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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 교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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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대한민국
교토부 교토시
일본
1. 개요2. 공통점3. 차이점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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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일본 교토부 교토시, 두 지역은 여러 창작물에서 현지화할 때 높은 확률로 서로 대입되는 편이고, 두 나라의 여행서적 등에서도 서로 '경주는 일본의 교토와 같은 고도', '교토는 한국의 경주 같은 역사도시'라는 식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여담으로 교토시와 함께 나라시 또한 경주시와 자주 비교된다.[1]

다만 경주시가 교토시에 비해 인구규모가 작으므로 경주를 포함한 대구 교토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둘 다 각각 경상도 간사이 지방의 제2도시이며 서비스업이 크게 발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 공통점

  • 과거에 거의 1천년에 달하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2] 한 국가의 수도였던 도시로 '천년고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3] 그에 따라 두 나라에서 국보급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역사관광도시로 꼽히고 특히 불교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4]
  • 양측 다 국립 박물관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두 곳 모두 소장품이 풍부하고 가치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5]
  • 과거 수도였던 시절, 둘 다 중국 당나라 장안을 모방해서 도시계획을 했다.[6]
  • 전국의 수도치고는 위치가 한 쪽으로 치우친 편이다보니, 두 도시가 수도였던 시절에는 거리가 먼 지방을 순조롭게 통치하기 위해 지방에 수도의 기능을 일부 분담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통일신라의 5소경이나 일본사에서는 중세 동일본의 간토 간레이, 고대 서일본의 다자이후가 그런 기능이었다.
  • 아직도 묻힌 유적이 너무 많아서 땅 파고 뭔가 공사라도 하려치면 유물이 나와서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에 상당히 난감한 것도 유사하다. ## 때문에 이설되는 동해선 경주역이 경주시내와의 접근성이 최악이듯 교토도 이런 점 때문에 교토 시영 지하철 노선이 부실하고 철도왕국 일본답지 않게 버스 강세 지역이다.
  • 도시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 역시 서로 비슷한 도시로 비유가 많이 되는 부산이나 오사카에서 각각 1시간여 소요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점도 유사하다.
  • 해당국의 제1간선 고속철도 고속도로가 지나며, 수도까지 고속철을 이용해 걸리는 시간도 2시간여로 비슷하다.
  •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임에도 의외로 둘 다 공항이 없어서 인근 대도시의 공항을 대신 이용한다. 경주는 김해국제공항 포항경주공항. 교토는 간사이 국제공항.
  • 인근 도시 모두 양국의 해군의 주요 거점이다. 경주는 부산 해군기지, 진해 해군기지 포항 해병대 기지, 교토는 마이즈루지방대이다. 양국 거점 해군 부대와 해안경비대 부대는 독도 등을 중심으로 충돌이 많다.
  • 벚꽃 구경 명소로 유명하다.
  • 위도가 낮은데다 분지 지형이라 둘 다 여름에 매우 덥다. 겨울에는 이 별로 내리지 않는 편이다.
  • 중심가는 개발제한이 엄격해 높은 건물이 많지 않다.[7] 경주의 경우 아파트는 거의 외곽 지역에 있다.
  • 둘 다 원래 전통적으로 내륙도시였지만 현대 행정구역의 확장으로 일부 지역이 동해 바다에 면한 도시가 됐다.[8]
  • 행정구역 내 도심과 별개의 생활권을 가진 지역이 있다. 경주 소속 안강읍, 강동면이 경주 도심보다 포항과 같은 생활권이고 교토부 소속 마이즈루시 역시 교토 도심보다는 후쿠이현과 같은 생활권이다.
  • 둘 다 수학여행지로 명성이 높다.
  • 둘 다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으며, 단층 위에 도시가 조성되었다.[9][10]
  • 큰 지진을 경험했다. 경주시는 지진을 최근에 겪은 경험이 있었고[11], 교토는 2018년 오사카 지진 당시 진도 5강이 관측되었다.

3. 차이점

  • 2010년대 기준 교토부 인구 260만, 그 안의 교토부의 최대 도시인 교토시 인구만 140만에 달하는 한국으로 치면 광역시급의 대도시이지만, 경주시는 인구가 30만에 채 못 미치는 중소도시다. 오히려 경주 인근에 있는 대구시가 교토부의 인구와 비슷하다. 교토시로 따지면 대전시, 광주시, 울산시와 인구가 비슷하다.[12]
  • 지역적으로도 교토는 오사카, 고베시와 더불어 긴키 지방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현재 중심지인 도쿄 일대의 간토 지방과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지만, 서울을 위시한 한국의 수도권 일대는 고려시대 이후 줄곧 중심지로 기능했기 때문에 현재에 와선 경쟁 관계에 놓일 지역이 사실상 전무하다.[13] 수도권과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합쳐서 비교해도 수도권이 인구가 더 많고 경제력이 월등할 정도라 한국에선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이분법적 비교는 자주 보여도[14] 영남이란 단일 지역으로 수도권과 비교하는 양상은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 경주는 고대~ 중세기에 수도였지만 교토는 중세~ 근대에 수도였다. 교토가 현대와 더욱 가까운 시기까지 수도였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도 다소 다르다.
  • 가마쿠라 막부 이후 일본에선 덴노가 거주하는 교토와 쇼군이 거주하는 도시는 서로 중심 기능이 나뉘어 있었지만 신라에선 전제 왕국이던 경주가 신라의 수도로서 당대 모든 기능을 담당했다. 교토가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수도였던 건 헤이안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남북조시대, 오닌의 난 등으로 허울뿐인 시기가 길었다.
  • 정치적으로 교토는 대표적인 진보 지지 지역이고, 경주는 보수 지지 지역이다. 그래도 노나카 히로무[15]가 기반을 잡은 시기와 권영국 변호사가 어느 정도 득표한 것은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 경주는 고분은 많지만 여몽전쟁이나 임진왜란같은 외침, 혹은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소실된 역사적 건물이 많은 반면 교토는 고분은 거의 없지만 역사적 건물이 많다. 교토는 덴노가 거주하는 명목상 수도로 오닌의 난 이후에도 복구 작업을 했으나[16] 경주는 고려 때 김사미·효심의 난 이후 3경의 지위마저 박탈 당하고 조선시대에 와서도 그 입지가 상당히 줄어 소실된 문화재 복구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도 박정희 시기에 복원이 시작되었다.
  • 영사관의 존재 유무에만 차이가 있다. 경주시에는 영사관이 하나도 없고 교토에는 프랑스 총영사관이 존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상술했듯 교토와 경주의 도시 규모 및 수도였던 시기의 차이에서 기인한다.[17]
  • 경주시는 중심지였던 시절이 워낙 과거이다 보니 신라 왕실 요리의 전통이 단절되어 교토와 달리 향토음식이 다양하게 남아있지 않다. 현대에 그나마 유명한 것도 쌈밥, 해장국처럼 서민 요리거나 황남빵, 경주법주처럼 현대에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고급 요리도 조선 시대 최부잣집의 요리가 대부분이다.
  • 교토시는 강력한 조례로 도시미관과 난개발을 통제하고 있지만, 경주시는 관광지 난개발이 심하다. 도시미관 역시 외지인들이 경주역이나 경주IC를 통해 경주시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경주고속버스터미널 앞조차 모텔이 많다.

4. 관련 문서



[1] 실제로 경주와 나라는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이다. [2]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1년간 신라의 수도였으며, 교토는 794년부터 1869년까지 1075년간 일본의 공식적인 수도였다. [3] 원래 '경도(京都)'라는 단어는 '수도'라는 뜻을 지닌 보통명사였다. ' 서울'이라는 지명도 사실 '수도'라는 뜻의 고유어 보통명사였으나 경도처럼 고유명사화된 사례이다. [4] 다만 교토는 불교 못지 않게 신토와 관련된 문화재의 비중이 높다.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오히려 나라시에 더 집중된 편. [5] 참고로 나라에도 나라국립박물관이 위치해있다. [6] 그래서 경주(서라벌)와 교토(헤이안쿄)를 비교할 때 시안(장안)까지 넣어서 세 도시를 함께 비교하기도 한다. 또한 나라의 헤이조쿄와 발해 상경용천부 또한 장안성을 모방했다. [7] 교토는 교토타워가 예외적. 이것도 스카이라인 망친다고 교토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지금은 호평일색. [8] 다만 교토시 자체는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교토부 마이즈루시 등은 바다에 접해있지만, 이 쪽은 행정적으로만 교토부에 속해있을 뿐 교토시와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 지역이다. [9] 교토에는 하나오레단층(花折断層帯)과 나라분지 토엔단층(奈良盆地東縁断層帯), 경주에는 양산단층이 지나고 있다. 역사 기록에 보면 신라 혜공왕때 경주에 지진이 발생해 100여명이 죽었다는 등의 기록이 나왔으며 교토 또한 임진왜란 연간인 1596년 게이초 후시미 지진이 발생해 후시미 성이 무너지고 약 1,00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10] 다만 여기에는 차이점도 있는데, 두 도시 근처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중 경주의 월성 원전은 행정구역상 경주시 소재이고, 교토 인근의 타카하마 원전과 오오이 원전은 후쿠이현에 있다. [11] 일본의 기준으로 전진이 5약, 본진이 5강에 해당하는 진도였으며, 이는 일본 기준으로도 꽤 큰 지진에 속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진도 5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긴급지진속보가 발령된다. [12] 재밌게도 신라시대 신문왕 때에 대구는 천도 논의가 꽤 진지하게 나온 바가 있었다. 만일 이 때 천도가 되었다면 우리는 대구 vs 교토, 경주 vs 나라 비교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3] 분단되기 전만 해도 조선시대 제2의 도시였던 평양 일대가 그나마 한양과 경쟁심이 있었다. 경평축구대항전이라고 경성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을 대표하는 평양 축구단이 친선 경기를 갖기도 할만큼 이쪽은 경쟁심리가 꽤 있었고 통일 이후에도 수도권-경상도 간의 경쟁 관계보다 수도권-평안도 간의 경쟁 심리가 더 클 수 있다. 단, 평안도 역시 고구려 멸망 이후 북한 정권 수립 이전까지 수도권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 역시 간토-간사이 정서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14] 주로 수도권 독식 견제 여론이나 한탄성 반응에 이런 이분법적 구도가 보인다. [15] 자민당 내 중도파 - 중도좌파이다. [16] 이러한 이유로 교토에는 오닌의 난 이전의 건축물이 많지 않다.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지어진 많은 사찰들은 오닌의 난과 뒤이은 센고쿠 시대의 여러 전란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따라서 연간이 오래된 고중세의 건축물들은 교토가 아닌 나라에 다수 소재한다. [17] 단, 한국보다 일본이 큰 나라이다보니 일본에 대사관 외의 영사관을 둔 국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한국에는 서울, 부산 외에 영사관을 둔 나라들이 많지 않은 반면 일본은 유럽 국가들도 교토나 삿포로, 후쿠오카 등지에 영사관을 두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