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01:12:19

김홍열(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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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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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ffffff 대한민국 제19대 해군참모총장}}}]][br]{{{#ffffff {{{+1 김홍열}}}[br]金弘烈 | Kim Hongyeol}}}'''
파일:김홍열 제독.png
<colbgcolor=#003399> 출생 1939년
충청남도 서천군
사망 2018년 5월 3일 (향년 79세)
군사 경력
임관 해군사관학교 (16기)
복무 대한민국 해군
1962년 ~ 1995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해군)
최종 보직 해군참모총장
주요 보직 능라함장
대구함장
해군참모총장 전속부관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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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해군 제독. 19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김홍렬이라고 표기된 경우도 많으나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에서는 김홍열로 표기한다.

2. 생애

1939년 충청남도 서천군 출생이다.

서천고등학교 졸업 후 1958년 해군사관학교 16기로 입학, 1962년에 수석 졸업과 동시에 항해소위로 임관했다. 능라함장과 대구함장, 해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거쳤고 장성급 장교에 오르면서 합동참모본부 무기체계부장, 전력평가부장 등을 거쳤다. 1990년에 합참에서는 군령권을 각 군 본부로부터 가지고 오면서 실질적인 군 최선임으로 변모하던 시절이었지만, 사실 이 때만 해도 아직은 그렇게 자리를 잡지는 못한 터라 집에 갈 사람들이 앉는 자리란 인식이 강했고 김홍열 소장도 곧 예편할 거란 예측이 우세했다. 1991년 해군참모차장으로 내정되었으나 비TK출신 그리고 정부 인사의 로비로 번복된 적이 있고 몸이 편한 보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일하는 보직을 달라고 요청하여 합참에 있었다. 그러나...

1993년 5월 26일 전임자였던 김철우 제독이 해군인사와 율곡사업 관련 비리로 경질되고 다른 해군의 중장들도 모두 전역 조치되면서 해군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하여 중장으로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합참에서 근무하느라 해군 제독으로 보직도 거의 안 거친 상태에서 해군의 정점에 오른 것. 1년의 최저복무기간을 채운 뒤에 대장으로 승진하였다.[1] 1995년에 전역하였다. 후임자는 안병태 제독.

1기수 선배인 해사 15기의 간용태 해사교장, 해사 16기 동기생들인 김성득 합참 제2차장과 김만청 해군참모차장, 1기수 후배이자 먼저 중장으로 진급한 해사 17기의 김선익 작전사령관 등 차기 참모총장 경쟁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임명됐다. 해사 14기에서 16기로 참모총장직이 넘어가면서, 15-16기 대부분이 전역해서 해군의 진급적체 문제를 해결했다. 안병태 제독(해사 17기)이 작전사령관, 임태섭 제독(해사 18기)이 합참2차장, 유삼남 제독(해사 18기)이 해사 교장으로 임명됐다.

일 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세직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 임기 중에 사망하면서 회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2018년 5월 3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1] 중장 진급 후 딱 1년만인 1994년 5월 25일에 진급하였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육/해/공군 참모총장 가운데 해군참모총장만 중장이어서 허전했는데 이제 3군의 균형이 이루어진거 같다"라며 흐뭇함을 표시했다. 출처: 94년 5월 26일자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