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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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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정 국가들의 독과점2. 불확실성3. 저속성과 유치함4. 폭력성5. 수동성과 일방성6. 피상성과 정신 분산7. 고립성과 자아 매몰8. 불평등 구조의 확대 재생산9. 업계 종사자의 인권 문제10. 관련 문서

1. 특정 국가들의 독과점

상위 10개국이 세계 콘텐츠 시장의 78%를 차지한다. # ##

2010년 기준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의 경우 미국이 42.5%, 일본이 18.9%를 차지하는 과점 시장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유럽 26%[1], 아시아/태평양 7.8%, 남미 2.6%, 중국이 2.2%를 점하고 있다. 2019년 미디어믹스 규모 순위에도 순위권에 전부 일본과 미국의 캐릭터들이 차지했다. 위키백과 자료 역시 다르지 않다.

애니메이션 외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K팝 회사를 모두 모아봤자 글로벌 음반·음원 시장 점유율이 2% 미만(매출 기준)에 불과하다. 국내에선 공룡으로 취급받는 하이브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비중은 고작 0.9%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뮤직 그룹 등 글로벌 3사가 67.4%로 시장을 과점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현실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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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확실성

대중문화는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시장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자동차 같은 것은 돈을 많이 들여서 고사양으로 만들면 좀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또한 비슷한 가격대의 자동차가 얼마나 팔리는지 보면서 수요 예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개봉하기 전까지는 관객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어도 실패할 수 있고,[3] 반대로 서편제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4]이 흥행하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출시되는 상업가요 음반 중에 이익을 남기는 것이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제작비라도 건지는 것이 10%이고, 나머지 80%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전략 중 대표적인 것이 스타시스템이며,[5] 이 불확실성은 후술하는 모든 단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저속성과 유치함

자본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예요. 그러다 보면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만 생산합니다. 획일화되지요. 우리가 TV를 켜면 10대들을 위한 노래만 흘러나온다고 불만을 털어놓지요. 10대들은 또 재미도 없는 막장드라마만 보느냐고 기성세대들을 비웃습니다. 바로 시청률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에요. 방송이 광고를 의식하다 보니 이렇게 획일화된 프로만 양산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화가 획일화되면 우리의 사고도 거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문화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업주의의 독주를 막아야죠. 문화를 그저 하나의 시장으로 보아서는 안 돼요. 문화의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접근해야죠.
-인.인.답.. 84p.

대중문화는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성을 띤다. 이윤을 창출하려면 더 많은 대중을 끌어들여야 한다. 예술의 수준이 낮은 사람의 취향까지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대중문화는 불가피하게 예술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다. 예술적인 완성도보다는 선정적이고 음란한 내용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방송과 결합한 막장 드라마나 선정주의(sensationalism) 기사다. 선정주의는 1830년 6센트 짜리 신문을 1센트까지 낮춘 신문이 등장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범죄사건을 보도하면서 생겼다. 연예 면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내용으로 도배한다. 대중문화가 예술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저급 문화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호주 머독대학의 존 하틀리 교수는 TV의 유치함을 '소아주의(paedocracy)'라고 불렀다. 하틀리의 주장에 따르면 시청률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TV는 다양한 속성을 가진 거대 집단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어린이와 같은 구경꾼들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TV의 소아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에서는 방송을 규제하는 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늘 TV가 가족 매체임을 강조하는 규제 기관은 시청자를 무조건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시청자는 사람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오로지 학부모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는 아이들에 의해 지배되는 거대한 가족인 셈이다. 그래서 본말의 전도가 일어난다. TV는 성인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신문은 종이와 인쇄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방송 전파의 속성상 제한된 수의 채널밖에 가질 수 없다. 그래서 TV 프로그램의 내용과 성격이 늘 뜨거운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된다. 미국 상업 TV의 경영자들은 적어도 1950년대부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수 시청자를 존중하는 편성 정책을 취했다. TV를 주로 시청하는 시간대의 프로그램에 성과 폭력에 관한 묘사가 난무하였으며, 대중의 문화적 취향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자 TV 방송사 경영진과 간부들은 그들의 입장을 항변하기 위해 내세운 게 문화적 민주주의론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다수의 의사에 따라 지도자를 선출하는 투표로 운영되듯이, 문화에서도 시청률 등 다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에 따라 그 내용과 성격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CBS-TV의 사장 프랭크 스탠턴이 주된 주장자로서, 그는 TV에 대한 주된 비판자인 지식인들을 향해 그들이 문화적 소수자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괜한 독선을 범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시청률은 기존 프로그램들 가운데에서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일 뿐, 시청자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다. 취향의 대표성이라는 것도, 공급이 수요를 창조하는 일방적 경로에 따라 형성되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방송 시장에선 시청자들의 수요가 프로그램이라는 공급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경로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또, 시청률 조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불호를 묻는 것이지 유/무해를 묻는 건 아니다. 보통 선거는 여러 후보들 가운데 한 명밖에 뽑을 수 없기 때문에 다수의 횡포가 필요악으로 인정되는 제도이다. 그러나 TV는 결코 그렇지 않다. 다수의 취향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정당하지만, 주 시청 시간대의 모든 프로그램을 그 원칙에 따라 편성한다면 모든 시청자가 단일 취향에 따라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1959년에 터진 퀴즈 쇼 스캔들은 미국의 상업 방송 체제에 일대 위기를 가져 왔다.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퀴즈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에 정부와 모든 국민이 분노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방송사들은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반성의 표현으로 뉴스 프로그램의 양을 배로 늘렸으며, 이 추세는 뉴스 프로그램을 강조한 케네디 행정부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 결과 방송사들은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이익을 보아야 할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앵커제라고 하는 스타 시스템의 도입으로 귀결되었다.

1960년 5월 7일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미국 여론 연구 협회의 연례 총회를 겸한 「문화적 민주주의에 관한 대토론회」에서는 시청률에 의해 지배되는 다수 TV에 관해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여기서 지식인들은 다수 TV 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은 내렸고 개혁을 표방하고 나선 케네디 정부의 방송 규제 기관인 연방 커뮤니케이션 위원회의 주요지침이 되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 뉴톤 미노우는 적극적인 방송 규제를 통해 방송 편성의 다양성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청자의 필요를 무슨 근거로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가 다시 생긴다.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자칫 엘리트들의 취향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독선을 범할 위험마저 안고 있다.

대중문화가 오락에 한정된다는 편견은 맹목적으로 오락을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 지식인은 적극적으로 콘텐츠 개발에 힘써야 하고, 시청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공동체 문화의 성격을 갖게 되면, 사회 구조의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어 다수에게 문화적 자산이 돌아갈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의 대중문화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교육과 오락을 합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만, 대중문화 자체를 고결하지 못하고 자칭 ' 우리들이 하는 예술만 고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스노비즘의 늪에 빠지지 않게도 주의해야 한다.

4. 폭력성

"16분 지났으니 저 녀석 얻어터지겠군."
"얻어터지다가 14분후면 죽겠군."
명로진, 「 방송이 신통방통」(이하 방송이 신통방통), 173p. 후술하는 영국 텔레비전의 폭력성을 묘사한 삽화.

사실 우리가 매일 보는 텔레비전에서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러한 장면들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6]
  • 1960년대 초,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주연한 <이유없는 반항>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잭 나이프로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가 방송으로 나간 후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실제로 잭 나이프로 싸우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 1977년, 백인에 의해 강제로 아메리카로 끌려온 흑인 노예의 가족사를 다룬 <뿌리>가 방영된 후에 흑인 학생들이 학교 규율을 어기는 횟수가 월등히 증가했다.
  • 1977년에 비행기 납치에 대한 드라마 <비상 비행(Doomsday Flight)>이 방영되고 나서 24시간 내에 5건의 비행기내 폭발 위협 사건이 일어났다.
  • 1974년 9월, NBC가 <순진한 소녀(Born Innocent)>라는 TV 영화를 방영했다. 이 영화에는 열네 살 먹은 순진한 주인공 소녀가 불량 청소년 수용원에 끌려가 다른 소녀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방영되고 4일 후에 캘리포니아에서 일곱 살 먹은 소녀 두 명이 세 명의 십대 소녀와 한 명의 소년에게 끌려가 폭행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불량 청소년들은 <순진한 소녀>를 보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 영국의 텔레비전에선 16분마다 누군가 얻어터지는 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30분마다 한 사람씩 죽는다.
  • 1988년 프랑스 주간지 <르 푸앙(Le Point)>에 의하면 프랑스의 6개 채널에서 일주일 동안 848번의 난투극, 670번의 살인, 419회의 총격전, 14번의 납치극, 32회의 인질극, 27회의 고문 장면, 8번의 자살 장면이 방영되었다. 텔레비전이 '범죄와의 전쟁' 이라도 선포한 것일까?

어린이와 청소년이 폭력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 얼마나 폭력적이 되는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아동의 폭력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학자들이 텔레비전의 폭력 장면을 너무 많이 시청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5. 수동성과 일방성

기술 문명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수동화시켜 왔으며 자발성은 저하시켰다. 대중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세를 취하면 문화는 획일화된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적인 유행에 민감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유행은 대중매체의 생산자가 조작하기 쉽고 소모성이 강하다. 유행기간이 끝나면 빠르게 잊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 퇴물 취급된다. 유행은 사상을 지배하기도 하고, 저항 자체가 상품화되면서 유행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중문화는 소비 행위를 통해 자존심과 삶의 의미를 찾도록 유혹하고 신체를 못살게 군다. 인간의 외적 아름다움마저도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를 것을 부추긴다. 미디어에 나오는 외형을 동경하거나,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소비자는 똑같은 상품이라도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한다. 제작자의 의도는 그대로 관철되지 않는다. 그러나 능동성의 수준에는 차원이 있을 수도 있다. 본인의 고유한 가치관으로 메시지를 선별한 능력이 있더라도 언제나 그 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다. 발터 베냐민은 "대중문화 소비자는 탐구자이긴 하나, 방심하고 있는 탐구자"라고 표현했다.

6. 피상성과 정신 분산

예술은 정신 집중을 요구하는데 반해 대중은 정신 분산을 원한다. TV 프로듀서들은 시청자의 정신 집중 상태를 최악의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30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기 때문이다.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작자들은 프로그램 전체에 걸쳐서 팽팽한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며, 가능한 한 프로그램을 여러 코너로 짧게 나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프로그램은 그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단순 명료하여야 한다. 그저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어필해야지 시청자들의 두뇌를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광고 제작자들도 빠른 속도감과 이미지의 쾌락을 중심으로 한 자본집약적인 광고를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채널간 경쟁에 집착하는 제작자들이 시청자의 조급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되려 시청자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행여 시청자들을 지루하게 만들까 봐 늘 이미지에 집착한다. 정작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정치적 사상이나 신념은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대다수 사람들이 TV 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한다면, 알맹이가 없고 피상적인 소식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국민의 여론에 크게 의존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TV는 정치를 상품화시키는 주범으로 선거를 그저 즐기기만 하는 오락의 일부로 만든다. 영상매체가 성장하면서 활자매체도 TV를 흉내낸 편집 혁명을 통해 '보는 신문'으로 전환하였다. 이런 노력은 언론을 오락산업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고, 매체를 통한 세상 인식이 세상사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을 어렵게 한다. 더욱이 정치인들이 대중문화의 그러한 속성을 최대한 이용함에 따라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회통제가 권위주의적 스타일에서 조작적 스타일로 바뀐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대로 허용되기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라 정반대로 언론이 지배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었기 때문에 생긴다.

7. 고립성과 자아 매몰

인간에겐 자기 혼자만의 세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꿈틀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공간을 확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중은 그 대체 공간으로서 미디어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인터넷이나 비디오는 수용자에게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자신의 선택한 내용의 콘텐츠에 빠져들 수 있는 특권을 안겨 준다. 콘텐츠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초월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미디어가 자아 매몰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 통신 산업은 자아 매몰이야말로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와 같다. 5명이 살고 있는 한 가정에 컴퓨터를 1대만 팔 수 있었던 것에 비해 5대를 팔 수 있다면 그걸 마다할 리 없다. 그래서 자아 매몰은 가전업체들의 마케팅 공세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물론 자아 매몰 현상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개인의 입장에선 무료함과 고독을 치유하고 때론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고립된 태도는 중독증을 야기시키고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대중문화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광장이 사라져 대화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은둔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반면에 현대 도시인에게 대중문화는 정반대로 사회성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대중문화는 접근성이 뛰어나고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이기 때문에, 공감대나 공통 관심사를 쉽게 형성한다. 대중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사람들과 화제의 중심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소외될 수도 있다. 개인의 취미와 개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이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데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하지만 접근성이 뛰어난 점이 독이 되어 선동이 가장 쉬운 공간이기도 하다. 공격 대상 혹은 대상의 소속 분야가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할 때 선동은 효과를 발휘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일을 저질렀을 때 선동을 당하면 대상은 양치기 소년처럼 사회적 신뢰가 손상된다. 다르게 말하면 선동이 효과를 발휘할 때는 불순한 의도와 결과의 복수와 보복이 대상을 향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때다. 이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선동꾼과 악플러는 상대의 약점이 드러날 때까지 잠적하다가 드러나는 순간에만 몰이용 소문을 퍼뜨려 근절시키기 쉽지 않다.

8. 불평등 구조의 확대 재생산

문화적 갈등은 세대 간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계급과 성적 정체성에 따라서 치열한 투쟁이 벌어집니다. 성적 정체성을 먼저 볼까요. '드라마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는가?' 하는 문제는 굉장히 오래된 논쟁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드라마들은 청춘남녀가 지지고 볶고 갈등하다가 결국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요. 이게 정말 '해피엔딩'이냐는 거예요. 가정의 행복을 위해 자기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여성이 당연시됩니다. 자기주장을 하고 주체적이고 직장에서 일도 딱 부러지게 하는 여성은 항상 갈등의 요인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멋진 남자를 만나 교화되어 요조숙녀가 된다는 게 수많은 드라마의 주요 서사예요. 여성인권 차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죠.
인.인.답.. 77p.
서기 2099년. 방콕이는 타임캡슐에서 1세기 전에 나온 <방송이 신통방통>이라는 책을 꺼내어 읽고 있다.
'100년 전의 텔레비전 방송은 참으로 웃기는 것이었군.'
방콕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세기 말, 여자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가끔 화를 내곤 한다. 왜냐 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성의 역할은 가정주부, 어머니 정도이다. 남자들은 변호사, 의사, 사업가처럼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텔레비전에선 좋은 직업을 가진 여자는 꼭 미혼이거나 미망인이다. 텔레비전에선 여자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인 반면, 남자는 적극적이고 현명하고 활발하고 합리적이다. 텔레비전에선!"
-방송이 신통방통, 80p.

텔레비전은 바깥 세계와 가정의 전통적인 구분을 허물어뜨려 여성을 정보 고립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한편으로는 남녀 불평등 구조를 확대 재생산했다. 텔레비전은 사회적 남녀 불평등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한 당위의 차원에서 남녀 관계를 묘사하기보다는 기존의 잘못된 남녀 관계를 그대로 보여 주거나 흥미성을 높이기 위해 과장과 왜곡을 더하여 불평등 구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남성은 개인적 성취나 업적 등에 관심을 갖고 사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제시되는 반면, 여성은 관심의 대상이 가정의 테두리 안에 있고 남성에게 복종적인 현모양처로 제시되고 있다. 전문직 기혼 여성은 골치 아픈 존재로 호전적이며 가정적으로는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물론 리얼리즘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거나 고발한다는 차원에서 여성의 비극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그런 목적 의식 없이 대부분 여성의 종속적 위치를 미화시키기에 바쁘다. 현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교정적 리얼리즘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연방 정부가 1979년 라디오. TV. 전기 통신 위원회(CRTC)에 여성의 성역할에 관한 특별 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이 위원회가 4백여 방송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은 방송매체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의 형식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①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 ②여성을 단순히 성적인 자극을 주는 존재 또는 유혹자로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③성차별을 내포하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④남성은 업적을, 여성은 단순히 모습을 보여주는 식의 소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 ⑤여성을 남성에게 봉사하거나 의존하는 존재로 묘사해서는 안된다.

성적 소수자도 오랫동안 대중문화에서 배제되어 왔다. 홍석천도 처음 커밍아웃을 했을 때는 한동안 텔레비전에 못 나왔으며[7] 주인공의 큰아들이 동성애자로 나오는 < 인생은 아름다워>도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에스비에스가 책임져라."[8]라는 신문광고가 등장하는 등 말들이 많았다.

그다음으로 계급문제도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즐기느냐에 따라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로 나뉜다. 예컨대 클래식이나 미술작품을 즐기는 게 한국에서는 상류층 이미지가 있어 굉장히 고급 취향으로 인식된다. 아비투스 참조.

그다음이 인종적인 갈등이다. 미국 같은 다문화, 다인종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서 흑인이나 아랍인, 혹은 제3세계인을 어떻게 묘사하느냐 하는 것이 논쟁거리가 된다. 한편 한국에서는 인종보다는 지역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언어 차별/한국 참조.[9]

9. 업계 종사자의 인권 문제

사람들은 절대 연예인을 한 인간으로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역시 두통에 시달리고 상처가 나면 피를 흘리는 똑같은 인간이다.
- 카펜터즈, 카렌 카펜터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우리 문화를 성공적으로 산업화하여 얼마나 수출할 것이냐가 아니라, 생산자든 기획자든 문화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끼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가, 그리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자살을 고민하지는 않는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맨 앞줄의 선수들도 세끼 밥을 보장할 수 없다면 번영은커녕 대를 잇기도 어렵다. 우리는 문화를 팽창의 논리로만 보았지, 재생산의 눈으로는 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일일이 조정하거나 기획할 필요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젊은이들이, 더 많은 여성들이 문화 영역으로 들어오고,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가 띄우려는 선단은 수송선이나 군함이 아니라 바로 유람선 아닌가? 유람선에 화물을 실어 수출선으로 바꾸려 하거나, 해군 문선대쯤으로 쓰려 하면 정말 재미없는 유람선이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유람선을 수송선이나 군함처럼 쓰려고 했다. 그 속에서 문화 생산자들은 국민경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화물이나 군인처럼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 우석훈, 《문화로 먹고살기》프롤로그 중에서

우리가 얼핏 스타라고 하면 대중들을 움직이는 권력으로 알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그렇게 화려한 직업이 결코 아니다. 연예인들은 대중이라는 권력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연예인들이 생계 유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2년 한국 방송 연예인 노동 조합이 연예인 2백5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94.8%의 연예인들이 퇴직금이나 국민 연금 등 노후를 위한 대책이 없는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성상 노후에 대해 불안해하며 65.1%의 연예인들이 불규칙적인 수입 때문에 저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팬이라는 존재가 한편으로 무서운 것이다. 미친 듯이 따르다가도 하루아침에 잊어버리고 돌변하는 것이 팬들의 심리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의 인권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상위 문서에서도 설명했듯이,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매스미디어의 지배를 받는다. 스타시스템은 계속 대중들의 시선 앞에 이들을 노출시키려 하며 어떻게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품성을 극대화시키려다 보니 인권은 뒷전이다. 수많은 연예인이 상품이 되고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다. 시청률을 보장받기 위한 안전 제일주의와 수익성에만 집착하는 방송사는 인기 탤런트 위주로 캐스팅을 하며, 탤런트의 입장에선 설사 출연을 원치 않더라도 방송사의 출연 요구를 원치 않더라도 방송사의 출연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요컨대, 방송사들은 어떤 연예인들이 인기가 좀 있으면 그대로 놔 두지를 않고 최대한 혹사시키는 것이다. 방송사가 자유 시장에서 움직이는 연예인의 생계를 책임질 수는 없겠지만, 시청률 경쟁의 압제에서 벗어나 연예인들을 쓰고 내버리는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구태 의연한 자세를 청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광고 모델의 아름다운 모습은 수십, 수백 번의 반복과 영상 이미지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TV 브라운관에 나타나는 광고 모델의 매력적인 이미지가 모델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유행 상품의 패션 모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체적 조건은 꽤 까다롭다. 여성 모델들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절제된 식이 요법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조건들을 갖추고서도 여성 모델은 가슴을 부풀린다든가 기타 다른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부분 성형 수술을 한다. 성형 수술을 할 때의 미적 기준은 카메라에 대한 적합성이다.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렌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철저히 카메라 지향적이다. 심리적으론 늘 불안하다. 내로라하는 동료 미녀들과 한데 어울려 패션쇼를 하다보니 다른 미녀의 아름다움에 주눅드는 일도 많다. 게다가 싱싱한 젊음을 과시하며 새로 데뷔하는 모델들도 경계해야 한다. 뛰어난 미녀라고 해서 꼭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델의 아름다움은 철저히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갖췄다면 상황 적응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하기 쉽다. 게다가 아무리 성공해도 그 수명은 짧다. 20대 후반이면 모델로서는 은퇴기에 해당된다. 그 이전이라도 대중이 싫증내면 그 바닥을 떠나야 한다. 더큰 문제는 은퇴 후의 삶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아예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공인이기에 사생활 노출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팬들의 알권리도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건 매우 비인간적인 주장이며 인권의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10]

연예인 뿐만 아니라 스태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며 일이 없어도 실업급여 마저 받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화 시장이 90% 이상 쪼그라들면서 이런 문제점이 극심해졌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에서 이러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tvN 혼술남녀 조연출 자살사건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 영화계를 포함한 연예계 전반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는 사무직[11]이 육체노동자인 촬영팀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는 것도 모자라서 안전장비를 갖추기 위한 예산도 제대로 주지 않고 촬영팀 중 선배가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려서 강제해고시키는 악습 관행을 유도해서 벌어진 현상으로 추정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일본은 셀 애니메이션을 위주로 애니메이션이 발전했는데 셀 애니메이션 제작 산업은 극단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이런 산업을 유지하려면 몇몇 개도국처럼 인건비가 저렴해야 하는데 선진국이고 물가도 높은 일본에서 그 인건비, 즉 낮은 임금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더불어 제작위원회 체제 역시 애니메이터를 저임금 직종으로 묶어놓는데 크게 기여한다. 모 업계 관계자는 이 바닥은 이게 당연한 거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안 돌아간다 망언을 했다.

10. 관련 문서



[1] 유럽 애니 전체를 합쳐야 일본보다 많다. [2]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91884481 [3] 제작비를 110억원이나 투자했지만 관객은 14만명밖에 안 들었다고 한다. [4] 서편제는 당시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던 영화사가 자본이 남아돌았기에 임권택 감독에게 '만들고 싶은 대로 예술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해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5]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철수와 영희. 58-59p. 이하 이 책을 인.인.답.으로 표기함. [6] 방송이 신통방통, 172~173p. [7] 그러나 이후 등장한 하리수의 경우 처음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해 몇 년간 인기를 유지한 바 있는데(박경태, 「인권과 소수자 이야기: '우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물론 사회가 좀 더 개방적이 된 것도 있겠지만(사회가 발전하면서 홍석천도 이후 TV에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하리수의 경우는 '예쁘다'는 것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이유라고 한다. 즉 '예쁜' 것은 돈이 되고, 시청률 경쟁에 내몰린 방송국들은 앞다투어 '그녀'를 '모셔와야' 했으며,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돈이 되는가?'에 있는 셈이었다(박경태, 같은 책). [8]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국가와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 <조선일보> 2010년 9월 29일자 광고. [9] 인.인.답.. 77-78 p. [10] 인.인.답.. 62p. [11] 대형 영화사들의 사무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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