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3:03:04

파나마 운하

가툰 호수에서 넘어옴
파나마 운하
Canal de Panamá
파일:ㅍㄴㅁ ㅇㅎ.jpg
1. 개요2. 역사
2.1. 근세2.2. 근대2.3. 현대
3. 통행 방식4.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5. 기타6.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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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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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Canal de Panamá)는 북아메리카 파나마에 건설된 길이 약 82km의 운하로, 파나마 지협을 관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다( 공식 홈페이지).

대서양 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위 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하는 화물선의 운항시간 단축에 큰 획을 그은 운하. 다만 현대의 배들은 크기가 워낙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다. 4번 문단 참고.

파나막스니 포스트 파나막스니 하는 선박의 사이즈별 구분은 다 이 운하의 항행 가능 폭을 상정해 두고 만든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기준이 되는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가 있다. 이 쪽의 명칭은 수에즈막스.[1]

운하 서쪽에는 태평양, 동쪽에는 대서양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지형이 좀 미묘한 관계로[2](북미와 남미가 И자로 꺾여 만나는 지점이다.) 운하 북쪽에 대서양(과 연결된 카리브해), 남쪽에 태평양이 있다.

2. 역사

배가 산으로 가는 파나마 운하의 역사[3]

2.1. 근세

개념 자체는 이미 16세기의 스페인 초대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그 유명한 카를 5세가 친히 주목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었다. 152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가 그 필요성을 역설하자 이걸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프랑스 오스만 제국과의 전면전이 있었는데(둘 모두 승리/격퇴했다), 이때 막대한 전쟁비를 안 들였더라면 진짜로 추진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세기 정도 후에 스코틀랜드가 시도했다 실패한걸 생각해 보면 성공했을지는 미지수.[4]

그처럼 일찍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서부 지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은 아메리카 대륙 동부해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의 끝인 드레이크 해협까지 간 다음 혼 곶을 찍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리도 멀고, 폭풍을 만나기 쉽기 때문에 대서양과 태평양 간 해상무역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수단은 다름아닌 육로였다. 스페인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중국에서 도자기와 비단을 수입해서 마닐라로 가져오고, 마닐라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운송한 다음 거기서 육로로 베라크루스까지 화물을 운송한 다음에 거기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마닐라 갤리온' 무역로를 사용했다. 그러나 도로사정이 워낙 열악하고[5] 정글까지 펼쳐져 있어서 아카풀코에서 베라크루스까지 별로 멀지 않음에도 꽤 많은 손해가 발생했다.

2.2. 근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바로 운하였다. 당시 파나마 지협과 니카라과 호수[6] 두 후보지가 거론되었다. 이 중 파나마는 약 80km 정도를 파서 물길을 만들면 양쪽으로 연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운하를 파기에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대공사를 벌일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1880년 프랑스 총대를 메고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당시 수에즈 운하 개통을 지휘한 기술자이자 외교관인 페르디낭 마리 레셉스(1805~1894)가 이끄는 프랑스 공사팀이 맡았다. 세계 여론은 수에즈 운하 개통의 기술 경험이 있기에 파나마 운하도 문제 없으리라 봤다. 하지만 워낙 난공사에 인부들이 사고 및 질병으로 무려 2만 2천 명이나 사망하자 결국 프랑스도 9년 만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물러났다. 그리고 책임자인 레셉스는 막대한 빚을 지며 파산하여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늘그막을 비참하게 지내다 죽었다.

또한 1892년 프랑스에서는 이 운하 때문에 대규모 정치 스캔들이 폭로되었다. 유대계 금융자본가를 내세워 건설자금이 될 복권부사채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매수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수많은 국회의원 및 전직 장관들이 퇴진했고, 프랑스 정치계에 큰 불신을 초래했다.[7]

당시 가장 큰 사망 원인은 모기였다. 그 지역은 말라리아 창궐지역으로 악명 높은 데다가[8] 운하 판답시고 구덩이까지 파게 되자 거기 찬 물에 모기들이 자라 모기가 무진장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에 인부들 사이에는 말라리아를 개미가 옮긴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개미를 막겠답시고 침대 다리마다 양철 그릇을 놓고 거기다가 물을 담아 놓았다. 그 물 담긴 그릇에서 모기가 더욱 왕성하게 번식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마를 때마다 침대를 들어서 물을 비우기 귀찮으므로, 수위가 내려갔다 싶으면 그냥 웅덩이 물을 퍼다가 부어넣기만 해서 물은 썩어들어갔고, 모기가 번식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숙소에 말라리아 병원균을 키우던 셈이다. 생물학적 무지가 낳은 비극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저 위치가 나쁘다는 주장도 많아서 파나마가 아닌 니카라과 새롭게 운하를 만들자는 주장도 많았다. 그런 주장이 타격을 받은 건 1902년에 벌어진 마르티니크 섬의 몽펠레 화산폭발 대참극이었다. 4만에 가까운 섬 인구가 죽어간 이 참극의 여파로 화산재 영향이 위치, 바람이나 여러 모로 위험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니카라과 운하 계획은 파기되었다. 거리는 2500 km나 떨어져 있지만, 위도가 비슷하고 풍향이 맞아 떨어진 탓에 니카라과에 화산재가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파나마 지협은 귀중한 교통 요충지로, 포기하기엔 매우 아까웠기 때문에 보다 못한 미국이 1855년에 같은 경로를 따라 철도를 먼저 개통해서 운하가 개통되기 전인 50여 년 동안은 대서양-철도-태평양 루트로 여객이나 화물이 환승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아래 운하 건설현장 사진에 나오는 철도도 사실은 미국이 미리 개통한 것. 운하 건설시에도 자재 운반을 위해 이 철도가 사용되었다. 물론 이 철도도 말라리아 황열병으로 삽질해가면서 겨우 개통했다. 그나마 운하보다는 공사 난이도가 낮아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철도는 2023년에도 여객열차, 화물열차 둘 다 운행 중이다.

이후에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필리핀을 획득하게 된 미국 미합중국 해군 함대의 신속한 전개를 위한 전략적 목적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파나마 운하가 없으면 미 해군은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가 상호 연계나 전력 재배치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가 조건을 세게 부르자 파나마를 부추겨 독립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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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파나마 운하(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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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공사 당시

미국이 공사하는 동안(1910년대)에는 말라리아의 매개체가 모기라는 사실이 밝혀져, 모기를 적극 구제한 덕분에 인명 피해가 대단히 많이 줄었다. 미합중국 육군 공병대가 공사를 맡은 가운데, 의무 지원을 총괄한 육군 군의 소장 윌리엄 크로포드 고르거스(1854~1920) 장군은 말라리아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공사 지역마다 신선한 물을 공급할 시설을 건설하고, 공사 지역 내의 건물이란 건물은 살충제로 가득 채우고, 특히 모기의 서식지가 될 연못이나 웅덩이마다 석유를 부어서 모기의 번식을 원천봉쇄했다. 심지어 고인 물이란 이유로 성당의 성수까지 없앨 정도였으니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을 취하는 데에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고르거스 장군의 상관들은 "모기 한 마리 잡는데 10달러를 쓸 셈이냐."라고 투덜대었지만, 고르거스 장군은 "그럼 그 10달러짜리 모기가 장군님을 물면 어쩌시렵니까?"라는 말로 불평을 모두 잠재웠다. 사실 고르거스 장군은 이미 1900년대 황열병 전염에도 모기가 큰 매개체임을 알고 같은 방법으로 중미 여러 곳에서 황열병을 크게 줄이며 활약했다. 그 공로로 소장까지 진급해 미 육군 군의병과장을 지내고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9] 말라리아 문제를 해결한 미국은 당시에는 생소하던 전기까지 끌어와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하여 1914년 8월 15일에 완공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시킨 미국도 약 6천 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고, 이 운하 개통공사 과정에 총 2만 8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3. 현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파나마 운하 지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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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10] 실제 파나마 운하로 재미를 본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주변 땅을 점유해 횡포를 부렸다. 이에 현지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저항을 벌였다. 20세기 내내 파나마 운하 지대에서는 미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였으며, 파나마 본토에 살던 사람들도 이에 합세하였다.

미국은 결국 파나마 운하 지대 반환을 결정하게 되고, 1977년 9월 7일 토리호스-카터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자신의 공약으로(파나마 주둔 미군 철수 공약)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파나마에서는 이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에 회부해 67%의 찬성(투표율 96%)을 얻어 조약을 비준했으며[11]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찬성 68 대 반대 32로 비준 동의에 필요한 2/3 찬성(67명 찬성)을 가까스로 넘어 비준되었다.

당시 미국은 몰랐던 사실로, 파나마 내 과격파들은 만약 이 조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운하 자체를 파괴해버릴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는 파나마군의 장교로서 나중에 파나마의 실권자 자리에 오른 마누엘 노리에가가 세운 계획으로, 노리에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운하 주변 마을에 자기 심복들을 심어두고 폭약 등 사보타주에 필요한 장비를 운하 주변에 묻어두기까지 했다. 이 계획의 암호명은 "huele a quemado"(타는 냄새)였으며, 만약 조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파나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구호가 송출되고, 노리에가의 부하들이 한밤중에 운하의 중요 시설을 모두 파괴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갑문을 모두 수리해도 운하를 다시 사용하려면 3년간에 걸쳐 빗물을 받아야 하는데다, 노리에가는 미국이 운하를 수리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으며 미국을 상대로 월남전 파트 2에 가까운 정글 게릴라전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조약이 미국 상원을 통과한 것은 미국과 파나마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행운이었다.

1979년 10월 1일 파나마 운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파나마 측에 반환했으나 파나마인들은 운하 자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1999년 12월 14일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맺어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도 반환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권한 이양식 때 미국 현직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미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그리고 102년만에 확장 개통되었다.

3. 통행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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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 갑문을 통과하는 과정
파나마 운하의 높이는 해수면보다 최대 26미터 높다.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파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불의 고리의 일부로 사실상 바다에 잠긴 산이라 이곳에 있는 화강암 지반을 뚫기 매우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과속도가 느리다. 복잡한 갑문시설이 추가되며 운하의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정하는 댐도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해서, 만일 댐이 무너지거나 폭파되면 수위조정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또한 매번 배가 통과할 때마다 각 단계별 갑문 안에 채워지는 물은 바다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배가 한 척 통과할 때마다 가툰 호수에서부터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이렇게 소모되는 가툰 호수의 물은 궁극적으로는 차그레스 강 유역에 내리는 강우량에 의해 보충된다.[12]

비유하자면 배가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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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운하를 지날 때는 예인선과 전동차들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운하를 모두 통과하는 데 8시간, 대기시간 등을 합치면 24~30시간 가량 걸린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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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는 갑문식으로 만들어져서 비록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무려 20,000km 이상을 삥 돌아가서 최소한 몇 주 이상을 가야되는 긴 거리를 불과 단 하루 정도로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통행수수료로 쉽게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초대박을 터뜨렸다.

4.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

운하를 통행하는 물동량이 워낙 많다보니 파나마 공화국은 운하확장공사를 계획하고 국민투표로 부쳤고, 2006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2007년 공사를 시작하였다.[13] 초기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확장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지연되어 2016년 6월 26일 개통하게 되었다. 100년만의 파나마 운하 확장개통 관련된 사진은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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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중인 신 파나마 운하
이 운하 건설로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것에 의의가 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 자체가 미 해군의 신속한 전개를 목적으로 만든 거였다. 다만 운하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함선의 폭을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야만 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함선의 크기나 배수량 면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냥 맘 놓고 군함을 크게 설계를 못한 것뿐이지 전투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며 영향을 받은 대상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일부 대형 전함 항공모함으로 한정된다. 일단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전폭이 33m로 제한되는데, 미 해군 최대의 전함인 아이오와급의 전폭은 32.97m로[14] 통과 가능하다. 하지만 폐기된 전함 계획인 몬태나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덩치를 키울 계획이었다.[15] 그리고 현대의 항공모함, 특히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하였으나[16], 새로운 운하 개통 후 통과가 가능해졌다.

파나마 운하 통과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 사이즈로 만든 배를 "파나맥스"(Panamax)급 선박이라고 부른다. 통상 폭 32m, 만재배수량 9만톤 내외의 선박이 이에 해당. 현재는 파나맥스 규격을 뛰어넘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을 많이 건조해서 배 자체가 파나마 운하를 넘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파나마 운하의 통행량 자체도 포화상태이다. 하루에 30여 척에 불과한 운하 통행[17]을 기다리느라 바다에 투묘[18]한 채 시간을 보내는 선박이 많다.[19]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파나마 운하의 북쪽 가까운 곳에 폭이 2배 정도 되는 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 새로운 파나마 운하는 대략 폭 49미터, 12만톤급 선박도 통항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미 각국 조선소에서는 새로운 네오 파나맥스(Neo-Panamax) 규격에 맞춰 선박을 열심히 팔고 있다. 가툰 호수의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호수의 확장공사도 했다.

5. 기타

  • 개통된 지 100여 년이 되었지만 운하 운행이 중단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미국이 1989년 12월 마누엘 노리에가 잡기 위해 침공했을 때 약 6시간, 2010년 12월 폭우 때 약 17시간 동안 폐쇄했다.
  • 통행료는 선박의 길이와 화물 적재량 혹은 승객 수 등에 의해 차등이 심하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간다. 평균 비용은 5,000만 원선. 가장 많이 낸 선박은 전장 259m의 디즈니 크루즈 라인 크루즈선 " 디즈니 매직"으로 2008년 5월 16일에 통과할 때 33만 1,200달러(약 3억 4,600만 원)다. 반대로 가장 적게 낸 사람은 1928년에 리처드 핼리버튼이라는 미국 모험가로, 이 운하를 수영해 지나갈 때로 36센트를 냈다. 운하 유지에는 해마다 1,500억 원 정도 들어가지만 연간 수입이 2조 원 규모에 달해 여러모로 파나마 재정의 중요한 요소.
  • 아직도 대형 선박들은 파나마 운하가 아닌 드레이크 해협을 이용한다.
  • 니카라과 호수는 파나마 운하 건설 전에 운하를 팔 만한 곳으로 경합하던 곳이었고 파나마 운하를 실제로 뚫으면서 한동안 니카라과 운하 얘기는 쏙 들어갔으나, 21세기 들어서 다시 파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도만 보면 파나마보다 훨씬 길어 보이지만 중간에 호수와 강이 있어 실제로 뚫어야 하는 구간은 비슷하고 이런저런 장점이 있기 때문. 하지만 운하가 없는데 하나 파는 것과 이미 하나 있는데 더 파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서 갑론을박 끝에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흐지부지되었다. 니카라과 운하 문서 참조.
  •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회문이 있다. 'A man, a plan, a canal-Panama!'. # 더 긴 버전
  • 본래 파나마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파나마 해협이라고 해서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가 완전히 분리된 적이 있었다.

6. 창작물에서

소닉 윙즈중 에어로 파이터즈 3 스테이지 4에서 보스인 몬태나급 전함이 있는 장소다.

맥스 페인 시리즈 중 3편의 챕터 11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챕터 11 한정으로 등장하는 적들인 콜롬비아의 무장단체 AUP가 이곳에서 해적질을 하는 장소. 해적질에 참가했던 AUP는 전원 끔살당했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AUP에게 살해되어 맥스 페인에게 또다른 트라우마를 남긴 장소이기도 하다. 시간상 그 이후인 챕터 5의 뉴스를 보면 여전히 파나마 운하 주변에서 민폐를 끼치고 다닌다고 나온다. 맥스는 술에 취해서 자고 일어나보니 요트가 AUP에게 점거당한데다 겨우겨우 밖까지 나와보니 파나마 운하인 상황이라, 자신이 자는 사이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해 맥스는 "이것 참 대단하군. 나중엔 자는 사이 달까지 갈 수도 있겠어"라고 독백한다.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중 수에즈 운하와 같이 건설가능 디시전으로 존재한다.

Victoria 3에서도 '문명화 사명' 사회 기술을 연구하면 파나마 주에 지을 수 있는 랜드마크로 구현되어 있는데, 그냥 위신이나 정치적인 자잘한 보너스를 주는 다른 랜드마크와는 다르게 대서양과 태평양 해로가 연결되는 특이한 메카니즘을 지니고 있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했던 골드 러쉬!에서도 등장한다. 독사를 주의해서 지나가야 하는 스테이지다.

문명 시리즈에서는 문명 5에 등장할 예정이었다가 정식 발매 버전에서 잘려나갔으며[20], 최신작 문명 6의 2번째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에 운하가 추가되면서 불가사의로 등장했다. 실제 지구 맵에서도 파나마 지역이 등장하는데, 파나마 지역의 지형이 파나마 운하 건설 조건과 맞지 않아서 파나마에 파나마 운하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도시를 지으면 나오는 운하 때문에 수에즈 지역과 함께 해군 운용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입지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지라 파나마 운하를 길게 건설하는 업적도 존재한다.

대체역사소설 더 퍼거토리에서 노왕, 대진국 정부측에서 추진중인 공사로 나온다. 프랑스의 무리한 개통시도를 모티브로 따온듯하다.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는 만약 미국이 전쟁중일 때 파나마 운하를 폭발 시키는 결정이 존재한다. 반대로 폭파되었다면 수리할 수도 있다. 이 결정은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상실하면 운하를 통제하는 국가에게로 넘어간다. 동일한 조건의 결정이 수에즈 운하에도 존재한다.

배틀필드 2042에서는 가툰 호수가 전부 매말라 맵 한가운데에 좌초된 선박이 나오는 맵으로 등장한다. 맵 이름도 좌초다.

삼체에서 이 곳을 통과하는 외계인 추종자들의 배가 지구 연합의 기발한 공격에 파괴된다. 특히 배가 이곳을 지나는 시간, 구체적인 운하 내의 장소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공격 방법의 기발함 함께 절묘하게 어울리는 장소로 삼체 1권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6.1.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대항해시대 2에서도 포르토벨로, 파나마 등 파나마 인근 지역 항구에 기항하면 NPC 중 한 명이 "여기에 운하가 있었으면…."이란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삥 돌아가야 되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캐 공감. 지금 운하가 있기 때문에 저런 대사가 삽입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술했다시피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는 16세기 카를 5세 때부터 제시되고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배경도 딱 그 시점이니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21].

대항해시대 3에서는 육상탐험이 가능하여 그리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거기에 추가로 원양항해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교역의 중요성은 줄고 그래서 굳이 태평양을 횡단해야할 이유가 무대륙 찾을 때 아니면 없었다) 그래도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와 이구아나나 이스터섬의 모아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무대륙같은 발견물을 찾기 위해선 마젤란해협을 건너야 했기에 이때는 꽤나 절실했다.

대항해시대 4에서도 자동항해 기능의 강화와 신대륙 서해안에 단 하나의 정식항구를 두지 않을 정도로(페르남부쿠 아래로는 아예 정식항구는 없고 죄다 보급항만 있다)신대륙 서해안을 홀대한 탓에 절실한 수준까진 아니었으나, 몇몇 아이템들은 서해안에서 탐색해야 했기에 이때만큼은 절실해졌다.[22]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2, 3, 4 시리즈를 통틀어 운하 떡밥이 많았는데, 파나마 또는 인근 항구에 투자를 해서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실제로 운하가 개설되는 20세기까지 플레이하면 운하가 열린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100% 구라.[23]

이후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드디어 구현되었다. 역사적 사실과는 반대로 업데이트하다보니 수에즈 운하보다 먼저 구현되었고,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양대 운하로 활약하고 있다. 패치 이전까지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10분 전후로 길었고, 통행료도 100만 두캇 약간 안 되게 비쌌지만, 패치를 통해 통과 시간이 사라지고 통행료도 대폭 감소되었다. 초창기 등장한 컨텐츠답게 여러 제약이 있는데 일반적인 상태로는 교역품을 싣고 통과할 수 없으며, 시간제한이 있는 퀘스트를 받은 상태에선 이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틀란티스 업데이트 이후 등장한 포세이돈의 가호 아이템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동안 교역품을 싣고 운하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실의 파나마 운하가 물류 수송을 위해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교역품 수송이 안 된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한 부분.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 현실과는 다른 제약을 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 자체가 매우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대양 항해가 굉장히 편해진다.

게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고증오류가 있는데, 사실 별도의 동력이 없는 범선은 태평양과 대서양과 호수의 수위 문제 때문에 예인선 없이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 현대에도 범선은 세계일주 시에 파나마 운하를 사용하지 못하고 혼 곶 남단으로 다닌다. 이를 클리퍼 루트라고 하며, 대략 40도 전후의 위도에서 강력한 서풍을 타고 다닐 수 있다.[24]

대항온의 파나마 운하는 오랜 시간 대서양-태평양 이동의 중추를 담당하였으나 시간이 지나 북미 대륙 횡단 철도가 등장하면서 그 위상이 많이 바래졌다. 교역품 수송도 가능하고 훨씬 더 빠른 철도 이용 루트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 대륙 횡단 철도는 보스턴- 오마하- 새크라멘토- 샌프란시스코 루트를 거쳐 이동이 가능한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이 없다보니 파나마 운하보다 훨씬 시간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북미 대륙의 너비를 생각하면 이동에 시간이 안 걸리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편의를 위해 이동 시간을 생략하다보니 횡단 철도가 운하보다 더 편리해진 것. 카리브 섬들이 산재해 있어 루트를 계속 손봐줘야 하는 운하와 달리 망망대해를 지나 보스턴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횡단 철도 루트가 가는 것도 더 편하다.[25]

이렇다보니 대항온에서는 철도 이용이 물류 수송의 주역이 되고 운하가 찬밥이 되어버리는 현실 역사와는 정반대인 상황이 나타났다.[26] 게임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선박들이 캐릭터와 함께 움직이고 보스턴에서 물자를 가득 실은 배들이 단순히 캐릭터가 정반대편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고 해서 그대로 샌프란시스코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인 것.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이게 안 되니까 물자 수송을 위해 파나마 운하가 등장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나 기묘한 현상이다.


[1] 이 급의 선박은 통상 120,000~160,000DWT의 톤수에 선폭 약 70m 정도의 규모를 가진다. [2]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자 [3] 한국어 자막 가능 [4] 당시에는 퀴닌 같은 말라리아 약이 개발되기 전이라 아프리카 같은 곳도 내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해안가에 머무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한창 후대인 운하 착공 당시에도 모기 때문에 고생했는데 지형적인 난이도는 둘째치고 말라리아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5] 고속도로와 도시고속도로만으로 아카풀코에서 베라크루스까지 갈 수 있는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이 과정에서 얻는 획득고도 차이는 엄청나다. 21세기 고속도로 등 신규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해발 3천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어졌다. 푸에블라의 2,200m 근처까지 올라갔다가 할라파를 거쳐 내려온다. 경로는 95D번 고속도로 ~ 멕시코 21세기 고속도로 ~ 푸에블라주 438D번 고속도로 ~ 푸에블라 외부순환도로 ~ 멕시코 150D번 고속도로 ~ 멕시코 140D번 고속도로이다. 그런데 아카풀코는 무역항 기능을 상실한데다 살리나 크루스는 규모가 크지 않고, 대 아시아 무역을 담당하는 곳은 콜리마 주의 만사니요라서 태평양 ~ 대서양 간 거리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만사니요에서 베라크루스까지는 총 1,189 km로, 멕시코 200D번 고속도로 ~ 멕시코 110번 국도 ~ 멕시코 54D번 고속도로 ~ 과달라하라 마크로리브라미엔토 고속도로 ~ 멕시코 15D번 고속도로 ~ 멕시코 아르코 노르테 고속도로 ~ 멕시코 136번 국도 ~ 멕시코 140D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한다. [6] 니카라과 호수에는 지금도 니카라과 운하를 지으려 하고있다. [7] 1912년 모리스 르블랑 아르센 뤼팽의 다섯 번째 단행본인 " 수정마개(Le Bouchon De Cristal)"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다루었다. [8] 그 악명 높은 다리엔 갭과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곳이다. [9] 고르거스 장군은 그 스스로가 젊었을 적에 황열병에 걸려 죽을 뻔했다. 당시 간호사가 헌신적으로 간호하여 운 좋게 살 수 있었는데, 고르거스 장군이 황열병에서 치료되자 이번엔 이 간호사가 황열병에 걸렸다. 미안한 마음에 고르거스 장군은 이 간호사가 황열병이 나을 때까지 잘 대접했고 이 인연으로 둘은 결혼하였다. [10] 이 때문에 국가와 속령의 코드를 규정한 ISO 3166에서는 과거 파나마와 별도로 파나마 운하에도 코드를 할당한 적이 있다. 현재는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이 파나마로 이양되었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에 할당됐던 코드가 삭제되고 파나마의 코드로 병합되었다. [11] 당시 파나마는 오마르 토리호스의 독재 치하에 있어, 미국 내에서는 비민주적인 파나마가 투표 결과를 조작할 것이라는 이유로 조약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다. 이에 토리호스는 투표 몇 주 전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정당 활동 탄압 및 언론 검열을 완화한 바 있다. [12] 따라서 파나마 지역에 가뭄이 들면 배의 통과에 소모되는 물이 빗물로 보충되지 않으므로 선박의 통행이 제한된다. 2023년에도 파나마 지역의 가뭄으로 운하 통행량이 제한되어 파나마 운하 지역에 선박 교통정체가 일어났다. # [13] 이 소식을 들은 이집트가 곧바로 수에즈 운하 확장에 들어가 2015년 먼저 개통했다. [14] 33m 제한인 파나마에서 '딱' 3cm가 남는다. 양쪽으로 계산하면 남는 너비는 무려 1.5cm [15] 다만 이 당시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계획된 상태여서 공사가 끝나면 통과가 가능해질 전망이었다. 나중에 이 공사계획도 취소. [16] 2차 세계대전 전후 항공기술의 발전으로 함재기는 당시의 몇 배나 커졌으며, 자연스레 이를 운용하기 위해 항공모함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운하 하나 통과하자고 폭을 제한해 탑재량과 전투력을 깎아먹느니 운하를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낫다. [17] 운하 자체는 24시간 돌리고 있으나 갑문식이므로 물을 채우고 비우고 하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18] anchoring, 投錨, 닻을 내리고 정박함. [19] 보름에서 한 달씩 기다리는 일도 흔하다. 운행이 늦어지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인건비도 계속 나가지만, 돌아가는 것보다는 빠르니까.(+ 가만히 정박해 있으면 연료도 절약된다.) [20] 그야말로 발매 직전에 잘렸는지, 불가사의 아이콘과 완공시 출력되는 설정화까지 게임 내의 더미 데이터로 남아 있다. [21] 대항해시대 초기, 소위 '탐험의 시대'가 대강 마무리되어 세계의 형태가 대강 드러난 16세기 중반 무럽부터는 나름의 당시 항로개척의 선두국가였던 스페인 및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나름의 세계 교역로, 특히 대서양-태평양 교역로가 형성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남미의 은이 중국에 대량으로 유입되었고, 이 덕분에 중국에서 은본위제의 성립이 가능해졌다고 할 정도. (마닐라 갤리온과 같은 대형 갤리온선이 이당시 태평양 횡단 교역을 위해 건조된 선박들이다.) 따라서 당시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멀고 험한 드레이크 해협(+ 마젤란 해협)을 거치지 않고 남미 동해안과 서해안(=더 나아가 유럽-남미 항로와 남미-동아시아/동남아시아 항로)를 바로 연결해주는 항로가 그만큼 절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스페인은 타국의 영역인 유라시아 남부 해안을 거치지 않고 자국의 영향력이 강한 태평양-대서양만을 통해 자국과 주요 시장을 연결해주는 항로를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게임 대항해시대의 배경이 딱 이 시점, 대충 16세기 정도로 주요한 지리적 개념들의 발견은 대부분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항로와 교역망 구축 및 구체적인 탐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1480년에 시작하는 3편 제외) [22] 다만 교역이 목적이 아니라 탐색을 목표로 한 경우에는 의외로 일본에서 출발해서 태평양을 횡단하는 것이, 카리브해에서 남미대륙 남단을 거쳐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다. [23] 요즘이라면 인터넷 검색만 해 봐도 이런게 구라라는 걸 알 수 있겠지만... 인터넷의 대규모 보급 이전이던 90년대에는 이런 헛소문이 퍼질 여지가 상당히 많았다. PC통신 등의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았고. [24] 하지만 게임 상의 지리가 메르카토르 도법을 기준으로 해서 남극해 근처로 갈수록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멀어지는 관계로 실제 범선의 루트대로 움직이기는 힘들다. 대신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 고위도 원양 해역에서는 속력 보너스가 많아진다. [25] 그런데 철도 또한 운하처럼 기간제 퀘스트를 받았을 때는 이용할 수 없다. [26] 현실의 철도도 물류 수송에 이점을 주니까 상관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항해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현실로 따지면 선박이 직접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보스턴에서 물류를 하역하고 철도로 실어 보낸 다음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선적하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