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대한 내용은 국가의 탄생(웹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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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가의 탄생}}} (1915) The Birth of a N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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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전쟁, 드라마, 서사물 |
감독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
각본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토머스 딕슨 주니어 프랭크 E. 우즈 |
원작 |
토마스 딕슨 주니어 《The Clansman: A Historical Romance of the Ku Klux Klan》 |
제작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해리 아트켄 |
출연 |
릴리안 기시 메이 마시 헨리 B. 월설 미리엄 쿠퍼 랠프 루이스 조지 시그만 메이 알덴 월터 롱 월러스 리드 엘머 클리프튼 조세핀 크로웰 |
편집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조셉 해나베리 제임스 스미스 로즈 스미스 라울 월시 |
촬영 | 빌리 비처 |
음악 |
조지프 카를 브라일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
제작사 |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코퍼레이션 |
배급사 | 에폭 프로듀싱 컴퍼니 |
화면비 | 1.33 : 1 |
상영 시간 |
187분 (DVD판) 125분 (VHS판) 195분 (무삭제판) |
개봉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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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 11만 달러 |
북미 박스오피스 | $10,000,000 - $11,000,000 (최종) |
월드 박스오피스 | $50,000,000 - $100,000,000 ( 최종) |
상영등급 | 등급 없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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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dawn of a new art! 새로운 예술의 여명! Mighty spectacle. 웅장한 광경. Lincoln's assassination. The fatal blow that robbed the South of its best friend. 링컨의 암살. 남부의 가장 친한 친구를 앗아가버린 치명적인 타격. The fiery cross of the Ku Klux Klan! 쿠 클럭스 클랜의 타오르는 십자가! |
2.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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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편 |
3. 시놉시스
남북의 대립 이전부터 친교를 갖고 있던 북부와 남부의 훌륭한 두 백인 가문인 스톤맨 가와 카메론 가의 가족들이 남북 전쟁을 전후로 하여 겪게 되는 사랑과 갈등, 치열한 삶과 죽음의 곡예,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대립과 의식의 변화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사실적으로 촬영되었다. |
4. 줄거리
4.1. 1부: 내전
시기는 남북 전쟁 직전, 북부의 스톤맨 가와 남부의 카메론 가는 비록 사는 지역은 달랐지만 서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남부의 카메룬 가에 스톤맨 가문의 두 아들이 방문하고, 카메룬 가의 맏아들 벤 카메룬은 그들이 가져온 스톤맨 가문의 딸 엘지( 릴리안 기시 扮)의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서로 맞선까지 약속한 두 가문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전쟁이 터지고 양측의 아들들 역시 각자의 군인으로서 참전하게 된다.전쟁이 격화되며 양 가문의 아들들은 하나둘씩 죽어 나가고 이에 가족들은 슬픔에 잠긴다. 벤 카메룬 또한 전장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하지만 중상을 입고 쓰러져 북부의 병원에 수용된다. 벤의 부상 직후 북부의 승리로 전쟁이 종결되고 포로가 된 그는 교수형이 예정된 상태가 된다. 병상에서 꼼짝없이 형 집행만을 기다리던 그는 우연히 간호사로 봉사하고 있던 엘지 스톤맨을 만나 곧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엘지 스톤맨은 기지를 발휘해 벤의 어머니를 호출한 뒤 유력 정치인이던 아버지 오스틴의 연줄을 빌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직접 대면한다. 엘시와 벤의 어머니는 링컨 대통령에게 호소해 끝내 벤 카메룬의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엘지의 극진한 간호로 부상에서 회복한 벤은 그녀와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고향 남부로 떠난다.
한편 전후 남부에 유화 정책을 펴던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하고, 뒤를 이어 권력을 잡게 된 오스틴 스톤맨(랠프 루이스 扮)은 남부에 강경 대응을 펼칠 것을 예고한다.[2]
4.2. 2부: 재건
남부의 흑인 평등을 지지하는 오스틴 스톤맨은 공화당 급진파의 지도자 찰스 섬너( 샘 드 그레이즈 扮)가 흑백혼혈인이던 실라스 린치를 남부 재건을 위한 담당자로 인정하라고 강요하며, 섬너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은 린치는 남부에 파견된다.[3] 그러나 린치는 사실 백인들만의 지배를 몰아내고 흑인들도 백인들처럼 살 수 있는 제국을 세우겠다는 신념을 가진 악당이었다. 남부로 온 그는 '선량하게' 노예로서 살고 있던 흑인들을 모두 해방시킨 뒤 ' 흑인과 백인은 동등하며 남부 백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흑인을 착취하고 있다'는 식의 유언비어를 유포해 흑인들을 선동한다. 무지한 흑인종들은 이에 쉽게 속어 넘어가 금세 백인들과 같은 도로를 걷고, 길에서 백인을 만나도 고개숙여 인사하지 않는 등 건방지게 행동하게 된다.린치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고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주고, 노동 시간과 급료를 보장하게 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투표권을 손에 넣은 흑인들은 제대로 된 자격도 없는 흑인 의원들을 당선시켰고 이들은 흑인과 백인 간의 결혼 합법화, 백인 전용 시설 철폐 같은 끔찍하고 비정상적인 법안들을 발의했다. 이런 처사에 백인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지만 이들이 정부의 공식적 허가를 받고 활동하던 터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벤 카메룬 역시 이런 상황에 답답해했으나 그 역시도 딱히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산책을 하다가 백인 아이들이 다수의 흑인 아이들을 하얀 두건으로 겁을 줘 쫓아내는 것을 목격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 뒤 남부에서는 사악한 흑인들을 심판하는 하얀 두건을 쓴 ' 정의로운 의적', 이른바 KKK단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돈다. KKK단은 백인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흑인들을 잡아와 자신들의 집회에서 손수 재판한 뒤, 판결이 내려지면 즉결처분하고 그 시신을 다음 타겟의 집 앞에 버려두고 가는 식으로 흑인들에 대한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린치는 당연히 펄펄 뛰며 KKK를 체포하라고 지시하지만 KKK단이 워낙 신출귀몰한 데다 흑인 부하들이 너무나 무능한 탓에 단서를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벤의 여동생 플로라가 마을의 흑인 거스에게서 도망치다가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벤은 분노해 거스를 쫓고, 이를 수사하던 경찰은 카메룬 저택에서 KKK단의 흔적을 발견하고 카메룬 일가를 체포한다. 그러나 카메룬 가를 따르던 선량하고 충직한 흑인 하인들[4]이 일가족을 구출하고 피신한다. 사실 린치는 오스틴 스톤맨의 딸 엘지를 노리고 있었으며, 남부로 내려온 스톤맨 일가를 감금한 뒤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린치는 엘지가 사랑하던 벤 커메룬 가문을 파멸시키려고 했다.
린치는 흑인 방위대를 소집해 카메룬 일가를 쫓고 이를 피해 일가는 퇴역 북군 장교의 오두막으로 숨는다. 일가는 북부인의 오두막에 숨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퇴역 장교는 " 아리아 인종의 정통성이 흑인종에게 위협받고 있으니 북부와 남부는 뭉쳐야 한다"고 독려한다.[5] 그러나 얼마 안 돼 이 은신처마저 발각되고 일행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바로 그 순간 이 위기를 전해듣고 각지에서 모인 KKK단의 군대가 이들을 구한다. KKK는 이어서 마을까지 진격해 스톤맨 일가를 감금하던 린치를 붙잡고 흑인들을 몰아낸다. 몇 달 뒤, 다시 선거일이 되자 흑인들이 투표소를 찾으나 KKK단은 무력으로 흑인들의 투표를 막음으로서 '질서'를 회복하고 백인들의 환호를 받는다. 벤과 엘시는 신혼여행을 떠나 현재의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비판하지만 곧이어 언젠가 올 그리스도의 이상향을 염원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5. 평가와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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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91% | 관객 점수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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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는 수많은 예술적 혁신으로 현대의 영화 언어를 말 그대로 창조했다. 「국가의 탄생」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낡거나 기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방식이나 외양, 형식으로든 이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 극적인 접사와 트래킹 쇼트 등 카메라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표현을 풍부하게 했고, 평행편집과 교차편집을 비롯한 편집 기법들을 도입했으며 심지어 최초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획기적인 요소들이
그토록 가치 없는 내용에 낭비된 것은 무척 안타까운 노릇이다. (중략) 「국가의 탄생」이 그 주제의 문제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존경과 연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 작품의 변치 않는 중요성을 시사한다.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
시놉시스 내용대로 남북의 대립 이전부터 친교를 갖고 있던 북부와 남부의 훌륭한 두
백인 가문인 스톤맨 가와 카메론 가의 가족들이 남북 전쟁을 전후로 하여 겪게 되는 사랑과 갈등, 치열한 삶과 죽음의 곡예,
쿠 클럭스 클랜의 탄생과 '악을 소탕하는 정의로운 KKK단'의 활약상,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대립과 의식의 변화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
' 영화 혁명가'라고 불리는 장 뤽 고다르 감독도 이 영화를 기준으로 현대 영화와 그 이전의 영화로 나뉜다고 평가할 정도로 유명한 영화다. 지금 우리가 보는 영화의 클로즈업[6], 플래시백(회상), 짧은 쇼트들이 잘게 나뉜 편집, 교차편집 등 현대 영화의 다양한 연출 기법들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나오기 시작한 기점이 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추격 장면과 엔딩 장면에서 사용해 극적이고 서스펜스를 고조시킨 교차편집 기법의 완성은 지금도 컬러 영화와 3D 영화의 발명을 뛰어넘는 영화사의 혁신적인 진보로 꼽힌다. 그래서 영화사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 영화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대흥행한 이 영화는 한편으로 인종차별주의를 강력하게 선동하는 영화로서 쿠 클럭스 클랜의 재결집 계기가 되어 미국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하였다. 연출적 기법을 제외하면 스토리와 주제는 그저 KKK 어용 영화 수준의 조잡한 물건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아프리카인을 미국에 들여온 것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었다."[7] 같은 현재 기준으로 보면 정신나간 망언이 나올 지경이고, 당장 포스터에서 마치 영웅이라도 된 양 횃불을 쳐든 채 말을 타고 있는 기사 같은 자가 다름아닌 KKK의 수괴이다.
노예제를 바탕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다 몰락한 미국 남부 사람들을 미화한 토마스 딕슨 주니어(1864~1946/Thomas Dixon Jr.)[8]의 소설 '클랜스맨(Clansman)'이 영화의 원작이다. 그래서 영화는 철저하게 당시 남부 백인의 시각으로 사회를 묘사하고, 당시 남부 백인 사회가 추구하던 가치관을 가장 우월하게 묘사한다. 그나마 1부는 당시 남부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남북 전쟁의 모습이라고 코딱지만큼이라도 옹호할 건덕지가 있지만 2부는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흑인은 아예 대놓고 게으르고 무지하며 백인 여성이나 탐하는 속물로 그려진다. 그나마 머리 좋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흑인은 백인 혼혈[9]뿐이며, 이 영화에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흑인들을 경멸하고 백인 주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노예 흑인뿐이다. 유색인종은 물론 당대 백인들에게조차 경멸과 혐오의 대상인 KKK단이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야말로 사상적인 불순함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도 북부인들은 다들 백인이라 흑인에 비하면 낫지만, 감독이 남부인이다 보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자본가 집단으로 묘사하는 진영논리까지 온갖 윤리적 문제를 아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심지어 어제의 북군 장교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KKK단에 합세해서 영웅적인 최후를 맞는 식으로 묘사되는 등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무슨 병맛 코드로 사람들 웃기려고 만들었나 싶은 수준의 괴악한 이야기 전개를 선보인다.
한 술 더 떠서 바로 이 장면에서 나오는 "아리아인으로서 타 인종의 침략에 맞서 단결해야~" 어쩌고 하는 어마어마한 대사까지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불과 10여 년 뒤에 정말로 그런 사상을 가진 나라가 탄생하고, 그 후 그 사상에 기반해 1000만 명 이상을 죽인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 대학살이 일어나 독일인들마저 경악할 정도로 잔혹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전후 아리아인 운운 자체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사실 당대에도 이 영화는 수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개봉하자마자 무수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백인 갱들이 흑인을 공격하거나, 백인이 흑인을 죽인 사건까지 있었다(...).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이 영화를 맹렬히 비판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게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려 몰려들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간 영화였지만[10] 예산의 100배 이상 수익을 올리며 대흥행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인종 차별적 색깔이 짙다고 크게 비판받은 영화였기 때문에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상영 내내 끊임없는 논란이 일었다. 흑인 사회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고, 노예 해방에 찬성한 북부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이 영화를 매우 못마땅하게 보았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신문 사설 등에서 영화에 대한 비판과 옹호가 수 차례 기고되었다. 논쟁이 격해져 정치인들까지 영화를 언급하고, 영화관에서 폭동이 일어날 지경까지 되자 일부 주에서는 영화 상영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리피스는 당시 기준으로도 너무 나갔다는 소리를 들은 몇몇 장면을 잘라내고 처음과 끝에 '이 영화는 특정 인종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가 없으며 미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자막을 삽입했다. 이는 영화가 사회적 논쟁을 촉발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감독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몰락해 가던 KKK에게는 구세주와도 같은 영화다. 실제로 2차 KKK가 창설되는 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원흉이 이 영화로, 현재 KKK의 핏방울 마크나 십자가를 태우는 의식, 그리고 복식 등이 사실 1차 KKK 때는 없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즉, 영화나 소설이 KKK단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KKK단이 다시 창설될 때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11]
이렇게 문제가 많은 영화였지만 그 영화적 가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당장 교차편집을 비롯해서 지금 와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많은 기법들이 이 영화에서 체계화되었다. 영상미도 엄청난 수준으로 당대 영화 특유의 무지막지한 인력 동원이 빛을 발한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화공효과 담당을 갈아넣었을 지 의심되는 남북 전쟁 장면부터 해서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장면을 찍었을까 싶은 대단한 장면들이 산재해 있다. 막판에 사악한 흑인들을 무찌르기 위해 돌격하는 KKK 기마대(...) 장면은 그 정신나간 내용을 무시하면 지금봐도 상당히 강렬하다.
픽션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남군의 로버트 E. 리 장군이 항복 문서를 작성한 뒤 북군의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과 악수하는 장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장면과 같은 실제 역사 현장을 기록 사진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시퀀스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당대에는 굉장히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현대인의 시각으로서는 별 거 없어 보일지 몰라도 이 영화는 1915년작이며, 최초의 역사 재현극, 즉 최초의 사극 중 하나로 뽑힌다. 당대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괴물같은 작품인지 바로 답이 나온다. 당대 평론가들은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크게 칭찬했다. 오늘날에도 그 영화사적 가치는 인정받고 있다.
그리피스는 인종 차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나머지 자신의 흑인 하인에게도 이 영화를 권하는[12] 등 흑인들의 정서에는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관람한 일부 사람들이 그리피스의 의도까지 두둔해 주려고 했지만, 이 영화가 '흑인 해방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피를 흘렸고 전쟁 후에는 흑인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라는 명백한 피해의식 어린 인종차별적 명제를 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흑인 남자가 백인 소녀를 성폭행하려 하자 이에 저항하던 소녀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영화 속 한 장면은 흑인에 대한 그 당시 백인들의 공포, 그리고 흑인들에게 가하는 백인들의 차별과 배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로 박물관이나 공공 도서관 보관 여부를 가지고도 갑론을박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숱한 논란 끝에 결국 1992년 미국 국립 도서관에 등재되어 영구 보관되고 있다. 영화의 윤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영화계에서도 영화사적 의의나 혁신적인 제작 기법 같은 점은 찬양하지만, 그와 별개로 불순하고 반인륜적인 내용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면 좋든 싫든 반드시 볼 수밖에 없는 영화라서 교수들도 골치를 앓아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다루는 작품이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것은 권장하되, 절대로 영화의 사상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있다.
6. 후속작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 딕슨 주니어(1864~1946)는 이 영화의 대박에 자신도 영화를 만들면 되겠다며 다음 해 1916년 이 작품의 속편 'The Fall of a Nation(국가의 몰락)'을 만들었다. 영화 역사 상 최초의 속편 영화로 알려져 있고 흥행도 성공했다. 후세에는 국가의 탄생의 악명으로 이 작품도 실패했다고들 하지만 당시 미국 인구 1/5가 보았다고 한다. 이 시기는 TV는 없고 라디오 보급도 흔치 않았으며, 적당한 장소를 빌려 거기서 영사기를 돌리면 그게 영화관이 되던 시기이니 영화 보는 게 지금의 TV 보는 것과 비슷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딕슨 주니어는 이 영화로 번 돈을 온갖 투자를 무리하게 하여 그가 세운 제작사 Dixon Studios는 이 영화 하나만 내고는 5년 뒤인 1921년에 도산했다. 현재는 원본 필름까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지만, 이 시기 영화들은 아주 특수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필름 보관을 소중하지 않게 여기던 시절이라[13] 없어진 영화들이 훨씬 많다. 여담으로 딕슨은 이 영화 만들고 몇 해도 안가 경제적 위기에 처할 때 그리도 지지하고 찬양하던 KKK에게 도움을 애원했으나 무시당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뇌종양까지 걸렸고 아내가 먼저 죽고 아이들도 먼저 죽는 등 가정적으로도 불우하게 살다가 죽었다.'국가의 몰락'의 원작 소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할지 말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참전하지 않으면 미국 내의 친독일 자본가들의 공작에 의해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이 쳐들어와 미국을 정복한다는 이야기이고, 미국에서 독립군 같은 게 일어나 이들을 격퇴한다는 결말로 미국은 협상국을 도와야 한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물이다.
그리피스는 국가의 탄생의 후속작으로 1916년 《 인톨러런스》를 찍었지만 썩 좋지 않았다. 국가의 탄생과는 정반대로 개봉 당시에는 그저 그런 흥행을 했지만 그리피스가 죽고 난 뒤 재평가되어 그의 최고 걸작으로 추앙받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한 고대의 여러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옴니버스 영화로 거대한 세트장에 2만 명이 넘는 배우진이 참여하는 등 10~12만 달러 정도 들인 국가의 탄생을 뛰어넘는 엄청난 거액인 32~38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가 겨우 1만 6천 달러를 벌어들이며 쫄딱 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혀 틀린 이야기이다. 90년대 영화지 키노가 망했다라고 크게 리뷰하여 그렇게 아는 이들도 많은데 국가의 탄생이 워낙 대박을 거둬 그렇지, 이 영화도 미국에서만 100만 달러를 벌어들여 그럭저럭 흥행했다. 다만, 흥행이 이후로 안 좋은지 제작비가 크게 줄긴 했다.
이 인톨러런스만 해도 세트장 규모가 어마어마했을 뿐더러 튼튼하기까지 하서 1940년대에도 남아있었다고 한다.[14] 일설에 의하면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국가의 탄생처럼 백인 우월주의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봤다가 다른 민족들의 역사를 까는 게 없어서 외면했다는 말까지 있다. 이후 그리피스는 릴리안 기시를 주연으로 여러 신파극을 만들면서 근근이 활동을 이어가다가 1919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 창립에 관여한 것 때문에 기존 영화계의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15]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이후 그리피스는 알콜 중독에 걸리고 가정도 무너지는 등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가 결국 1948년 73살 나이로 노숙자처럼 거리에서 쓸쓸하게 쓰러져서 숨을 거둔다.
7. 여담
- 흑인 평등과 인권을 지지한 실제 단체 공화당 급진파를 폄하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악역으로 등장하는 오스틴 스톤맨은 실제 공화당 급진파의 지도자 새디어스 스티븐스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며, 실제 공화당 급진파의 지도자 찰스 섬너가 스톤맨의 남부 폭정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인물로 묘사된다. 작중 공화당 급진파는 "사악하고 지적으로 열등하며 백인 여성을 강간하는 사람들(uncouth, intellectually inferior and predators of white women)"로 묘사되며, 급진파가 이끈 재건 시대는 "재앙(catastrophic)"이었다고 묘사되며, 1915년 영화 개봉 이후 이런 내용이 미국 세간에서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 #
-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큰 인기를 끈 영화로 주구장창 상영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에는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 한편, 독일의 나치 정권은 짐 크로 등 후진적인 인종 정책을 고수하는 미국을 비난하기 위한 선전물로서 장기 상영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치는 4대 조상 이전에 유대인의 피가 섞였을 경우에는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분류한 반면에 미국에서는 ' 한 방울 원칙'이라고 하여 30대 이전 조상에도 흑인이 포함되어 있다면, 무조건 흑인으로 분류해서 차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재즈 등의 미국계 흑인 문화를 “저급한게 유대인 문화 같다”면서 무시하는 오십보백보 수준의 행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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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유들 때문에 세간의 외면을 받는 걸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영상 관련 교재나 반면교사로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DVD, 블루레이 등으로 꽤 활발하게 재발매되고 있으며, 오히려
스테레오 타입 투성이인아시아계 이민자와 백인 여성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해 다룬 “흩어진 꽃잎”이라는 신파극이 외면받는 걸작이라는 정의에 더 부합하다.
- 당연하게도 미국 흑인 감독들은 이 영화를 매우 싫어한다. 스파이크 리는 영화학도 시절부터 수업 시간에 이 영화에 대해 왜 인종 차별적인 요소를 언급하지 않았냐고 격분한 끝에 교수들을 비판하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가 대학에서 쫓겨날 뻔했으며, 블랙클랜스맨에서 KKK 단이 이 영화를 보는 장면과 제시 워싱턴 린치 사건을 증언하는 목격자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정면에서 보여주며 비판하기도 했다.
- 2016년판 국가의 탄생을 연출한 감독은 이 국가의 탄생을 의식해 일부러 인지도를 뺏어오기 위해 지은 제목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선 이 영화의 장면이 잠깐 나온다.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가 자신의 이름인 '포레스트'의 의미를 설명하며 자신의 이름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의 장군이었던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톰 행크스가 직접 분장한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바로 다음에 두건을 쓰고 KKK로 활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바로 이 장면이 '국가의 탄생'의 장면을 그대로 따와서 합성한 것이다. 영화에서 카메룬 일가가 오두막에 숨어 들고 흑인들이 이들을 공격하자 KKK가 이들을 구출하려 달려 오는 장면이다. 참고로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는 실제 KKK의 초대회장이었으나, 흑인 인종 차별 단체로 변질되자 KKK 해산을 시도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쿠 클럭스 클랜 문서 참조.
- 개봉 당시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이 호평을 남겼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실제로는 ”매우 부적절한 작품(a very unfortunate production.)“, “유색인종이 많은 지역에 상영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
- 1989년 4월 2일에 KBS3(현재 EBS) 특선 일요영화로 '국가의 생성'이란 제목으로 더빙해 방영했다! 무성영화지만 유강진 성우가 나레이션을 더빙했으며 2시간 45분 정도 버젼으로 방영했다. 저화질이나마 유튜브를 찾아보면 이 버젼도 볼 수 있다.
- 흑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대부분 흑인 분장을 한 백인들이다. 일부 장면에서는 도저히 흑인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난다.
- 저작권이 만료된 관계로 유튜브에서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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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부 링크
[1]
아직 영화 등급이 신설되기 전 만들어진지라 등급이 없다. 호주는 PG, 일본은 G, 브라질은 12, 영국은 15금 등급을 줬다.
여기를 참고. 대한민국이 2002년에 15세 등급이라 나와 있는데, 출처는 불분명하다.
[2]
사실 오스틴 스톤맨은
공화당 급진파의 지도자
새디어스 스티븐스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즉, 대놓고
공화당 급진파를 악역으로 묘사한 것이다.
#
[3]
사실 이 부분이 의아한 게, 찰스 섬너는 실제 역사에서 흑인 평등을 지지하는 급진 공화당원이라서 굳이 오스틴 스톤맨이 린치의 정당성을 인정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었다. 감독이
역사 고증을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
[4]
카메론 가의 주인들을 충직하게 따라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자발적으로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으며,
이후 흑인들 사이에 몰래 숨어들어 흑인들의 정보를 KKK단에 알려주고 있었다. 이들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흑인 배역이다.
[5]
이것이 제목 "국가의 탄생"의 의미이다. 남북으로 나뉘어 싸우던 미국이 흑인종의 침입에 맞서 힘을 합치는 것이 진정한 하나의 국가가 탄생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6]
영화와 관객의 심리적 연결
[7]
The Beginning of the African to America planted the first seed of disunion.
[8]
소설가이자 KKK를 지지한 백인 우월주의자로 대학 동기가 후일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우드로 윌슨이었다.
[9]
그리고 이 사람의 꿈은 백인 여주인과 혼인해서 흑인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긍정적인 인물인 척 비하한 것이다.
[10]
많은 곳에서 출자를 받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엔 그리피스 감독의 사비까지 털어 찍었다.
[11]
영화
대부도 이와 유사한데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그린 작품이 오히려 현실의 마피아 사회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12]
당연히 그 하인은 기함을 하며 표를 집어던지면서 강하게 항의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무지보다는 그냥 개념이 없었을지도...
[13]
어지간한 영화 필름들은 지우고 재사용했다. 한국만 해도 80년대 이전에는 제대로 필름이 없는 영화들이 많았으며 1996년 이전까지 법적으로 의무납본제가 없었다.
[14]
이러다보니
타비아니 형제가 이 세트장에서 일했던 이탈리아계 이민자라는 설정으로 《굿모닝 바빌론》이라는 영화를 만들기까지 했다.
[15]
정확히는 적이 많은 상황에서 유성 영화계 전환에서 완전히 실패했던 게 타격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