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15:15:32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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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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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279호 설명

1. 개요

高敞 禪雲寺 金銅地藏菩薩坐像. 조선 전기 1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한국의 불상.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선운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279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전북 고창군 아산면(雅山面) 삼인리(三仁里) 선운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동조도금(銅造鍍金) 지장보살상으로, 15세기경 보살상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약 55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선운사의 도솔암 금동 지장보살 좌상과 함께 해당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손꼽히는 문화재이다.

옷, 어깨, 띠매듭, 가슴자락과 다리 양식 등을 볼 때 조선 전기 15세기의 작품이 분명하며, 특히 세조 12년(1467)에 만들어진 원각사탑(圓覺寺塔)에 새겨진 불상과 매우 닮아있어 이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동시에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으며, 이마에 두른 두건에서 좁은 띠가 흘러내려 귀를 덮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했던 양식이다. 이렇게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유행하던 보살상의 시대적 양식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어 한국 불교사적으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일제강점기 당시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역사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 해당 보살상의 영험함을 보여주는 설화가 있다. 하단 문단 참조.

3. 외부 링크

4. 보물 제279호 설명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 좌상은 청동 표면에 금칠을 한 지장보살상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고자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를 말한다.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이 사라지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부처이다.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불상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 넓적하고 편평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 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도난당한 지장보살상은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 보내 달라”라고 하였으나 불상의 주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점차 가세가 기울고 병이 들게 되자 불상 주인은 불상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마지막으로 불상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함으로써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도난당한 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金銅地藏菩薩坐像)은 신라 진흥왕대에 창건하고 광해군 5년(1613)에 재건한 선운사에 있는 불상으로 청동 표면에 도금한 것이다. 머리에 두건(頭巾)을 쓰고 있으며, 이마에 두른 굵은 띠는 귀를 덮고 배에까지 내려오고 있다. 선운사 도솔암에 있는 선운사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과 같은 형태의 불상이다.

넓적하고 살찐 얼굴에 눈·코·입이 작게 묘사되었다. 굵게 주름진 삼도(三道)가 표현된 목은 짧아서 움츠린 듯한 느낌을 준다. 가슴은 당당한 모습이지만 두꺼운 옷에 싸여 몸의 굴곡은 나타나 있지 않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댈 듯 굽혔고, 왼손은 배에 붙여서 엄지와 중지를 약간 구부렸는데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옷은 무겁고 장식적이며 어깨의 2단으로 된 주름, 그 아래의 띠매듭, 팔의 세로줄 주름 등은 형식적이다. 특히 다리의 평행적인 옷주름 처리, 넓은 가슴의 수평적인 아랫도리 자락 등의 표현은 세조 12년(1467)에 만든 원각사탑(圓覺寺塔)에 새겨진 불상의 모습과 유사하다.

두건을 쓴 모습, 네모지고 원만한 얼굴, 형식적이고 수평적인 옷주름 처리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보살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