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15:10:31

경시제


전후한 과도기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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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한 과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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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한 황제
경시제 | 更始帝
출생 일자 미상
전한 형주 남양군 채양현
즉위 23년 3월 11일
신나라 평림
사망 25년 (향년 미상)
적미군 통솔하 유한 장안
능묘 패릉(覇陵)
재위기간 현한의 황제
23년 3월 11일 ~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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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11><colcolor=#ece5b6> 성씨 유(劉)
현(玄)
부모 부친 유자장
모후 하씨
형제자매 남동생 유건
성공(聖公)
묘호 없음
시호 회양무순왕(淮陽武順王)
연호 경시 또는 갱시(更始, 23년 3월 11일 ~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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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한나라를 부활시켜 황제가 되다2.2. 암군과 명군의 사이에서2.3. 최후
3. 기타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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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나라의 임시 황제. 발음에 따라 갱시제라고도 한다.[1] 왕망 신나라를 멸망시킨 뒤 한나라를 부흥시키고 황제가 된 사람이지만 짧은 재위 기간인 2년 만에 죽임을 당하고, 정권이 몰락해서 정통 황제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잠시 재건한 한나라 정권을 그의 이름을 따서 현한(玄漢)이라고 부른다.

2. 생애

2.1. 한나라를 부활시켜 황제가 되다

경시제 유현은 전한(前漢)의 황제인 경제(景帝)의 6대손, 장사정왕(長沙定王) 유발의 5대손, 용릉절후(舂陵節侯)의 4대손이었다. 후한을 세우는 광무제 유수의 팔촌형.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채양현(蔡陽縣) 사람이었다.

유수의 형 유연[2] 신나라에 대항해 거병하고, 평림병·신시병·하강병과 세력을 합쳤는데, 나중에 이 반란군 연합이 황제를 추대하려 할 때 유연과 평림병 소속의 유현이 후보로 거론됐다. 둘은 같은 장사정왕 유발의 후손이긴 했지만 유현 쪽이 큰 집으로, 유현은 후작을 계승한 용릉대후 유웅거의 증손이었고, 유연과 광무제 유수는 유웅거의 동생인 울림태수 유외의 증손들이었다. 그렇다고 유현이 이 집안에서 가장 좋은 혈통이었냐면 그건 아니고, 유연 쪽에는 용릉절후의 적손 유지[3]가 있었으며, 평림병·신시병 쪽에도 유지의 사촌 동생인 유가[4]가 있었으나 이들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강병에서 갈라져 나온 지파가 유연 형제에게 감화되어 유연 형제를 밀었지만, 평림병과 신시병에 비하면 소수여서 별 영향력은 없었고, 평림 및 신시병이 현명한 유연을 꺼려 나약한 유현을 밀어주자 유연 측에서 이를 받아들여 유현이 황제로 추대됐다.[5]

이후 경시제의 휘하에 있던 유연의 아우 유수(훗날의 광무제)가 곤양대전에서 왕망이 보낸 43만 대군을 격파하는 큰 공을 세웠고, 이는 왕망이 멸망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유연은 남양 유씨들의 고향인 남양군의 치소이자 최대 도시인 을 함락해, 현한은 이곳을 임시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남양 호족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유연의 위세가 드높아지자 경시제는 이를 경계한 나머지 결국 유연을 트집 잡아 죽여버렸다. 다만 유수는 곤양대전의 최대 공로자로 인망이 높았을 뿐 아니라 형이 죽은 후에도 경시제에게 복종하는 제스쳐를 취했으므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하고 다만 다른 군벌들을 토벌하라는 명목으로 하북 땅으로 보내버리는 선에서 그쳤다.[6][7]

곤양대전의 패배로 말미암아 왕망이 살해당하고 그 세력이 붕괴하자 경시제는 에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적미의 농민반란군들도 경시제에게 복속해왔다. 이후 경시제는 재위 2년(24) 2월에 또다시 장안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일족과 공신들을 왕·후로 삼는 등 정권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2.2. 암군과 명군의 사이에서

그러나 한 황실을 부흥했다는 안도감에 취한 경시제는 천도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방탕과 안일함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왕망의 전횡 및 오랜 내전으로 황폐화된 지방 향리의 질서와 민생을 회복시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평림·신시병 출신 공신들은 경시제의 제어를 거의 받지 않고 제멋대로 측근들에게 벼슬을 남발했고, 장안 사람들을 약탈하기까지 했다. 한편 이렇게 되는 사이 평림·신시병과는 다른 계통으로 독자 세력을 유지하던 적미군이 한 고조 유방의 손자이자 여씨의 난을 진압할 때 큰 공을 세워 신으로 모셔진 성양 경왕 유장의 후손 유분자를 추대하여 천자로 삼았다.

사실 이들은 평림·신시병과는 인맥 관계도 없었고, 그때그때 먹을 것이나 걱정하는 도적 집단에 가까웠던지라 천하를 경륜하고자 하는 야심도 없었다. 경시제 집단이 경시제를 포함하여 꽤나 한심한 집단이었지만 적미 집단은 통치력이나 형식상 군주의 역량으로 보나 구성 인물들의 역량으로 보나 경시제 집단만도 못하였다. 그런데도 경시제 집단이 이 한심한 이들에게 무너지고 만 건, 되려 경시제가 생각보다는 아주 맹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꼭두각시 취급하는 평림·신시병 출신 공신들을 쳐내려 했던 것이다.[8]

촉과 한중 일대가 공손술에게 떨어져 나가고 장안 주변까지 반란 세력들이 준동하며 유수 일행도 관동에서 큰 세력으로 성장해나가자, 경시제 유현은 그간 자신을 보위해온 평림·신시병 출신 장군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지 않으면 자신 또한 언젠가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합당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처음에 장안에서 정식 즉위식을 거행할 때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무안할 정도로 쩔쩔매고 어쩔 줄 몰라했던 경시제는, 시간이 갈수록 슬슬 황제 노릇에 적응해가면서 나름대로 친위 세력도 꾸리게 된다. 25년쯤 되면 장안에 기존 있던 한나라의 관료층 일부가 유현의 또 다른 친위 세력이 되어 있었고, 유현은 이들을 의지해 해당 장군들을 연회에 초대하여 다 죽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잘한 건 거기까지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결단하지 못해 마지막 순간 머뭇거리는 바람에 한 명만 죽고 죄다 도망가서 역으로 경시제가 생명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경시제는 여기서 또 반전을 만들어냈으니, 친위 세력들과 함께 용케도 장안을 탈출한 뒤 병력을 급히 모아 장안으로 유턴, 두 명만 빼고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한편 이 평림·신시병과 뜻을 같이한 인물 중에 농서에서 온 외효가 있었고, 그도 도주에 성공해 자기 고향에서 군웅의 길을 걷게 된다.

2.3. 최후

서기 25년, 경시제는 다시 장안의 옥좌에 그렇게 앉는 순간 평림·신시병의 꼭두각시가 아닌 진정한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장안을 재장악할 때 두 명을 놓쳐보낸 게 문제였다. 하필 그 시기에 식량이 떨어진 적미군 집단이 쳐들어왔고, 경시제가 미처 죽이지 못한 평림·신시병 출신 장군들이 남은 군세를 갖고 적미군 집단과 합세하여 향도 노릇을 했다. 이에 경시제는 장안에서 그들을 상대로 버틸 수 없어 25년 9월 홀로 말을 타고 탈주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는 10월에 적미에게 항복하면서 황제의 자리를 유분자에게 바쳤다.

일단 적미군 지도자들은 경시제를 장사왕에 봉하였으나, 장안에 입성한 뒤로 적미군 집단이 평림·신시병 집단을 뛰어넘는 약탈과 난맥상을 보이자 그전까진 왕망이 차라리 나았다고 여기던 장안 인민들이, 이번에는 경시제가 나았다고 그리워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만다. 이에 긴장한 적미군 지도자들은 후환을 두려워하여, 그해 12월에 경시제를 교외로 불러내서 그를 암살해버렸다. 얼핏 보면 불쌍하지만 경시제도 바로 그와 똑같은 상황이었던 전한의 마지막 태자 유자영을 바로 그런 식으로 살해했었다. 이후 장안 일대를 중심으로 약탈과 전횡을 일삼던 적미군들 또한 광무제 유수에 의해 쓸려나가게 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된 광무제는 한 황실을 부흥하여 후한의 시조가 된다.

3. 기타

'경시(更始)'는 시호가 아니고 그의 재위 기간에 사용했던 연호이다. 사실 그의 연호인 更始는 '다시 시작한다'는 뜻[9]의 '갱시'로, '고쳐 시작한다'는 뜻의 '경시'가 아니다. 중국어 독음도 Gēngshǐ가 아니라 Gèngshǐ이다. 후한을 비롯한 후대 왕조에서 정통 황제로 인정 받지 못했기에 황제로서의 묘호와 시호는 받지 못했다. 대신 후한 세조 광무제 유수가 그를 회양왕(淮陽王)으로 추증하고, 무순(武順)이라는 시호를 올려서 작위와 시호를 합친 명칭인 회양 무순왕(淮陽武順王)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의 무덤을 황릉처럼 능호를 주어 패릉(霸陵)이라 했다.

4. 둘러보기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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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은 '갱시제'가 옳은 표현이다. [2] 유연은 광무제 유수의 친형으로 유수를 사실상 아버지처럼 키우다시피한 사람이며 유능하고 인망도 높아서 죽지만 않았다면 광무제 대신 황제 자리에 올랐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인물이었다. 당연히 형 유연과 매우 사이가 좋았던 유수는 형의 오른팔이 되었을 테고. 유수의 작은 형이자 유연의 바로 아래동생 유중(仲)은 거병 초반에 전사하는 바람에 역사에서 유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3] 나중에 현한에서 정도왕에 봉해지지만, 이렇다 할 자기 세력을 만들지 않고 현한 붕괴 후 바로 광무제에게 투항해 성양왕의 작위를 받았다. [4] 훗날 경시제의 한중왕이 됐으나, 경시제 정권이 붕괴되면서 원래 수하였던 연잠, 적미군, 공손술 등의 위협을 받아 생존을 위해 분투하다 광무제에게 투항했다. [5] 이는 성격이 유약한 유현을 내세우며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만만한 놈을 황제로 세워놓고 실속은 자기들끼리 챙겨 먹으려는 속셈이었다는 것. 이미 당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치통감에서도 대놓고 말하는 부분. [6] 사실 이때에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고 그냥 싸우다 죽으라는 식으로 내던져 버린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유수는 하북의 군벌 왕랑(유자여)를 비롯해서 당시 온갖 위험을 겪었으나 결국 이를 진압하고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7] 유수는 형이 죽었음에도 유현에게 아무런 유감도 표시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람들과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형의 죽음을 슬퍼해서 울면서 유현을 원망했다고 한다. [8] 겉으로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이 어리숙해 보여도 의외의 총명함과 꾀는 부릴 줄 알며, 역시 생각보다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허수아비 취급하고 함부로 다루던 유능한 실세들이 허를 찔려 당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 역사에서 이런 면모로 유명한 인물들로는 다름 아닌 고종(대한제국), 모용보 등이 있다. [9] 당연하지만 한나라를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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