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22:35:16

코마 후미야스

고마 후미야스에서 넘어옴
이 문서는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사이타마현 출신 인물로 분류하고 분류:고구려의 왕족과 분류:한국계 일본인 분류를 하지 않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아래 토론들로 합의된 편집방침이 적용됩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내용 펼치기 · 접기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fff,#1f2023><bgcolor=#ffffff,#1f2023><(> 토론 - 사이타마현 출신 인물로 분류하고 분류:고구려의 왕족과 분류:한국계 일본인 분류를 하지 않기
토론 - 합의사항2
토론 - 합의사항3
토론 - 합의사항4
토론 - 합의사항5
토론 - 합의사항6
토론 - 합의사항7
토론 - 합의사항8
토론 - 합의사항9
토론 - 합의사항10
토론 - 합의사항11
토론 - 합의사항12
토론 - 합의사항13
토론 - 합의사항14
토론 - 합의사항15
토론 - 합의사항16
토론 - 합의사항17
토론 - 합의사항18
토론 - 합의사항19
토론 - 합의사항20
토론 - 합의사항21
토론 - 합의사항22
토론 - 합의사항23
토론 - 합의사항24
토론 - 합의사항25
토론 - 합의사항26
토론 - 합의사항27
토론 - 합의사항28
토론 - 합의사항29
토론 - 합의사항30
토론 - 합의사항31
토론 - 합의사항32
토론 - 합의사항33
토론 - 합의사항34
토론 - 합의사항35
토론 - 합의사항36
토론 - 합의사항37
토론 - 합의사항38
토론 - 합의사항39
토론 - 합의사항40
토론 - 합의사항41
토론 - 합의사항42
토론 - 합의사항43
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1. 개요2.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image/001/2008/05/23/PYH2008052301630006900_P2.jpg
高麗文康 (こま ふみやす)

고구려[1] 제28대 보장왕의 54대 후손으로 전해지는 사람이다.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있는 고마 신사의 제54대 궁사를 맡고 있다. 2017년 기사

일본(당시는 야마토 왕권)에 사신으로 머무르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 약광(若光)[2] 668년 평양성 전투에서의 참패로 고구려가 멸망하자 귀국할 기회를 잃고 일본 열도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는 보장왕의 아들로 알려져있으며, 고(구)려군의 군수가 되어 고구려 유민들을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약광이 숨을 거두자 고마군민이 그 덕을 기려서 고마 신사(高麗神社, こま じんじゃ)를 세우고, 영령을 고마명신(高麗明神, こま みょうじん)으로 모셨다.

이후 26대까지 고구려인 후손과만 통혼했다. # 그리고 뛰어난 무사 집단으로 간토(관동)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가마쿠라 막부와 인척이 되는 등 권력의 중추에도 섰으나 1352년 그 토지를 잃는 실각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예 전쟁에 나가지 않는 '중립주의'를 표방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로도 나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조그만 농지를 받는 등 오래 존속했다.

고마 신사 근처에는 코마역이나 코마가와역 등 고구려와 연관있는 지명들이 남아있다.

2. 관련 문서



[1] 후기에는 국호를 '고려'라고 했다. [2] 일본명: 코마노코키시 잣코(高麗王若光, こまのこきし じゃっこう). ''(王)을 '코키시'(こきし)로 훈독하고 있는데 이는 백제의 왕호인 ' 건길지'(鞬吉支)와 유관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