손가락 갯수 만한데, 소말리아에서 부유한 이들[27]이 자신의 돈벌이 지역에서 절대 빠져나갈 리가 없다.

이후 에티오피아군이 2006년에 치안 유지와 ICU 공격을 목표로 소말리아에 들어왔는데 일단 ICU를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3년 만에 철수했다.[28][29] 소말리아에서 입양되거나 멀리 이민을 간 뒤 성인이 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인 소말리아에 가자마자, 멘붕이 오고 어쩌면 자기도 저리 살았으리라는 것에 충격을 감추지 못한다.

그나마 (어디까지나 그나마다. 여전히 총알이 날라다니는 막장이라는 사실 자체는 그대로다.) 최근 들어서는 알샤바브와 알카에다가 이전보다 약화되고 과도정부의 힘이 뻗치는 지역이 늘어나고, 중부 푼틀란드 지역도 소말릴란드를 본받아 과도정부에 자치구 선언을 하고 치안 유지를 시도하는 등 예전보다는 나아지는 모습이니 다행이라면 다행.

1.14. 다른 의미로서의 자원의 저주의 대표 사례 - 콩고 민주 공화국(자이르) ★◆


콩고 민주 공화국의 국기.


과거 자이르 시절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의 개입
내전
내란 정변
내정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막장인 지도자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국론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자원의 저주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초강력 범유행전염병

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서도 독보적으로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30]을 가지고 있는 자원부국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자원의 축복을 받은 나라들 중 하나로 보이겠으나... 애초에 그 광물들이 이 국가에 축복을 가져다 줬으면 이 항목에 올라왔을 리가 없다.

벨기에의 식민지에서 독립한지 얼마 못가서 정부 내에서 카사부부 대통령(친미파)과 루뭄바 총리(친소파)의 관계가 극도로 안 좋아지고, 벨기에가 카탕가 주 총리 촘베를 지원하여 독립을 선포하며 내전으로 돌입했다. 이후 모부투 국방장관이 카사부부의 지원을 업고 루뭄바를 내쫓고 정권을 카사부부에게 이양하고, 정부와 촘베가 화해하며 일단락되는 듯 하였으나 카사부부 대통령이 촘베에게 정권을 이양하자 모부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엎어버리고 자신이 지도자가 되었다. (이때 모부투가 국가 명칭을 자이르로 바꿨다.) 이후 한동안 내전은 없었으나 모부투는 폭압적인 독재정치를 펼치며 미국의 지원금을 착복하는 등 막장 지도자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고, 당연히 나라의 발전 따윈 없었다.[31]

그리고 이웃 르완다에서 내전이 터지며 자이르에도 다시 내전이 터졌다.( 1차 콩고 전쟁) 르완다 내전에서 패퇴한 후투족 민병대들은 난민들과 섞여 자이르로 도망쳐서 르완다에 계속 공격을 가하였고, 르완다 역시 그걸 빌미로 자이르를 공격하고 자이르 내 투치족을 무장시켜 반군을 조직하여 자이르에 혼란을 초래했다. 이후 자이르 내 투치족 반군 vs 자이르 정부군+후투족의 양상으로 내전이 계속되다 결국 우간다와 르완다의 지원을 받은 투치족 진영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아(국명도 이때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회귀) 1차 콩고 전쟁이 종결되었다.

허나 투치족이 승리하고 카빌라 정권이 세워진 뒤에 르완다와 우간다가 자국의 이득(광물자원 취득+콩고의 불안정화로 자국 안정화)을 노리고 반군을 재조직시켜 콩고는 이번에는 국제전을 벌였다. 국력면에서는 콩고가 우세했으나 워낙 오랜 내전으로 군대가 막장이라 임진왜란 개전 당시 조선군처럼 탈탈 털리기를 반복. 일시적으로 수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수력 발전소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등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빠지자 정부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앙골라, 차드, 짐바브웨, 나미비아, 리비아등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개입하고 수단 역시 반군편으로 개입하여 말이 내전이지 사실상 아프리카 대전 수준으로 규모가 커진 상태로 전쟁이 지속되었다. 이후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개입한 나라들은 발을 빼지 않았고, 반군들은 분열하여 자기들끼리도 내전을 벌이고, 반군/정부군 진영과 관계없이 자기 지역을 지키려는 민병대나 광물 밀수출로 개인적인 이득을 노리는 민병대/지역 군벌(일명 "마이마이")들이 난립하여 더욱더 혼란의 수렁에 빠졌다.( 2차 콩고 전쟁)

그나마 2006년 카빌라의 아들이 정권을 잡고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반군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32] 대부분의 국가들이 군대를 철수시키며 이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동부 지역은 1차 내전 당시의 후투족 민병대와 친르완다 반군이 여전하여 무법천지로 가고 있고, 위에서 말한 마이마이 들은 여전히 광물을 캐서 돈을 벌며 인권과 자연환경을 박살내고 있고, 북동부 지역에서는 토착종족인 헤마족과 렌두족 간에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여 6만명이 죽었고, 서북부 동고 지역에서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2007년에는 대통령과 부통령 사이에 무력 충돌이 있는 등 전쟁 종결이라는 말이 정말 무색한 상황이다. 결국 2012년에 들어 동부 지역이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에 완전히 넘어가며 내전이 재발했다. 몇 번째냐?

경제 역시 나아질 기미를 안보이며, 정부의 부정부패도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에볼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그리고 대통령도 당초 약속과는 달리 독재로 가고 있으며 사법 체계도 사실상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면서 거의 붕괴됐다.[33] 르완다는 개입을 멈추지 않고, 또한 앞에서 설명한 것을 보면 콩고가 나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정말 희망이 안 보이는 암울한 상황이다.

1.15. 지도자 하나 잘못 만나 개판된 짐바브웨☆♨


짐바브웨 공화국의 국기.

https://upload.namu.wiki/upload/zwr100billion.jpg
1000억 짐바브웨 달러 지폐. 하지만 1000조 달러로 달걀 3개밖에 못 산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란
내정 막장인 지도자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국민 대부분을 심각하게 탄압
실패로 돌아간 개혁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짐바브웨는 소말리아,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처럼 참혹한 내전을 겪진 않았지만 독재자의 병크가 하나하나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나라가 개판이 된 경우다. 우선 이안 스미스의 로디지아 백인 정권 시절 로디지아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흑백 분리, 차별 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웃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권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정권을 쥔 소수 백인들이 국민 대다수의 흑인들을 홀대, 억압하는 등 거기에서 거기인 수준이었고, 결국 남아공과 더불어 국제적으로 왕따 국가로 전락하고 지속되는 흑인들의 저항으로 백인들이 정권을 잃고 백인 정권 시기 흑인 저항 운동을 펼치던 흑인 지도자 로버트 무가베가 대통령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넬슨 만델라 해피 엔딩같지만.....

무가베 이 인간이 무능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능한 동시에 악랄한 독재자가 되면서 오히려 백인 정권 시절보다 더 답이 없는 헬게이트로 추락했다.(...)[34] 그냥 다른거 필요없고, 짐바브웨 달러 로버트 무가베 항목에 들어가 보자.

1.16. 중동판 삼국지 - 이라크 ★◆



이라크 공화국의 국기(위: 후세인 정권 시절 국기, 아래: 현재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패전해 정복을 겪음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내전
내란 정변
봉기
내정 막장인 지도자[35]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국론의 관리 실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국가 재정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36]


현재 상황. (왼쪽이 시리아, 오른쪽이 이라크다.) 각각 붉은색은 시리아/이라크 정부, 각각 노란색은 시리아/이라크 쿠르드족, 검은색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초록색은 자유 시리아군, 흰색은 알 누스라가 장악한 영토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라크는 후세인이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에는 원래 멀쩡한 나라였으나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국가가 막장이 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후세인이 대통령 되기 이전에도 이라크는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내부적으로 끓임없는 군사 쿠데타와 군부 독재자들의 독재정치, 부정부패, 영국 식민지 시절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아랍인 구분 없이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획정된 국경선, 민족, 종교 분포까지 그야말로 내부적으로 무척 불안정한 국가였다.[37] 게다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감행하여 전쟁을 벌였는데 초반에는 이란이 밀렸지만, 후반에는 화학무기까지 써 가며 발악해서 겨우 이란군이 이라크 영내로 들어오는 사태를 막았을 정도로 이라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때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된 것은 물론이요, 전쟁 중 쿠웨이트등 주변 아랍 국가들에게 빌린 돈과 신용거래로 빌려온 무기들은 이라크에 엄청난 빚더미를 앉겨줬다.[38]

거기에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은 그 상황을 타개한답시고 1990년 걸프 전쟁을 일으켜 갚으라는 돈은 안 갚고 이라크와 아주 다른 나라인 쿠웨이트가 옛날 영국이 잘라간 자국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내세우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사실상 불가능해진 특정국가 밑 타국 영토의 합병을 쿠웨이트에 저지르려다[39] 미국, 프랑스, 사우디 등 주요 서방세계 강국들 밑 국제사회 여러 나라들의 세계적인 비난과 군사 개입을 초래하여 철퇴했다. 그리고 이후 미국 주도의 경제제제로 안그래도 전쟁 부채로 막장으로 간 경제는 더더욱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쟁 중 이란(이란-이라크 전쟁)과 미국(걸프전)은 시아파나 쿠르드족에게 봉기를 유도하고, 그리고 봉기가 일어날때 마다 후세인은 독가스로 군대와 경찰력을 보내 무력 진압하면서 훗날의 이라크 분열의 씨를 뿌렸다.

10년 뒤에는 미국한테 본토까지 밟혔다. 또 미국이 뒷수습을 개판으로 하고 철군해서 이라크 전쟁 뒤에도 내전이 재발했다. 시아파로 찬 이라크 정부는 수니파 이라크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가 갈리는 원수중에 상원수. 후세인 시절엔 그래도 후세인이 독재로 그 갈등을 봉합하고 있었기에 지금처럼 내전이 일어난 수준은 아니었는데,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그동안 쌓인게 많았던 시아파들은 정부를 장악하고 종파간의 화합을 추구하지 않고 수니파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갈등을 배로 심하게 만들었다...[40] 거기다 북부 쿠르드족은 중앙 정부를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터키에 원유를 수출하는 등 사실상 독립했다.

그리고 군대 상태가 엉망이다. 장비는 미국의 지원으로 나름 좋지만[41] 현재 급히 필요한 공격헬기 전투기가 없다.[42] 또한 군 전체에 부패가 만연해서 사병들의 월급 체불이 일상이고 높으신 분들은 매우 무능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3만여명의 이라크군이 800여명의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병력과 대면하여 제대로도 안 싸우고 도주하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1.17. 이슬람 테러리즘의 고향 -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국기.[43]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44]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전
내란 정변
혁명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국론의 관리 실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국민 대부분을 심각하게 탄압
막장인 지도자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이 사진이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의 학교사진이라면 믿겠나?[45]

파일:2qu2c.jpg


막장화 전/후(...)[46]

본격 20세기 21세기 통틀어 최악의 막장 테크를 탄 나라이자 외세와 주변국들의 개입으로 막장화된 대표적 사례[47]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왕조 시절[48]에는 가난하긴 해도 지금의 막장보다는 훨씬 양호한 나라였다.[49] 하지만 기근 사태에 정부가 무능한 대처를 보이고, 그걸 빌미로 무하마드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왕정이 뒤집어 엎히면서 그 전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잦은 정변으로 정권이 세워졌다가 전복되었다를 반복하고, 무자헤딘들이 들고 일어나고, 소련이 개입하면서 본격적인 개판이 되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을 세운 다우드 칸은 세속주의자라는 점에서는 똑같았기에 보수적인 아프간 사회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개혁을 추진했으나, 너무 성급하고 급진적인 개혁으로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샀고 또한 반공정책으로 공산세력의 반발도 사 결국 다우드의 공화정은 공산세력의 쿠데타로 무너진다. 이후 들어선 공산정권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역시 성급하고 급진적인 소련식 개혁으로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샀고, 이슬람 세력들이 무자헤딘을 구성해서 공산정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집권 공산당인 인민민주당 내부에서 분열과 권력다툼이 벌어졌고, 정변이 계속해서 일어나 아프간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소련의 오판으로 소련이 기존 공산정권 지도자를 암살한 뒤 괴뢰정권을 세우고 소련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벌어지자 무자헤딘들은 총구를 소련군으로 돌리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아프간과의 전쟁으로 국제적으로 욕만 잔뜩 먹고 내부 사정도 어려워진 소련이 물러나고 이후 전쟁은 친소 공산정권vs무자헤딘 간의 내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가 결국 민심을 잃고 이후 소련 붕괴로 지원도 끊긴 친소 무하마드 나지불라 정권이 붕괴하고 무자헤딘 정권이 세워지자 무자헤딘을 지원하던 미국은 당연히 가치가 없어진 아프간에서 떠나버렸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무자헤딘들은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가나 거대 지배 세력이 망한 뒤 군소 집단들이 남은 지역이 대개 그렇듯이 국가의 주도권을 놓고 여러 군벌과 파벌로 분열하여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였고, 그 혼란 속에 무자헤딘 정권에 실망한 아프간 사람들과 친파키스탄 괴뢰국을 세우려는 파키스탄의 지원[50]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던 탈레반이 영토를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서로 분열해서 싸우느라 약화될 대로 약화된 무자헤딘들은 차례차례 탈레반에게 패했다. 그나마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얼마 남지 않은 무자헤딘 세력들을 겨우 통합해 북부동맹을 결성하여 탈레반에 맞섰지만 이미 국토의 3/4가 탈레반에 넘어간 상태라 물량에서 열세여도 너무 열세였다. 결국 무자헤딘 동맹은 수도인 카불을 내주고 북부로 쫓겨나고, 탈레반은 극단적 율법을 적용해 온갖 폭정과 꺵판을 저지르며 아프간을 인권, 문화,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중세 이전으로 완벽하게 후퇴시켰다.

그나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탈레반이 성공적으로 박멸되나 싶었지만... 부시가 살상무기 드립치면서 이라크를 침공한 틈을 타 파키스탄으로 튀어 힘을 기른후 다시 아프간에서 기승을 부렸다. 미국도 쓸데없이 후세인을 조졌다가 돈만 날려 이전과 달리 탈레반을 격퇴할 여력이 없다. 현재 수도인 카불과 그 인근지역을 제외하면 탈레반이 날뛰고 있는 상황. 그리고 아프간 신정부 역시 부패한데다 여성 인권을 극히 억압하는 등 이슬람 꼴통이라는 점은 다를 바 없는 막장인지라... 한쪽은 또라이 한쪽은 밥도둑... 거기에다 최근에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역시 끼어들어 탈레반과 서로 지하드를 선포하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니 왕정시절의 평화를 되찾는건 머나먼 나라 이야기로 보인다. 하여간 아시아에서 제일 깨끗한 나라에서 극단주의자들이 날뛰는 바람 잘 날 없는 헬게이트로 추락한 사례.

1.18. 대충 통일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 - 예멘 ★◆


예멘 공화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의 개입
내전
내란 봉기
정변
혁명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실패로 돌아간 개혁
지도층에 만연한 부패
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2016년 5월 기준 예멘의 현 상황 지도. 녹색이 시아파 후티 반군. 빨강이 예멘 수니파 정부군, 검정이 알카에다이다.

예멘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다가 남부를 영국이 먹고, 영국이 물러간 후 독자적으로 유지되던 북부는 자본주의 성향의 공화국이, 영국 식민지 지역이었던 남부는 공산화되어 서로 대치하다 후에 통일해서 이득을 보자는 합의로 통일을 이루었다. 이렇게 써놓으면 해피엔딩같지만.....

통일 후에 북예멘과 남예멘 사이에 정부 주도권을 놓고 내전이 일어났다. 이 내전 자체는 빨리 진압되었지만, 예멘 자체가 지역 부족들의 세력이 강한 나라라 지역에선 부족들과 군벌들이 중앙정부 무시하고 따로 놀고, 알카에다가 침투해서 세력을 넓히는 등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하게 정부가 없는거나 다름없이 되었다. 석유가 나오자 이것으로 저 세력들을 진압할수 있으리라 했으나 오히려 그쪽 배만 불려지고 상황은 제자리.

그리고 2011년 민주화 열기로 독재정부가 무너지고 새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나, 높은 실업율+부패한 제도+서구식 민주주의=안보공백으로 혼란은 계속되어 서북부에서는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가, 남부에서는 남예멘 분리주의자들, 북부에선 알카에다가 날뛰었다. 결국 이들 중 후티가 수도를 장악하고 실권을 잡았다. 후티는 한동안 대통령에 협조적이었으나 정부가 연방제가 들어간 새헌법을 발표하고, 연방제 때문에 자원이 풍부한 남부로 진출할수 없게 된 후티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고, 기존 정부가 거기에 반발하며 내전이 터졌고, 이후 정부가 계속 밀리고 후티가 우세해지자 시아파가 잘되는꼴 못보던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개입하여 내전이 더욱더 심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19. 존재 가치가 없는 나라[51] - 아이티


아이티 공화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란 봉기
정변
내정 막장인 지도자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초거대 자연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아이티는 아프가니스탄처럼 현대에 들어서 급속하게 막장이 된 나라가 아니라, 20세기 초반에도 어느정도 막장의 기미가 있었다. 자세한건 아이티 항목의 근대사 부분 참고. 하여튼 항목에서 나왔듯 미군정 시절까지의 근대사 까지도 여러 요인이 겹쳐 아이티는 최빈국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산업 시설도 있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이 되고, 그리고 이 인간이 얼마 안가 이디 아민 뺨치는 희대의 개막장 지도자로 변신하면서 안그래도 최빈국이던 아이티는 더 망했어요가 되었다. 물론 다른 남미 국가들에도 독재자들은 많았지만, 최소한 다른 남미 독재자들은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아니면 국가 파탄내도 어느 정도 현상유지는 시켰다. 그런데 뒤발리에 이 인간은 오히려 없는 살림을 지가 스스로 더 박살내서 아이티 경제는 그냥 바닥이 아니라 아예 지각을 뚫고 내핵으로까지 수직낙하 했다. 그리고 그 이디 아민이 비교대상이니 정적숙청과 폭압적인 통치 등에 대해선 생략한다.

이후 참다 못한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뒤발리에의 아들[52]을 쫓아내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반년만에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고, 2002년에 UN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와 막장이 된 경제를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시도하고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군부를 해체시켰으나, 그것 때문에 해산된 군인들이 반발하여 조직한 무장조직들이 준동하여 아리스티드는 다시 쫓겨나고, 워낙에 개판이 된 상황 때문에 UN이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당연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완전히 파탄이 난 경제 때문에 국가 최대 수입이 해외원조(...)이며, 먹을게 없어서 진흙으로 쿠키를 구워먹고, 녹화사업 이전 한국과 현재 북한과 같은 이유로 계속된 벌목으로 인하여 울창하던 삼림들이 황폐화되었다.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수준.[53] 인접한 국가들 사이 경제격차가 매우 심한 사례의 표본으로 쓰인다. 위에서 말한 벌목으로 인해 파괴된 삼림으로 국경을 구분할수 있을 수준.

거기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0년 아이티 지진으로 인해 안 그래도 지각을 뚫고 내핵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은 내핵에 도달한 것을 넘어서 지구를 관통한 수준으로 막장이 되어 정말 꿈도 희망도 없게 되었다(...). 막장인 경제 때문에 대충 지은 건물들은 말그대로 과자집처럼 부서져 대부분의 인프라 시설이 파괴되었고, 지진 후에는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어 진흙쿠키도 먹기 힘들 수준이 되었다. 지진난지 5년째인 지금도 당시에 무너진 건물들을 방치하고 있으니[54]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최근 지진 피해와 전임 독재자들의 상처를 못해도 나름대로 수습해나가고 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

1.20. 내우외환 - 시리아 ★◆


시리아 아랍 공화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전
[55]
내란 막장인 지도자
봉기
혁명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실패로 돌아간 개혁
국론의 관리 실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삼국지
현재 상황. (왼쪽이 시리아, 오른쪽이 이라크다.) 각각 붉은색은 시리아/이라크 정부, 각각 노란색은 시리아/이라크 쿠르드족, 검은색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초록색은 자유 시리아군, 흰색은 알 누스라가 장악한 영토다.

내전 이전에는 억압적인 독재정권 정도를 제외하면 그래도 안정적인 나라였다. 그런데 2011년, 민주화 열기가 시리아에도 번지고, 막장이 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소수 집단인 알라위파 출신의 아사드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로 시작하였으나, 강경 진압 후 아사드가 세속주의 성향의 바트당 주도 정권이라 소수 종교를 아사드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배려해 줬으나, 이를 감당하지 못 하고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그리고 그 내전이 5년가량 지속되면서 초기의 민주화라는 명분은 온데간데 없이 그야말로 너죽고 나죽자의 지옥이 되었다. 아사드 일당은 화학탄까지 써가며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고, 수니파는 이에 맞서 처음에는 세속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FSA가 맞섰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알누스라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 대체되었다. 양측 모두 패배는 말살을 의미하기에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거기에 희대의 정신병자 집단까지 발호해 나라 상황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전에 피해보는 것들은 결국 죄없는 민간인들. 현재 국민 수명이 40대로 추락했으며 내전 이전 시리아 인구의 절반 정도가 난민이 되어 타국을 떠돌아다니는 상황으로, 소말리아와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막장 헬게이트가 되었다.

만약 반군(FSA 쪽)이나 시리아 정부 둘 중 하나가 승리한다 해도 내전으로 황폐화된 인프라와 국토, 패한 세력의 잔당 처리, 내전 중 세력을 키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난립한 민병대들, 분열할 대로 분열한 국론, 승리한 쪽의 보복, 내전 중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인구 등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들을 해결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거기에다 승리한 쪽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된다면... 차라리 내전이 계속되는 것이 오히려 100배는 나을 것이다. 당장 그나마 내전을 시리아보다 빨리 끝내고 내전 자체도 시리아보다 덜 복잡했던 리비아도 현재 완전히 개판이 되었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의 시리아가 내전 종결 후에도 다시 내전 이전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지는 의문이다.

1.21. 동화와 현실은 다르다 - 리비아


리비아국의 국기.
해당하는 테크
전쟁 개입
내전
내란 정변
봉기
혁명
내정 막장인 지도자
갑자기 사망하거나 부재 상태인 지도자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국론의 관리 실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공황
재해


(왼쪽 표기는 정부군/친정부/세속주의 세력. 가운데 표기는 반정부 세력. 맨 오른쪽 표기는 이슬람주의 과격파들.)
2016년 현재 상황.

2011년 이전까지는 리비아는 대통령이 좀 심한 또라이(...)라는 걸 제외하면 중동에서 안정적인 축에 드는 나라였다. 그 후 2011년 튀니지의 영향을 받아 반카다피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의 강경진압을 기폭제로 내전으로 커진 후 카다피 세력을 축출하고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 신정부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으로 보이겠으나.....

신정부는 정말로 제대로된 정규군 하나 조직하지 못했고, 결국 리비아 내전 때 카다피 축출을 모토로 들고 일어난 각지의 민병대를 해산시키지 못하고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56] 이미 각지의 민병대 세력이 너무 강해져 다들 힘없는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가 위치한 서부지역과 지역갈등을 겪던 동부지역이 독립을 선언한 후 석유를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팔았다는 소식으로 2014년 새해 소식을 장식한 것 만으로도 말 다했다. 정말 현재 리비아에는 일부 공군세력 외의 군은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 스스로 또 분열을 했다. 현재 리비아에는 제각각 정통 정부임을 주장하는 정부가 2개(이슬람주의 정당의 트리폴리 정부, 동부 세속주의 정당의 토브룩 정부)나 생겼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으로 개판이 된 틈을 타 시리아와 이라크 방면에서 세력을 불리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리비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이렇게 정부, 민병대 가릴 것 없이 분열되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까지 끼어들어 내전이 장기화되자 투아레그족 등 여러 부족과 민족들도 독립 시도를 하고 있어 어쩌면 국가가 부족단위로 쪼갈라질지도 모르는 상황. 그래도 일단 정부군과 반군으로 선이 그어져 있는 다른 국가들이나, 정부 자체가 붕괴해서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와 달리 여긴 정부 자신이 스스로 분열한데다 분열 이전에도 제대로된 군사조직 하나 조직 못했다. 두 정부가 다시 화합하던가, 아니면 둘중 하나가 패배해서 통합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이미 군은 약화댈대로 약화된데다 위에서 언급했듯 온갖 세력들이 날뛰고 있으니 다시 안정화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설사 내전이 종식되고 통합에 성공한다 해도 세속주의 정부군과 이슬람주의 반군끼리 내전을 겪고 내전이 세속주의 정부군의 승리로 종식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슬람주의 테러 조직들, 내전 당시 반군 잔당 세력들이 여전히 날뛰고 있는 이웃나라인 알제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2015년 10월 유엔의 중재로 각 정파들이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통합 정부 구성안이 도출되었으니 지켜봐야 할것으로 보인다.

1.22. 독립하자마자 막장테크 - 남수단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의 개입
내전
내란
내정 막장인 지도자
지도층에서 만연한 부패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정치·경제적 특권층의 권력·재력 독점
국론의 관리 실패
공황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자원의 저주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현재 취약국가지수 1위이자 소말리아와 동급 또는 소말리아를 능가하는 지상 최악의 막장국가로 기록된 파탄국가. 자세한 내용은 추가 바람.

1.23. 인간임을 포기했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 리지 말았 어야 했다
내란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57]
막장인 지도자
이슬람 극단주의 지하디스트+와하비+살라피스트들을 제외한 주민들 대부분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재해
국가는 아니지만 21세기에 이슬람권에서 환생한 추축국이며 세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집단. 아울러 본격 실사판 시저의 군단 + 코버넌트 + 데라즈 플리트 + GLA

1.24. 기타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란 봉기
내정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재해 초강력 범유행전염병
허나 쉴드는 쳐줄 수 있는 것이 내정을 제외하고는(문제는 그게 인신 공양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까지는 정상적이였기 때문이다. 이중 전염병의 요소가 가장 심각했는데 스페인인들이 옮긴 전염병 때문에 아즈텍 인구90%가 죽어버렸다. 허나 스페인인들이 오기전에도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였다. 아까도 말했듯 내정은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은 곧 스페인인들이 오기 전에도 계속 나라 안이 시끄러웠단 말이기 때문. 지속적인 전쟁 때문에 나라안이 피폐해졌고 결국 그 피해 분을 매꾸기 위해 피정복민을 착취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들의 식단 중 하나인 인육을 조달하기 위해 사람들이 끌려가자 중앙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인들이 아즈텍을 정복하러 올 때 피착취민들이 거의 스페인쪽으로 붙어버려 최후에 남은 도시 테노치티틀란, 타쿠바, 텍스코코 삼각동맹의 3개 뿐이었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전
내란 봉기
내정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재해 초강력 범유행전염병
아즈텍보다는 피정복민에게 그나마 더 관용적이기는 했지만 다른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압제자였고 스페인이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왕위계승 문제로 내전까지 벌어졌다. 결국 콩키스타도르가 도착했을때 다른 원주민들은 잉카에 등을 돌렸고 결국 멸망했다. 다만 안데스의 험한 지형을 바탕으로 잔존 세력이 오랫동안 저항했지만 결국 정복당한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한계를 초과한 물량
내전
내란 정변
혁명
내정 막장인 지도자
실패로 돌아간 개혁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재해
환경을 뺀 4가지 부문이 취약했다. 러일전쟁 전에도 크림전쟁 패배로 한계가 드러날 때,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를 해방하는 등 개혁을 시도했음에도 실패했다. 러일전쟁 사이 피의 일요일로 국민의 신임을 잃었고, 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연전연패했으며 끝내 러시아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혔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전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내란
내정 갑자기 사망하거나 부재 상태인 지도자
막장인 차기 지도자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통합적인 지방 관리의 실패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공황
재해
국내의 민족, 종교, 지역간 갈등과 대립을 극복, 수습하는데 실패하면서 잔혹한 전쟁을 겪으며 국가 자체가 붕괴, 해체했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란
내정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관리 실패
실패로 돌아간 개혁
각계층에서 만연한 부패
공황 국가 경제의 파탄
바닥을 드러낸 국고
자원의 저주
재해 장기적인 환경 악화
자원의 저주의 대표사례. 한때 전국민이 스포츠카를 가진 국가에서 지금은 해외 원조만이 유일한 수입인 국가가 되었다.
해당하는 테크
전쟁 내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외세가 무력으로 제압
패전해 정복을 겪음
내란
내정 극단주의 세력의 만연
막장인 지도자
일부 집단을 심각하게 탄압
국론의 관리 실패
공황 바닥을 드러낸 국고
국가 경제의 파탄
재해
킬링필드라는 인류 역사상 잔혹한 학살 사건이 발생한 나라. 크메르 루주가 축출된 이후 캄보디아의 경제는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를 되살리는 데에 많은 세월이 걸렸다.

2. 취약 국가 지수

자세한 내용은 취약국가지수 항목 참조.
[1] 금화를 쇠로 교체하였다. [2] 스파르타는 외국인에 대한 배타심이 너무 강해 외부 이민이 들어오질 않았다. [3] 참고로 나중에 스파르타랑 크게 붙게 되는 테베의 특수부대라 불리는 신성부대 병력이 수백 명 정도 되었다. [4] 놀았던 게 아니라 신라를 구해달라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가 당했다는 설도 있다. [5]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 것. 다만 오스만 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반역자다. [6] 1645~1669년: 베네치아와 전쟁 / 1663~1664년: 신성로마제국과 전쟁 / 1672~1676년: 폴란드와 전쟁 / 1676~1681년: 러시아와 전쟁 / 1683~1699년: 이들 모두와 한꺼번에 전쟁. [7] 17세기와 달랐던 점은, 그때는 성직자와 유력자를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일어난 반면 이제는 전 세르비아인, 그리스인이 하나되어 일어났다는 것. [8] 욱일기 군기. 이 시절에도 정식 국기는 일장기였다. [9] 선전부지만 괴벨스가 정권 3인자라 국민돌격대 지휘권을 따냈다. [10] 시라스는 뜻이 굉장히 애매모호한데, 덕으로 다스린다, 모범으로서 다스린다 같은 뜻이 있다. 굳이 가져오자면 '무위지치(無爲之治)' 2천여년 전의 이분 이론?와 비슷한 개념. 역대로 텐노를 허수아비로 만들다 보니 이런 걸 부여한 것. [11] 이들은 각각 육군 해군 소속이어야 하지만 덴노의 직속 기관이라 자기 상급 기관과 동등한 지위를 얻었다. [12] 그나마 동독이나 체코슬로바키아같은 나라는 나름 경제력이 있었고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도 나름 상태는 괜찮았다만, 아시아,아프리카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13] 채찍도 있었지만, 동구권은 사실상 소련이 먹여살렸다. [14] 거기에 브레즈네프 사망 뒤 집권 순서가 안드로포프->체르넨코->고르바초프로 되어버려서 국론이 1년 정도 간격으로 널뛰기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15] 고르바초프의 말과는 달리 체르노빌이 결정적인 타격은 아니겠지만, 분명 상당한 부담이었다. [16] 다만 1949년 이후에도 동남 연해 몇몇 섬은 1955년까지 존속했고 일시적으로 원난성 일부를 재점령한 시기도 있었다. [17] 유엔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 권리 회복이라고 표현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합법적으로 승계하여 건국하였고,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는 불법이란 얘기. 그렇다고 현재 대만정부가 중국의 영토를 불법점거 중임은 아니고 합법적으로 통치한다. 다만 중국이 보기에, 대만은 자그만치 60년 사이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일 뿐. [18] 2007년, 2009년 2 차례의 그리스 전역 규모 대화재로 그리스 국토 절반이 불에 탔다. [19] 겉으로 보이는 노동시간은 긴 편이지만 실제 노동시간은 그냥 바닥 수준이다. 오죽하면 다른 남유럽 국가들이 그리스는 답이 없으니 망해야 한다고 단언했을까. [20] 현재 그리스는 국민들까지도 나몰랑으로 일관하며 도망을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1]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22] 참고로 한반도에서 국가 막장 테크를 현재 밟고 있는 건 언제까지나 북한만 해당된다. 물론 남한 역시 일부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일부 한국의 현실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도 끼워 넣는 일이 있는데, 확인 즉시 삭제 및 신고하도록 하자. 다만 토론에 의해 국가 막장 테크 탈출하여 괄목상대의 발전은 이룬 사례로 추가할 수는 있다. 나라의 문제점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진국들에도 상당히 존재하며 대한민국도 현실에선 선진국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23] 슈타지처럼 적당히(?) 감시만 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온갖 범죄를 저질렀으니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안다. [24] 물론 정말 수준급이었던 동독이나 체코슬로바키아에 비하면 영 아니었다. [25] 이게 유출된 게 유명한 원전반대그룹의 북한 분할안 유출사건이다. 다만 미국이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한국이 반대함으로써 무산되었다. [26] 그도 그럴게 과도정부가 나올 당시에 막장인 소말리아 내부 상황 때문에 외국에서 과도정부를 차렸다. [27] 거의 해적이나 군벌의 높으신 분들 [28] 사실 소말리아인들의 극렬한 저항도 한몫했다. 어이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자기들끼리 싸워대던 소말리아인들이 에티오피아군이 들어오자 다함께 힘을 모아 저항했고 과도 정부도 비협조를 분명히 하는 등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물론 철수하자마자 원상복귀.(...) [29] 문제는 ICU가 과도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슬람 군벌세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알 샤바브 같은 개막장 극단주의 조직은 아니었고 그 규모 자체가 상당히 커서 나름대로 치안 유지 세력을 꾸려 해적을 소탕하는 등 점령지 치안 유지를 해가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에티오피아가 ICU를 쓸어버린 후 과도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했던 지역은 치안이 더 막장이 되어버렸다(...). [30] 구리, 콜탄, 다이아몬드, 망간, 우라늄, 아연, 코발트 등등... 없는 광물이 거의 없다. 거기에다 석유까지 발견되었으니 정말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31] 그래서 콩고에서 모부투의 별명이 착복왕이다. [32] 반군 입장에선 반군 조직 대신 당을 조직해서 맞서면 되니 [33] 오죽하면 한국 법원에서 난민 관련 소송을 받은 뒤 콩고에 사법부의 독립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삼권분립이 지켜지는 정상적인 국가 기준으로 콩고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을 정도. [34] 그나마 다른 아프리카 독재자들은 국가를 파탄내거나 장기 집권을 해도 어느 정도 기반은 유지했다... 그러나 무가베는... [35] 위키에는 항목 생성이 안 되었지만, 후세인이 정권을 잃고 실각한 이후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출신의 수니파 세력들을 탄압, 홀대하고 시아파들을 우대하며 전란으로 파괴, 분열된 나라를 재건, 통합하긴 커녕 자기들끼리 부정부패와 축재, 비리를 일삼고 수니파와 시아파간 내부 분열을 조장하던 시아파 출신의 아흐마드 찰라비 전 이라크 과도정부 대통령과 이야드 알라위 전 이라크 총리, 이브라힘 자파리 전 이라크 총리, 알라위, 자파리의 뒤를 이어 수니파를 탄압하다 내전을 폭발시킨 누리 알 말리키 전 이라크 총리, 후세인 집권 이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그나마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제 하던 하심 왕정을 무너뜨리고 어설프게 공화국으로 개헌하려다 이후 독재자로 전락하여 국가를 파탄내버린 압둘 카림 카심 전 이라크 총리 역시 포함된다.. [36] 시리아에서 시작된 똑같은 환경 악화 여파가 여기에게도 들이닥쳤다. [37] 사실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이렇게 내전과 전쟁, 종교분쟁, 민족분쟁등이 끊이지 않는 생지옥이 되어버린 것도 전부 다 영국, 프랑스등 서양 열강이 식민지 시대때 자기들 편리에 맞게 일방적으로 획정한 국경선 때문이다. [38] 애초에 이란의 국력이 이라크보다 강했다. [39] 실제로 민족, 언어, 종교 등 아랍, 이슬람권인거 빼면 역사적인 배경 등을 다 감안해도 원래 이라크와 다른 나라 맞다. 실제로 몆몆 사이트에서 원래 한 나라였던 곳을 이라크등 중동 지역 국가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등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라크와 쿠웨이트로 분할시켰다는 잘못된 정보들이 나돌아다니는데 실제로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기 전에도 이 두 나라들은 한 나라, 한 민족이였던 적이 없었다... [40] 실제로 미국이 철군한 다음날 신정부의 말리키 총리는 "이라크 계몽 위원회"라는 친정부/친미 수니파 조직과 수니파 부통령을 혐의를 뒤집어 씌워 숙청했다. 현재 앞에서 말한 친정부 수니 조직이 활동하던 지역은 IS의 해방구(?)가 된 상태이고, 숙청당한 부통령은 쿠르드 자치정부 구역으로 도망쳤다. [41] M1 전차를 굴리는 소수의 국가다. [42] 미국과 러시아에서 F-16 전투기와 Mi-24, Mi-28 공격 헬리콥터 등을 샀지만 현재 공격헬기들만 왔다. 또 F-16은 1대만 겨우 본국에 온 데다 모두 아직 미국 본토에 있고, 현재 상황을 볼 때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 최근엔 한국으로부터 FA-50을 샀으나 사업이 무사히 나갈지 불투명하다. [43] 이전의 국기(공화정 시절~북부동맹/탈레반 정권 시절)들은 아프가니스탄/역사 항목 참조. 워낙에 정권이 많이 갈아엎어져서 이 항목에 다 못올린다.(...) 굳이 보고 싶다면 여기로 [44] 비단 소련과 미국에게 제압당한것 뿐만 아니라 직접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아니지만, 탈레반을 후원해준 파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개입도 한몫했다. [45] 물론 이 시기에도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살 수는 있는 나라였다. [46] 그외 막장화 되기 전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참고. # [47] 해당하는 테크 자체는 이 항목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때 적은 편이지만, 막장화된 정도는 10개 이상의 테크를 탄 위의 이라크를 훨씬 능가한다. [48] 사실 이때가 아프간 역사를 통틀어 제일 흥한 리즈시절이었다. [49] 하다못해 왕조 전복 후 들어선 첫 공화정 독재정부시절에도 초반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깨끗한 나라'라는 칭찬을 들었다. [50]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탈레반을 키워준 파키스탄도 나중엔 탈레반에게 북부 지역을 점령당하고 내전 상태로 돌입했으며, 파키스탄 육군 사령부를 공격당하는 등 탈레반에게 신나게 털렸다. 정권도 불안정해 미국이 내부적으로 파키스탄 점령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상황인데, 인도 [51] 주로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아이티를 부르는 멸칭으로 인용된다. [52] 그렇다. 세습까지 했다! [53] 오히려 도미니카 공화국뿐 아니라 쿠바 자메이카, 바하마 같은 다른 카리브해 섬나라들과도 심각하게 비교될 지경. [54] 심지어 당시 같이 무너졌던 대통령 관저도 방치중이다(...). [55] 비단 여기에 링크된 나라들 뿐만 아니라 터키, 프랑스, 영국 등의 국가들과 국가는 아니지만 외세라 볼수 있는 헤즈볼라(정부군 편으로 개입), 알 카에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의 무장조직들도 내전을 악화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56] 물론 카다피 축출 당시의 자유 리비아군이 리비아군을 계승하긴 했지만, 카다피 시절 정부군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나 통제력, 조직력 등이 안습이다. [57] 애초에 이 나라의 존재부터가 위에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의 극단주의 세력이 뭉쳐서 만든 집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